Switch Mode

EP.192

       자색 마탑의 마탑주, 대마법사 바이올렛아이리스가 움직였다.

       

       ===============================================================

       

       서큐버스 여왕의 거처, 쾌락을 좇는 정보생명체들의 음탕한 낙원 『둥지』.

       

       『둥지』의 모든 구성원은 쾌락에 잔뜩 취하여, 우리들의 하얀 여왕께서 다음 쾌락을 선물해 주실 그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브로커에게 목줄을 잡힌 마약 중독자와 같이.

       

       그러나 이변이 찾아온다. 낮게 깔리는 서늘함이 엄습한다.

       

       스으으으──.

       

       여왕의 지배력에 헐떡이며 인간들의 영혼에서 마력을 뽑아내던 일꾼 서큐버스들은, 오래도록 느껴보지 못했던 감각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들은 처음에는, 당황했다. 너무나도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에 혼란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이건 대체 뭘까.

       

       심장이 두근거리고, 진땀이 흐르고, 전신의 근육을 한껏 긴장시키고, 바들바들 떨게 되는 이 감각은 무엇일까.

       

       몇몇은 오르가즘과 혼동하고는 했다. 하지만 아니다. 비슷하지만 전혀 다르다. 이것은 본능으로부터 마음을 찌르르하고 울리는, 아주 무서운 것이다.

       

       쩌적. 쩍.

       

       하늘이 으깨지는 소리가 났다.

       

       수많은 사람의 정신을 엮어 만든 세계의 껍데기에 커다란 균열이 났다. 몽마들은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지르며 날아올랐다.

       

       그러나 어디로 도망갈 수 있을까? 하늘이 무너지고 있는데.

       

       틈 너머로부터, 눈동자가.

       

       안쪽에서 어두운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거대한 보라색 눈동자가, 모형정원의 안쪽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아주 느릿하게.

       

       그 집요한 시선이 스쳐 지나가면 마주친 몽마는 감히 숨도 쉴 수 없었다.

       

       “돌려줘.”

       

       껍질을 깨부수고 온 세상 밖의 거인은 소곤거리듯이 작게 말했지만, 누구라도 들을 수 있을 만큼 커다랗게 울렸다.

       

       “돌려줘, 돌려줘⋯⋯.”

       

       으득으득. 이 가는 소리와 섞여서, 서서히 고조되는 외침이 『둥지』를 울린다. 새까만 감정은 유리병의 아래에 조금씩 고이듯이 흘러 쌓인다.

       

       몽마들의 피부에서 식은땀이 뚝뚝 흐르고, 최대한 몸을 웅크려 눈에 띄지 않으려 숨는다. 그러나 벗어날 수 없음을 안다⋯⋯.

       

       알았다. 이제야 알았다. 그들이 느끼고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공포였다.

       

       잔뜩 쾌락에 취해서 녹아버린 멍청한 뇌로도 알 수 있을 만큼, 몸의 정보 하나하나가 빨간불과 사이렌을 울려대는 선명한 죽음의 위협이다.

       

       모두가 느꼈다. 파국이 다가온다.

       

       저 연약한 유리로 만들어진 댐이 깨져나가는 순간, 저것의 분노가 『둥지』를 휩쓸 것이다. 막아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주겠어. 뭐든지 주겠어. 저 괴물이 찾는 게 뭘까. 패닉에 빠진 몽마들은 저마다 값나가는 물건들을 바쳤다. 

       

       고문하던 인간의 영혼을 뽑아, 두손으로 공손하게 하늘에 받쳐 올리고. 아끼던 가락지를 손가락째로 잘라 진상했다. 극도의 공포로 인한 발버둥이었다.

       

       그러나 눈동자에 가득 찬 실망은 사라질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쩌적. 하고.

       

       거인은 울음을 터트리며 절규를 내질렀다.

       

       “아아아아아아⋯⋯ 돌려줘돌려줘돌려줘──!!”

       

       으직, 콰가가가가가각──!!

       

       번쩍인다. 하늘로부터 빛의 기둥이 내려와 타락한 세계를 불태운다. 외부에서 쏘아진 『빼기』 수백 줄기가 지면, 건물, 하늘, 영혼, 모든 것을 가리지 않고 갈아버렸다. 

       

       “흐, 흐아아아아악!!”

       

       “없어, 없어! 뭔가가 사라졌어!”

       

       “나, 나 움직이는 법을, 몰라. 누군가, 나도 데려가⋯⋯!”

       

       정보가 휩쓸려서 사라져간다. 수많은 몽마가 육체를 구성하는 정보가 지워져, 허물어져 죽었다. 『둥지』자체도 균열과 파열이 발생하여, 조각조각 나 허무로 떨어져 간다.

       

       여기까지 약 10초 경과.

       

       3황자의 머리에 있는 『둥지』입구를 백도어 삼아, 자색 마탑주가 전력으로 발휘하는 대 정보 포격은── 둥지의 40%가량을 완전히 말소했다.

       

       여왕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 하하⋯⋯ 이걸, 이 괴물을 믿고 있었던 건가요? 상냥한 미마 씨는.”

       

       유리와 미친 마법사를 잡아먹는 데 9할가량의 의식을 투자하고 있었던 여왕은, 자신의 영지에서 벌어지는 대재해에 급하게 배분을 조정했다.

       

       5대 5다.

       

       그리고, 저장해 둔 인간의 영혼을 꽉 쥐어 짜내 급하게 마법을 전개했다. 악신상의 힘을 빌어 재앙을 막아낸다. 슈르르르르⋯⋯.

       

       『둥지』의 지면으로부터 부글부글 끓는 검은 타르 웅덩이가 생기며, 폭발했다. 간헐천이 터지듯 솟구친 검은 기둥이 『빼기』에 맞선다.

       

       동시에 『둥지』를 닫는다. 입구를 모조리 폐쇄하고, 깨져나간 하늘을 기워 붙이며, 공격 중인 자색 마탑주를 쫒아낸다.

       

       이 작업이 이루어지는 동안.

       

       하늘의 균열로부터 툭, 하고 침투조가 『둥지』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가볍게 일어선다. 산양의 뿔을 머리에 달고 있는 소녀는, 한껏 불퉁한 얼굴로 팔짱을 끼고 툴툴거렸다. 정말이지 마음에 안 들었다.

       

       “⋯⋯정말, 제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제게 ‘미친 마법사를 구해’라고 명령을 내린다고 해서, 순순히 들을 리가. 그 미친 새끼를 뭐가 예쁘다고 구해요. 그쵸?”

       

       악신의 파편, 7%따리, 에스포와르 어쩌구, 통칭 ‘악신쨩’은 『빼기』와 『히로인』이 충돌하는 정보적 생지옥을 유유자적하게 걸어 나갔다.

       

       그러면서 도망치는 서큐버스 몇 마리쯤은 잡아먹고, 굴러다니는 인간의 영혼도 한입 야무지게 앙 베어 물까 하다가⋯⋯ 참았다. 걸리면 어떤 꼴을 겪을지 눈에 선하니까.

       

       다음에 큰 실수를 저지르면 너는 정조관념 박살 날 줄 알라고 미친 마법사가 경고한 바 있었다.

       

       절대로 쫀 건 아니지만.

       

       얼마 안 남은 자신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다소의 협상안 정도는 들어줄 만했다. 그리고 또, 그녀는 미친 마법사를 구하려는 게 아니었다. 서큐버스 여왕을 괴롭히러 온 거다.

       

       그 행동이 아주 우연히도 미친 마법사의 탈출에 도움이 될 뿐이지.

       

       타박타박. 가볍게 걸어서 도착했다. 마력을 휘둘러 간신히 자탑주에게 대응하고 있는 하얀 여왕의 모습이, 아주 잘 보이는 특등석이다.

       

       악신의 파편은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우리, 엄청 오랜만에 본다⋯⋯ 그렇지?”

       

       “어머나, 아리따운 분이시네요. 하지만 당신과 저는 초면인 것 같은데⋯⋯ 혹시 미마 씨의 지인인가요? 그를 탈출시키기 위해서 온 거려나아.”

       

       “미마⋯⋯ 으엑. 너, 설마 지금⋯⋯ 그 녀석을 좋아하는 거야? 미치겠네.”

       

       지적 생명체를 놀리는 것을 업으로 삼는 악신쨩은, 여전히 예리한 관록으로 여왕의 이상행동을 눈치챘다.

       

       저건, 분명 불필요한 감정을 가지지 않도록 설계되었을 텐데.

       

       쯧.

       

       혹시나 기대했다. 미친 마법사가 궁지에 몰린 끝에,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악신의 본체를 풀어버릴 가능성.

       

       하지만 기대가 팍 식었다. 일이 어떻게 굴러간 건지는 몰라도, 자기 약점을 아주 보란 듯이 드러내고 있는 얼간이가 상대라면⋯⋯ 결과는 볼 것도 없다. 미친 마법사가 이기겠지.

       

       “됐어됐어. 기대한 내가 병신이야.”

       

       “⋯⋯⋯⋯?”

       

       “네가 날 알아보지 못하는 것도 당연해. 데이터에 이물질이 좀 꼈거든⋯⋯? 그래도 걱정 마. 오는 길에 몇 마리 잡아먹어서 리소스가 제법 있으니까.”

       

       본래의 모습을 살짝이나마 되찾을 수 있을 터다.

       

       본체는 비록 미친 마법사의 대가리 안에 봉인되어 있더라도, 힘의 근원은 외부세계에 여전히 실존해 있다. 저 흑마법사들이 악신상이니 뭐니로 악신의 힘을 끌어다 쓸 수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그렇다면, 아무리 파편화되었을지언정 악신쨩은 악신 본인이다. 자신의 힘을 꺼낼 수 없을 리가 있나. 접속해서 끌어낸다.

       

       으득, 으득으득.

       

       악신쨩의 피부에 용린(龍鱗)이 돋아났다. 변이는 양팔에서 그쳤으나, 그 새까맣고 번들거리는 비늘의 윤기에, 여왕은 눈을 크게 뜨고 놀라움을 표했다. 

       

       이해했다. 저 소녀는 흑마법사들이 그토록 쫒던 악신의⋯⋯ 일부였다! 하지만 그 강대한 존재가, 어쩌다가 저런 꼴이 되었다는 말인가.

       

       여왕은 산뜻하게 웃으면서 손뼉을 쳤다.

       

       “아하⋯⋯ 아직, 제 운명의 그늘은 걷히지 않은 거네요. 하지만, 우스워요. 악신의 조각. 그런, 형편없이 영락한 꼴이라니!”

       

       “긁지 마, 창녀야.”

       

       “나는 옛날과는 달라요. 나는 당신이 남긴 힘을 얻었으니까, 더 이상 휘둘리거나 조종당하거나 하지 않아. 그렇게 약해진 당신쯤은, 한껏 농락해서 잡아먹어 줄 테니까.”

       

       “조잡하게 만들어진 프로토타입 주제에.”

       

       챠자자자작!

       

       문답은 무용. 서로 놀리고 헐뜯을 생각뿐인 두 악귀인 터라, 대화가 더 이어진들 인신공격일 뿐이다. 용린(龍鱗)이 정렬하며 날붙이끼리 스치는 듯한 소리를 냈다. 

       

       악신쨩이 꺼내 온 용린(龍鱗)이 내포한 힘은 순수체급.

       

       연산속도와 시전 속도를 큰 폭으로 끌어올리는 힘이다. 악신의 도구함에는 여러 괴악한 힘들이 내장되어 있으나, 결국 도구를 다루는 것은 도구를 쥔 사람의 솜씨가 아니겠는가?

       

       피지컬만 좋으면 온갖 괴상한 우화도 필요가 없다. 그러니까 미친 마법사가 강한 거다. 돌연변이 같으니.

       

       악신의 파편이 위협적인 기세를 흘리자, 여왕의 의식이 또 한 번 분화한다. 자탑주를 상대하는 데 5, 악신의 파편을 상대하는 데 2, 미친 마법사를 삼키는 데 3.

       

       악신쨩은 씨익 웃었다.

       

       함정을 덕지덕지 깔아 둔 적의 홈그라운드에 맨몸으로 들어가서 아직도 비비고 있는 놈이다. 이렇게 조금만 밸런스를 잡아주면, 끝이다. 이거면 미친 마법사가 알아서 하겠지.

       

       전투기 시작하기 전, 둘은 서로를 잔뜩 비웃었다.

       

       “만들어진 장난감은, 장난감답게 주인님 말 듣는 거야. 죽어.”

       

       “악신은 과연 무슨 맛일까, 정말 기대되네요. 우후후⋯⋯.”

       

       타앗. 달려든다. 그리고.

       

       카가가가각──!!

       

       비늘과 톱니바퀴가 격돌했다.

       

       ===============================================================

       

       흔들린다. 새까만 늪이 흔들린다.

       

       통제력이 훅 빠져나가고, 느껴지던 압박감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기다리던 기회가 늦지 않게 찾아왔다. 우리가 녹아 죽어버리기 전에.

       

       나는 엑스트라 모듈을 준비하면서 몸을 풀었다. 유리 랜스터 또한 기지개를 쭉 켜며 전투태세를 갖췄다.

       

       “마음의 준비는 끝났어?”

       

       “예, 세차게 맥동하고 있습니다.”

       

       “⋯⋯좋아, 나가면. 너는 너와 우리들을 위해서 사는 거야. 2황자에게 소원권을 써서 전속 메이드로 고용해 버릴 거니까.”

       

       “세 끼 식사 준비에 목욕시중까지 해 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시죠. 당신은 고백 멘트나 준비하십시오.”

       

       안 그래도 준비했다. 고백 공격으로 혼내줘야 할 사람이 너무 많다. 당장에 서큐버스 여왕도 고백으로 조질 예정이었으니까.

       

       새까만 늪은, 탈출은 꿈도 꿀 수 없던 여왕의 위장이었지만. 외부로부터의 습격에 그녀의 의식이 상당히 분산된 지금은⋯⋯ 다르다.

       

       최소한의 리소스만 있다면 돌파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최소한이 지금 없다.

       

       쓰기는 싫었지만, 잔뜩 지치고 녹은 상태니까 어쩔 수 없다. 탄환용 정보들도 다 빼앗긴 빈털터리인 지금, 배팅 테이블에 앉을 최소 자본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

       

       나는 기억을 연료로 삼으려고 했다. 중요도가 낮은 기억, 예컨대 무협 세션이라든가를 태워서 리소스를 확보하려는 찰나.

       

       “마법사님.”

       

       “어.”

       

       하늘에서 툭, 하고. 비늘 하나가 떨어졌다.

       

       여러 의미로 익숙한 느낌이 드는 조각이었다. 집어 들고는 냄새를 꼼꼼하게 맡아보았더니, 우리 친애하는 에스포와르 드 이터널 다크의 냄새가 난다.

       

       꾹꾹 알차게도 눌러 담은 정보도 담겨 있었다. 구성 정보를 살피면, 지나가는 일꾼 서큐버스 한 마리를 프레스기로 압착한 것 같은데.

       

       희영현이도 미친 마법사 구출 작전에 합류한 건가? 그리고⋯⋯ 『둥지』에서 이곳으로 연결된 통로를 찾아, 나 쓰라고 데이터를 보내기까지?

       

       이 새끼, 왜 안 하던 예쁜 짓을 하지.

       

       그래. 나가면 내가 큰맘 먹고 간헐적 냥냥체는 지워주마. 나는 비늘을 손으로 꾹 눌러 부쉈다. 녹았던 몸이 일부분 복구된다.

       

       고작 몽마 하나짜리 정보로 풀 컨디션이 될 일은 없으나, 이거면 떡을 치고도 남는다. 내 옆에는 든든한 핑발레즈까지 있으니까.

       

       늪의 어느 지점을 쿡 밟는다.

       

       그리고, 단번에 파고들어 뒤집으면── 세계가 시계방향으로 반 바퀴 회전한다. 하늘이 땅이 되고, 땅이 하늘이 된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던 찐득한 검은 비는, 이제 아래에서 위로 솟는다.

       

       뒤집혔으니, 비와 함께 자연스럽게 추락한다.

       

       찰나 간의 몽환에서 눈을 뜨면.

       

       나와 유리는 지평선까지 아득히 새하얀 공간 위에 서 있다. 그리고 우리들의 앞에는, 여왕── 『쾌락 마시는 숫처녀』가 있었다.

       

       “어머나, 너덜너덜.”

       

       “자기야, 나왔어. 오래 기다렸지?”

       

       “후후⋯⋯ 그건, 혹시 미인계인가요?”

       

       “어떠려나, 어쩌면 진심일 수도 있어. 내가 사랑하던 어린 유리는 너였으니까. 조금 헷갈리네.”

       

       전혀 헷갈리지 않는다. 저런 여자를 사랑할까 보냐.

       

       당연히 빈말이고, 그걸 여왕도 나도 안다. 그럼에도 내뱉는 의미가 있다. 상대의 능력을 이용하기 위해서다.

       

       핑발레즈에게 들었다. 승계승화, 『톱니바퀴 : 히로인』이라던데.

       

       세계 전체가 무대가 되는 식으로 작용하는 거라면, 여왕이 GM의 자리에서 벗어나 연기자가 된 시점부터 그녀 또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약점’에 불과한 유리 랜스터의 연정을 아직도 갖고 있는 거겠지. 여왕은 히로인이니까!

       

       따라서, 나는 젠틀하게 구는 편이 좋겠다. 극장의 관객들이 보기에 흡족한 남주인공일 수 있도록.

       

       “⋯⋯우리를 보내 줘, 여왕! 나는 너와 싸우고 싶지 않아. 너도 사실은, 그렇잖아?”

       

       “⋯⋯⋯⋯.”

       

       여왕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한다. 가라앉는다. 꺼림칙함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그녀는 잠깐 눈을 감았다가 뜨곤, 웃었다.

       

       “지금, 조금 혼란스러운 상태라. 악신의 조각에게 들었답니다. 당신의 머릿속에⋯⋯ 있다고. 상당히 흥미로웠어요.”

       

       “음.”

       

       “이 행동도 이해가 닿지 않네요, 미마. 차분하게 티 한 잔을 곁들여서 생각해 보면⋯⋯ 당신의 노림수도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럴 시간은 안 주시겠죠? 천재니까.”

       

       그래서.

       

       여왕은 공세를 다짐했다.

       

       “지금은 여유도 없고 바빠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을 다시 가라앉히는 일에 열중할게요. 너무 슬퍼하지는 말아주세요, 미마?”

       

       “온다, 핑발레즈!”

       

       “승계승화(承繼昇華) – 『톱니바퀴 : 히로인』.”

       

       찰칵.

       

       찰칵찰칵찰칵──!

       

       단번에 휘어잡힌다. 커다란 손아귀가 이 공간 자체를 거머쥐고, 거대한 인력이 우리들의 등을 떠민다. 처음으로 닿는 것은 시선의 교란 명령.

       

       휙, 하고 시야가 뒤집어진다. 눈동자가 멋대로 움직인다. 주의가 이상한 곳으로 쏠린다.

       

       그걸, 나는 전방위 정보 수집으로 커버한다.

       

       까짓거 그래라. 내 눈을 얼마든지 발아래로 내리깔라고 해라. 하지만 발밑에서 흔들리는 먼지와 그림자를 보고, 여왕의 움직임을 읽어낼 수 있다면. 그러면 그만 아닌가?

       

       탓, 타다닷.

       

       유리와 나는 동시에 달렸다. 유리에게는 ‘꼬리’를 통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해주고 있으니, 눈을 감아버려도 정확하게 여왕을 노릴 수 있다.

       

       접근 중에, 제2파가 온다.

       

       『히로인 : 마음을 녹이는 독』.

       

       사람의 마음을 녹여, 잔뜩 흔들어 놓는 권능. 유리 랜스터를 잠자는 숲속의 공주님으로 만들어버린 그 기술이다.

       

       “⋯⋯첫 시연이다, 핑발레즈! 합체기다!”

       

       “신나서 떠들지 말고 발동부터 하십시오!”

       

       알았다니까.

       

       마음을, 희게.

       

       그리고 그 마음을, 유리에게로.

       

       그녀의 영혼을 물들인다. 영혼의 변화는 육신에도 동반하여 나타난다. 유리 랜스터의 눈동자 한가운데에 흰 점이 찍혔다. 눈은 마음의 창이니.

       

       차르르르르르륵──!!

       

       사슬 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반대다. 사슬을 묶는 소리가 아니라, 푸는 소리다. 억눌러 놓은 마음을 한껏 풀어헤쳐, 그 반발력으로 정신 간섭을 차단하는 변이우화(變異羽化).

       

       “『백(白) : 본망해방(本望解放)』!”

       

       촤라라라락!

       

       분노도, 기쁨도, 슬픔도, 온갖 감정이 부풀어 오른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에는 한계가 있다. 마음을 가득 채운 이상, 가짜 연심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흐응?”

       

       끓는 것 같은 연정이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돌파했다. 그런 가짜에 놀아날 여유는 없다!

       

       이제 여왕과의 거리는 열 발짝도 채 남지 않았다.

       

       미리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건 여기까지. 이다음은 임기응변이다. 여왕에게 더 남은 수가 없다면 이걸로 때려눕히고 전투는 종료지만.

       

       “그러면 우리, 다음 스텝으로 가 볼까요♥”

       

       그래, 그렇게 쉽게 풀릴 리가 없지.

       

       “『히로인 : 웨딩 마치』.”

       

       ⋯⋯제3파가 온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러면 내일 또 만납시다, 마이 프렌즈!
    다음화 보기


           


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