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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2

    루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저기, 정말 나도 지금 수영복을 골라야 하는 겐가?”

     

    루크의 질문에 소르비는 여기까지 와서 무슨 말을 하냐는 듯 루크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연하지, 설마 바닷가에 가서 정말 일식만 보고 올 셈이야?”

    “난 처음부터 그러려고 했다만…….”

     

    처음부터 일식을 관찰하는 것이 목표였다.

    수영은 주 목적이 아닌만큼, 필요에 따라 생략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딱히 수영을 위해 복장까지 구매할 필요성은 역시 느끼지 못해 설득을 시도해보았으나, 이번에는 예르나 쪽에서 고개를 저었다.

     

    “소르비 말이 맞아, 이왕 놀러가는 건데, 가장 즐겁게 놀아야지.”

     

    예르나는 루크가 지금은 저러지만 막상 바닷가에 가면 누구보다 재밌게 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학교도 처음엔 가기 싫어했지만, 점차 친한 아이들도 생기고, 재밌게 다니고 있으니까.

    아이들이 싫어한다고 해서 그냥 무조건 방치해버리는 것이 좋은 양육방식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루크와는 좋은 추억을 되도록 많이 쌓고 싶기도 하고.”

     

    “흐음…….”

     

    그런 예르나의 말을 들으니, 루크도 더 이상 고집을 피울 수가 없었다.

     

    그 말은 어딘가 그리운 느낌이 든다.

    그것은 기억에 남은 누군가의 말이었기 때문일까.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충분히 즐기지 않으면 손해죠. 모험이 끝났을 때, 되도록 즐거운 기억을 갖고 있는 편이 좋지 않겠어요?’

    ‘레니에의 말이 맞아, 우리에겐 언제나 이럴 시간이 부족하다고!’

     

    크라켄 사냥을 위해 방문한 항구도시에서, 자신은 그저 바다 위에서 있을 오랜 여정에 대비해 에너지를 비축해두려고 했으나 그 둘이 그렇게 재미없게 살아서는 재미없는 사람밖에 될 수 없다며 어찌나 쫑알거렸는지.

     

    가끔은 지식을 얻기 위해서 이런 행동에 몸을 맡기는 것도 필요하다며 항상 자신을 설득했고, 이내 자신은 어느 순간 그 등쌀에 못 이겨 설득당해주곤 했다.

     

    이제와서 떠올려보면 그 덕분에 꽤 많은 경험을 쌓았고, 또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으니 결과적으로는 레니에가 옳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 일로 루크는 마법사라고해서 항상 완고하고 고집적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가끔은 마법사의 시선이 아닌, 타인의 시선으로 보아야 풀리는 문제도 있다는 것이다.

    파이의 도움으로 검은 화염과 일식의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루크가 고개를 끄덕이자, 기다렸다는 듯 소르비가 묻는다.

     

    “그럼, 루크는 어떤 게 좋아?”

    “글쎄.”

     

    무엇이 좋느냐 물으면 답할 길이 없다.

    애초에 옷이란 좋아서 입기보다는 실용성에 맞춰 입었다.

    스타킹은 본래 갑주를 입거나 승마를 할 때에 피부와의 마찰을 줄이기 위해 남성이 입던 의상이었고, 치마 역시 당시 보편적인 복장이었다.

    그러니 상황에 따라 옷을 입었을 뿐, 개인적으로 선호하여 고른 것은 딱히 아니었다.

    평소 자주 입곤 하던 그 의상도 그저 자신의 익숙함과, 타인의 시선을 고려해 계산적으로 선택한 의상이었으나 속옷은 그렇게 고를 수가 없었다.

     

    타인의 속옷을 특정한 선호나 패턴이 관측될 정도로 많은 표본을 관찰해본 적도 없고, 그냥 예르나가 사온 속옷에도 딱히 불만을 품지 않았으니.

    뭐, 어차피 타인에게 내보일 일이 없다면 속옷이야 아무렴 어떻겠느냐는 생각이기도 했다.

     

    그러니 루크에겐 자신의 속옷에 대한 선호를 결정할만한 정보가 부족한 것이다.

     

    루크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냥 가장 보편적인 것으로 한벌 구매하지.”

     

    어쨌든 의상이란 평범한 것이라면 절반은 간다.

    눈에 띌 정도로 잘 입을 필요도 없으나, 그렇다고 눈 밖에 날 정도로 못 입을 생각도 없다.

    그러니, 보편적인 의상을 선택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소르비는 손을 들어 직원을 부르며 외쳤다.

     

    “저기ㅡ, 혹시 꼬리구멍 나있는 어린이용 수영복은 없나요?”

     

    “어머, 아이가 몇살인가요?”

     

    다가온 직원의 물음에 루크가 입을 다물자, 예르나가 곧장 대답했다.

     

    “10살이에요.”

     

    루크는 언제나 자신이 10살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아마 어리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겠지, 마치 어린아이들이 어른 흉내를 내는 것 처럼.

    하지만 루크는 실제로 정신이 꽤 성숙한 아이니까 더 부끄러울지도.

     

    “그래요? 12살인줄 알았는데. 역시 수인이라서 그런지, 빨리 크나봐요.”

     

    저번 리엔느 숲의 일 이후로 키가 조금 자라서 그런지, 처음 보는 사람들은 루크가 10살로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평소에 키가 크는 것을 굉장히 기뻐하던 루크였으니, 12살 아니냐는 직원의 말에 괜스레 머리를 긁적이는 루크의 모습이 꽤나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하하, 그래요? 좋겠네, 루. 2살이나 높게 봐줬어.”

     

    “제발, 나를 놀리는 건 그만두게.”

     

    “놀리는 거 아닌데?”

     

    “…….”

     

    뭐, 루크가 부끄러워 시선을 피하며 한숨을 내쉬거나 말거나, 직원은 그런 루크를 보고 흐뭇하게 미소짓고는 이내 몇가지 수영복을 챙겨 가져왔다.

     

    “이런 건 어떤가요?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제일 인기인 캐릭터 수영복인데.”

     

    루크는 그제서야 직원의 손에 들린 수영복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목도했다.

     

    바로, 정령소녀 메루루의 향연을.

     

    “메루루는 싫다. 절대로.”

     

    본래 화려한 장식적인 의상을 입던 루크였으니 딱히 캐릭터의상에 대한 악감정은 없는 루크였으나, 그래도 정령소녀는 질색이었다.

    아무래도, 그 옷을 본 디아나가 자신에게 뭐라고 할지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배꼽이 드러나지 않는 의상이라는 점에선 마음에 들었으나, 딱 그것 하나 뿐이었다.

     

    그렇게 루크가 질색을 하고 있자, 소르비가 직원에게 말했다.

     

    “맞아요. 루크는 그런 어린애 같은 옷 별로 안 좋아해요. 어른스러운 걸 좋아하죠! 그렇지?”

     

    소르비의 초롱초롱한 눈빛과 말에 루크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뭐어……. 일반적으로는 어린아이 같은 행색 보다야 선호하는 편이긴 하지.”

     

    “그럼 루크야, 이런 건 어때? 이거 봐, 지금 옷이랑도 어울릴 것 같은데? 봐봐, 꼬리도 이렇게 덮을 수 있다?”

    “아, 마침 손님이 고르신 그것도 꽤 인기가 좋은 수영복이에요. 안목이 좋으시네요!”

     

    직원의 말에 루크는 고개를 돌려 소르비의 손에 들린 수영복을 바라보았다.

    “으음, 그건…….”

     

    소르비가 들고있는 수영복은 프릴장식으로 가슴께와 허리를 감싸 지금 자신이 입은 옷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다만 조금 더 몸을 드러내게 만들어져 다만 조금 더 속옷 같았을 뿐.

     

    그 모습에 루크가 주저하고있자, 예르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어울리겠네, 귀여……. 아니, 예쁠 것 같아. 그걸로 하자!”

     

    “……음.”

     

    방금 형용사를 황급히 바꾸지 않았나?

    루크가 살짝 예르나를 흘겨보니 그녀는 단지 머쓱하게 웃으며 시선을 피한다.

     

    “으음, 별로야? 조금 더 찾아볼까?”

     

    솔직히 내키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상당히 피곤해져서 그저 거처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이미 옷가게에서 힘을 충분히 뺐다고 생각한다.

    마침 그것도 인기있는 것이라고 하고, 예르나도 그것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하는 듯 하니, 자신이 더 고민할 것이 뭐 있겠는가.

     

    “……아니, 그냥 그것으로 하겠네.”

     

    쇼핑은 이제 그만하고 싶었다.

     

    ———–

     

    시루드는 침대에 누운 채 시들어빠진 브로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브로치를 보면, 그 식물원에서 보았던 루크의 다양한 얼굴들이 떠올라서 묘한 감정이 든다.

     

    처음 받았을 때 기쁜 듯 아련하게 미소짓던 그 얼굴과, 절대 그런 뜻으로 준 게 아니라며 변명하자 어리둥절한 듯 지어내던 얼굴, 그리고…….

     

    병실에 누워 마치 죽은 듯 잠들어 있는 얼굴.

     

    “…….”

     

    루크는 결국 방학식에도 학교에 오지 않았었다.

     

    또 어디에서 다쳤다고 하던데, 그래서 학교에 안 오는 거라고 엄마한테 들었다.

    대체 얼마나 다친 걸까?

    혹시, 또 서클 폭주가 일어난 걸까?

    정말로 크게 다친 것은 아니겠지?

    그런데 왜 연락은 또 안 받는 것일까?

     

    루크는 저번 베리튼에서 그런 일도 있다 보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매번 루크를 핑계로 반에 찾아와서 귀찮게 굴던 ‘헬레나’도 있고…….

     

    시루드는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오자 보이는 한 명의 엘프 노인이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며 미소짓는 것을 발견했다.

     

    소리드 트리핀드, 자신의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 언제 오셨어요?”

     

    “그래, 세레나가 그러는데, 요즘 힘이 없다며?”

     

    “으음, 예…….”

     

    역시 힘 없는 대답.

    소리드는 조용히 일어나 시루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시루드, 할애비랑 일식 보러 갈까? 이 참에 일식을 보고 힘을 얻는 게 어떠냐.”

     

    “……일식이요?”

     

    그러고보니, 할아버지는 매번 일식의 날 바닷가를 찾곤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조금 집안이 어려워져서 대부분의 별장을 처분했는데, 바닷가의 별장만은 처분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별장은 할아버지가 매년 일식에 찾아갈 때 사용하는 별장이라고 들었다.

    단 한번도 일식을 그냥 지나간 적이 없다고.

     

    그것을 떠올린 시루드는 소리드를 바라보며 물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왜 매번 일식 날 바닷가에 가는 거에요?”

     

    “흐음, 궁금하니?”

    “네.”

     

    그러자 소리드는 시루드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리며 말했다.

     

    “함께 일식을 보러 간다고 하면 알려주지. 어쩌겠느냐? 갈게냐, 말게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선택해라 루크!
    선택해라 시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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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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