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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2

     

    ―제국의 3황녀 전하와 주치의님이었습니다! 박수를!

     

    조명이 꺼지고 나와 아셀라는 비로소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났다.

     

    더 망설일 이유도 없었기에 나는 아셀라의 팔을 잡고 뛰었다.

     

     

    [No. 073 : 뱀파이어의 밤 74% → 81%]

     

     

     

    저쪽도 착실히 움직이고 있다. 공격해올 생각이 가득하다.

     

    ‘여기서 진조를 토벌하면 좋긴 한데.’

     

    실력자들이 많은 자리긴 하지만 기습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불리하다.

    연합군의 전력을 잃으면 이쪽 손해고.

     

    “라스, 뭔데 그래.”

     

    조금 얌전해진 아셀라가 내게 물었다.

     

    “마족입니다. 곧 공격해올 겁니다.”

     

    아셀라의 눈매가 얇아졌다.

     

    “배짱도 좋구나. 제 실력을 과신한 모양이지. 대륙의 영웅이 모두 모인 이 자리를 직접 노리다니.”

     

    “반대로 말하면 절호의 기회니까요.”

     

    아셀라가 우리에게 붙은 호위기사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웬델, 기사단장에게 전해서 전군을 준비시켜. 월광궁은 전시 체제로 들어가겠어. 다른 궁은?”

     

    “목휘궁과 왕국에는 상황이 전달됐으나 그 외에는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라스, 저거 뭐야?”

     

    발코니로 향하던 도중 아셀라가 걸음을 멈추고 1층 한쪽을 가리켰다.

     

    방금 외부에서 들어온 귀빈이 한 무리.

    눈을 까뒤집고 침을 흘리는 모습이 정상은 아니었다.

     

    진조가 감염시킨 하수인이었다.

     

    “쯧, 늦었네.”

     

    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하수인이 사방으로 퍼져 무작위로 사람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을 맞이하려는 시종이나 등을 돌리고 있던 전사 등, 닥치는 대로 입을 들이밀어 깨물기 시작한다.

     

    “으악!”

    “무슨 짓이야!”

     

    입구에서 소동이 일어났지만, 회장에는 인파가 많아 소란이 알려지기에는 시간이 걸리게 생겼다.

     

    “줘.”

     

    아셀라가 짧게 명령하자 호위기사들이 준비한 지팡이를 넘겼다. 싸울 태세를 취하는 아셀라.

     

    “적극적으로 싸우시면 안 됩니다. 방어만 하세요. 저들에게 물리면 좋은 꼴은 못 봅니다. 거기, 기사들도.”

     

    “알았어.”

     

    월광궁 기사들이 경갑을 내려 피부에 빈틈이 없도록 했다. 타냐도 투구를 내렸다.

     

    “탈출하실 때까지 호위하겠습니다.”

     

    우리는 다시 속도를 냈다.

     

    아래쪽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갔다. 이변을 눈치챈 전사들이 하나둘 하수인을 적으로 인식하고 전투에 들어간다.

     

    ―콰앙!!

    눈앞에 감염된 하수인 하나가 날아와 처박혔다. 전사 한 명이 싸우다 날려버린 것이었다.

     

    번뜩, 하수인이 흰 동공을 내게 향하며 목을 비틀었다.

     

    “샤아악!”

     

    튀어나온 송곳니가 위협하기도 잠시.

     

    ―콰직!

     

    아셀라가 쏘아낸 얼음창이 하수인의 몸을 꿰어 바닥에 처박았다.

     

    “어서 가자.”

     

    놈이 꿈틀대는 사이 전진한다.

    냉철한 아셀라의 눈.

    언제 이렇게 전투마법도 능숙해지셨대.

     

    복도 코너를 돌아 2층 테라스까지 향한다.

     

    2층에서 뛰어내리더라도 일단 건물을 빠져나갈 필요가 있었다.

     

    “가, 가까이 오지 마시오! 성기사!”

     

    어느새 감염이 퍼져 하수인이 2층까지 올라왔다. 귀빈실에 있던 교황이 헐레벌떡 뛰어나오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성기사들이 하수인을 향해 검을 휘두른다. 진조의 하수인은 상처를 입어도 웬만해서는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

     

    “어이쿠!”

     

    교황이 내 앞에 넘어지며 품에 들고 있던 무언가를 떨어트렸다.

     

    함이었다. 연무회에서 신나서 자랑하던 전대 성녀의 베일이 들어있는 그것이었다.

     

    “밖, 우선 밖으로!”

     

    교황이 추기경들과 함께 우르르 테라스 밖으로 몰려나간다.

     

    흠, 마침 잘됐네.

     

    나는 슬쩍 함을 주워 챙긴 후, 마찬가지로 아셀라와 함께 문을 넘었다.

     

    “오우.”

     

    회장 밖, 경기장 부지는 이미 전시상황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떼로 몰려온 진조의 하수인들. 일반 왕국민이나 관광객들로 보인다.

     

    그에 대응하는 왕국병들이 발 빠르게 나섰지만 워낙 급한 상황이라 제대로 된 방어진은 구축되지 않았다.

     

    “이게 다 뭐야?”

     

    “마족, 흡혈귀 진조의 하수인입니다. 인간을 물어서 증식해요.”

     

    “하, 대체 어디서 저런 게 나왔어.”

     

    “본체를 찾아 토벌해야 하는데 이렇게 정신이 없어서야 까다롭겠군요.”

     

    “본체? 그놈을 해치우면 이 사태를 막을 수 있어?”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진조는 이 회장 안의 귀빈과 영웅을 최대한 해하는 게 목적일 겁니다. 하수인은 무섭게 생겼어도 신체능력 자체는 인간이기에 감염만 조심하면 큰 위협은 아니에요.”

     

    “수단이 더러운 놈이군요.”

     

    타냐가 분노를 내비치며 검 손잡이를 강하게 쥐었다.

     

    “분명 수작을 걸어올 텐데, 능력을 쓰려면 본체도 가까운 거리에 있어야 합니다.”

     

    “이 회장으로 찾아온다는 뜻이겠구나. 본체를 토벌하면 되겠어.”

     

    아셀라가 묘한 생각을 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됐다.

     

    “설마 싸우시게요?”

     

    “계산하고 있어. 유능한 전사를 잃을 위험과 이 사태를 온전히 해결할 가능성. 어느 쪽에 무게를 둬야 할까?”

     

    “뭐가 됐든 황녀님은 본대로 피하시죠. 황제 폐하의 기사단이 목휘궁과 합류해 곧 나타날 겁니다.”

     

    “좋은 수단이 있네.”

     

    아셀라가 손가락을 튕겼다.

     

    “용사가 바로 이럴 때 나서야 할 존재 아니겠니?”

     

    아셀라가 또각, 다시 테라스 안으로 걸어 들어가 발코니에 섰다.

     

    아수라장이 된 1층을 잠깐 바라보던 그녀가 연회장 천장에 커다란 마법진을 그렸다.

     

    ―퍼엉!!

     

    화려한 불꽃이 터졌다. 그 바람에 회장의 사람들이 아셀라에게 시선을 주목했다.

     

    그녀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로 외쳤다.

     

    “대륙의 영웅들이여! 축제는 끝났다. 마족과의 전쟁의 시간이다!”

     

    한 명 한 명, 그 자리의 전원이 마치 아셀라가 직접 눈을 마주치고 있는 듯 착각을 받는다.

     

    “적은 하나, 강력한 흡혈귀 진조다! 상처를 조심하라. 자비를 베풀지 마라. 모든 능력을 활용해 위협을 토벌하라!”

     

    아셀라가 지팡이로 한 장소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딱 봐도 혼란에 빠져있던 리셰가 있었다.

     

    하수인이 되어버린 민간인을 죽일 순 없어서, 양쪽을 다 구하기 위해 애를 먹던 모양이었다.

     

    “용사여! 밝은 곳으로 나와 등불이 되어라! 선봉에서 이끌어라! 그대가 아니면 누가 마족을 토벌한단 말인가!”

     

    아셀라의 말에 정신을 차린 리셰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성검을 쥐고 내가 있는 곳까지 뛰어올랐다.

     

    용사가 상징이기는 했다. 회장의 전사들이 리셰를 보고는 일순 마음을 다잡는다.

     

    “선생님! 무사하세요?”

     

    올라오자마자 나부터 찾는 리셰. 그녀의 태도를 본 아셀라가 인상을 찌푸렸다.

     

    “괜찮습니다. 용사님은 물리진 않으셨죠?”

     

    “네. 저기, 혹시 물린 사람들은 어떻게 되나요? 그 마족을 쓰러트리면 원래대로 돌아오나요?”

     

    “그렇진 않습니다. 감염은 혈액을 통해 발생한 것이라서.”

     

    “그런… 방법이 없을까요?”

     

    리셰다운 질문이었다. 자신과 상관도 없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여태 밑에서 구르고 있었으니.

     

    …생각해보니 호위병을 혈액검사했을 때 이상한 성분이 검출됐었지.

     

    “진단.”

     

    하수인을 대상으로 사용해본다.

     

     

    ―――――――――――

    · 상태 : 질병에 감염됨

    · 부상 : 변종 광견병

    · 위치 : 혈액 매개형 병원체

    ―――――――――――

     

     

    진조가 하수인을 만드는 방법은 병원체에 감염시키는 거였나.

     

    “광견병.”

     

    한 번 발병하면 반드시 사망하는 불치병이다. 동물 따위의 숙주가 사람을 물면 옮게 된다.

     

    “보통 광견병은 잠복기가 있기 마련인데 이건 즉발성이 있어. 이성도 완전히 잃게 만드니 상당한 변종이야.”

     

    진조 본인이 1대 숙주인 병이다.

     

    즉, 그놈은 몸에 이 병원체를 득실득실 가지고 있단 뜻인데.

     

    “하지만 놈은 멀쩡해. 하수인들을 통제하는 모습도 보였었고.”

     

    놈의 몸에는 항체도 있다는 의미가 된다.

     

    …강력한 항체로 병원체를 죽이면.

     

    “치료가 가능할 수도 있겠습니다.”

     

    “정말요?”

     

    “단, 진조 본체에 접근해서 직접 놈의 피를 채취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그 마족을 쓰러트리면 된다는 뜻이군요. 알겠어요.”

     

    리셰의 얼굴에 활짝 웃음이 피려는 찰나 콰직, 바닥을 찍는 소리가 귀를 찢었다.

     

    “무슨 헛소리야. 라스는 나랑 갈 거야. 마족은 너 혼자서 토벌해. 그러라고 불렀잖아.”

     

    아셀라가 리셰의 가슴팍을 검지로 찌르며 그녀를 밀어냈다.

     

    “그건 그렇지만…”

     

    소심하게 반항하는 리셰.

     

    나는 상태창을 확인했다.

     

     

    [No. 073 : 뱀파이어의 밤 81% → 62%]

     

     

    여기서 내가 리셰와 함께 진조를 토벌하러 가야 배드엔딩의 확률이 줄어든다.

     

    “단장.”

     

    내가 타냐에게 눈치를 주었다. 타냐는 싫은 역할을 맡은 것에 불만이라는 듯 고개를 저었지만 금방 몸을 아셀라 쪽으로 틀었다.

     

    “뭐야? 타냐 공, 잠깐 기다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깨달은 아셀라가 불만을 표했지만 이미 타냐가 그녀의 허리를 감싼 후였다.

     

    이 자리에서 그녀를 데리고 제국군이 있는 곳까지 이탈한다. 내가 타냐에게 맡긴 일이었다. 소드마스터인 그녀가 붙어있으면 문제는 없겠지.

     

    “기다려! 그럴 거면 나도 같이 가. 그 진조인지 하는 마족한테!”

     

    아셀라가 내게 외친 순간.

     

    “찾아주니 영광이군.”

     

    기분 나쁜 목소리와 함께.

     

    ―콰아앙!!

     

    하늘에서 떨어진 충격으로 테라스가 박살났다. 우리는 1층, 길 위에 착지했다.

     

    “타냐!”

     

    내 명령에 타냐가 혀를 차고는 아셀라를 안아 들어 전선을 이탈했다.

     

    내 머리 위로 다음 참격이 날아왔다. 몸을 굴려 날리기도 전에 채앵! 리셰의 검이 막아 튕겨내줬다.

     

    “와우, 빡센데.”

     

    적을 응시한다.

    말라붙은 피가 덧칠해진 중갑을 입고 검을 든 기사.

     

    “이쪽이 할 말이야. 난데없이 용사라니.”

     

    매력적인 미소를 날리는 기사.

    진조다. 조종하고 있다.

     

    “하앗!”

     

    리셰가 기합을 지르며 진조에게 뛰어들었다. 수려한 검술이 갑주를 깨부술 기세로 쏘아지지만.

     

    ―카드득!

     

    극점에는 다다르지 못하고 두 철덩어리의 날이 스쳤다.

     

    한순간에 전쟁이라 불러도 좋을 스케일의 검합을 증명하듯 화려한 불꽃이 튄다.

     

    “방심하지 마, 리셰. 그거, 조종하는 놈은 형편없어도 몸은 소드마스터야!”

     

    “선생님, 지금 리셰라고 부르셨어요?”

     

    “무심코 튀어나왔습니다. 앞에 보세요!”

     

    쾅! 겨우 두 자루 검의 충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굉음이 인다. 파동에 피부가 저릿해서 소름이 다 벗겨지진 않았는지 착각이 일 정도였다.

     

    주변을 둘러본다.

     

    하수인이 몰려드는 경기장 외곽 부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왕국군이 방어라인을 구축하며 전투를 펼친다.

     

    “이 혼란 속에서 놈의 본체를 찾아야 한단 말이지.”

     

    사막 속에서 바늘 찾기나 마찬가지다.

     

    방법은 있지.

     

    나는 리셰를 불렀다.

     

    “용사님.”

     

    “네?!”

     

    진조의 검을 받아내느라 허리가 새우처럼 굽어 간신히 대답하는 리셰.

     

    “샤를 좀 불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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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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