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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2

       불판 위에 올려진 분홍빛 고기.

         

       동물형 마수의 고기지만, 색상이나 모습은 평범한 돼지고기의 모습을 띠고 있다.

         

       치이익.

         

       새하얀 연기를 내며 먹음직스러운 향기를 풍기는 동시, 기대감을 끌어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기하구나. 이런 식으로 고기를 먹는 건 처음이네.”

         

       불판에 고기 굽는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던 프란체가 말했다. 나는 집게로 고기를 뒤집으며 웃었다.

         

       “종원 푸드는 기존 요리 방식과 비슷하면서도 묘하게 다른 음식들이 많지.”

         

       이 넓은 대륙에도 바비큐라는 개념을 가진 요리는 있다만, 이런 식의 요리는 판테온의 시민이 아닌 이상 처음일 거다.

         

       보통은 양념을 바른 뒤 통째로 구워서 먹으니까.

         

       “음. 이 술은 뭐지? 깔끔해서 괜찮은 듯하면서도 애매하군. 도수가 너무 약해.”

         

       케일이 미묘하게 눈썹을 일그러트렸다. 그의 손에는 작은 술잔이 들려 있었다.

         

       “청주. 어떤 나라의 전통 술이다.”

       “이렇게 약한 도수가? 대체 어떤 나라에서 이런 술을?”

       “…아무튼, 그 술을 주문한 이유는 이 고기와 잘 맞아서야.”

         

       싹둑. 싹둑. 다 익은 고기를 한입 크기로 잘라내며 가장자리로 보냈다.

         

       “먹어 봐. 내가 구워서 제대로 됐을 테니까.”

         

       다들 포크로 고기를 하나씩 집었다. 노릇노릇한 빛깔이 제대로 익은 상태다.

         

       “…오.”

         

       달리아가 고기를 씹으며 입가를 가렸다. 동그랗게 커진 눈에서 그녀의 눈빛이 반짝였다.

         

       “저랑 카자르 씨가 구운 거랑은 완전히 다르네요. 아까는 탄 내가 가득하고 식감도 별로였는데.”

         

       옆에 있던 카자르 또한 동의한다며 고개를 주억였다.

         

       “속살은 부드러우면서 바깥은 살짝 바삭한 것이 완벽해요. 맛은 말할 것도 없고요.”

         

       이래서 고기는 구울 줄 아는 사람이 구워야 하는 거다.

         

       “많이 먹어. 고기는 내가 다 구울 테니까.”

         

       말할 필요도 없이 라데아와 라이아는 이미 정신을 놓은 채 흡입하고 있었다. 헬레나도 조용히 고기에 정신이 팔려있었고. 뿌듯함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다시 집게와 가위를 들며 고기를 굽던 그때, 프란체가 포크를 내밀었다.

         

       “손이 바쁘니 내가 먹여줄게. 아, 해.”

         

       순간 간지러운 기분이 들었지만, 그녀가 주는 고기를 받아먹었다. 그러자 프란체는 싱긋 웃었다.

         

       “역시 부부시네요.”

       “공작님 눈에서 꿀이 떨어지세요.”

       “흠흠.”

         

       카자르와 달리아가 쿡쿡거리며 웃었다. 라데아는 입꼬리를 씰룩이며 시선을 피했다. 딱히 부끄러운 일은 아닌데…….

         

       “저 콜라 더 먹어도 되나요?”

         

       잠시 묘해진 분위기에 라이아가 끼어들었다.

         

       “당연하지.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눈치 보지 말고 다 주문해.”

         

       이어 라이아는 콜라를 주문해 두 병을 받아들었다. 특유의 맛과 목을 톡 쏘는 탄산의 매력에 빠진 모양.

         

       ‘다들 잘 먹네.’

         

       애초부터 지금 먹는 삼겹살은 원초적으로 맛있는 음식이기에 예상은 했다만, 흡입하는 수준으로 먹을 줄은 몰랐다.

         

       이러면 다른 것도 괜찮겠군.

         

       “너무 많이 먹지 마. 일주일 동안 여기 있는 음식들 다 먹어볼 거니까.”

         

       아직 맛보지 못한 음식이 산더미다. 지구 전 세계의 음식이 모여있는데 쉽게 끝낼 수 없지.

         

       “판테온의 첫 음식부터 이 정도라니. 다른 것들도 기대되네요.”

       “고풍스럽다곤 못하겠지만, 특별한 맛인 건 사실이구나.”

       “성녀 시절 매번 밍밍한 것만 먹다가 공작가 음식을 먹을 때도 놀랐는데. 이건…….”

         

       판테온의 음식에 대한 흥미가 가득해진 카자르와 프란체. 감격으로 울기 직전인 달리아.

         

       ‘…성녀 때 먹던 음식이 그렇게 맛이 없었나?’

         

       단순한 호기심이 생겨 그녀에게 물었다.

         

       “황궁의 음식은 입에 맞지 않았나?”

       “저는 신전에서의 기억이 마지막이라…….”

         

       백아연에게 몸을 빼앗겨 황실의 음식은 맛보지 못한 거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달리아에게도 의미 깊은 여행이 되겠군.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다 말해.”

         

       달리아는 네, 하고 대답하곤 다시 식사에 집중했다.

         

       “흠. 확실히. 이 고기와 청주? 라는 술의 조합은 괜찮군. 맛과 별개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고기의 텁텁함을 청주가 전부 씻어주니.”

         

       고독한 미식가처럼 고기 한 점, 술 한 잔을 반복하던 케일이 말했다. 좁혀진 눈썹과 일렁이는 푸른 눈동자. 심오한 얼굴이었다.

         

       “아직 술 종류는 많이 남았어. 우리 여행은 대부분 미식 여행이 될 테니까.”

         

       판테온의 명소를 둘러보는 것도 좋지만, 본래부터 관광은 식도락이라 하였다.

         

       “그거 기대되는군.”

       “따라오길 잘했지?”

       “괜찮군.”

         

       케일이 씩 웃었다. 쟤 입에서 저 정도 평가가 나온 거면 매우 좋았다는 거다.

         

       그렇게 사소한 잡담을 이어가며 식사를 진행했고. 주문했던 고기가 다 떨어졌다.

         

       ‘지금까지 얼마나 먹었지?’

         

       주문표를 바라보니 10인분을 먹었다. 8명에서 이 정도면 적게 먹은 수준.

         

       “다들 배는 안 부르지?”

         

       다음 일정을 위해 모두에게 물었다.

         

       “아직이요.”

       “더 먹을 수 있어요.”

       “부족하군.”

         

       이러면 다른 것도 먹어볼 수 있겠군.

         

       “그럼 이쯤에서 일어나자. 다른 음식들도 먹어 봐야지.”

         

       삼겹살의 매력에 빠져든 모두의 표정에서 아쉬움이 내비쳤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판테온의 명물이 많다고 했으니까.”

         

       이어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종원 바비큐를 나왔다.

         

       “이제 어디로 갈 거니?”

       “일단 숙소로 가려고.”

         

       나는 검지로 저 멀리 세워진 장종원의 고층 호텔을 가리켰다.

         

       “친구가 저 건물 주인이야. 저기서 지내게 해준다고 하더라고.”

         

       일행들의 시선이 내 손가락 끝을 따라가더니 휘둥그레졌다.

         

       “저 건물을? 이 작은 도시 판테온에서?”

       “마탑만큼은 아니지만 굉장하네요…….”

       “친구분이 상당하시네요.”

         

       라데아와 라이아. 그리고 헬레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케일은 별로 관심 없는 듯 심드렁한 얼굴이었다.

         

       “그러면 빨리 가서 짐 풀지. 판테온의 다른 음식들을 맛보고 싶군.”

         

       얘가 이렇게 미식에 관심이 있는 줄 몰랐는데.

         

       “그래, 바로 가자.”

         

         

       * * *

         

         

       마차를 타고 이동해 도착한 호텔. 고개를 끝까지 젖혀야 정상을 볼 수 있었다.

         

       “시작부터 굉장하네요.”

         

       달리아의 말대로 장종원의 호텔은 여타 건물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입구로 향하는 길을 꾸민 화단은 계절을 가리지 않고 만들어진 가지각색의 꽃들로 가득했고, 곳곳에는 커다란 조각상이 세워져 있었다.

         

       “대귀족의 저택 같구나…….”

         

       프란체가 감상에 젖어 말했다.

         

       “제국의 웬만한 귀족 저택도 밀리는 수준이네요.”

       “이, 이 정도면 돈이 얼마나 들어갔을까요…?”

       “글쎄?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어가지 않았을까?”

         

       라데아, 헬레나, 카자르도 흥미 가득한 시선으로 추리를 시작했다.

         

       “궁금한 건 이따가 주인이 오면 물어볼 테니 넣어두고. 일단 들어가자.”

         

       나는 일행들을 이끌고 화단을 걸었다.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에 오니 기사 두 명이 문을 지키고 있었다.

         

       ‘상당한 실력자네.’

         

       오러를 깨우친 소드 마스터는 아니지만 기사 중에서 상위권을 차지할 만한 자들이었다.

         

       “종원 호텔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목적을 여쭈어봐도 괜찮겠습니까?”

         

       기사가 정중히 물었다. 나는 주머니에 넣어뒀던 카드를 꺼냈다.

         

       “이, 이건…!”

         

       카드를 보자마자 한순간에 휘둥그레진 기사의 눈.

         

       “회장님의 손님이셨군요! 극진히 모시겠습니다!”

         

       여기서 회장님이라고 불리고 있구나.

         

       ‘그나저나 판테온에서 이런 모습이라니.’

         

       평등과 자유보다는 자본과 능력주의에 가까워져 있었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이어 우리 일행은 기사에게 안내를 받았고, 접수처로 향했다.

         

       “이, 이 카드는…!”

       “회장님의!”

         

       접수원들도 카드를 보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커다랗게 벌려진 입가를 가렸다. 어째 반응이 다 똑같다.

         

       “극진히 모시겠습니다!”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겠습니다!”

         

       이어 마도 승강기를 통해 고층으로 올라오고. 우리는 방을 배정받았다. 나와 프란체. 라데아 자매를 제외하면 모두 개인실이었다.

         

       “그러면 각자 짐 풀고 우리 방으로 오는 거로 해. 남은 여행 일정은 그때 정하지.”

         

       그리하여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실로 놀라웠다. 널찍한 방과 욕실, 화장실이 전부 딸려 있었고, 가구들도 하나 같이 고급품이었다.

         

       데카르트 공작저나 황실의 귀빈 방을 뺨치는 수준.

         

       “여기가 단순히 여관이라니, 믿을 수 없네.”

       “그러게…….”

         

       대체 누구를 겨냥하고 만든 건지 의문이 생긴다. 각국의 귀족들이 왔을 때 이용하는 건가.

         

       아무튼. 나는 양손에 들린 짐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창밖으로 판테온의 풍경을 바라봤다.

         

       “…절경이네.”

         

       프란체는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도시를 바라봤다.

         

       푸른 지붕을 가진 새하얀 건물들. 깨끗한 거리. 끝이 보이지 않는 수평선. 선착장에 서 있는 여러 선박들.

         

       보이지 않는 것이 없었다.

         

       “데카르트 마탑에서 보던 거랑은 또 다른 기분이야. 거기는 바다까지 보이진 않았으니까.”

         

       그녀의 말이 맞았다. 이 절경을 완성해 주는 건 저 푸르름의 바다였다.

         

       감상에 잠긴 그때. 쿵쿵. 누군가 문을 두들겼다.

         

       ─아직 멀었나?

         

       케일의 목소리였다. 다들 짐을 풀고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모양. 나는 걸음을 옮겨 문을 열어주었다.

         

       “들어와.”

         

       그리하여 다시 일행이 모이고. 나는 브리핑을 시작했다.

         

       “저녁까지 개인 자유 시간을 가질 거야. 원하는 곳 전부 다녀와도 돼. 아직 배고픈 사람은 식당을 가도 되는데, 저녁에는 판테온의 최고 요리사가 올 테니 너무 많이 먹지는 마.”

         

       나는 아, 하고 말을 덧붙였다.

         

       “호텔에 말하면 마차도 빌려주니 참고해.”

         

       그러자 다들 정해두기라도 한 것처럼 일행이 정해졌다.

         

       케일, 라데아, 라이아가 같이 움직이고 카자르, 달리아, 헬레나가 같이 움직이기로 했다.

         

       자연스레 또 단둘이 남겨진 나와 프란체. 우리가 신혼임을 배려받고 있었다.

         

       “해가 지는 저녁이면 꼭 돌아와야 해. 그때 내 친구가 올 테니까.”

         

       이거로 브리핑은 끝.

         

       “라이아, 어디부터 갈래?”

       “나 아까 디저트 가게 봤어! 거기로 가자!”

       “알겠으니 밀치지 마라.”

         

       케일 일행이 먼저 자리를 비웠다.

         

       “어떡하실래요?”

       “저는 어딜 가도 상관없어요.”

       “그럼 일단… 돌아다녀보죠?”

         

       이어서 카자르 일행도 자리를 비웠다.

         

       “프란체, 우리는 어떡할래?”

       “흐음…….”

         

       프란체는 턱에 손을 짚은 채 고개를 숙였다. 고민에 잠긴 분위기였다.

         

       “밥은 아까 먹었으니 됐고. 판테온은 무슨 음료를 마시는지 궁금하구나. 카페부터 가자.”

         

       나는 그러자, 하고 대답했다.

         

       마도 승강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와 기본 서비스인 호텔의 마차로 이동해 거리로 돌아왔고, 장다방이라는 이름의 카페로 들어왔다.

         

       “어서오세요!”

         

       검은색과 흰색으로 이루어진 유니폼을 입은 종업원이 다가와 주문을 받았다.

         

       “뭐 마실래?”

       “으음.”

         

       프란체는 차림표를 바라보며 눈썹을 좁혔다. 종류가 너무 많아 결정이 쉽지 않나 보다.

         

       “이상한 이름이 많네.”

       “내가 추천해줘도 될까?”

       “그래, 그러렴.”

         

       나는 싱긋 웃곤 종업원에게 말했다.

         

       “카푸치노 하나, 블루문 하나요.”

       “넵, 주문 확인했습니다!”

         

       홍차와 같이 쓴 맛을 좋아하는 그녀의 특성을 고려해 카푸치노를 택했다. 부디 입맛에 맞으면 좋으련만.

         

       “카푸치노는 무슨 음료니?”

       “커피야.”

       “…커피?”

         

       커피라는 말에 프란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아는 그 커피가 맞니?”

       “응. 근데 기존에 퍼져 있는 거랑 달라.”

       “어떻게 다른데?”

         

       장종원이 지구에서의 기억을 토대로 구현한 카푸치노다. 흔히 볼 수 있는 그 맛없는 커피랑 비교하는 게 실례인 수준이겠지.

         

       “음, 설명하기 어렵네. 그냥 먹어보면 알 거야.”

         

       나는 픽 웃곤 어깨를 으쓱였다.

         

       이어서 종업원이 에스프레소와 블루문을 가져왔다.

         

       “주문하신 카푸치노, 블루문입니다! 좋은 시간 되세요!”

         

       프란체는 눈을 끔뻑이며 찻잔을 바라봤다. 커피 위에 우유 거품으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게… 음료니?”

       “맞아. 프란체의 입맛에 맞을 거라 보는데.”

         

       그리 말하자 프란체는 잠시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다, 이어 카푸치노를 맛봤다.

         

       “음. 단맛도 없고 부드럽네. 좋구나.”

         

       작게 웃는 걸 보니 다행히 만족한 듯했다.

         

       ‘이제 판테온 첫날.’

         

       여기서 보여줄 수 있는 건 다 보여주겠다.

         

       프란체에겐 되도록 많은 경험을 시켜주고 싶으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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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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