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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2

       술, 역시 좋네.

        

       언제였더라. 도적부흥운동이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고 느꼈을 때였나, 술을 줄이기로 결심했더랬다. 최소한 혼자 마시는 건 자제하자, 라고.

        

       쉽지는 않더라.

        

       명징한 시야에는 장점도 많았다. 최소한, 세상을 바로 바라보는 일이 가능해졌으니. 앞으로 걸어가려면, 조금 아프더라도 눈을 떠야 하는 법 아니겠는가.

        

       하지만…….

        

       흐린 정신과 가려진 시야가 그리워지는 것도 인지상정이었다. 인사불성이 될 정도는 아니더라도, 이것저것을 떠올리기 어려워질 정도의 취기는 건강에도 몹시 좋았던 고로.

        

       정신건강도 건강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런 좋은 기회는 놓치기 아쉬웠다. 좋은 사람들과 마실 기회 아닌가. 언제부턴가 방송을 켜고 시청자들과 함께 마시는 게 제법 즐거웠지만, 역시 현실에서도 한 명 정도는 있는 편이 맛이 사니까. 

       

       아크……도, 기쁠 거야. 아마도.

        

       “아무튼, 아크님 시청자분들도 오늘 잘 부탁드려요. 여긴 사제 유저분들도 많다고 들었는데. 오늘, 2부에서는 사제도 할 거예요.”

        

       “어, 어? 진짜? 법사 강의 아니었어?”

        

       “강의는 법사 강의 맞는데……2부 실습에서, 사제로 듀오할까 싶어요. 배틀메이지는 전속 사제 하나 붙는 것까지가 완성이어서.”

        

       -ㅇㅇ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천하의 아따먹이 포션이라니…말세다 말세】

        

       이렇게 장단도 맞춰주고. 고마울 따름이다.

        

       -흐흫

        

       작은 웃음이 새어나오는 것을 느끼며, 가득 찬 소주잔을 카메라 앞에 들이대다가- 직전에 멈췄다. 내 카메라였으면 호쾌하게 건배를 해줬을 텐데. 남의 카메라이기도 하지만, 비싸보이는 게……소주라도 흘렀다간 큰일날 것 같아. 

        

       조심스럽게 잔을 다시 내려놓았다. 그러고 보면, 나도 방송장비에 조금 투자를……해야 하려나. 방송을 계속한다면 그래야 할 것 같기도 하고. 급작스럽게, 다른 목적을 가지고 시작한 방송이었던 탓에 내 장비는 대부분 보급형에 불과했다. 

       

       깊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데, 나름 보는 눈이 생긴 상태로 아크의 스튜디오에서 비싼 장비들의 효과를 보고 있자니……생각이 조금, 길어지더라.

       

       나 보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투자를……이런 건 얼마나 하려나.

        

       -ㅇㅇ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아! 아! 포션이 사람 친다!】

        

       고민에 잠긴 채 카메라를 가볍게 톡톡 두들기고 있자니, 우스꽝스러운 목소리의 도네이션이 비명을 지르듯이 흘러나왔다.

        

       웃으면 안 되겠지. 아크 방송에선 저런 거 밴일 테니. 

        

       “비하발언은 자제해주세요. 아크님 방송은 클린하고 품격 있는……뭐였지. 아무튼 그런 방송이에요. 그리고, 사제에는 사제만의 맛이 있답니다. 체력 포션이니 딸기맛인가요……아, 역시 밴 당하셨네. 아크님 매니저님 일 열심히 하시네요.”

        

       채팅은 흐름이라고 하던가. 분위기를 탄 시청자들이 저마다 사제에 대한 생각을 토로하기 시작하며, 채팅창에는 이런저런 악질적인 비하발언들이 가득했다. 칼춤을 추는 매니저의 빠른 밴은 역부족일 정도로.

        

       어째 내 눈에 익은 아이디들이 유독 발언 수위가 조금 센 것 같은데.

        

       “상남자지만 맨정신으로 사제를 하는 건 좀……이라고 하신 분도 발언 주의해주세요. 그래도, 음. 그렇네요. 고장난 시계도 하루 두 번은 맞는다고……맨정신보다 취한 게 좋다는 말은 일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하네요. 그런 의미에서 한잔 더 할까요.”

        

       “……제발, 그, 발언을……방송사고 절대 안 내겠다고 약속한지 30분도 안 됐어…….”

        

       ……왜, 이 정도면 순화한 것 아닌가. 저 사람은 상남자지만 맨정신으로 거세하는 건 조금, 이라고 했는데.

        

       “자, 와인 따라드릴게요. 짠.”

        

       -ㅇㅇ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근데 보통은 나오나가 1부고 술먹방은 2부 아니냐……?】

        

       취기가 부족한 것 같은 아크를 위해 잔을 조금 더 채워주고 있자니, 한 시청자가 제법 예리한 지적을 해왔다.

        

       과연, 나도 그 점에 관해서는 고민하지 않은 건 아니다. VR게임이어서 그런 점도 있지만, 본래 술이란 해야 할 일을 해치우고 마시는 편이 더 달콤한 법이기도 하니까.

        

       다만…….

        

       조금, 빨리 취하고 싶었다.

        

       여러가지 이유로.

        

       “술을 어서 마셔야 하는 사연이 있었어요. 잊혀져 가고 있는 사연인데……기억을 되살려 볼까요.”

        

       “자, 짠! 짠! 시청자분들도 같이 짠 해요!”

        

       -째앵

        

       자그마한 소주잔과,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와인잔이 맞부딪히는 맑은 소리가 예쁘게 울려 퍼졌다.

        

       평소에 비해 한층 더 표정이 다채로운 아크와 건배를 하고, 단숨에 술을 들이킨 후, 앞에 놓여진 치킨을 작게 베어 물자니- 아, 이거 조합 괜찮네.

        

       살짝, 아주 살짝이나마 의자에 더 편하게 기대어 앉게 되는 맛이다. 경계심을 풀게 만드는……아.

        

       이렇게 오래 사운드가 비어도 되는 거려나. 내 방송은 그렇다 쳐도, 아크 방송인데. 그리 생각하며 느릿하게 움직이는 눈동자를 채팅창으로 향해보니, 분위기는 생각보다 우호적이었다.

        

       카메라 30도만 오른쪽으로 돌려보라는 요청, 바삭거리는 소리가 마음에 든다는 탄성, 아크의 표정이 어째 얼이 나가보인다는 평가들…….

        

       ……확실히 평소보다 좀 멍해보이기는 하네.

        

       “자. 힘내세요, 아크님. 여기 다리도 드시고. 평소처럼 안전지대에서 느긋하게 딸깍 딸깍하지 못하고 몸으로 뛰어야 하는 빌드니, 든든하게 드셔야 해요.”

        

       “……어째 말에 법사 혐오가 듬뿍 녹아있는 것 같은데……아! 맞다. 혹시, 이따가 그 화염구 법사도 가르쳐주실 건가요? 저 어제 방송에서 봤거든요. 그거, 그거 진짜 쩔던데. 그건 대체 어떻게 하는 거예요?”

        

       “……버그판정단한테 금지당해서요. 아쉽지만 폐기된 빌드입니다. 배메도 잘 익히시면 화염구 못지 않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재미로 따지면야 투명화염구에 불타는 적 앞에서 스태프를 빙글빙글 돌리며 구경하는 쾌감을 이길 빌드가 몇 없었지만……배틀메이지처럼 메타를 바꿔버린 빌드는 아니었으니.

        

       무엇보다, 정지 위험이 있는 빌드면 아크한테 시킬 순 없고.

        

       그런데…….

        

       우물사제는 버그 위험이……있었던가. 내 기억으론 괜찮았던 것 같은데. 감지기에게 검증을 받지는 못해서, 조금 불안하네.

        

       아크가 실습하는 동안 잠깐 연락해볼까.

        

       핸드폰 빨리 확인해줘야 할 텐데.

        

       * * * *

        

       진형이 없는 백병전에서 사거리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하물며, 게임적 보정으로 인해 지치지도 않는 마당이라면- 누구라도 가능한 거대하고 리치가 긴 무기를 사용하는 것이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일 터였다.

        

       물론, 나오나에 적용되는 법칙은 아니었지만.

        

       현실과 달리, 나오나에서 대검을 사용하려면 희생해야 하는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 무게만으로도 보조무기나 갑옷 선택에 제약이 가해지는데다가, 주변에 장애물이 조금만 있어도 전투에 지장이 발생하니.

        

       거대한 검을 휘두르는 기사에 대한 낭만을 가진 이들의 꾸준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랭크게임 따위에서 대검기사가 잘 등장하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알몸기사가 혜성처럼 나타나기 전의 얘기였지만.

       

       아무도 홀레기사라고 부르지 않는 알몸기사의 여파는 작지 않았다. 빌드가 살아있던 시절에 게임을 점령하다시피 했음은 물론이고, ‘신실한 육체’의 밴으로 인해 벽파괴가 불가능하게 된 후에도 그 영향력은 잔존했으니. 

        

       대검을 휘둘러 모든 것을 파괴하는 쾌감을 한번 맛본 기사들은, 이제와서 대검을 포기하기 쉽지 않았더랬다.

        

       아무렴, 게임은 즐겁자고 하는 것 아닌가.

        

       -콰앙!

        

       거대한 검이 호쾌하게 나무를 으깨듯 부숴버리며 쇄도했다. 빈말로도 깔끔하다고는 할 수 없는 거친 공격. 연격이나 후속 동작 따위는 염두에도 안 두는 궤도였으나- 당연한 일이었다.

        

       일단 맞기만 하면 판금을 둘둘 두른 기사라도 빈사상태로 몰아넣을 수 있는 파괴력이다. 연격 따위를 신경 쓸 이유가 없다.

        

       만약 상대가 횡으로 2미터 가까이를 쓸어버리는 공격을 피하고 카운터를 넣을 가능성이 있다면, 최소한 회피 동작 정도는 고려해야 하겠지. 그러나 대검에 휘둘리듯 몸을 날리는 기사의 입장에서,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마법사 따위는, 이 정도로 접근을 허용한 이상 손쉬운 먹이감에 불과했으니.

        

       기사의 대검을 피하기에 급급해 폴짝거리던 마법사를 결국 구석까지 몬 상황. 찬찬히 압박을 가하며 접근하던 기사는, 사냥감이 다급하게 두 손을 움직이기 시작하는 꼴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캐스팅 모션이다. 눈앞에서 페인트조차 없이 시전하는 걸 보면, 어지간히도 급했던 모양.

        

       허용할 이유가 없다.

        

       -콰아앙!

        

       허공에서 마법진을 그려나가던 두 손이 모션을 완성하기 직전에, 기사는 대검을 길게 늘어트린 채 로브를 눌러쓴 마법사에게 돌진했다. 바닥에서 피어오르는 흙먼지의 틈바구니로, 마법사의 눈 흰자가 보일 정도의 거리.

       

       회피할 공간조차 대검으로 덮어버릴 수 있는 거리다.

        

       ‘잡았다.’

        

       디딤발부터, 허리. 오른 어깨, 팔, 그리고 손목까지. 쥐어짜내듯 비튼 몸에 응축된 힘을 일거에 해방하며, 대검을 아래에서 위로 쓸어 올리듯 비스듬히 올려 친다.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저런 빈약한 스태프 따위로 패링이 가능할 리도 없으니. 남은 건-

        

       -퍼엉!

        

       강렬한 타격음이 울려야 할 타이밍에 들려오는 김빠지는 소리. 동시에, 시야가 비틀거리며 흔들렸다.

        

       ‘카운터? 어디에서? 뭐에?’

        

       스태프의 위치와 움직임은 확인하고 있었다. 분명, 패링이나 카운터 따위를 결코 칠 수 없는 각도였는데. 분노와 당혹감으로 가득 찬 기사의 머리는 자연스레 궁수를 떠올렸으나, 화살 따위는 시야에 잡힌 적도 없었다.

        

       사각에 지원군이 있단 의미다. 대체 어느 틈에 접근한 건지는 몰라도.

        

       ‘일단 치고 빠져야-’

        

       그리 생각하며, 가벼운 발차기를 지르고 뒤로 물러서려던 순간. 시야의 하단에서 무언가가 번쩍임과 동시에-

        

       -퍼억!

        

       기사는 몸이 덜컥거리는 감각과 함께 흙바닥을 굴렀다. 발을 내지르며 순간적으로 외발이 되어버린 타이밍을 노린 일격.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얻어맞은 카운터 탓에, 스태미너는 고갈 직전이었다.

        

       다 몰아넣은 마법사에게 이딴 공격을 허용할 거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으나- 최소한, 무엇에 당한지는 보았다.

        

       ‘……매직미사일? 캐스팅, 캐스팅을 언제?’

        

       그렇다고 하여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러나 어떤 원리의 공격인지는 몰라도, 두번 당해줄 생각은 없었다. 이번엔 죽었지만, 다음엔 기필코-

        

       -휘익!

        

       그리 결의를 다지는 기사의 눈앞에서, 마법사는 휘파람을 불며 스태프를 위아래로 흔들거리고 있었다.

        

       일어나라는 듯이, 까딱- 까딱- 하고.

        

       * * * *

        

       “아니, 왜 안 죽이고……논란 항목 늘어난다고! 티배깅 멈춰!”

        

       “대검기사만큼 카운터 시연하기 좋은 상대가 없어서요. 모처럼 만났는데 잘 써야 하지 않을까요. 다음판부턴 아크님이 직접 하실 거니까, 카운터 타이밍 잘 봐두세요.”

        

       “잘 볼 테니까, 제발 그 스태프 까딱까딱부터 멈춰요…….”

        

       “……풍차돌리기를 선호하시는 편인가요. 악질적인 도발 모션을 좋아하시네…… 알았어요. 자. 부우웅.”

        

       “……와인이라도 마실래요……맨정신으론 못 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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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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