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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2

       아,

        

       괜히 개고생만 한 것 같기도 하고.

        

       처음에는 엄청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는데, 일이 진행되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으니 좀 엇나가버린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굳이 색깔을 붉은색으로 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기분이 든다던가.

        

       사실 크게 생각하고 정한 색은 아니었다. 일단 파란색은 최나경이 평소에 자주 쓰던 색깔이었기에 자주 보게 되면 자꾸 최나경 생각이 날 것 같아서 처음부터 고르지 않았다.

        

       초록색은 애초에 내 취향이 아니었고, 노란색은 너무 요란하게 아닌가 싶었고. 무엇보다 사라한테 노란색이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남들 눈에 확 들어오려면 노란색 중에서도 선명한 노란색을 써야 할 텐데, 그 색이 사라의 선명한 루비색 눈동자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기에 내가 고른 색이 붉은색이었다. 사라의 눈동자가 그만큼 선명한 인상을 남기니까, 남들이 보기에도 ‘아 쟤는 예사라의 편이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문제는…… 막상 사람들을 그렇게 입혀두고 나니, 좀 지나치게 화려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다.

        

       그래도 여자애들은 괜찮았다.

        

       원래부터 돈 많은 학생들만 골라 받던 학교였고, 그렇기에 외모에 들이는 돈도 많은 학생들이 많았다. 돈이 무기인 것처럼, 이 판에서는 외모도 큰 무기가 되니까.

        

       의외로 돈 많은 남자를 만나 성공하는 신데렐라 이야기는 절대로 불가능한 이야기는 또 아니라는 모양이다.

        

       그렇기에 굳이 부잣집 아이들이 아니더라도, 비교당하고 따돌림받기 싫은 애들이라면 대부분 체중을 조절하고 외모를 신경 쓴다. 뭐라도 꼬투리 잡히면 학교생활이 피곤해지니까.

        

       그랬기에 비싼 원단으로 만든 드레스를 입혀두면 그림이 살았다. 특히 우리와 함께 거의 밤을 꼴딱 새운 사람들은 나름대로 유명한 재단사, 혹은 그 재단사 아래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으니까.

        

       붉은색 계통의 옷이라도 대부분은 어울린다.

        

       문제는 몇 없는 남학생들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남자 옷을 새빨갛게 만드는 것은 영 괴롭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 같아서, 일단은 짙은 붉은색을 중심으로 디자인하도록 했는데…….

        

       음,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검은 옷으로 입히고 넥타이를 붉은색으로 만들까 싶었다.

        

       ……이미 늦어버리긴 했지만.

        

       아무튼, 그래서 그 스무 명 남짓한 학생들이 한곳에 모여있는 것을 보니…… 뭐랄까, 좀 살벌했다.

        

       옷이 붉은색이라서 그런지, 그 아이들이 모두 나 한 사람을 지지할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아무튼 좀 너무 오버스러운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이제야 들기 시작했다는 소리다.

        

       “…….”

        

       뭐 어쩌겠어.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나는 살짝 숨을 내쉬었다.

        

       완전히 밤을 새웠다기보다는 잠을 거의 못 잤다, 에 가깝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하는 내 행동을 보고 단순히 ‘파티에 참석한다’는 생각만 들지는 않았는지, 스무 명 남짓 되는 참석자들은 모두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 긴장하고 있는 쪽이 피곤해서 곯아떨어지는 것보다는 낫겠지.

        

       나는 손목시계를 봤다.

        

       다행히 생일은 토요일에 겹쳐있었고, 덕분에 이 사람들을 굳이 다시 학교로 보낼 필요는 없었다.

        

       다만, 파티가 늘 그렇듯 예정 시간은 저녁때였다.

        

       역시 참 다행스럽게도 이 저택에서 저 스무 명 남짓한 사람이 잘 공간은 있었다. 사용인을 모조리 잘라버렸으니까.

        

       적어도 몇 시간 정도 쉴 수는 있겠지.

        

       “파티까지 시간이 조금 있으니까, 피곤한 사람들은 전부 여기 양혜인 씨의 안내를 받아주세요. 숙소가 있으니 일단 거기서 쉬고, 파티 한 시간 전에 다시 모이도록 해요.”

        

       물론 한 시간 전에 모이는 장소는 로비가 아니다. 그사이에 로비에는 이런저런 준비가 있을 예정이니까.

        

       파티를 이곳에서 하기로 한 이상, 적어도 파티를 할 수 있는 상태로 꾸며두어야 하지는 않겠는가.

        

       물론 그건 ‘삼촌’이 보낸 사람들이 해줄 예정이었지만.

        

       참석자들은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조금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나도 지금 졸려 쓰러질 것 같은 것을 억지로 참고 있었으니까.

        

       “부탁할게요.”

        

       “알겠습니다, 아가씨.”

        

       내 말에, 양혜인은 허리를 깊게 숙이면서 대답했다.

        

       “우리도 쉬러 가자.”

        

       “응…….”

        

       당연히, 내가 벼락치기로 만든 계획에는 우리도 포함되어있었다. 붉은 드레스를 급하게 맞춰 입어야 했던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거의 날밤을 새운 것은 나, 하늘이, 수아, 소희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우리대로, 비척거리며 우리가 늘 쉬던 방을 향했다.

        

       *

        

       “고생했어.”

        

       침대에 눕자마자 바로 사라의 얼굴을 보게 된 것을 보면, 나는 문자 그대로 기절해버린 모양이었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내가 사라를 찌릿 째려보자, 사라는 황급히 양손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아, 그, 미안. 이렇게까지 고생시킬 생각은 없었는데…….”

        

       아무래도 진심으로 미안한 표정이었다.

        

       ……하긴, 이 아이디어 자체는 내가 낸 것이다. 사라는 애초에 이런 일을 벌일 생각 자체가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굳이 따지자면 내가 고생을 사서 했다고 해야겠지.

        

       그래도 자기 생일 파티에 안 나가겠다고 버틴 사라의 탓이 정말 눈곱만큼도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의식 속에 있는 것으로 육체의 피로가 회복된다는 사실이 다행이었다.

        

       “……후우.”

        

       나는 숨을 길게 내쉬면서, 언제나 그렇듯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저기, 정말로 미안해…….”

        

       그리고 내 옆자리에 앉으면서 사라가 말했다.

        

       “아냐. 내가 급하게 낸 아이디어 때문에 생긴 일이니까. 고생은 다른 애들이 했지.”

        

       그리고 하루 만에 사람을 끌어모은 양혜인과, 거의 밤을 새워 가면서 우리 옷을 맞춰준 재단사들도. 기성품을 몸에 맞추는 식으로 움직였다지만, 그래도 그걸 하룻밤 만에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역시 많은 돈은 그걸 가능하게 한다. 대단하네. 역시 돈은 많고 볼 일이야.

        

       “그래서 말인데…….”

        

       “응?”

        

       사라가 뭔가 부탁할 것 같은 분위기라서,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런 식으로 뭔가를 부탁한 적이 거의 없는 사라였다. 보통은 그냥 내가 다니는 대로 따라다니면서 투덜거리기도 하고 즐거워하기도 하는 것이 전부였는데.

        

       “준비하는데 너가 이렇게 고생했으니까, 파티 자체는 내가 맡는 쪽이 낫지 않을까 싶어.”

        

       “정말?”

        

       그 말을 듣고, 나는 순간 얼굴을 환하게 밝혔다.

        

       내가 한 일이기는 했지만, 뭔가 남들은 다 사복 입고 오는데 우리만 유니폼을 입고 가는 기분이라 좀 찝찝했다. 아이디어를 내놓을 때는 완벽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지만, 인제 와서 생각해보면 진짜로 그렇게까지 잘 먹힐 거라는 확신도 들지 않았고.

        

       그러니, 뒷일을 사라가 책임져주겠다는 말을 들으면 순간 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 그런데, 이번 일이 무조건 잘 될 거라는 보장은 없어. 나도 급하게 생각해낸 거고…… 생각해냈을 때는 그럴싸하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또 어떨지 모르는 일이니까.”

        

       “알고 있어.”

        

       사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니까.”

        

       ……음.

        

       사라가 왠지 평소에 하지 않는 말을 하고 있다.

        

       이런 말을 하면 안 되겠지만, 솔직히 뭔가 의심스러웠다. 나에게 말하지 않은 목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뭐, 생각해보면 이미 이전에도 사라가 자기 일은 자기가 끝내겠다고 나선 적이 있기는 하지. 그 결론이 최나경의 폭주였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그래도, 이렇게 나서주는 것이 정말 고맙긴 했다.

        

       안 그래도 지치긴 했으니까.

        

       그거 아는가? 남이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준다는 것은 생각보다 엄청나게 편한 일이다.

        

       “정말로 맡겨도 될까? 후회하지 않겠어?”

        

       내가 조금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말하자, 사라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아냐, 정말로. 내 생일이잖아? 그런데 내 생일 때문에 너가 고생하는 건 보고 싶지 않아. 그래서 그런 거야.”

        

       “…….”

        

       그런 말을 해버리면, 정말로 내가 거절할 이유가 사라져버리는데.

        

       ……정말 괜찮을까.

        

       내가 다시 고개를 갸웃거리니까, 사라는 조금 욱한 표정을 지었다.

        

       “아, 정말, 자꾸 투덜거리니까 내가 직접 해주겠다잖아! 왜 인제 와서 그렇게 의심하는데!?”

        

       이크.

        

       “아, 아냐, 아냐. 나는 그냥 걱정되어서. 오늘 저녁에 만날 사람들은 전부 처음 만나는 사람들일 테니까.”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그리고 엄밀히 따지면, 완전히 처음 만나는 사람보다는 내가 만나봤는데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을 거야. 그런 의미에서는 내가 더 유리하지. 혹시 모르잖아. 만나서 얼굴이라도 기억날지.”

        

       “하긴, 그건 그렇네…….”

        

       나는 눈을 감고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맡길게.”

        

       “좋아!”

        

       그 말에 사라가 씨익 웃어 보인다.

        

       “내가 제대로 할 테니까, 여기서 푹 쉬고 있어!”

        

       “으응…….”

        

       그래, 뭐.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기는 한데…….

        

       자연스럽게 내 무릎 위로 올라타, 내 목에 자기 팔을 감는 사라를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정말로 괜찮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역시 너무 사라를 과보호하는 걸까?

        

       사라의 가까워지는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

        

       오랜만에 침대 위에서 눈을 뜨면서 나는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생일 선물은 나한테 줘야 하지 않겠니? 내 소중한 친구들아?

        

       기왕이면 그 사람의 첫 생일파티는, 나 혼자서 독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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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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