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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2

     [제국력 5월 31일 오후 11시 39분. 오로솔 아카데미의 어느 한 건물 옥상.]

     참가 학생, 600명.

     참가 교직원, 50명.

     기사(군사) 훈련 지원, 70명.

     그 외 행사 지원, 400명.

     관련 예산, 천억.

     

     현장에 있는 이들을 포함하면 거의 학생 수에 필적할 정도로 많은 인원이 움직이는 대규모 행사.

     ‘렘버리’는 공식 명칭이 되었다.

     일일이 길게 현장 체험학습이라고 부를 필요 없이, 교수들 사이에서도 렘버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리고 렘버리를 구성하는 데, 학생들은 지금 몹시 들떠있다.

     ‘다들, 자기가 원하는 사람이랑 같이 텐트를 치고 야영도 하고 캠프를 간다고 즐기고 있는 것 같군.’

     어른들이란 참으로 치사하다.

     아이들이 선물을 받을 걸 기대하고 깊은 잠에 빠졌다가 갑자기 상황이 달라지는 바람에 당황하는 걸 즐기는 것처럼, 수백 명의 어른들이 모두 입을 꾹 다물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누구 하나는 언질을 주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학생들은 일단 그 누구도 정확하게는 모른다.

     ‘다들 전통적인 캠프 훈련인 줄 알겠지.’

     야외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체험. 

     여관에서 머무르면서 그 지역을 탐방하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때에 따라서는 자유로운 시간을 즐기는 일주일 단위 소풍.

     그런 건 없다.

     이곳에 있는 건 학생 맞춤형 군사 훈련뿐.

     ‘하여튼 다들 이럴 때는 죽이 맞는다니까.’

     정치적인 배경에 상관없이, 렘버리를 준비하는 어른들은 학생들에게 비밀을 엄수했다.

     

     누군가는 렘버리에서 있을 잔인하고 음습한 계획에 집중하기 위해.

     또 누군가는 렘버리에 온 순간 학생들에게 희망을 버리도록 하는 절망을 주기 위해.

     기숙사에서 곤히 자고 있는 수백 명의 학생들은 다음 날 오전, 렘버리에 도착하자마자 자신들이 겪게 될 상황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채 깊게 잠들어 있다.

     사락.

      

     종이로 인쇄된 일정 계획서를 넘긴다.

     

     [오전 7시 00분, 오로솔 아카데미 출발.]

     [오전 9시 00분, 야영장 도착.]

     [오전 9시 30분, 입소식 시작.]

     [오전 10시 00분, 제1 프로그램 “노스트럼의 역사” 체험.]

     [오전 12시 00분, 중식]

     ….

     학생들에게 배부된 계획서는 학생들이 방심하기 딱 좋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뻥이지.’

     전부 거짓이다.

     교수 중 한 명에게 ‘학생들이 속을 수 있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짜달라’라고 했더니, 그 누구도 의심하지 못할 정도로 철저하고 악랄하게 프로그램을 짜놓았다.

     화륵.

     성냥으로 불씨를 피워, 종이를 불에 태운다.

     기껏 만든 프로그램을 왜 함부로 태우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만든 당사자부터 이렇게 쓰레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만든 거짓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학생들의 꿈과 희망을 짓밟으려고 하는 건 왕국의 어른뿐만 아니라, 저기 제국의 어른들도 마찬가지.

     구구구.

     “도착했군.”

     저 멀리, 지브롤터 방면으로부터 깔린 철도를 따라 ‘무언가’가 오로솔 아카데미 앞에 섰다.

     정체를 모르는 이가 본다면, 누군가는 저것을 ‘샌드웜’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혹은 몸이 중간중간 나뉘어 있기는 하지만 관절 부위 같은 걸로 연결된 걸로 보아, ‘강철의 지네’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처음 보는 사람은 그렇다.

     나도 회귀 전, 변경백 즉위를 하자마자 탔던 저것을 보고 많이 놀랐으니까.

     “대륙횡단 열차. 벌써 왕도 앞까지 들어올 줄은.”

     제국에서 만들어진 마도공학과 교통산업의 총체-‘열차’.

     별거 없다.

     마도자동선이 배의 형태가 아니라, 기차라고 하는 직육면체의 넓은 짐마차처럼 되어 있을 뿐이다.

     내부 구조를 보고 학생들 모두 감탄과 경악을 금치 못하겠지.

     혹은 자정에 가까운 시각이라 잠들지 못한 채, 자신이 사귄 친구나 정치적 동료와 함께 캠프 활동을 한다는 것에 들떠있던 이들이 열차를 보고 눈을 반짝일 수도 있다.

     마도자동선의 대체.

     좌우로 넘어질 수도 있는 위태로운 배가 아닌, 오직 철도 위를 달리는 것만을 상정하며 만들어진 기차.

     학생들은 모른다.

     저것이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제도에서 여기까지 한나절 만에 왔다고 한다면, 눈치채는 이들이 있을까.”

     저 열차가 지브롤터 협곡의 관문이 좌우로 열려있을 때, 그 사이를 좌우 1m 폭 정도를 남겨두고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사이즈로 제작되었다는 것을.

     지브롤터가 친 제국적인 행보를 보이기 이전부터 이미 지브롤터 관문을 넘어설 수 있는 규격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침략의 상징.”

     제국식 열차는 노스트럼을 향한 제국의 음습한 침략의도가 담겨있는 마도 병기다.

     하지만 지금은?

     해군이 명목상 해체되고 그 군함이 육지로 끌려와 바퀴 달린 채 왕국 사람들의 발이 대신 되어준 것처럼, 열차 또한 마찬가지다.

     “황제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열차를 보낸 제국인들은 뒤에서 음습하게 키득거리겠지.”

     지브롤터는 열렸다.

     지금은 열차에 아무도 태우지 않았지만, 여차하면 ‘병사’를 태워서 왕도까지 일직선으로 보낼 수 있다.

     헥스 로마나 자작 같은 첩보부 관련 사람들은 이에 대해 우려를 표할 수도 있을 것이며, 그것이 제국이 바라는바.

     하지만, 제국인들은 왕국인들을 모른다.

     “와ㅡㅡㅡ!”

     보라.

     “멋져!!”

     “굉장해!”

     “밤늦게 소리가 들리길래 뭔가 했더니, 엄청나잖아!”

     침략의 상징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노스트럼 사람들은 너무나도 순수하다.

     * * *

     [제국력 6월 1일-렘버리 캠프 출발일. 오전 8시 44분.]

      

     “이거, 단체로 움직이는 거야? 세상에.”

     “하나하나 따로 움직이지 않을까? 어떻게 저렇게 커다랗고 무거운 강철 마차가 한 번에 움직이겠어.”

     “마법으로 어떻게 하거나, 앞에서 마스터 급의 존재가 저걸 전부 끌어당기거나?”

     “…드래곤을 묶는 게 아니고서야 어떻게 저 기다란 강철마차…기차? 저걸 움직이겠니?”

     집결지에 하나둘 캐리어를 들고나온 학생들이 열차의 외관을 두고 논의를 펼친다.

     “그레이 이사장.”

     “예, 윈체스터 총장님.”

     이른 아침-까지는 아니지만, 새벽부터 오늘을 위해 많은 걸 준비한 윈체스터 총장은-

     “저게 비룡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다, 그렇다는 거지?”

     “일단은 그러합니다.”

     평소와 같은 정장에 더불어, 위에 전투용 코트를 두른 채 이 자리에 나왔다.

     “일정한 속도로 계속 달리겠지요. 렘버리 캠프까지 1시간이면 갈 겁니다.”

     “비룡들은 1시간 동안 쉬지도 않고 날개를 펄럭거려야 할 거고.”

     “예.”

     “…마도공학은 이미 생물의 한계를 뛰어넘은 모양이군.”

     열차를 바라보는 윈체스터 대공의 표정이 좋지 않다.

     “이미 마도자동선일 때부터 말이 속도를 따라갈 수 없게 되었는데, 이제는 열차라는 것까지 나타나서 더 신속하고 안정적으로 이동하는 건가.”

     “대신 이동의 자유는 없지 않습니까?”

     나는 윈체스터 대공의 뒤에 줄 지어선 용기병들을 가리켰다.

     “비룡은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바람 따라, 혹은 바람을 거스르고 날아갈 수 있지만, 열차는 정해진 길만을 달릴 뿐이지요.”

     “…….”

     “언젠가는 저 열차가 하늘을 날아다닐 시대가 올지도 모릅니다. 노스트럼이 지금까지 500년이니, 앞으로 500년 뒤면 저 강철마차가 하늘길을 날아다닐지도 모르죠.”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윈체스터 대공의 눈에 생긴 주름이 조금 깊어지는 것 같았다.

     “기관사라고 했나? 그자에게 전하도록 하게. 학생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되, 속도는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를 내면서 계속 선로를 달리라고 말이야.”

     “예. 그리고….”

     “호위는 우리가 도맡아 하지.”

     펄럭.

     “설령 누군가가 학생들이 타고 있는 열차를 향해 이상한 짓을 한다고 해도, 비룡 기사단이 지키는 만큼 그 누구도 함부로 하지 못할 것이야.”

     용기병들이 하나둘 날개를 펄럭이며, 기수를 태운 채 하늘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어떤 마수도, 인간도. 설령….”

     “제국군이라고 하더라도.”

     

     그럴 리는 없겠지만.

     “열차를 부탁하지.”

     

     펄럭.

     

     “그리고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지금은 비룡을 타고 날아오시지만, 언젠가 지브롤터까지 열차를 타고 오실 수 있도록 특등석을 준비해두겠습니다.”

     “…음.”

     자기 비룡에 올라 하늘로 날아오르기 전, 윈체스터 대공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로 마차보다 편한가?”

     “잘 닦여있는 철로. 정해진 길. 정해진 속도와 시간. 그리고 마도자동선보다 더 안락하게 꾸밀 수 있는 시설.”

     나는 열차의 가장 앞칸을 가리켰다.

     “최전방 기관실로부터 조금 떨어진 객실은 특등석으로서, 제국의 수도에 있는 5성급 호텔을 그대로 옮겨놓은 수준의 편의성을 자랑합니다.”

     “…….”

     “이번 렘버리가 끝나면, 따로 빼둬서 태워드리겠습니다.”

     “음.”

      윈체스터 대공은 하늘로 날아올랐다.

     “카르멘도 함께.”

     “예.”

     그는, 모르가니아다.

     * * *

     잠시 뒤.

     “이곳에는 도청장치가 없습니다. 안심하고 누우셔도 됩니다.”

     “음.”

     내가 머무르기로 한 특등석에 들어온 나리아는 그대로 특등석 소파에 풀썩 주저앉았다.

     “음료.”

     “손 없습니까?”

     “과자.”

     “과자 잘 안 먹으면서.”

     “제국 거는 어려서부터 누가 먹여놓는 바람에 입맛이 들어서.”

     “왕국의 공주께서 그런 말하시면 전통주의자들이 싫어할 것 같은데.”

     나는 특등석에 마련된 마도 냉장고에 마련된 제국의 음료와 간식을 꺼내 나리아에게 던졌다.

     착.

     

     “위험하게.”

     “깃창으로 의장대 예식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분이 이것도 못 잡으면 됩니까?”

     “그냥 가만히 있으려고 했단 말입니다, 그레이 경.”

     나리아는 캔을이리저리 살핀 뒤, 캔 뚜껑을 어색한 손길로 열어젖혔다.

     뻐ㅡ엉.

     

     압축된 공기가 빠져나오는 소리와 함께, 안에서 기포가 보글보글 끓어오른다.

     “으음….”

     “탄산수입니다.”

     “지브롤터의 인근 광천에서 구한 천연 탄산수와 비교하면…?”

     “대량생산이라는 점에서 제조 비용을 따라갈 수 없지요.”

     왕국에서 탄산수는 와인보다 비싼 사치품이지만, 제국에서는 동네 코흘리개도 지폐 한 장이면 살 수 있는 공산품에 불과하다.

     “누군가는 이걸 두고 ‘이런 건 탄산수가 아니야!’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게 하염없이 들어오는데, 왕국이 제국의 문화를 거부할 수 있을 리가.”

     나리아는 캔에 든 탄산수를 가볍게 홀짝였다.

     “그레이 경.”

     “예.”

     “노스트럼이 제국을 먹는다면, 노스트럼도 이런 걸 먹고 마실 수 있는 겁니까?”

     “…제국것을 모조리 박살 내고 분쇄하자면서 때려 부수는 게 아니라면?”

     “그렇군요.”

     나리아는 단단한 종이로 된 통의 뚜껑을 열며, 안에 들어있던 기다란 스틱을 집어 들었다.

     “제국을 먹어야겠습니다.”

     “…….”

     “아, 혹시 그레이 경이 황제가 된다면, 그때는 이야기는 다르고.”

     “아, 예.”

     아그작, 아그작.

     “결코 이런 과자와 음료 때문에 제국을 지배하겠다거나 그런 건 결코 아닙니다.”

     “결코, 가 두 번이나 들어간 건 아십니까?”

     “그만큼 분명하다는 거죠.”

     아그작, 아그작.

     “무섭군요, 제국은.”

     나리아는 창밖을 바라봤다.

     “굳게 닫혀있던 관문 너머에서 이런 걸 개발하고 있었다니.”

     서서히,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마차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편안함.”

     그 편안함이, 제국이 왕국에 가져오는 가장 확실한 침략.

     “그레이 경.”

     “예.”

     “왕국 전체에, 철도를 깔아야겠습니다.”

     “……?”

     “그거, 당신이 맡아주세요.”

     나리아는 아무렇지 않게 내게 감자 스틱을 내밀며 고개를 끄덕였다.

     “…철도와 개발권을 그대로 제국에 내어준다면, 영토 주권도 넘어갈 수 있다는 거 아십니까?”

     “그레이 경이 그때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나리아는 감자 스틱을 검지와 중지 사이에 집어넣은 채, 위아래로 까딱거리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빼앗긴 건 되찾아 오면 그만이다.”

     “…….”

     “아시잖습니까.”

     나리아가 입술로만 속삭였다.

     -황제만 사라진다면.

     “…….”

     “철도 까는 건 제국 돈으로. 그리고 나중에 왕위에 오르면, 나라 팔아먹은 매국노들을 전부 숙청하고 국고로 환수.”

     “그.”

     -제국은 그 때, 황제가 죽어서 사분오열.

     나리아가 나를 향해 엄지를 척 들었다.

     “믿습니다, 그레이 경.”

     뭐.

     나는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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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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