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93

   저 염안호라는 동지가, 특별고등경찰에게 잡혔다가 탈출했다라.

   ‘흠…….’

   과연 그 말은 사실인지, 홍옥례 뿐만 아니라 다른 단원들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염안호라는 훤칠한 청년을 신뢰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모두에게 존경받는 단원인 듯 했다.

   “전설적인 동지라느니, 다 옥례의 철없는 과찬이지요.”

   염안호는 나에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 역시 조선 동포와 주님을 위해 애쓰는 보잘것없는 사람에 불과할진대, 남들보다 대단할 것이 무에 있겠습니까?” 

   염안호는 그렇게 말하며,

   “이런 저에 비하면, 백범 선생님을 받들어 온갖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고 왜경(倭警)까지 능히 기만하는 백 동지야말로 둘도 없는 영웅호걸이지요. 이것도 인연이니, 악수라도 할까요.”

   여전히 웃는 낯으로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나는,

   “아뇨. 괜찮습니다.”

   하고 염안호로부터의 악수를 딱 잘라 거절했다. 그 모습에 염안호는 물론 다른 태극단원들도 당황하는 눈치였으나, 이것이야말로 내가 원하던 바였다. 나는 생각했다.

   ‘호의를 사는 것은 좋아도, 거리를 둬야 해.’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 한편인데’ 라느니 ‘조선 동포를 위해’ 라느니 하며 나에게 온갖 부탁을 해 올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러니, ‘난 여기까지만’ 이라는 느낌으로 확실하게 거리를 두고, 피도 눈물도 없는 고독한 늑대같은 냉혹한 인상을 심어줘야 하는 것이다. 

   “피가 많이 묻은 손이라서요. 주님을 믿는 분의 손을 더럽힐 수는 없지요.”

   나는 회한에 잠긴 듯 먼 곳을 바라보는 시선을 하며, 염안호에게 그렇게 말했다. 염안호는 머쓱하게 손을 거두며 말했다.

   “하하…… 그러시다면 별 수 없지요. 알겠습니다.”

   악수를 거절당했으니 꽤나 민망하겠지. 뭐, 저 염안호라는 청년에게 나쁜 뜻이 없음은 나도 알기에 조금 미안했지만,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염안호는 잠시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하고 두리번거리다가 벽에 걸린 시계를 보고는, 

   “아, 이런. 내 정신 좀 봐. 오후 미사 시간에 늦겠는걸. 그럼 동지분들, 저는 이만 가겠습니다. 백 동지, 송 동지도 나중에 또 뵙지요.”

   하고는 마작구락부를 먼저 나가버렸다. 마작구락부 입구까지 그를 배웅한 홍옥례가 다시 돌아와 나에게 말했다.

   “백 동지도 봤으니 알겠지만, 염 동지는 독실한 천주교인이시거든.” 

   “그래. 딱 봐도 알겠더라.”

   옆구리에 성경을 끼고 있는 것 하며, 말마다 ‘주님’을 찾는 것 하며, 그리고 무엇보다, ‘베네딕도’였나?  그런 세례명까지. 교인, 그중에서도 가톨릭이 아니라는 것을 모를 수가 없지.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종교에 집착하는 사람도 아닌 것 같고, 다른 단원들의 반응을 보건대 보이는대로 착실하고 좋은 사람이리라.

   “참 대단하지? 이렇게 우리와 함께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저기 불란서 교회에서 견습사제직도 맡고 계셔. 거기서도 얼마나 견실하신지……”

   홍옥례는 그렇게 염안호에 대한 칭찬을, 아니 찬양에 가까운 무언가를 이어간다. 나는 그 꼴을 듣다 못해 손을 내젓고, 입구를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뭐, 아무튼 이렇게 인사도 나눴으니까. 우리도 이만 갈게. 병오야, 가자.”

   “어, 그러세. 쩝……”

   태극단원들에게 둘러싸여 ‘사내로 태어나 이 한 목숨……’ 어쩌고 열변을 토하던 송병오가 아쉽다는 투로 나를 따랐다.

   나는 마작구락부 문을 나서기 전에 몸을 돌려 홍옥례에게 말했다.

   “아! 그리고 옥례야…… 나랑 잠깐 얘기 좀 하자.”

   “응? 그래! 내가 배웅해야지!”

   내가 건물 밖으로 나가자 홍옥례는 쫄래쫄래 따라왔다. 나는 송병오를 잠시 기다리게 하고, 건물 뒤편의 골목으로 들어가 홍옥례에게 말했다.

   “옥례야.”

   “으응, 백 동지……?”

   “생각해보니까 말인데.”

   나는 목소리를 낮게 깔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김구의 특명을 받았다는 거 말이야. 이거 내가 분명히, 태극단원들에게 발설하지 말라고 했던 것 같은데.” 

   “어…… 그, 그랬지.”

   이런 얘기를 할 줄 몰랐던 걸까. 홍옥례의 안색이 단번에 사색이 되었다.

   “후우……”

   나는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전에 내가 말했지. 내 임무는 보안이 핵심인 비밀임무라서, 누구에게도 들키면 안된다고. 네가 다른 사람에게 내 정체를 밝히면 널 없애야 한다고.” 

   “그, 그게 실은—.”

   “그나마 나는 인정 넘치는 사람이니 눈감아줄 수 있어도, 인간의 감정이라고는 없는 냉혹한 살육병기 이유하는 널 살려두지 않을 거라고.”

   “히익……”

   이유하가 들었다면 터무니없는 말을 한다며 꾸짖을 갈!을 외쳤겠지만, 실제로 이유하는 어딘지 차가워보이는 이미지 탓에 다른 학생들로부터는 거리가 다소 있었다.

   그래서 홍옥례는 내가 만든 그런 이미지를 철썩같이 믿고, 이유하를 몹시도 두려워하고 있었다. 

   ‘유하야, 미안해. 친구니까 이 정도는 괜찮지?’

   아무튼 이유하를 들먹여 홍옥례를 겁먹게 하기에 성공한 나는 겁에 질린 홍옥례를 벽으로 몰아붙이고 말을 이었다.

   “그렇게 분명히 말한 것 같은데. 그런데, 태극단원들이 나에 대해 다 알고 있네?”

   홍옥례는 겁에 질려 어으으 하다가, 손을 내저으며 외쳤다.

   “잠깐만! 사정이 있었어! 

   “사정?”

   “실은, 나는, 비밀을 지켰단 말야……” 

   “그래?” 

   “응! 사실이야!”

   홍옥례가 마구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내가 원산으로 간 것도, 그게, 처음에 내가 신사 폭파시키려고 했던 거 기억하지? 그걸 네가 막는 바람에 내가 실패한 것을, 나는 태극단 동지들에게는 초산풀이 부족해서 그랬다고 둘러댄 탓에, 폭발물의 원료인 초산풀을 구하러 원산에 갔던 거니까…….”

   홍옥례가 횡설수설하며 지난 얘기를 설명했다. 음. 가물가물하지만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원산에 도착한 다음에 잘 도착했다고 경성본부에 전화로 말하니까…… 염 동지가 전화로 그러는 거야. 실은, 다 알고 있었다고……” 

   “뭐?”

   염안호가, 다 알고 있었다?

   “그 때 신사 창고에서 네가 나에게 했던 얘기, 염안호 동지가 다 들었대. 어떻게 들었냐니까, 내가 걱정되어서 따라왔다고 하더라. 정말, 다정한 사람……”

   둘만 있는 작은 창고에서, 홍옥례를 묶어놓고 내가 김구의 특명을 받았다느니 그런 얘기를 했을 때의 얘기였다. 분명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얘기했었는데, 몰래 숨어서 듣고 있었다니. 

   ‘은신이나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인가?’

   사실, 지금 나의 마력감지 능력은 그리 높지는 않았다. 그러니 은신에 소양이 있는 능력자—이를테면 오스에 같은 경우—가 기척을 숨기고 접근한다면 나는 알아채지 못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으음, 그렇게 된 건가. 괜찮으려나.’

   그 염안호라는 사람은 태극단원 모두에게 존경받는 믿을 만한 사람이니까 아무래도 괜찮겠지만, 그래도 조금 신경쓰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이럴거면 아까 악수를 받아들이고 상태창으로 능력을 확인해볼 걸 그랬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며 가만히 있자, 홍옥례는 무언의 압박으로 느껴졌는지 다급히 말을 이었다.

   “아무튼 초산풀이 부족해서 임무를 실패한게 아니라는 것을 우리 단원들이 다 알고 있었는데, 그런데도 날 보고 수고가 많았다고 원산에서 놀다 오라던 깊은 뜻이었던 거야. 뭐, 정작 이런저런 일도 있었고 절간으로 피신하는 바람에 마음편히 있지는 못했지만—”

   “그러니까. 네가 말해준 게 아니라, 염안호 동지가 발설한 거다. 이거지?”

   “으, 응…… 그치만, 염안호 동지도 좋은 뜻으로 그런 거잖아? 지금도 조선 독립을 위해 싸우는 사람이 우리만 있는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우리 단원들도 다 백 동지를 영웅처럼 여기고 있고—”

   나는 홍옥례의 변명을 끊고 말했다.

   “하지만, 함부로 발설해도 좋은 얘기가 아닌데.”

   “무, 물론 변절자를 처단하라는 백범 선생님의 특명을 받은 네가 기밀을 중시하는 것은 알겠어! 누가 변절자인지 모르니까! 하지만 우리 태극단원들, 다들 한 마음 한 뜻으로 우리 조선 동포를 위해서 목숨바친 사람들인데 변절할 리도 없고……” 

   그렇게 한창을 횡설수설 중얼거리다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던 홍옥례는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있지, 나나 우리 단원들을 전부 처단하거나…… 그러지는 않을 거지……?”

   “…….”

   “그, 그렇지……?”

   “…….”

   나는 대답하지 않고, 심각한 것을 고민하는 척 입을 다물고 생각했다.

   ‘어떻게 할까.’

   사실, 들키면 죽일 수밖에 없다느니 뭐니 한 것은 다 그때 홍옥례를 겁주려고 대충 지어낸 말이기 때문에, 정말로 나에게 큰 문제가 일어날 것도 아니었고, 홍옥례를 비롯해 태극단원들을 내가 어떻게 할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다만 거짓말이 점점 커지다가 들통나는 것이 걱정이었던 것이다. 태극단원 중에 정말로 김구와 인맥이 있는 단원이라도 있으면 내 거짓말이 들통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나는 여전히 홍옥례를 몰아붙인 채로 물었다.

   “혹시 너희 태극단 말인데, 너네도 백범 김구 선생님과 연락을 주고받고 있어?”

   “으음, 아니. 몇 년 전에 서신을 몇 번 주고받은 게 마지막이야. 지금은 그마저도 끊겼고……”

   “그래?”

   “응. 백범 선생님은 워낙 먼 곳에서 큰 일을 하시는 분이시니까……”

   뭐, 그렇다면 다행이다. 아닌게 아니라 지금쯤 김구는 일제의 감시와 중일전쟁을 피해서 중국의 광저우니 충칭이니 하는 지방도시들을 전전하고 있을테니 연락이 쉽지 않을 것이고,

   김구가 조선으로 돌아오는 것은 일제 패망 이후, 조선이 해방된 이후다. 그 때가 되면 나는 이미 진작에 미국에 가 있을 것이니, 내 거짓말이 들키는 것은 당분간은 걱정할 필요가 없으리라.

   “좋아.”

   “……응?”

   “비록 백범 김구 선생님의 특명이 있었지만, 특별히 내 재량으로 너희들은 봐 줄게.”

   “정말……!?”

   홍옥례의 얼굴이 대번에 화색이 되었다. 나는 홍옥례에게 말을 이으며 당부했다.

   “그래. 다만, 혹시라도 김구 선생님에게 연락이 닿아도, 절대로 너희들이 나에 대해서 알고있다고 말하면 안 돼. 그럼 김구 선생님이 너희도 처단하실 거야. 알겠지?”

   “알았어! 응!”

   홍옥례는 포니테일이 휘날려라 고개를 마구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고마워, 백 동지! 고마워! 만세!”

   “뭐, 피차 나라를 위하는 마당에 고마울 것 까지야……”

   “그렇지! 우리 태극단은 백 동지의 편이야!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우리 태극단에 부탁해!”

   ***

   그렇게 홍옥례와 헤어져, 원래 일정대로 엽사용품 상점거리에 들러 평범한 공장제 일본도 한 자루를 사고, 하숙집이 있는 동네로 돌아온 것은 저녁이 다 되어서였다.

   “참 대단한 사람들일세! 응? 그렇잖은가! 그래 옛날이라면 모를까, 독립운동도 씨가 마른 작금의 조선에 저런 큰일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지!”

   저녁노을을 받으며 하숙집을 향해 언덕길을 올라가는 중에도 송병오 녀석은 여전히 들떠 있었다.

   “그런 사람들과 친분을 맺게 되다니 참으로 감격스럽네! 그리고, 홍옥례 그 계집도 차암 대견스럽단 말이야! ……하지마는 고것이 이런 독립운동에 몸담은 것이 과연 동포애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연심 때문인지는 마음에 조금 걸리어! 으음!”

   이 녀석, 홍옥례가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는데 홍옥례가 염안호인지 뭔지 하는 훤칠한 연상남만 바라보고 있으니 그것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나는 송병오 녀석에게 말했다.

   “뭐, 특고한테 붙잡혔다가 탈출했다고도 하고, 생긴 것도 훤칠하니 성격도 온화하니까 눈에 들 수밖에.”

   “허어! 예끼, 이 사람! 자네도 그런 말을 하는가! 그래, 홍옥례도 별 수 없는 계집이라 이거지……”

   그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어느덧 하숙집 대문 앞이었다. 언제나처럼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아아!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 잘 왔군!” 

   하고 쪽마루에 앉아있다가 일어서며 인사를 건네오는 사내는, 헌팅캡에 가죽재킷 차림의 사내—강 형사였다.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뭡니까?”

   그 말에 강 형사의 표정이 살짝 썩었지만, 그는 이내 다시 웃는 낯으로 말했다.

   “하하! 인석이, 어른이 말하는데 뭡니까, 라니 너무하지 않아? 아무튼, 다름이 아니라 내가, 학생을 만나려고 기다리고 있었지!”

   “저를요?”

   “그래. 실은, 내가 그동안 너무 모질게 대한 것을 사과하려고 온 거야. 아! 그 옆의 친구한테도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내 옆의 송병오에게도 웃으며 인사를 한다. 송병오가 얼떨떨해하는 사이, 강 형사는 다시 쪽마루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따지고보면 우리 둘 다 일본 제국을 위해 헌신하는 ‘애국자’가 아닌가? 서로 사이가 나쁠 필요는 없단 말이야……”

   “음. 그렇죠.”

   나는 그렇게 대꾸하고는,  갑자기 이렇게 유들유들하게 나오는 강 형사를 노려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새끼, 대체 무슨 꿍꿍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