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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3

       “이 아이는 마수가 아니에요. 감정도 있고 상처도 받을 줄 아는 애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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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를라인은 에테르를 필사적으로 변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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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은 감정적인 호소로 시작했다. 어디까지나 헤를라인의 주관적인 평가라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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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연하게도 이곳에 모인 사람 중 대다수가 에테르를 만나본 적도, 대화를 나눠 본 적도 없었다. 하물며 깊은 관계를 가졌을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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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공감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상하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민간인은 뒤로, 마도사들은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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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를라인 백작. 이러면 당신만 불리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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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뫼스바이어가 입꼬리를 올렸다. 비릿한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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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를라인은 머리를 굴렸다. 머릿속 깊은 곳. 에테르를 변호할 합당한 근거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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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들 몰라요? 에테르는 플레어도 만들었어요. 플레어가 뭔지 다들 아시죠?”

       “플레어? 아, 그렇지.”

       “에테르가 마수라고 쳐요. 마수가 마수 죽이려고 이런 걸 우리한테 과연 내줬을까요? 이건 어떻게 설명하실 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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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론이었다. 오죽하면 뫼스바이어가 뒤로 주춤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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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뫼스바이어에게 에테르는 적이었다. 플레어를 만들어 배포한, 마수의 적. 그는 로즈마리와 에테르의 관계를 전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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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고장이 난 시계도 하루 두 번은 맞는 법. 뫼스바이어는 여기서 에테르를 ‘마수’로 모함하는 편이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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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즈마리 님을 보호해야 한다. 이 녀석이 흑막이라고 뒤집어씌우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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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당한 판단이었다. 제 딴에는 옳은 결정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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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를라인 백작. 혹시 백작도 그 마수와 한패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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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서 조금 더 밀어붙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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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거기 있는 꼬맹이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마수가 내린 비를 맞고도 멀쩡한 괴물을 왜 감싸는 거요.”

       “……자작, 말을 삼가시지요.”

       “혹시 당신도 이 사건에 연루되어 있진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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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우왕좌왕했다. 헤를라인도 전쟁영웅이었지만, 뫼스바이어도 전쟁영웅이었다. 수십년 전. 그는 수인족의 침공을 막아낸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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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여나 그렇다면 자백하시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전, 전 아니에요. 북부 전선에서 제가 재앙급을 얼마나 박살내고 돌아왔는 줄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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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를라인은 자신의 눈을 가리켰다. 잃어버린 한쪽 눈. 절멸급 마수에게 당한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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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마수와 접선한 모양이로군요. 어떱니까, 뇌물은 잘 받으셨습니까?”

       “당신, 이렇게 억지 부리시면…….”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시면 저희만 혼란스럽습니다. 미개한 요호처럼 살랑거리지 마시고, 딱 말해 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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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렇게나 내뱉은 막말이었다. 그러나 민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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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도 지금 상황이 이해되질 않았다. 저 소녀는 왜 멀쩡한가. 자신의 가족, 연인, 친구는 다 비를 맞고 죽었는데. 마수가 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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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부터 저 소녀가 마수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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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이해가 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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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가 피곤했다. 빨리 돌아가서 쉬고 싶었다. 장례도 치러야 한다. 무너진 건물들도 복구해야 한다. 지금부터 분주하게 움직여야 할 사람도 있는 판에, 이렇게 정신을 소모하긴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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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보다, 분풀이 대상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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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소녀가 아니라면, 누가 이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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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점을 드러낸 먹이는 물어뜯기 좋은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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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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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다 못한 프레이가 소리를 빽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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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 지금 이상해! 에테르가 저 거북이가 쏜 공격을 막아줬잖아! 나와 선생님도 도와줬어! 그런데 왜 다들 우리를 괴물로 몰아세우는 거야? 왜 몰아세우는 거냐고!”

       “그럼 누가 흑막인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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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뫼스바이어하 후우, 하고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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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가 증명합니다. 이런 습격에는 항상 인간형 마수가 대동했죠. 저 거북이 같은 녀석은 대개 지능이 없거나 약하기 때문입니다. 틀림없이, 수도에 저걸 풀어놓은 장본인이 있을 겁니다.”

       “그럼 그 녀석을 찾으러 가던가!”

       “바로 앞에 있는데 뭐하러 찾으러 갑니까?”

       “내 친구는 플레어도 만들고 너희도 지켜줬어! 뭐가 더 필요한데!”

       “친애하는 제국의 신민 여러분. 벌써 선동당한 피해자가 나왔군요. 여러분은 부디 휘둘리지 마시고 올바른 판단을 내리시길 부탁드립니다.”

       “너 이 새끼! 지금 말 다 했어?!”

       “인간형 마수는 저리도 지능적입니다. ‘우리’가 괴물을 쓰러뜨리니 불리하다고 판단한 모양이겠지요.”

       “이거 순 억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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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이의 말대로였다. 이건 억지였다.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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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지어 오를레이앙의 세뇌도 풀렸다. 버멜이 토템을 사용하여 세뇌에 사용한 진을 파괴했다. 지금 사람들이 사고하는 것 모두가 그들 스스로의 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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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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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테르는. ‘나’는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리 이성적인 동물이 아니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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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 억지라뇨. 제가 보기엔 오히려 당신들이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됩니다.”

       “뭐?”

       “여러분도 알다시피 인간형 마수는 약한 개체가 대부분이지요. 때문에 사람을 흉내내고, 우리에게서 동정을 받으려고 해요. 이건 오해다, 나는 특이 체질인 인간일 뿐이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연민을 불러 일으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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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은 보고 싶은 부분만 본다.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믿고자 하는 것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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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레어를 만든 것도, 우리를 보호하는 척했던 것도. 전부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 흔적이라는 걸 모르겠습니까?”

       “그, 그렇네.”

       “근데 플레어는 또 뭐야? 또 지들끼리 아는 얘기만 하고 있어, 에잉 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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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테르가 남긴 도움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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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에 남은 건 오직 하나. 눈앞의 소녀가 비를 맞고도 멀쩡하다는 사실뿐이었다.

       ​

       “아니, 그런데 뫼스바이어 자작님, 당신 말도 뭔가 좀 이상… 으윽……!”

       “마수 끄나풀이 여기 또 있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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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구심을 품고 항변하는 목소리가 뒤에서 나오기도 했지만, 금세 린치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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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수가 지배하는 분위기. 이상함을 느낀 사람들도 입을 다문다. 마왕군의 하수인으로 몰리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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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테르는 저들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느끼는 불쾌함인지, ‘에테르’가 느끼는 불쾌함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두 자아 모두 각자의 세계에서 겪었던 역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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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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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테르는 참았다. 헤를라인. 프레이. 자신을 변호하는 이들을 보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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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리한 줄 알면서도 본관을 변호해주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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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마웠다. 어쩌면, 세상은 아직 멸망하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닐까.

       ​

       조금 더 결정을 미뤄도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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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쐐액! 속공으로 만든 마법이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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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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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를라인이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넘어졌다. 프레이가 비명을 질렀다. 에테르는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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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어서 죄송합니다, 제국민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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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척, 척,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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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기가 바짝 든 발소리. 최신식 군복을 입은 전투마도사들이 현장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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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그 사이로, 장년의 여성이 깃발을 든 채로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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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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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는 에테르와 사람들을 번갈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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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부터 이 사태는 저희 토츠펠 가문에서 정리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제 지시에 따르시지요.”

       “과, 관군이다!”

       “남방 정예 기사단이 왔어!”

       ​

       수도에서 상대적으로 가까운 곳. 남쪽 땅에서 황급히 달려온 토츠펠 가문의 공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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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중대는 시신을 수습하고 제 딸아이를 찾으세요. 2중대는 건물의 복구를, 4중대는 수도의 의료진과 협력하여 부상자 치료를 서두르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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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츠펠 공장의 말에 따라 마도사들이 움직인다. 질서가 되돌아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후우, 하며 안도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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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중대는 황성으로 가 폐하와 황족들의 신변을 살펴 돌아오세요. 마지막으로 남은 인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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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촤아악! 토츠펠 공작이 스태프를 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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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와 함께 현행범 체포에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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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테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헤를라인 교수가 쓰러진 방향으로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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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봐, 괜찮나?”

       “끄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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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를라인이 신음을 흘렸다. 무방비한 상태에서 마법을 맞았다. 당장 일어나기란 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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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 내 은사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

       ​

       에테르는 내려놓았던 스태프를 다시 쥐었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머리가 부글부글 끓었다.

       ​

       본능이 부르짖었다. 캘리퍼스를 휘둘러라. 예전처럼만 해라. 머릿속에서 명백한 살의가 차올랐다.

       ​

       […악의가 느껴진다.]

       ​

       한동안 침묵하던 정령들이 말을 꺼낸 건 그 무렵이었다.

       ​

       [긴가민가해서 가만히 있었는데, 저건… 오도 가도 못하겠네.]

       [조금 전까진 잘 몰랐어요! 하지만요! 이젠 확실히 알겠어요! 저 녀석, 마수가 맞는 모양이에요!]

       ​

       정령들의 판단 기준은 두 가지였다.

       ​

       사악한 생각이나 기운, 그리고 ‘증기의 비’에 대한 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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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한 생각을 품는다고 반드시 마수인 건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여태껏 많은 사람이 마수로 몰려야 했다.

       ​

       하지만 저런 독한 비를 맞고도 멀쩡하다는 것.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그것이 정령들의 추론에 확신을 더한 셈이었다.

       ​

       “거, 거 보쇼! 내 말이 맞다니까!”

       ​

       좋은 흐름이었다. 뫼스바이어는 토츠펠 공작의 가세에 힘입어 선동을 계속했다.

       ​

       ‘여기서 저 토츠펠이 나올 줄이야!’

       ​

       토츠펠 공작. 그녀는 영악한 정통파 귀족이다. 능력만 있으면 등용하려 하는 하스펠트 공작과는 달리, 평민 중에서 기재를 지닌 이가 나오는 것을 두려워한다.

       ​

       평민 출신이면서 귀족이 된 헤를라인. 그리고 그녀의 뒤를 밟으려는 에테르라는 저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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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서 굴러 들어왔는지 모를 저 프레이라는 꼬맹이까지.

       ​

       ‘전부 눈엣가시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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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뫼스바이어는 혀를 끌끌 차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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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적인 의도로 나타난 게 눈에 선하구나. 아무렴, 이번 일로 황실이 무너졌으니 상국(相國)을 해 먹고 싶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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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또한 권력욕이 많은 사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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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구렁이 같은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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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에는 마음에 들지 않던 사람. 그러나 지금은 든든한 아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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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가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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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 생각하며 스태프에 마법을 장전할 때였다.

       ​

       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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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꺄아악!”

       ​

       뫼스바이어는 똑똑히 보았다.

       ​

       콰아앙─!!

       ​

       스태프에 맞아 날아가는, 토츠펠 공작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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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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