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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3

       하지만, 여기서 더 이야기를 이어 나가기 전에.

        

       “소피아.”

        

       나는 아까부터 얼쩡거리고 있던 여성 중 하나를 지목했다.

        

       “네, 네……!?”

        

       긴 코트를 입고 목에 스카프를 두껍게 두른 그 금발 여인은 나의 말에 당황한 듯 새된 소리를 냈다.

        

       “소피아, 일단 여기 와서 앉아주십시오.”

        

       “소, 소피아라니, 누구 이야기를 하시는 거죠? 제 이름은 제안인데요?”

        

       “제도에서 가장 흔한 이름을 대면서 그렇게 말해봐야 더 의심스럽기만 할 뿐입니다. 이야기를 듣고 싶으면 엿듣지 말고 그냥 얌전히 여기 와서 앉아서 들으십시오.”

        

       나는 테이블의 남은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사실 소피아의 변장은 꽤 그럴듯했다. 만약 내가 원작에서 소피아의 변장한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분명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다른 학생들은 나랑 눈만 마주쳐도 가게 밖으로 도망가버리는데, 혼자 저렇게 주변에서 얼쩡거리고 있으면 아무리 나라도 눈치채지 못할 수가 없다.

        

       ……뭐, 반 정도는 질러본 거였지만. 어차피 아니면 시간을 돌려버리면 그만일 일이니까.

        

       “…….”

        

       그리고 정말 다행스럽게도 그 여자는 소피아가 맞는 모양이었다.

        

       나한테 들킨 시점에서 더 우기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소피아는 머리에서 가발을 벗고 스카프를 끌어 내렸다.

        

       얼굴에는 여전히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소피아? 정말 소피아야?”

        

       레오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검사는 기척으로도 사람을 구분하니까. 아예 본격적으로 검성에게 수련을 받고 있는 레오였다. 그 감이 원작에서보다 예리해졌으면 예리해졌지, 더 죽을 일은 없을 것이다.

        

       “…….”

        

       소피아는 얼굴을 붉힌 채 우리 쪽으로 다가와 자리를 하나 잡고 앉았다.

        

       있는 힘껏 도도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그 붉어진 얼굴 때문에 별로 도도하게는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눈도 부어있었다. 언제부터 우리 뒤에 따라붙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 전에 어디서 펑펑 울기라도 한 것이리라.

        

       소피아도 히로인인 만큼 미소녀였다. 내가 원작에서 소피아라는 캐릭터에게 가지고 있었던 좋지 않은 이미지는 둘째치더라도, 현실에서 이런 인물이 나 때문에 울었다고 하면 조금이라도 죄책감을 가지는 것이 정상이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저 내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싶어질 뿐이었다.

        

       아니, 내가 대체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무슨 일 있었어?”

        

       너 때문이잖아, 너.

        

       아무리 눈치가 없는 레오라고 하더라도 소피아의 얼굴은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었던 모양이다.

        

       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처음에는 레오의 말을 들은 뒤 다시 시간을 돌릴 생각이었다. 그리고 조금 더 자연스럽게 소피아와 레오가 대화를 나눌 자리와 시간을 만들어볼 생각이었는데…… 내 예상과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그 기회가 생기긴 했다.

        

       그렇다고 레오한테 ‘소피아가 널 좋아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건 정말로 최악의 수였다. 비록 전생에 연애와는 아주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나이긴 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내가 고백하지도 않았는데 누군가 그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하면 그 인간을 죽여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문제는 레오라는 녀석이 연애 경험 없던 나보다도 훨씬 눈치가 없다는 사실인데.

        

       좋아.

        

       그렇다면 대놓고 말할 수 있는 부분에 한해서 대놓고 말해보도록 하자.

        

       “레오 요즘 들어서 사람들이 당신과 나의 사이를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어?”

        

       안 그래도 소피아의 착 가라앉은 표정 때문에 분위기가 애매한 상황에서 내가 그런 소리를 했더니, 레오는 평소보다 더욱 얼빠진 소리를 냈다.

        

       누가 숨 들이마시는 소리가 나서, 나는 그쪽을 노려보았다. 아마 새로 이 빵집에 들어왔다가 우리가 있는 것을 보고는 눈치 살살 보면서 이야기를 엿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귀족 B반이 확실한 그 두 여자아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가게에서 나가버렸다.

        

       그리고 가게 주인의 얼굴도 새파랗게 질렸다.

        

       ……장사를 방해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미안하니 나갈 때 빵을 잔뜩 사서 나가기로 할까. 다 산다고 내가 먹을 수는 없지만……. 기왕 사는 거 지난번에 갔던 주민들한테 다시 나눠주면 될 일이지. 안 그래도 내가 총을 난사해서 일부 주민들을 벌벌 떨게 했으니 그 사과의 의미로.

        

       “그게 무슨 소리야?”

        

       “문자 그대로의 소리입니다. 사람들은 제가 당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신도 저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

        

       한참 멍하니 입을 벌리고 앉아있던 레오의 얼굴이 곧 새파랗게 질렸다.

        

       “내가, 아니, 제가요?”

        

       얼마나 당황했는지 말투도 바뀌었다.

        

       “그렇습니다.”

        

       “황녀님이랑요?”

        

       “예.”

        

       “…….”

        

       뻐끔뻐끔.

        

       공기가 부족한 금붕어 같은 표정을 짓고 있던 레오는 결국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나는 소피아 쪽을 흘끗 바라보았다. 여전히 눈이 퉁퉁 부어있긴 했지만, 적어도 지금 소피아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슬픔이나 절망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놀라움.

        

       “한 가지 확실하게 해두도록 하죠.”

        

       나는 내가 종종 ‘협상’할 때 내는 목소리로 레오에게 말했다.

        

       “당신은 제가 당신을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예? 아니죠, 당연히 아닙니다.”

        

       레오는 곧장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고 말했다.

        

       “그런 주제넘은 생각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게 주제넘은 생각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나는 쓴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그래도 당신은 오해하지 않고 있으니 다행입니다.”

        

       나는 소피아 쪽을 한 번 다시 본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를 따라서 소피아가 일어나려길래, 나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어 꾹 눌렀다.

        

       사실 힘으로 따지면 소피아가 나보다 더 강했으니, 마음먹고 일어났다면 내가 어깨에 손을 얹었건 얹지 않았건 그냥 휙 일어나버릴 수 있었겠지만, 내가 황녀라서 그런지, 자기도 여기서 일어날 생각이 없었는지, 바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당신은 여기서 식사 마치고 가세요. 멋대로 먼저 일어나는 게 자리에 함께 앉아있는 사람에게 큰 실례라는 것 정도는 아시리라고 믿습니다.”

        

       내 말을 들은 레오의 얼굴이 곧장 억울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당연한 일이다. 지금 당장 내가 하는 행동이 식사도 마치지 않고 일어나는 행동이었으니까.

        

       근데 뭐 어쩌라고.

        

       나는 황녀고 너는 남작(진)이잖아. 아직 진짜 남작도 아닌 게.

        

       그리고 그 사실을 레오 본인도 잘 알고 있었기에, 레오는 일어나는 나를 따라 나오지는 않았다.

        

       난 두 사람에게 전혀 미련 없이 돌아서서 빵집을 나가려다가—

        

       왠지 들어서는 안 될 것을 들은 표정을 하고 있는 빵집 주인을 보고, 두 사람이 먹을만한 빵 몇 개를 제외하고 나머지 빵을 죄다 사버렸다.

        

       빵집 주인의 표정은 그제야 조금 밝아졌다. 심지어 밖으로 나가는 나를 향해서 ‘다음에 꼭 다시 들러주십시오!’라고 했을 정도니까.

        

       역시 돈이 최고라니까.

        

       *

        

       “…….”

        

       “…….”

        

       짧지만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고, 레오와 소피아는 한동안 서로를 바라보면서 멍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두 사람 모두 지금 상황이 어떻게 굴러간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 표정이었다.

        

       “……저 말, 정말로 믿으시는 건 아니죠?”

        

       소피아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레오를 보면서 말했다.

        

       레오는 그제야 소피아의 눈이 조금 붉게 부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침에는 눈치채지 못했었는데…… 아니, 아침에도 그랬던가? 솔직히 그걸 확신할만한 자신은 없었다. 안 그래도 클레어는 레오를 볼 때마다 더럽게 눈치 없는 남동생 취급을 했었으니까.

        

       물론 그건 틀린 말이다. 눈치 없다는 말은 차마 부정할 수 없었지만, 레오는 남동생이 아니라 오빠였으니까.

        

       “믿지 않는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레오의 말에 소피아는 눈을 크게 한 바퀴 돌렸다. 그 표정은 황당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어떻게 보면 딱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레오는 그 ‘딱하다는 부분’이 적어도 자신을 향한 것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거짓말일 게 당연하잖아요. 그동안 황녀님께서 보이신 행동이 얼마나 많은데.”

        

       소피아가 팔짱을 끼고 레오를 노려보자, 레오는 다시 한번 황당해졌다.

        

       “아니, 조금 전에 그 황녀님 본인이 그렇게 말씀하셨잖아. 그런 거 아니라고.”

        

       “그럼, 이어지지 못하는 남자를 좋아하는 사람이 ‘사실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라고 할까요?”

        

       “…….”

        

       그건…… 그렇지만.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레오의 속은 답답해졌다.

        

       적어도.

        

       적어도, 저 황녀님만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이유는 간단하다. 황녀님은 여름방학에 레오와 같은 곳에서 밤을 지새면서도 눈곱만큼도 부끄럽다거나 수줍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그 반응을 보고 자기한테 별다른 감정이 없다는 것을 눈치챌 정도의 능력은 있는 레오였다.

        

       “황녀님께서 다른 남자분과 대화하는 것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제이크 있잖아?”

        

       레오의 즉답에 소피아는 이마를 짚었다.

        

       아니, 정말 나한테 왜 그러는데?

        

       소피아의 이 반응을 보고 나서, 황녀 실비아가 어째서 굳이 소피아를 옆에 앉혀두고 그 말을 했는지, 레오는 알 것 같았다.

        

       어떻게든 오해를 풀고 싶어서.

        

       남자라면 몰라도, 여자라면 그런 소문이 퍼지는 것만으로도 흠이 될 수 있을 테니까.

        

       “아니, 그러니까 말이야…….”

        

       레오는 침착하게, 황녀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소피아에게 차근차근 설명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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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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