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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3

       스치는 것만으로도 눈을 빼앗기고, 마음 깊숙한 곳까지 매혹당한 뒤. 서로 열렬히 사랑하게 된 연인의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요?

       

       데엥- 뎅-!

       

       아아, 울려 퍼지는 성스러운 종소리가 들려요.

       

       흰 꽃잎이 사방으로 비산하고, 축복의 바람이 산뜻하게 불어와 귓가를 간질이며 묻고 있네요. 키스를 나눌 준비는 되었느냐고.

       

       두 사람의 영혼이 한데 엮여, 영원히 서로를 바라볼 것을 맹세할 준비가 되었느냐고 말이에요.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비극은 차근차근 다가왔답니다.

       

       ===============================================================

       

       흰 꽃잎과 함께 섞인 일종의 정보 파동이 여왕의 중심으로부터 뻗어 나왔다. 정보 조각을 쏘아 간을 보았는데, 반발하는 대신 관통했다. 저 방사형 파동은 막을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

       

       나는 저게 무슨 지랄맞은 능력인지 모른다.

       

       결혼식을 모티브로 만든 승화 능력이라는 것은 알겠지만, 그게 무슨 일을 불러일으킬지는 미지수다. 맞아보기 전까지는 구체적인 능력을 유추할 수도 없다.

       

       여왕 머릿속 결혼식에서 칼부림이 일어날지 NTR이 일어날지 어떻게 알겠는가.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인 셈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 능력이건, 이 능력과 이어지는 다음 능력이건, 사랑에 빠진 표적의 대가리를 날려버리는 준 살상 능력이 반드시 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두 사람은 비극으로 끝나야 맛있으니까.

       

       미치광이의 사고방식은 똑같이 미친놈이 잘 안다. 

       

       우우웅-!

       

       파동이 몸을 스치고 지나간다. 본망해방으로 부풀린 온갖 감정들이 감염되어, 연정으로 빠르게 바뀌기 시작한다. 바이러스계다.

       

       꽉 찬 창고에 새로운 물건을 넣을 수는 없으니, 창고 안의 농작물을 썩게 만들어서 조지겠다는 거다.

       

       뚫릴 건 예상하고 있었다. 단순하게 생각해도 이쪽은 우화고, 저쪽은 승화. 능력의 체급이 다르니까, 우리가 정확하게 발동 매커니즘을 카운터치는 방식이 아니라면 밀린다.

       

       판단은 빨랐다. 내가 탱킹한다. 

       

       “내가 커버할 테니까 너는 패!”

       

       “알겠습니다!”

       

       정보전 처리능력이 월등히 높은 내가 어떻게든 시간을 끌고, 그사이에 핑발레즈가 여왕의 대가리를 깨는 그림이다.

       

       연결된 꼬리를 이용해서, 핑발레즈의 피폭된 부분까지 내가 끌어다 가져간다. 가속된다. 온갖 감정이 연정으로 오염당한다. 나는 여왕에게 반했다.

       

       반하게 만든다라. 그래, 내 사랑을 감당할 수 있으면 어디 해 보시든가.

       

       나는 악성(惡性)을 깨워 학대순애 회로를 돌렸다. 피의 결혼식으로 만들어주마.

       

       “빨리 경동맥 대 이새끼야!”

       

       “⋯⋯어머나? 미마, 취향이 원래 그렇게 과격했던가요⋯⋯?”

       

       여왕은 놀란 눈치였다. 그리고 그런 여왕의 안면을 향해, 핑발레즈의 멋진 라이트 스트레이트가 뻗어나간다.

       

       서큐버스 여왕은 정보계, 근접 박투를 수련한 흔적은 없었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승부가 날──

       

       터억.

       

       여왕의 앞에서 갑자기 솟아오른 검은 그림자가 핑발레즈의 주먹을 막았다. 머리카락이 덥수룩한 근육질 중년 남성의 모습. 그림자 천마다. 

       

       100% 온전한 천마는 아니겠지만, 무술교리의 일정 부분은 훔쳐낸 것 같았다. 그뿐이라면 괜찮다. 무술 좀 치는 분신 정도라면, 내 서포트를 받은 유리가 이겨낼 수 있다.

       

       그러나⋯⋯ 여왕은, 미완성 천마의 부족한 예측력을 심리전으로 메우고 있었다.

       

       “으응, 그렇게 얼굴만 노리면 무서워요 유리⋯⋯ 혹시 질투? 어린 모습이 아니면 사랑받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아니. 당신의 안면을, 박살 내놓아야 직성이 풀리겠으니까-!”

       

       천마의 뒤에 숨은 여왕이 아름답게 웃는다. 그 몸짓과 손짓 하나하나가 유리의 감정을 자극하고, 움직임을 유도하는 데 쓰인다.

       

       타인을 움직여서 함정으로 빠트리는 거다.

       

       데엥.

       

       종소리와 함께, 천마의 하단 차기에 유리가 중심을 잃었다.

       

       여왕이 유리의 빈틈에 카운터를 꽂는다. 새하얀 지면으로부터 뻗어 나온 그림자 칼날이 그녀의 복부를 헤집으려는 것을── 내가 방해했다.

       

       카앙-!

       

       손가락을 튕겨 정보를 날려 보내, 칼날을 부쉈다. 그러자 여왕은 그 시선을 내 쪽으로 향했다.

       

       “전위를 보충하기 위해서 이런 무시무시한 걸 만든다, 정말 인상 깊게 봤어요. 빌려 가도 괜찮죠? 영원히.”

       

       “⋯⋯돌려줘 자기야!”

       

       “무릎 꿇고 제 발가락을 핥아주신다면, 긍정적으로 고려해 볼게요.”

       

       “그 더러운 입 닫고, 죽으십시오!”

       

       후우욱-!

       

       바람 찢는 소리와 함께 핑발레즈의 주먹이 쏘아진다. 

       

       그림자 천마는 핑발레즈와 육탄전을 벌이고, 천마를 조종하는 여왕은 동작의 사이사이로 페로몬을 뿌려대면서, 내 견제를 막아냈다. 2대 1로 싸우는데도 전황은 팽팽하다.

       

       나도 열 번 중에 한 번은 홀렸다. 여왕이 유리를 끝장내려는 듯한 블러핑에 속아서, 흔들려버렸다. 하지만.

       

       유리 랜스터의 분전이 전투의 흐름을 바꿔나가고 있었다.

       

       공격이 흘려지고 천마에 의해 역공을 받아도, 그 주먹을 그대로 이마로 받아내며. 피를 철철 흘리고 녹아가면서도 사납게 공격을 이어간다.

       

       그 과격함에 여왕도 조금 위축된다.

       

       유리 랜스터는 온몸을 내던진 공세로, 조금씩 그림자 천마를 밀어내고 있었다.

       

       저건, 자포자기나 동반자살이 아니다. 꼬리로 연결된 나를 믿고 있는⋯⋯.

       

       “저 뒤지는 꼴 보기 싫으면, 알아서 회복시키십시오!”

       

       “⋯⋯⋯⋯.”

       

       고성능 정보 회복 모듈을 믿고 있던 거다. 나는 정보를 나이프처럼 만들어 여왕에게 던져대면서, 부풀어 오르는 연정을 얀데레스럽게 가공하면서, 천마펀치를 맞고 박살 난 유리의 몸을 고쳤다.

       

       육신이 있었으면 머리에서 분명 열이 났을 거다.

       

       넘겼다. 기세는 우리 쪽으로 넘어왔다. 그런데⋯⋯ 제4파가 오지 않는다. 굳이 불리한 포지션을 연기할 이유는 없을 텐데.

       

       데엥.

       

       계속해서 종소리가 미약하게 울린다. 혹시.

       

       아직 『웨딩 마치』는, 승화 공격은⋯⋯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는 건가? 대상의 감정을 오염시켜 연심으로 바꾸는 게 끝이 아니었던 건가?

       

       오싹, 하고. 얼음물이 끼얹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타이밍에 여왕은 공세에 가속을 붙였다. 여기에 집중해. 이러다 유리가 죽어버릴 수도 있어요? 이렇게 말하듯이.

       

       저 행동이 내게 확신을 품게 했다.

       

       반복해서 울리는 종소리가 시한폭탄처럼 들린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간에, 트리거는 연심. 이 불어나는 연심을 어디든 버려야 한다. 그런 직감이 들었다.

       

       “『홀로그램』!”

       

       성별 반전된 나를 임시로 만들어서 연심을 쑤셔 박는다. 다소의 데이터 손실이 발생하는 건 감수한다. 그리고, 내 판단은 맞았다.

       

       불룩.

       

       불룩불룩불룩.

       

       분신의 가슴이 울룩불룩 부풀어 오른다. 체내에서 풍선 수천 개가 동시에 팽창하기라도 한 것처럼. 폭발의 전조다. 살짝 늦었다.

       

       콰아아아앙──!!

       

       연심이 터졌다. 체내에서 증식시킨 사랑을 연료로 삼은 폭발이라니, 흉악한 능력이다. 약 80%의 감정을 내버린 시점에 작동해서, 피해는 줄였지만.

       

       체내의 20%와, 지근거리에서 일어난 폭발에. 오른팔하고도 조금 더 날아갔다. 나는 피 같은 정보를 입으로 토해내면서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더럽게 아프다.

       

       “마법사님?!”

       

       “커억, 컥⋯⋯ 살았, 살았으니까 그쪽에 집중해!”

       

       캐스팅이 끝났으면, 제4파가 올 것 아니냐!

       

       불길한 직감은 언제나 맞는다. 여왕은 과도한 승화 운용으로 인해 살짝 피로가 내려앉은 얼굴로, 다음 권능을 꺼내 들었다.

       

       “슬슬, 끝낼까요⋯⋯? 『히로인 : 내세에서 다시 한번』.”

       

       붉은 실이 흔들린다.

       

       피부가 따끔거리고, 위기감이 경종을 울린다.

       

       여왕의 능력은 시전 순서대로 살상력이 증가하고 있었다. 저번이 사람 하나 폭발사산시키는 능력이었으니, 이번에는 조건부 즉사기가 날아와도 이상하지 않다.

       

       여왕은 약간의 여유를 내보이며, 자신이 승리했을 경우의 이야기를 스포일러했다.

       

       “만약 이번에도 살아남는다면⋯⋯ 후후. 그러면, 조금 무리하더라도 두 분 다 생포해서. 서로 다른 사람에게 안기게 해버릴까나. 어떻게 생각해요?”

       

       “이 새끼가아⋯⋯.”

       

       승부수를 걸어야 하는 건, 지금이다.

       

       늘어지는 싸움을 끝내기 위해 여왕이 커다란 권능을 준비하는 지금.

       

       여왕이 공세로 나서서, 자신을 방어할 여유가 없는 지금.

       

       캐스팅 중이라서 다른 개지랄을 할 여유가 없는 지금.

       

       내가 중상을 입어서 상대적으로 어그로가 빠진 지금.

       

       그리고.

       

       나와 유리가 각오를 다진 지금.

       

       나는 잃어버릴 준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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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왕은 전투 전반에서 유리보다도 나를 더 경계하는 듯했지만, 주공은 내가 아니라 유리다.

       

       유리 랜스터의 영혼을 검게 물들여 발현한 능력은, 단단히 묶은 마음을 불태워 시전하는 일격이었다. 

       

       저 호수의 아래로 가라앉히는 것이 아니라, 말소시켜서 힘을 얻는다.

       

       더하여.

       

       여왕은 여전히 내게 연심을 품고 있다. 유리로부터 훔쳐 스스로에게 이식한, 유리의 사랑이다. 그러니까. 맞물린다.

       

       유리의 연심을 태우면서, 동시에 여왕이 가진 연심을 기폭 시킬 수 있다. 내가 여왕의 승화에 당해서 폭발했던 것처럼.

       

       최선의 일격이지만, 동시에 최악의 일격이기도 하다.

       

       비록 여왕의 농간에 휘말려 자라난 사랑일지언정, 그 뿌리가 되는 기반은⋯⋯ 나와의 추억이다. 비관적으로 생각하면, 어쩌면. 우리는 초면이 될 수도 있다.

       

       연심 이전의 우정마저 불타, 황무지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녀가 언제나처럼 말을 걸어오지만, 그 눈빛에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하는 듯한 어색함이 담겨 있다면. 무척이나 슬프겠지. 아플 것이다.

       

       하지만, 되찾을 거다.

       

       첫 만남으로부터 우리는 친구가 되었으니까. 두 번째는 더 쉬울 거다.

       

       지금, 이 자리에서 잃어버릴 서큐버스의 사랑은, 언젠가 반드시 되찾아 거머쥘 것이다. 잃어버리는 것도 아니다. 잠깐, 놓아 주는 거다.

       

       그러니까⋯⋯ 하자.

       

       반파되어 너덜너덜한 채로, 내 모든 정보를 집약해서 한곳으로 모은다. 여왕의 감정과 정보를 온통 흔들어 놓아, 유리의 일격을 피할 수 없게 만들 것이다.

       

       “발밑에 드리운 그림자.”

       

       해버리자. 유리 랜스터에게 길을 열어주자. 그녀의 복수심과 등가교환 한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나쁜 장사도 아니다.

       

       “옷장 틈새로 엿보는 어둠⋯⋯.”

       

       아니야. 아깝다. 아까워서 죽을 것 같다. 어떻게 얻은 마음인데. 어떻게 쌓아 올린 감정인데! 울컥거리며 솟아나는 어두운 마음도, 화살에 담는다.

       

       모든 색을 빨아들이는 듯한 검은 화살이 둥실 떠오른다.

       

       쓰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선을 그었다. 욕심을 다독인다. 나를 믿는다. 우리는 여기서 나가, 언제나처럼 웃으며 놀 수 있으리라고.

       

       “새까만 밤의 고독!”

       

       떠나보내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잠깐 망설였지만.

       

       내게 돌아오겠노라고 말한 유리 랜스터의 약속을 믿으니까.

       

       손을,

       

       “『파심현전(破心玄箭)』──!!”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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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하거나 대응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던 걸까. 여왕은 붉은 실을 흔들어 무언가, 힘을 발휘하려고 했지만. 마법사의 마음이 더 빨랐다.

       

       새까만 화살이 쏘아짐과 동시에 적중했다. 그것은 빨려 들어가듯 여왕의 심장에 박혔고, 그 궤적이 검은 선을 그렸다.

       

       “아⋯⋯극⋯⋯.”

       

       여왕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유리 랜스터는 불안정해진 천마를 어깨로 밀쳐내고, 저 새하얀 악몽을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

       

       가깝다.

       

       그리고, 꼬리로부터 차갑디차가운 검은 감정이 전해져 온다.

       

       미친 마법사의 감정이 그녀의 영혼을 다시금 덮어씌웠다. 새하얀 빛은, 잠깐 졸음을 느낄 정도로 평온하였건만.

       

       이 까맣고 못된 감정은, 그녀의 온갖 악의를 부추기고 날뛰게 만들었다. 시야가 일변하고, 마음이 증오로 불타고, 세상이 우스워 보이고, 사랑은 하잘것없게 느껴진다.

       

       눈동자에 검은 점이 찍힌다.

       

       차르르르르륵──.

       

       폭력적인 사슬질 소리가 들려온다.

       

       이게 악성(惡性)인가. 용케도 미치지 않았구나. 유리 랜스터는 마법사의 고통을 조금 더 이해했다.

       

       지금이라면, 자신의 사랑을 아주 가볍게, 휙 하고.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듯이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소중한 감정이었으니까, 제대로 아쉬워하고, 슬퍼하고, 구질구질하게 매달리면서 보내줘야 하지 않겠는가. 마주해야 하지 않겠는가.

       

       마법사는 훨씬 더 커다란 것을 머리에 품고도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니까 고작, 이깟 것에 휘둘릴 수는 없다. 

       

       차라라라락──!

       

       허공에서 검은 사슬이 나타나 유리 랜스터의 오른팔을 뱀처럼 휘감았다. 그리고 한 줄기의 사슬은, 손목으로부터 뻗어나가 하얀 여왕의 심장으로 이어졌다.

       

       느낄 수 있다. 자신의 연심과, 여왕이 훔쳐 간 연심. 둘 다.

       

       소중하게 맥동하는 그 마음을.

       

       유리 랜스터는 팔을 당기며, 호흡을 깊게 빨아들이면서 이죽거렸다.

       

       “이해합니다. 그는 엉뚱하지만, 재미있는 사람이니까요. 수백 년을 독수공방한 여인이 눈에 하트를 띄우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유, 리잇⋯⋯!”

       

       “그래서⋯⋯ 직접 느껴보니까 어떻습니까, 시시한 마음은?”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대답할 여유가 없는 거겠지. 파심현전에 맞고, 온갖 감정의 파도에 잔뜩 휘둘리고 있을 테니까.

       

       전신에서 힘을 뺀다. 타격의 직전, 파문 한 점 없는 수면처럼 고요하다.

       

       아주 기나긴 여행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고향 마을을 잃어버리고, 들개처럼 날뛰다가, 흘러흘러 마법사의 곁에 둥지를 틀기까지. 얼마나 많은 마음이 떠오르고 가라앉았는가.

       

       이제 곧 마침표가 찍힌다.

       

       복수의 통쾌함을 표현할 수도 있을 거다. 여왕에게 잔뜩 이죽거리고, 저주를 퍼붓고, 가능한 한 최대한의 모욕을 주면서. 마지막을 장식할 수도 있을 터지만.

       

       아니야. 그런 말로 마무리하고 싶지 않다.

       

       차르르르르륵──!!

       

       틱, 티딕.

       

       불똥이 튄다. 연심에 스파크가 일어나고, 불이 붙는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연소는, 막대한 마력의 불길이 되어 사슬까지 번진다.

       

       사슬로 감긴 주먹은, 그 연료가 연정임을 알려주듯이 분홍색으로 타오르고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여왕의 표정에 스치우는 것은, 질투다.

       

       그렇단 말이지⋯⋯.

       

       전신의 근육 한 올 한 올에 힘을 불어넣는다. 팽팽하게 당겨 수축시키고, 장전을 완료한다. 

       

       아쉽다. 아깝다. 여왕의 수작으로 자라난 가짜 감정이기도 하지만, 언젠가 자라났을 진짜 감정이기도 하다. 어떻게 얻은 마음인데, 불태워야 한다니.

       

       하지만, 괜찮다.

       

       마법사가 생각보다 구질구질한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그는 분명히, 유리 랜스터의 마음을 얻어내기 위해 노력해 줄 것이다.

       

       믿는다.

       

       그래도, 조금은⋯⋯ 불안하니까.

       

       미친 마법사를 사랑하는 유리 랜스터는, 미래의 연인에게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돌아가면, 제대로 다시 반하게 해주십시오──.”

       

       “유리이이이이잇-!!”

       

       마지막을 직감한 여왕의 비명과 동시에, 휘둘러진다. 마음을 화약 삼아 터트리는 일격은, 심상공간에 균열을 일으킬 정도의 힘을 품고 가속하여. 쩌적, 쩌적, 하고 파괴적인 소리를 내며.

       

       여왕의 사랑을 폭발시킴과 동시에, 터져나가는 가슴팍 바로 그 자리에. 불길과 함께 작렬했다.

       

       『흑(黑) : 본망소산(本望燒散)』.

       

       으득. 끄드드드득.

       

       콰아아아앙──!!

       

       여왕의 상반신을 통째로 날려버리며, 일대를 뒤엎는 폭발이 일어났다. 심상세계를 유지하던 시전자의 죽음으로 인해, 긴긴 악몽은 단번에 깨져나간다.

       

       정상 작동을 시작한 유리 랜스터의 정신세계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모든 이물질을 배제하는 판단을 했고.

       

       미친 마법사는, 마음으로부터 내쫒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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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사건은 어떻게든 수습되었다.

       

       『둥지』는 파괴, 서큐버스 세력은 실종, 도주, 사망. 여왕은 아마 뒤진 것 같긴 한데 확실하지는 않음. 쾌락의 악신상은 미친 마법사가 확보.

       

       여왕에게 붙잡혀 있었던 말살대 구성원들은 9할 정도 구조함.

       

       현대최강의 환상마법사 자색 마탑주 유나는 단단히 삐짐.

       

       방위국 현장 요원 유리 랜스터는 혼수상태로 회복 중. 그러나 일주일 내로 깨어나 의식을 회복할 전망.

       

       그리고 오늘이 딱 일주일째였다.

       

       미친 마법사는 풍성한 꽃다발 하나를 준비해서는 병실 문을 열었는데, 마침 유리 랜스터는 오랜 잠에서 깨어나 있었다.

       

       머리를 묶지도 않고, 안경도 쓰지 않은 유리 랜스터의 모습이 퍽 새로웠는지. 마법사는 한참이나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먼저 운을 뗀 것은 유리였다. 그녀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는, 평소처럼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왔지. 몸은 어때, 기억의 결손이라든가는?”

       

       “있잖아, 나는 지금까지 사랑이라는 걸 몰랐는데⋯⋯ 이제는 알게 된 것 같아.”

       

       “너 다시 자러 가. 한 일주일 정도 더 누워버려.”

       

       결손은 없나.

       

       미친 마법사는 꽃다발을 침대맡에 두고, 유리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면서 꼼꼼하게 검사했다. 정신방벽을 처음부터 다시 쌓아야 한다는 것 빼고는 전부 다 괜찮았다.

       

       다소 기억이 엉킨 부분이 있다든가 했지만, 아주 가벼운 부작용이었다. 머릿속에서 승화급 서큐버스랑 맞장을 떴으면, 백치가 안 된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인 일이다.

       

       마법사는 그 이후로도 이곳저곳 검사한 뒤에, 신체 컨디션도 테스트해 보고는. 진료 차트에 이상 없다고 적었다.

       

       “⋯⋯뭐, 푹 쉬고 있어. 일주일 정도는 무리해서 움직이지 말고.”

       

       “예. 이참에 한 달 정도는 요양 핑계를 대고 누워 있으려고요.”

       

       “잘 생각했다. 그리고⋯⋯ 아니, 아니다. 나 갈게 자기야. 유나 달래주러 가야 하거든.”

       

       “예, 살펴 가십시오. 여보님.”

       

       미친 마법사는 그 짧은 문답에서, 혹시⋯⋯ 어떤 핑크빛 감정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유리 랜스터의 눈동자를 아주 세심하게 관찰했으나. 찾아볼 수 없어서.

       

       “⋯⋯⋯⋯.”

       

       마법사는 다소 실망해서는, 풀이 죽어서 병실을 나갔다.

       

       그가 나간 뒤에⋯⋯.

       

       유리 랜스터는 누구에게 들킬까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참이나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그녀의 양쪽 귀는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타고 남은 잔재가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서큐버스는 사랑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좀 늦었다 그죠. 그래도 1.5연참⋯⋯ 이 아닐까요!
    그러면 마이 프렌즈, 내일 또 만나요!
    다음화 보기


           


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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