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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3

     

    샤를을 불러달라는 내 요청에 리셰는 바로 대답했다.

     

    “언니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쾅! 리셰가 크게 검을 휘둘러 진조를 밀어냈다.

     

    성검을 들고 눈을 감아 정신을 집중한다.

    다시 눈꺼풀이 올라갔을 때, 그녀의 표정은 날카롭게 정제되어 있었다.

     

    샤를이었다.

     

    “재수 없는 자식!”

     

    샤를이 고속으로 두 번 스텝을 밟아 진조의 하방으로 파고들었다. 허리의 회전력을 검기에 담아 쳐올린다.

     

    아무리 소드마스터의 소체를 쓰고 있어도 진조 본인에게 검술에 대단한 조예는 없다. 어딘가 어설픈 방어태는 첨예한 일격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진다.

     

    ―콰앙!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진조의 턱 갑주가 깨져나갔다.

     

    가볍게 백스텝을 뛰어 내가 있는 곳까지 후퇴하는 샤를.

     

    “여기서까지 저 자식을 보다니. 라스, 안 물렸어?”

     

    “본체를 찾아야 해. 케셀 백작령에서 썼던 방법 기억해?”

     

    “기억하고말고. 진조는 소체를 조종하는 동안 못 움직이니까, 소체를 죄다 습격해서 거리를 측정하면 중앙 지점에… 본체가.”

     

    샤를이 나를 돌아보며 눈을 크게 떴다.

     

    “라스, 어떻게 나왔어?”

     

    “사소한 건 나중에 따지고 뛰자고.”

     

    우리를 향해 진조가 돌진한다. 나와 샤를은 측면으로 피해 달리기 시작했다.

     

    힘이 부치는데. 샤를은 그렇다 쳐도 내 걸음걸이면 진조에게 금방 따라잡히고 만다.

     

    ‘쓸까.’

     

    품에서 [자이언트 포션]을 꺼냈다.

    [근력강화제]의 최종 진화판으로, 근력을 90으로 만들어준다.

     

    ‘단, 대략 30분 후에 부작용이 생겨.’

     

    남은 시간을 계산해본다. 앞으로 30분 안에 진조의 본체를 찾고, 광견병 치료제도 만들고, 토벌도 할 수 있을까.

     

    “뭘 의심해.”

     

    거침없이 엄지를 튕겨 플라스크의 뚜껑을 열었다. 한 번에 들이키니 근섬유가 몇 겹으로 단단해지며 각력이 폭발했다.

     

    “라스, 발 엄청 빠르네?!”

     

    우리를 쫓는 진조는 중갑을 장비해서 기동력은 좋지 않다. 조금씩 거리를 벌릴 수 있었다.

     

    “별로 여유가 없어. 어서 소체를 찾자.”

     

    짐작 가는 곳은 있다. 전투 중인 왕국병의 틈새를 노린다.

     

    “저기, 왕국병 대장.”

     

    “아는 얼굴이야!”

     

    멍하니 있던 왕국병 대장이 우리의 타겟이 되자 눈에 생기가 돌아오며 반격을 준비한다. 동시에 후방의 소드마스터가 느려졌다.

     

    진조는 자신의 혼을 이동시켜 소체를 조종한다. 여러 소체를 동시에 조종할 순 있지만 그만큼 정밀도가 떨어진다.

     

    대장이 우리를 피하려 하지만 어림도 없다. 샤를이 첨예하게 검기를 담은 일격을 쏘아냈다.

     

    “하앗!”

     

    왕국병 대장을 베어내니 새카만 재가 되어 소멸한다. 하수인과는 달리 반쯤 진조 본체라 흡혈귀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의 행동에 병사들이 놀라기도 했지만 잿더미를 보더니 반발하지는 않았다.

     

    “다음 소체도 찾아보자.”

     

    “아핫, 옛날 생각난다.”

     

    우리 뒤에서 살기를 숨기지도 않고 돌진해오는 진조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지, 샤를이 웃음을 터트리며 크게 한 걸음 뛰었다.

     

    “찾았어.”

     

    “적마법사. 확인했어.”

     

    연회장에서 빠져나온 영웅 무리에 섞여 있는 마법사가 한 명.

     

    그를 보자마자 달려드는 샤를은 한 마리 암표범과도 같았다.

     

    ―파악!!

     

    거칠게 생고기를 물어뜯듯 검으로 그의 복부를 날려버리는 샤를의 일격.

    마법사의 소체를 사용하려던 진조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재로 돌아간다.

     

    “범위를 좁혔어. 본체는 이 안에 있을 거야. 한두 개만 더 찾으면 정확하게 특정할 수 있겠어.”

     

    나는 경기장 부지 지도에 삼각측정을 그려 넣으며 말했다.

     

    샤를과 함께 측정범위를 좁힐 수 있는 지역을 찾는다.

     

     

    감시탑에서 네 번째 소체를 찾았을 때.

     

    ―콰앙!

     

    잠시 모습을 숨겼던 소드마스터의 소체가 벽을 뚫고 우리를 습격해왔다. 시야에서 놓친 사이 짧은 동선을 돌아왔다.

     

    “라스!”

     

    샤를이 대응하지만 조금 늦는다.

    놈의 검이 나를 향해 번뜩인 순간.

     

    ―채앵!

     

    하늘에서 화살처럼 수직으로 쏘아진 검격.

    타냐가 붉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내 앞을 막아섰다.

     

    “호위하겠습니다, 선생님. 전진하시죠.”

     

    “맡기겠어.”

     

    타냐의 도움을 받아 네 번째 소체의 위치도 특정했다.

    지도에 마지막 선을 그어냈다.

     

    “본체는 여기에 있어.”

     

    지도에 펜으로 구멍을 뚫어 표시했다.

     

    진조가 있는 곳은 광장 시계탑이었다.

     

    “가장 눈에 띄는 장소잖아. 하여간 화려한 걸 좋아하는 자식이네.”

     

    샤를이 혀를 찼다.

    목표도 정해졌으니 직선거리로 향하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길이 하수인으로 막혀 바글바글했다.

     

    “방패기사, 전진하라! 용사를 보조하라!”

     

    그때 등 뒤에서 용맹한 목소리가 들렸다. 헤이케였다.

    제국 기사단이 깃발을 휘날리며 단단한 진형을 갖추고 전진해왔다.

     

    든든한데.

     

    “고트베르크 선생, 그대를 보조하라는 폐하의 명령이 있었소. 돌파는 맡겨주시오. 전투 치유사대!”

     

    앰브로시아가 황제 직속 호위대의 전투 치유사들을 끌고 와 정화주문을 시전했다.

     

    새하얀 신성력이 시계탑까지 빛의 길을 만들어낸다.

     

    “도움 감사합니다, 자매님. 나중에 좋은 선물 드리지요.”

     

    “오호, 기대해도 되겠소이까?”

     

    “물론입니다.”

     

    앰브로시아에게 손인사를 날린 후 시계탑을 향해 뛰었다.

     

    “진조는?”

     

    “위에 있는 것 같아!”

     

    샤를과 함께 층계참을 단숨에 올라간다.

     

    점점 지면이 멀어지고 사람들이 까마득히 조그맣게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도착한 최상층.

     

    거대한 종이 매달린 첨탑, 경기장과 지상을 모두 내려다볼 수 있는 난간에 단정한 정장을 입은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우리에게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그 모습은 내가 아는 진조가 틀림없었다.

     

    “라스.”

     

    샤를이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기세로 다리에 힘을 줬다.

    나는 그녀를 팔로 저지했다.

     

    “천천히.”

     

    숨을 죽이고 한 발짝씩 다가간다.

     

    긴장이 겹치는 순간.

     

    “생각보단 빨랐군.”

     

    진조가 우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씨익 웃었다.

     

    ―화악!

    첨탑 틈새, 어둠 속에서 검은 형체들이 뛰어내리며 우리를 향해 비수를 쏘아냈다.

     

    암살자, 그림자 놈들이었다.

     

    “독 조심해!”

     

    “비겁하긴!”

     

    비수를 쳐내며 암살자의 상대를 들어가는 샤를. 나는 상체를 숙이며 진조를 향해 몸을 날렸다.

     

    반쯤은 도박수였다.

    아직 놈은 힘들게 모은 중요전력인 소체를 잃기 싫을 테니까.

    지금은 소드마스터 쪽을 조종할 수밖에 없으니 본체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으리란 계산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놈은 나를 피하지 못했다. 파악! 진조의 허리를 껴안으며 놈을 밀쳐 첨탑 아래로 떨어진다.

     

    “라스!”

     

    샤를의 목소리가 등 뒤로 멀어진다.

    공중을 추락하지만 신경 쓸 틈새는 없었다. 나는 준비한 주사기를 되는대로 진조의 몸에 꽂았다.

     

    쭈욱, 피를 채취한다.

     

    “자멸인가?”

     

    예상대로 진조는 소체를 조종하느라 몸이 자유롭지 않은지 부자연스럽게 머리만을 움직였다. 내 몸을 깨물기 위해 입을 쩍 벌려온다.

     

    콰직, 송곳니가 파고들자 진조가 승리 담긴 매력적인 미소를 보낸다.

     

    “어디 빨아봐 자식아. 그 미소는 여자친구에게나 보여주고.”

     

    진조가 내게 당했다고 깨닫고는 헛웃음을 지었다. 입에 들어온 액체를 퉤 뱉는 놈의 입이 자글자글하게 녹아내렸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목과 어깨에 수은을 담은 팩을 둘러놨거든.

     

    “고트베르크.”

     

    외투를 벗어 던지며 놈을 발로 차 떨어진다. 이미 내 손에는 놈의 피가 담긴 주사기가 잔뜩 들려 있었다.

     

    “아, 인간이 이 높이에서 떨어지면 죽지 않냐고?”

     

    점점 중력가속도가 붙어 빠르게 낙하하는 나와 진조.

     

    지면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백의 안주머니에서 플라스크를 꺼내 뚜껑을 튕기고 망설임 없이 들이켰다.

     

    “원, 5년은 묵힌 고사리 맛이 나네.”

     

    둥실, 몸이 반발력을 얻어 떠오른다.

     

    발렌에게도 준비해줬던 [체공 포션]이다.

     

    “아 참, 작별인사는 해야지.”

     

    진조의 미소를 비슷하게 지어 되돌려주며 손을 흔들어줬다.

     

    ―콰앙!!

     

    진조가 바닥에 처박히며 단정하게 정돈되어 있던 벽돌이 사방으로 튀었다.

     

    “좋아.”

     

    진조의 피는 손에 넣었다.

    이 안에는 광견병의 항체가 가득하다.

     

    비커를 꺼내 주사기의 내용물을 일부 바닥에 고르게 폈다.

     

    “성질변화.”

     

    즉시 성분을 분석해서 분리에 들어간다.

     

    “연성에는 딱 맞는 게 없어. 순전히 추출하고 강화해서 써야 해.”

     

    불치병의 치료제는 처음 봤다. 조금 흥분해서 나도 모르게 동공이 커졌다.

     

    “예상 못 한 원리야. 광견병 증상을 일으키는 염기서열에만 결합해서 성질이 없는 단백질로 바꾸는 항체였어.”

     

    하수인들에게 돌아다니며 일일이 주사를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처럼 감염자가 많은 상황에서는 대기 중에 살포해야 한다.

     

    호흡기로도 흡수되고 효과가 즉시 발동하도록 [강화]를 수차례 거친다.

     

    비커의 액체가 상쾌한 푸른색으로 변했다.

     

    “완성됐어.”

     

    양을 늘려 플라스크에 담아 첫 치료제의 양산을 마친다.

    이제 배포만 하면 된다.

     

    어떻게 할까.

    이걸 공중에서 터트릴 로켓 같은 게 있으면 좋으련만.

     

    “으음…!”

    여유는 그다지 없어 보였다.

     

    바닥에 처박혔던 진조가 지면으로 걸어 나와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양복이 찢어졌군.”

     

    상당히 화가 난 모양인데.

     

    나를 향해 검지를 펼치는 진조.

     

    “고트베르크. 마음에 드는 인재야. 자네는 소체로 쓰지.”

     

    “위대한 마족께 간택 받았나? 굉장한 영광인데.”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그를 향해 플라스크를 던졌다.

     

    퍼엉! 포션이 폭발하니 새카만 연막이 터져 진조의 시야를 막았다.

     

    “네 상대는 나야! 어제도, 내일도, 그리고 지금도!”

     

    연막을 걷히자 암살자를 쓰러트린 샤를이 번쩍이는 성검과 함께 진조를 향해 날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비공개독자님 또 후원 감사합니드아…! 저는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님이 제일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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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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