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93

       차가운 칼날들이 날카로운 빛을 번뜩이며 날았다.

       폭우가 내리는 것처럼 공기를 찢는 소리가 빗발쳤다.

         

       “크아아악!”

         

       화신이 크게 몸을 비틀었다.

       수백 개의 단검이 딱딱한 껍데기에 맞고 튕겨 나갔다.

         

       처음 겨눈 대로 목표물에 적중한 것은 불과 5%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했다.

       5%라 해도 수십 자루였다.

         

       단검들은 화신의 외골격 사이의 이음새를 파고 들어갔다.

       칼날들이 연골을 관통하고 살을 헤집었다.

         

       다채로운 색깔의 진물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마치 물감 튜브들을 한데 모아서 터트린 것 같았다.

         

       화신은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을 쳤다.

         

       아팠다. 이렇게 아픈 것은 처음이었다.

       단단한 껍데기를 너무 믿었다.

       그 속은 너무나도 물렀다.

         

       그녀는 더듬이들을 바짝 세웠다.

         

       자신에게 이런 고통을 주다니.

       몇 배로 갚아 준 다음에 죽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어지는 상황에 경악했다.

         

       그녀가 몸을 추스르는 사이, 튕겨 나갔던 단검들이 다시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마야는 손을 까딱였다.

       칼날들이 다시 그녀를 조준했다.

         

       “이……이…….”

         

       화신의 눈에 공포의 빛이 떠올랐다.

       마야는 머뭇거리지 않았다.

       다시 단검을 날렸다.

         

       화신이 내지르는 비명이 연회장을 가득 울렸다.

         

       아까와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마야가 날린 단검들은 화신의 관절 부위를 찌르고, 찌르고, 또 찔렀다.

       시도가 계속될수록 적중하는 단검의 수는 늘어났다.

       몸에 박힌 칼들 때문에 화신의 움직임이 점점 느려졌기 때문이다.

         

       은빛 궤적이 어지럽게 허공을 수놓았다.

         

       그러나 그것을 행하는 마야의 표정에는 어떤 희열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실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는데도 그녀는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그저 슬프기만 할 뿐이었다.

         

       불과 1분이 안 되는 시간에 1000개의 단검이 모두 소모되었다.

         

       “끄으윽……끅……끅…….”

         

       화신은 바닥에 엎드린 채 숨을 꺽꺽 내쉬었다.

       아무리 힘을 얻었다지만, 그녀의 정신은 유복하게 자란 18살짜리였다.

       이런 고통을 의연하게 받아들일 투지도 인내심도 없었다.

         

       “죽인다……!”

         

       하지만 증오를 불태울 만한 복수심은 있었다.

       그녀는 씩씩 숨을 내쉬며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것을 지켜보는 마야의 이마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1000개의 칼을 동시에 조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력 소모량도 그렇지만 그 궤도와 힘을 계산하는 데 엄청난 정신력이 필요했다.

         

       그녀는 몸살이 난 듯 제자리에 돌처럼 굳어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화신도 그녀의 상태를 알아보았다.

         

       “크흐흐……그렇지. 네년도 멀쩡하지는 않군.”

         

       화신은 그녀의 앞으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마야는 그녀가 바로 앞에까지 올 동안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죽어!”

         

       화신은 자신의 몸을 내던지듯 그대로 그녀를 깔아뭉갰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대리석 바닥이 부서졌다.

         

       그녀는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분명 짓눌린 고깃덩어리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또 한 번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녀가 일어선 자리에는 여전히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마야의 형상이 있었다.

       또 환상에 속은 것이다.

         

       “으아악! 이 년이!”

         

       놀란 것은 마야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남은 마력을 쥐어짜 투명 물감을 몸에 바르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의 가짜 환상이 나타나 화신을 엉뚱한 곳으로 유인했다.

       누가 환상을 만든 것일까?

         

       마력이 바닥나면서 투명화가 풀렸다.

       몸이 녹초가 되어 쓰러지려고 할 때, 누군가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받쳐 든 사람을 올려다봤다.

         

       그곳에는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금발의 남자가 있었다.

       그녀가 누구보다 존경하는 사람.

       그녀의 스승.

         

       “단……장님?”

       “고생했습니다, 마야 양. 이제부터는 저희에게 맡기세요.”

         

       저희?

       마야는 고개를 살짝 틀었다.

         

       원더스타인의 옆에는 어디선가 본 적이 사람이 서 있었다.

       전신을 천으로 감싼 키가 작고 통통한 여자였다.

         

       마야는 곧 그녀가 누군지 기억해냈다.

         

       장미 풍차 카바레의 1주차 공연인 ‘키네마’에서 봤었다.

         

       혼자서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모두 소화해내던 변사(辯士).

       천(千)의 목소리, 루미온.

       은막 서커스단의 부단장이었다.

         

         

       ***

         

         

       나는 마야가 무사한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천운이 따랐다고 할 수 있었다.

         

       화신의 권능 중 하나인 ‘지옥 구현’은 화신의 몸을 중심으로 마신이 거주하는 영역을 소환하는 것이었다. 다른 마신을 섬기는 마도사들이 힘을 발휘할 수 없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지옥 구현을 하게 되면 그 힘이 작용하는 영역은 외부와 공간의 분리가 일어나게 되는데, 다행히 옥상은 딱 그 경계에 걸친 지점이었다.

         

       조금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나는 마침 옥상에 있던 루미온과 함께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다.

         

       진화 연구소의 ‘진단’ 기능을 이용해 마야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그녀는 조금 지쳤을 뿐 다친 곳은 없었다.

         

       “이건 누구의 피죠?”

         

       내 말에 그녀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녀는 연회장 한구석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카렌이 죽었어요.”

       “카렌 양이요……?”

         

       나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정말 사지가 무너져 내린 시체 하나가 눕혀 있었다.

         

       진화 연구소는 말해주었다.

       카렌의 심장은 멎었다고.

         

       하지만 동시에 희망도 주었다.

         

       “심정지 한 지 2분이 지났군요. 혈액이 멈추고 산소 공급이 끊기고, 뇌세포가 괴사하기까지 앞으로 1분 정도 남았습니다.”

         

       내 말은 냉정한 사형 선고로 들릴 수 있었지만, 마야는 똑똑한 아이답게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그럼…….”

         

       마야의 눈동자가 눈에 띄게 떨렸다.

       나는 자신감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1분 안에 심장과 몸을 복구하면 다시 살릴 수 있습니다.”

         

       나는 마야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눕히고는 바로 카렌을 향해 다가갔다.

       1초도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루미온 부단장님.”

       “알았어.”

         

       루미온이 내 뒤에 바짝 따라붙었다.

       그녀 역시 뛰어난 환상 마법사였다. 투명화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다만, 마법을 걸려면 대상과 가까이 있어야 했다.

         

       화신은 지금도 루미온이 만든 환상을 쫓아다니며 난동을 피워댔다.

         

       나는 카렌의 몸에 손을 대고 작업에 착수했다.

         

       일단 뇌세포에 산소부터 공급했다.

       그리고 썩은 피를 모두 제거하고 건강한 피로 교체하며, 심장을 복구하고, 부러진 뼈를 맞추고, 손상된 조직을 회복시켜 나갔다.

         

       데볼루트가 빠른 속도로 소모되었다.

         

       루미온은 나를 호위하듯 나와 등을 맞대고 섰다.

         

       나는 치료를 진행하면서 그녀에게 불쑥 말을 걸었다.

         

       “당신이 아르노 씨죠?”

         

       등으로 그녀의 떨림이 느껴졌다.

         

       진화 연구소는 생물의 상태를 분석할 수 있었다.

       즉, 진단 기능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은 상대가 생물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다.

         

       아까 곡예 대결을 했을 때, 나는 아르노의 몸 상태를 살폈다.

       하지만 그의 몸은 분석할 수가 없었다.

       진화 연구소는 아예 그의 존재조차 감지하지 못했다.

         

       그의 모습은 진짜가 아니었다. 환상이었다.

         

       “어떻게 알았지?”

         

       루미온의 말에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제가 생물을 분석하는 특기가 있어서요. 목소리는 어떻게 낸 거죠? 환상에 소리는 없을 텐데요.”

         

       내 말에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는 입을 열었다.

         

       “나는 환상에 물리력을 부과할 수 있어. 목과 입에 대해서도.”

         

       불친절한 설명이었지만 나는 이미 그에 대한 가설 하나를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었기에 바로 이해했다.

         

       “성대를 구현한 겁니까? 후후, 그게 ‘천의 목소리’의 비결이기도 하군요.”

       “맞아.”

         

       놀라운 여자였다.

       혼자서 두 사람의 역할을 다 해내다니.

       그들의 쇼에서 아르노는 환상의 중추를 담당했었다.

       그것을 해냄과 동시에 변사 역할도 했다는 건가?

       가히 최고의 환상 마법사라고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실력이었다.

         

       “놀랍군요.”

         

       내 말에 루미온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할 말이야. 이 정도의 의료 마법은 들어본 적이 없어.”

         

       카렌의 주요 장기는 대부분 회복되었다.

       위급한 고비는 넘겼다고 할 수 있었다.

       숨도 쌕쌕 쉬기 시작했다.

       이제 외형의 복구와 몸에 퍼진 괴사한 세포를 청소하는 일만 남았다.

         

       “마도입니다. 키르쿠스가 제게 준.”

         

       그때, 갑자기 우리 주변에 공기 방울들이 부글거리며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화신이 우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거기구나!”

       “들켰네.”

         

       화신이 쿵쿵거리며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루미온은 투명화를 해제했다.

         

       “내가 막고 있을 테니, 당신은 그 아이 치료에 집중해.”

         

       그녀의 앞에 쇠로 된 커다란 그물의 환상이 떠올랐다.

         

       나는 카렌의 몸을 품에 안고 일어섰다.

         

       “그럼 부탁하겠습니다.”

         

       나는 폭음을 뒤로하고 재빨리 연회장 구석으로 달아났다.

         

       커다란 장식물 뒤편.

       그곳이 몸을 숨기기 좋았다.

         

       그런데 그곳에는 이미 먼저 온 사람이 있었다.

         

       “클라라 양.”

         

       파란색 머리의 소녀가 장식물 뒤편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정신이 멀쩡해 보였다.

         

       “주……아니, 단장님…….”

         

       나는 그녀의 손에 든 물건을 바라봤다.

         

       피 묻은 단검이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목에는 방금 막 칼을 댄 상처가 있었다.

         

       “뭘 하려 한 겁니까?”

         

       나는 상황을 알아차렸다.

         

       시네페쿠스의 권능.

       그것은 상대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것이었다.

         

       클라라는 그리고 얼마 전까지 자살을 생각하던 아이였다.

       무엇이 그녀의 마음을 건드렸는지 모르지만, 그녀는 방금 죽으려 했던 것이 틀림없었다.

         

       “이, 이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녀의 말에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결정이 충동적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애초에 파티에 오는데 칼을 소지할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인가.

       아마도 늘 저것을 품에 넣고 다녔으리라.

         

       그녀는 아직도 자살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목숨을 함부로 하지 말라고.”

         

       내 말에 그녀는 대꾸하지 않고 시선을 피했다.

       도대체 그녀의 마음속 아픔이 무어길래 여기서 유일하게 자살을 택하려 했을까.

         

       떠도는 소문 이상의 비밀이 그녀에게 있을 것 같았다.

         

       “속상하지 않습니까. 당신 삶이 마신의 장난질에 결정되는 것이.”

         

       내 말에 그녀는 갑자기 고개를 쳐들었다.

       그녀는 입술을 달싹이더니 고개를 푹 숙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저는 어쩔 수 없어요. 원래 이따위로 태어난걸요.”

         

       심각한 자기혐오였다.

         

       나는 더 해줄 말이 없었다.

       상관도 없는 사람이 괜히 아는 척하는 것도 그녀가 보기에는 주제 넘는 참견일 것이다.

         

       대신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했다.

       나는 이제 치료가 끝낸 카렌을 바닥에 눕히고는 클라라에게 다가갔다.

         

       “이리 오세요. 다른 건 몰라도 당신의 몸은 제가 봐 드릴 수 있습니다.”

         

       내 말에 그녀는 눈을 부릅떴다.

         

       “저, 정말요?”

       “물론이죠.”

         

       그녀는 놀랐지만 나를 불신하지는 않았다.

       직접 카렌을 치료하는 것을 봤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목에 손을 댄 순간, 나는 모든 것을 알았다.

         

       진화 연구소는 그녀의 몸이 붕괴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대로 두면 일주일이 가기 전에 죽는다는 것도.

         

       시한부였구나.

         

       이제야 나는 그녀가 가진 절망이 이해가 갔다.

         

       “저, 정말 제 몸을……고쳐줄 수 있나요……? 단장님의 힘으로……?”

         

       데볼루트가 빠져나가면서 그녀의 목에 난 상처가 스르르 아물었다.

         

       그녀의 눈가에 맑은 액체가 차올랐다.

       그녀는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고인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진화 연구소는 그녀의 몸이 붕괴하는 현상을 막으려면 주기적으로 데볼루트를 주입해줘야 한다는 것을 알려왔다.

       그 비용은 만만치 않았다.

         

       정상적으로 게임 공략만 생각한다면, 그녀의 말을 부인해야 했다.

       하지만 자신의 절망적인 몸 때문에 자살을 생각하는 친구를 나는 버려둘 수 없었다.

       마치 옛날의 나를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네. 물론입니다.”

       .

       나는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클라라를 두고 이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루미온과 화신의 싸움은 박빙이었다.

       둘 다 서로에게 타격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화신은 번번이 그녀가 만든 환상을 향해 헛방을 쳤으며, 루미온은 화신이 몸에 두른 단단한 외골격에 타격을 주지 못했다. 그녀는 뛰어난 환상 마법사였지만, 쏴의 기술은 갖추지 못했다.

         

       “그러면 이번 일을 끝내고 이야기를 나눕시다.”

         

       나는 품에서 작은 병을 꺼내 안에 든 것을 마셨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늘 소지하고 다니는 것이었다.

         

       병을 모두 비운 나는 화신을 향해 걸어갔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