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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3

        

       쿠구궁-

         

       지축을 울리는 듯한 거대한 소리.

         

       마치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듯한 굉음과 함께 토사는 경사를 따라 쏟아지기 시작했고, 그 모습은 쓰나미와는 다른 끔찍하기 짝이 없는 위용을 보여주고 있었다.

         

       파지지직!

         

       가장 먼저 산 근처에 있는 집이 박살이 났다.

         

       주로 나무를 이용해 만드는 일본의 주택은 도저히 쏟아지는 토사에 버틸 힘이 없었고, 토사를 맞이하자마자 완전히 박살이 나버리거나 집채로 그대로 쓸려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은 마치 거대한 파도에 배가 휩쓸려 둥둥 떠다니다가 가라앉아버리는 모습과 흡사했다.

         

       콰드득!

       쿠-웅!

         

       산사태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집을, 밭을, 전봇대를.

       사람이 세워놓은 모든 것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전봇대는 썩은 나무처럼 뿌리째 뽑혀 기울었고, 어지러이 널려있는 전선 역시 땅에 늘어지며 이곳저곳에 부딪혔다. 그리고 부딪치는 재질에 따라 스파크를 일으키기도 하고, 불을 피우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렇게 피어난 불은 켜지지 않았다.

       쏟아지는 토사가 그 불조차도 먹어 치웠기 때문이었다.

         

       쿠구구궁-!

        콰아아아앙!

         

       마치 산사태는 거대한 파도 같았고, 거인이 손짓으로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것처럼도 보였으며, 사람이 만든 것을 잔뜩 집어넣고 갈아버리는 믹서기 같기도 했다.

       산사태에 휩쓸린 모든 것들은 서로 부딪치며 잘게 조각이 났고, 이리저리 부딪치며 원래의 흔적조차 알아볼 수 없게 변했다.

         

       그나마 콘크리트 철근으로 만든 건물은 산사태에 휩쓸리지는 않았지만, 막대한 질량과 산사태 안에 포함된 물건들이 가하는 충격 때문인지 이곳저곳이 부서지거나 금이 갔으며, 한때는 투명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발했을 유리는 모조리 으깨지고 조각나며 토사 속에 스며들었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까.

       아무리 힘들더라도 희망은 있었던 것일까.

         

       인명피해는 단 하나도 없었다.

         

       사람들이 모두 대피소로 이동했기 때문이었다.

         

       지장보살의 머리통이 나와서 저주를 내리겠다고 음산하게 말하는 악몽.

       뭔가 불길해 보이는 산의 모습.

       거기다가 어마어마하게 내리는 폭우까지.

         

       사람들은 결코 이 재앙의 전조를 무시하지 않았고, 무슨 일이 일어나도 크게 일어나겠다는 생각에 가지 않겠다는 사람까지 붙잡아 대피소로 이동한 상태였다.

         

       “어, 어어….”

       “와….”

         

       대피소로 이동한 사람들은 멍하니 산사태가 일어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CCTV 영상이 나오고 있는 TV로, 대피소에 붙어있는 창문으로,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오는 뉴스의 영상으로 흙이 흘러내리는 것을, 집이 부서지고 밭이 박살이 나버리는 그 모든 것을 그저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그들의 입에서는 곡소리도, 불평도 나오지 않았다.

         

       태풍이라도 한 번 불어서 농사를 망치면 하늘을 원망하고, 졸면서 운전하던 트럭이 축사를 들이받아서 가축이 다치면 바닥에 엎어져서 울음을 터뜨렸던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오직 언어가 되지 못한 신음뿐.

         

       그 신음에 어떤 감정이 담겨있는지는 모른다.

         

       자기 재산이 갈려 나가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는 절망과 무기력함.

       혹은 자기 재산이 갈려 나갈까 싶은 마음에서 나오는 두려움과 걱정.

       대피소로 이동했기에 목숨만은 건졌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안도.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신음은, 한숨은 그 모든 감정을 함께 포함한 채 대피소를 감돌기만 할 뿐이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표정을 짓고, 각자의 심정을 삼킨 채 산사태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이 자연재해를 어떻게 이기겠는가.

       자연재해는 그저 피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피소에 있는 어떤 사람은 그러한 사람의 무기력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검을 손질하는 것을 멈추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거침없는 인기척에 산사태를 바라보고만 있던 사람 중 몇몇은 고개를 돌렸고, 그들이 고개를 돌리자마자 도복을 입고 있는 거대한 남자를 볼 수 있었다.

         

       혼자서만 원근감이 다른 것 같은 거대한 덩치를 가지고 있는 남자였다.

         

       남자의 몸에는 물고기나 도마뱀을 닮은 비늘이 빼곡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고, 어두컴컴한 대피소의 안에서도 바깥에서 흘러나오는 빛을 받아서 어두운 광택을 발하고 있었다.

         

       남자는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검을 잡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뚜벅뚜벅.

         

       거대한 덩치와 무게에서 나오는 육중한 발소리가 울려 퍼지자 사람들은 하나둘 남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남자는 하나둘 늘어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도 위축되지 않고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고, 대피소의 문에 다다랐을 때는 대피소에 있는 사람들 절반 이상이 남자의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는 슬쩍 고개를 돌려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잠깐 다녀오겠소.”

         

       그는 그 말만을 남긴 채 그대로 밖으로 나섰다.

         

       저 멀리에서 산사태가 다가오는 마을의 바깥으로.

       어마어마한 질량이 모든 것을 쓸어버릴 기세로 쏟아지고 있는 위험한 곳을 향해.

         

         

         

        * * *

         

         

         

       무인은 저마다의 이상을, 일념을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

         

       무공의 본질은 인간을 단련시키는 것이며, 그 단련이라는 것은 곧 적을 물리치고 나를 강하게 만드는 것.

       어떤 상대를 어떻게 상대할 것이냐에 따라 무공이 나아가는 방향이 다르고, 그들이 품은 일념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어떤 무인은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모든 공격을 흘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며, 어떤 무인은 번개보다도 빠르게 도(刀)를 뽑을 수 있다고 믿고 있을 것이며, 어떤 무인은 검을 휘둘러 세상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바라보는 궁극.

       그들이 바라보는 명제.

       지금은 못 하지만 반드시 이룰 수 있을 것이라 믿는 목표.

         

       무인은 저마다 다르지만 제각기 일념을 품고 살아가며, 그 일념을 위해 끊임없이 단련하고 발전한다.

         

       그리고 그 발전의 방향이 옳다고 말하듯 반드시 찾아오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환골탈태.

       무공에 맞춰 세상에 갖고 태어난 신체가 뒤바뀌어버리는 현상이다.

         

       환골탈태는 말한다.

         

       너의 방향은 틀리지 않았다고.

       네가 나아가는 방향은 옳으며, 그것을 위하여 너에게 선물을 주겠노라고.

         

       그렇게 재능이 있는 몇몇 무인들은 환골탈태를 겪으며 폭발적으로 발전한다.

         

       검을 빠르게 휘두른다면 검을 더 빠르게 휘두를 수 있도록 폭발적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근육을 생기고.

       필요하다면 딱총새우처럼 압력을 이용해 충격파를 만들 수 있는 기관마저 만든다.

         

       동물처럼 다리가 변하기도 하며, 뇌와 심장만 다치지 않으면 죽지 않는 어마어마한 생명력을 가지기도 하며, 현미경에 버금가는 시력을 가지기도 한다.

         

       마치 수백, 수천 년에 걸쳐서 해야 하는 진화를 한순간에 겪는 것처럼.

       환경이 아닌 무공에 맞춰서 몸을 완전히 뒤바꿔버리는 것처럼.

       그렇게 유전자 단위의 변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무라카미 카즈오(村上計夫) 역시 이러한 변화를 겪은 무인이었다.

         

       그는 어릴 적 ‘검으로 단단한 것을 베는 것이 멋지다’라는 이유 하나로 시현류의 문을 두드렸다.

         

       꽤 왜소했던 어린 시절의 카즈오는 자신이 시현류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고, 오직 멋있는 무공을 익혀야겠다는 생각만으로 눈을 반짝이며 그들에게 검을 가르쳐달라고 졸랐다.

         

       겉으로 보기에는 무공에 그렇게 재능이 있어 보이지 않았지만, 다행스럽게도 시현류는 겉으로 보이는 재능보다는 용기, ‘사나이다운 모습’을 중요시하는 유파. 어린 주제에 무공을 배우겠다고 조르는 모습을 보고 사나이의 싹이 보인다고 생각했던 시현류의 무인들은 기꺼이 그를 받아주었고, 성심성의껏 그에게 무공을 가르쳤다.

         

       목검으로 짚단을 후려치게 했고.

       목검으로 나무토막을 후려치게 했고.

       목검으로 나뭇가지를 묶은 것을 내리치게 했다.

         

       계속.

       계속.

         

       목검이 닳아서 나무 막대기가 될 때까지.

       철심을 박은 목검이 뚝 부러져버릴 때까지.

       짚단이 헤져서 먼지가 되고, 나뭇가지를 묶은 것이 박살이 나버리고, 통나무가 이리저리 상처를 입어서 뚝 부러져버릴 때까지.

         

       오직 내려치는 것만을 시켰고, 내려치기를 위해서 체력을 끊임없이 단련시켰다.

         

       위에서 아래로.

       체중을 실어서.

       중력에 힘을 더해서.

          

       그렇게 카즈오는 무엇이든 벨 수 있는 것처럼 보였던, 어린 눈에는 한없이 멋있어 보였던 단 하나의 동작을 위해 끊임없이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그렇게 일 년이, 십 년이, 수십 년이 지났다.

         

       코를 훌쩍거리며 자그마한 손으로 문을 두드렸던 소년은 청년이 되었다.

       검을 휘두르며 무공에만 미쳐서 살아가는 청년은 무공의 윤곽을 더듬을 수 있는 중년이 되었다.

       그리고 중년은.

         

       청년이 되었다.

         

       환골탈태(換骨奪胎)가 찾아온 것이다.

         

       뼈가 바뀌고 태가 바뀌는 과정에서 주름살이 하나둘 늘어가던 카즈오의 피부는 매끈하게 펴졌다.

       햇볕에 타서 검게 타버린 피부는 물고기의 비늘이 빼곡히 자리를 잡아 갑옷을 둘렀고, 경지에 어울리지 않게 왜소해 보였던 몸은 두 배 가까이 부풀어 오르며 2미터 50이 넘는 키를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키와 비례하게 몸집 역시 어마어마하게 커졌고, 근육은 아예 힘을 줄 때 부풀어 오르며 폭발적으로 힘을 낼 수 있도록 변했다.

         

       그렇게 카즈오는 환골탈태와 함께 경지를 넘었고, 그가 마음에 품고 살아왔던 언어가 되지 못한 깨달음이 문장으로 그에게 박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수없이 검을 휘두르며 느꼈던 것.

       목검으로 단단한 것을 휘두르며 느꼈고, 날이 세워진 칼로 쇳덩어리를 자를 때 느꼈던 것.

         

       그가 시현류라는 유파에 몸을 담고 무공을 익힐 때 느꼈던 자신감에 가까웠던 그것.

         

       “흐—으으으읍.”

         

       그는 알 수 있었다.

         

       그의 정신이, 무공이, 기(氣)가, 환골탈태로 바뀐 육체가 말을 하고 있었으니까.

         

       검은 무엇이든 벨 수 있다.

         

       무엇이든.

       설령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라도.

       검이 있고 그것을 휘두를 수 있다면.

       반드시 벨 수 있다.

         

       “흐—아—아압!”

         

       카즈오는 마을을 향해 쏟아지는 산사태를 앞에 두고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숨이 한계까지 들어차고, 들이쉰 축축한 공기가 머리의 끝까지 다다랐을 때.

         

       그는 굉음과 함께 자신을 덮치는 산사태를 노려보며 크게 기합을 내질렀다.

         

       “야—아—-아—아—–!”

         

       그는 몸 안에 있는 모든 공기를 빼내려는 듯 크게 소리를 내지르며 몸의 기를 폭발시켰고, 단단하게 기가 맺혀있는 검을 위에서 아래로 휘둘렀다.

         

       콰-앙–!

       

       그렇게 산사태가 반으로 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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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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