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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3

       *

         

         

         아이슬리프는 미간을 꾹 누르며 좌중을 훑었다. 이 자리의 귀족 누구도 섣불리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무거운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 추밀원이 창설된 이래 이들이 이토록 점잖았던 적이 있던가.

         

         마력을 잃고, 마일스톤이 정지한 채 갑작스레 도래한 겨울. 그 끔찍한 재앙은 비록 짧은 며칠이었으되, 어마어마한 여파를 초래했다.

         

         이들 모두는 각자의 섬, 그 안에서 일어날 수많은 소요사태를 뒤로한 채 집결했다.

         

         

         “경들이 이토록 이 나라를 위해 헌신하니 무엇이 두렵겠소?”

         

         

         아이슬리프는 농담하듯 입을 열었다.

         

         만년궁과 이드란힐의 이상사태를 깨닫고 집결한 까닭이, 이드란힐의 구원을 위해서였을까. 아니다. 결코 아니다.

         

         만일 그런 까닭으로 이 자리를 찾았다면 애초에 이끌고 온 군함으로 만년궁을 포격했어야 맞았다. 칠용장이 도래한 순간, 이 자리의 모두는 그 존재의 영향권 밖으로 군함들을 물리지 않았던가.

         

         

         “검각을 제외하곤 모두 모였군.”

         

         

         한 의원이 무표정하게 중얼거렸다.

         

         빈 자리를 바라보며, 아이슬리프는 쓰게 웃었다. 저 미치광이들만이 기꺼이 죽음을 향해 달려갔으니.

         

         이 자리의 모든 귀족들은 군세를 물렸다. 칠용장을 대적하기 두려웠기 때문이 아니다. 그 정도 존재와의 전투로 병력에 손실을 입는다면, 이후 엘프 귀족가에서 영향력을 잃을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한 이들은 애초에 이 자리에 도착할 수 없다.

         

         추밀원이라는, 엘프 사회의 정점에. 그리고 이곳 이드란힐에.

         

         

         “잡소리는 이쯤 하지. 폐하께서 서거하셨으니 왕가를 재정비하고 추밀원을 재출범 해야 하지 않겠소.”

         “그래, 바쁘신 몸들이었지.”

         “이드란힐을 이대로 두는 것은 옳지 않지. 천도함이 어떠시오? 저 저주 받을 존재가 이 땅에 무엇을 남기고 갔을지 어찌 안단 말이오.”

         “만년궁은 우리 민족의 정수요. 선조들의 숲을 포기하잔 말이외까?”

         “아무렴. 그게 남아 있기나 하겠소?”

         

         

         한 의원의 말에 추밀원이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마력을 되찾은 이상 두려울 것이 없고, 병력은 거의 완벽히 온존해으며, 학회의 소란은 진압될 것인즉.

         

         이제 이들은 다른 귀족이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기회로 집어 삼킬 수 있을지. 그런 것들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여왕의 권위와 그것을 지탱하던 천문학파가 통째로 사라진 시점이다. 추밀원은 이제 승냥이굴이나 다를 바 없다. 누가 이들을 중재할 것인가. 어떤 권위로.

         

         

         “이드란힐 내부에 진입한 이들이 모두 죽은 것은 맞소?”

         “인간과 저급한 명가 몇을 제외하고, 천문학파를 빼면 저 도시에 무엇이 있었소? 만년궁 하나 뿐이지. 살아있다 한들 지금 무슨 꼴이 되어 있겠소?”

         

         

         칠용장이 도래함과 동시에 엘프 군함들은 이드란힐을 해역 너머에서 봉쇄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눈이 밝은 엘프 선원의 시야에도 빛은 보이지 않았으니.

         

         도시는 그 기능을 잃었고, 저곳은 마족령과 다를 바 없는 마경일 것이다.

         

         뛰어 들어간 검각이 교전을 시작하는 것이야 확인이 되었으되, 거목이 휘두르는 그 압도적인 주문과 폭력이 도시를 휩쓸었으니 살아 있으랴.

         

         심지어 마력도 없던 시점이다. 그리고 마력이 없다면 주문의 사전 감지나 사선 감지, 초인의 기본적인 신체 운용이 불가능해지니.

         

         검각의 그 대단한 초인들은 그 순간, 일개 병사 하나에 불과한 채로 달려들었다. 불나방처럼. 그리고 불나방이 으레 그렇듯, 그들 또한 불꽃 속에서 산화했으리라.

         

         

         “파괴학파는 이드란힐의 평탄화를 제안하오.”

         “다소 과격하시군.”

         “그래서 반대하시겠소?”

         

         

         추밀원은 술렁이지 않았다. 이들 모두가 그것을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모를 생존자 중에 검각과 천문학파가 남아있다면 깨끗하게 날려버릴 수도 있고, 혹시라도 여왕이 생존했다면 그녀 또한 처리할 수 있을 테니.

         

         이제와서 옛 권력들이 돌아와 다시금 과거의 권위를 주장하게 두어선 안 된다. 다음 왕위는 추밀원의 꼭두각시 중에 나와야 하며, 다음 수도는 자신들의 학파가 거두어야 한다.

         

         검각이 소유하던 그 풍요로운 섬을 떠올리며 몇몇 의원들은 천천히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그것엔 동의하지만, 저는 조금 더 넓은 시야로 보길 권합니다.”

         “…헤오드릭 경. 발언하시오.”

         “굳이 이 좁은 땅에 전념할 까닭이 있소?”

         

         

         정신학파의 군주가 음산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칼리온은 축복 ‘받았던’ 땅이지요. 넘치는 물산과 풍요로운 마력, 온후한 기온…. 하지만 지금도 그러하답니까? 당장 겨울이 지났어도, 이제 칼리온은 다른 뭇 족속들의 땅과 같이 계절에 따라 시들고 질 텐데요.”

         “하고 싶은 말이 뭐요?”

         “인간들에겐 좋은 문화가 있지 않답니까?”

         

         

         헤오드릭이 손을 휘젓자 허공에 거대한 지도가 드리워졌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지도는 칼리온 해역과 마족령, 그리고 연합 왕국의 대륙을 그리고 있었다.

         

         그는 마족령을 쿡, 찌르며 말했다.

         

         

         “몇몇 인간 국가는 이곳을 식민지배 하고 있지요. 군정을 차리고 마족들을 착취하며….”

         “그래서?”

         “세상이 우리를 칼리온 바깥으로 밀어내는즉, 우리라고 하지 않을 이유가 있답니까?”

         

         

         헤오드릭은 지도 전체를 가볍게 쓸었다. 칼리온에서 날아간 몇 척의 함선들이 지도 곳곳을 푸르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세 바다와 하나의 하늘이 모두 우리의 영토가 아닙니까. 굳이 이 좁아 터진 땅에서 서로 이를 갈지 말고, 사이좋게 나눠 갖는 것이 어떻습니까.”

         

         

         이 세계를.

         

         

         헤오드릭의 말에 좌중이 잠시 침묵했다.

         

         마일스톤으로 만들어진 압도적인 조건이 아니라면, 사실 칼리온은 세계의 다른 섬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오히려 비좁은 국토로 한계가 명확할 뿐.

         

         그러나 세계 전역을 실효지배할 수 있다면, 사실 공중전함 몇 척을 몰아 왕성만 골라 잡아서 포격을 시작하면 극소수의 국가를 제외하곤 대응할 수조차 없을 테니.

         

         드로안, 칼리온, 틸레스. 그 세 개의 왕국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소국들은 공중전함 한 척조차 상대할 방법이 없다.

         

         그러니, 나쁘지 않다. 굳이 이 좁은 땅에서 권력을 나눠 갖자며 같은 민족끼리 피를 흘릴 까닭이 있으랴.

         

         

         “그건….”

         “뭇 의원들께서 이 제안을 수락하신다면, 본 학파는 크라실로프 방면을 맡겠습니다.”

         “크라실로프? 그 화약에 미친 야만인들이 가장 까다로울텐데.”

         “제가 드린 의견이니, 제가 가장 까다로운 상대를 대적하지요. 함께 하시겠습니까?”

         

         

         그 순간, 문이 부서지듯 크게 열렸다. 그 무례에도 엘프들은 시선을 돌리거나 놀라지 않았다. 그저 품위 있게 미간을 찌푸리며 불쾌함을 드러낼 뿐이었다.

         

         이들의 임시 의회소는 아이슬리프의 기함이었던 탓에, 그는 난입한 불청객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낮게 타박했다.

         

         

         “회의 중이다. 나가라.”

         “가, 각하. 송구스럽습니다만, 자, 잠시—.”

         

         

         뛰어 들어온 자는 그가 가장 신임하는 갑판장이었다. 가볍게 턱짓하자 재빨리 달려온 갑판장이 그의 귓가에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거, 검각의 기함이 접선하고 있습니다…!!”

         “살아 있었나.”

         

         

         아이슬리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곧 작게 물었다.

         

         

         “군기는?”

         “검각의 것 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되었다.”

         

         

         왕실 인장기가 함께 있지 않다면 여왕은 확실히 죽었겠군.

         

         아이슬리프는 손을 저어 갑판장을 물리고, 시선이 모인 좌중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검각의 코엔울프 경이 도착했다는군. 잠시 휴정 하겠소.”

         

         

        *

         

         

         에델플라트의 기함, ‘엘프의 정점’호는 검은 군기를 펄럭이며 접안했다. 다른 엘프 명가들과는 달리, 비행선을 띄우지 않은 채 그녀는 직접 교량을 걸어 승선을 시도했다.

         

         갑판에 나온 포수와 선원들의 시선이 꽂혔다.

         

         저 군함의 승무원들은 지옥에서 살아온 자들이다. 이드란힐, 칠용장. 또는 그에 준하는 존재가 직접 도래한 지역에서 돌아온 자들이다.

         

         귀족들은 이 사실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으나, 말단 엘프들은 누더기가 된 군함의 외형을 보며 침을 삼켰다.

         

         

        -펄럭.

         

         

         코트가 바람결에 부드럽게 나부꼈다. 검은 머리칼이 흩날렸다. 허릿춤에 칼 한 자루를 경쾌하게 비껴 차고, 전투의 후유증 따윈 전혀 없다는 듯 성큼성큼, 한 엘프가 교량을 건넜다.

         

         

         “에델플라트 코엔울프 경. 승전을 경하드립니다.”

         

         

         한 선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이 전설적인 엘프는, 과거 칠용장과 홀로 맞서 살아 돌아왔으며, 이제 칠용장을 직접 도살하고 돌아온 영웅이었으므로.

         

         그녀의 코트 아래에, 바람결에 흩날린 자락 아래로 왼팔이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칠용장에게 한쪽 눈과 한쪽 팔을 두고 왔다고. 아직 피가 굳지 않은 상처, 그 위를 감싼 붕대 위를 붉게 물들이고서는.

         

         이윽고 그녀의 뒤로 하나 둘 선원들이 올랐다. 검각의 제자들. 짙은 피냄새와 절뚝이는 다리, 이따금 사지 중 하나 씩을 잃어버린 부상병들이다.

         

         그러나 그 중 누구도 허리를 굽히지 않았다. 당당히 가슴을 펴고 개선하는 형상이다.

         

         그러니 이 자리의 엘프들은 기꺼이 그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민족의 위협을 구하고, 수도를 지켰으며, 끝내 칠용장을 죽였으니.

         

         역사 시대 이래로, 고작 이 정도 병력으로 칠용장을 직접 도살한 이들은 오직 용사 파티 뿐이었으므로.

         

         이들의 위업이 그에 준한다. 그렇게 평가하며.

         

         

         “고맙네. 우리 의원님들은 어디에 계신가?”

         “의회소로 안내하겠습니다. 코엔울프 경.”

         “부탁하지.”

         

         

         에델은 낮게 웃으며 그를 따라 걸었다. 검각의 엘프들과, 소수의 인간들이 그녀의 뒤를 쫓아 걸음을 옮겼다.

         

         

        *

         

         

         “우리 친절하고 열정적인 나으리들이 여기에 다 모여 계셨군.”

         

         

         에델은 넓은 회의실을 곧장 가로지르며 빈 자리를 향해 걸었다.

         

         

         “이상 사태를 발견하자마자 곧장 배를 띄운 주제에 이 먼 바다에서 정답게 다과라도 즐기셨나?”

         

         

         그녀는 코트를 벗어 의자에 걸었다. 의자에 앉아 삐딱하게 기대고, 칼을 풀어 옆에 비스듬히 걸쳤다.

         

         두 다리를 테이블 위에 얹을 때까지도 그 누구도 그녀에게 섣불리 말을 건네지 않았다.

         

         

         “왜. 다들 꿀 먹은 벙어리라도 되신 건가?”

         “코엔울프. 예의를 갖춰라.”

         “내가 예의를 갖춰야 할 사내들이 저 지옥 속에서 죽었다. 아이슬리프.”

         

         

         그녀의 말에 의장이 입을 다물자 누군가가 벌떡 일어섰다. 파괴학파의 군주, 실몬이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게 우리 탓이라는 건가, 코엔울프? 전투를 시작하기에 앞서 회의를 우선하자 했을 때 뛰어 나간 건 네년이 아니었느냐?”

         “실몬.”

         “칠용장을 죽였다? 그래, 대단한 위업이지. 하지만 그것이 선의였느냐? 너, 에델플라트 코엔울프. 위선을 가장하지 말아라. 네년이라고 다를 것 같으냐? 여왕을 구하고 그 업적, 그 명성을 통해 입지를 다지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더냐?”

         “실몬.”

         

         

         에델플라트는 별 말 없이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말을 해라. 에델. 이름만 부르지 말고.”

         “넌, 내 거리 안에 있다.”

         

        -키잉.

         

         

         에델이 엄지 끝으로 칼자루를 들어 올리자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검이 닿는 거리 안에서 에델은 최강이다. 그 사실을 모르는 자는 이 자리에 없었고, 그녀는 그것을 이드란힐에서 증명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의원들은 저마다 조용히 마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저 미치광이가 언제라도 폭발할 수 있었으므로.

         

         

         “진정하십시오. 코엔울프 경.”

         “헤오드릭.”

         “예, 저희는 경의 분투에 기꺼이 경의를 표합니다. 또한, 검각의 수많은 인적 자원들이 희생된 사태에 애도를 표하겠습니다.”

         

         

         헤오드릭이 천천히 테이블을 짚고 일어섰다.

         

         

         “그러나 이 자리는 우리 민족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차대한 의회가 아니겠습니까. 우리 추밀원이 직접 이리 마주하는 것이 얼마만인지요. 그런 자리가 비극으로 끝나서야 되겠습니까.”

         “할 말을 먼저 해라.”

         “칼리온이 더 이상 왕국으로 남아 있을 이유가 있을지에 대해 의논 중이었습니다.”

         “왕정을 폐하자?”

         “아뇨. 각 학회는 이제 독립하려 합니다. 마일스톤이 없는 칼리온을 벗어나 저 먼 세상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식민지배를 기가 막히게 포장하는군.

         

         에델은 그의 말뜻을 파악하는 즉시 비릿하게 웃었다. 이 빌어먹을 것들은 어째, 변한 것이 없어서.

         

         어쩔까. 이 자리의 모두를 죽이려면, 할 수 있을까? 혼자라면 모르되, 그녀의 곁엔 지금 ‘그’가 있으니 가능할 수도.

         

         가능성을 계산하며, 그녀는 엄지 끝으로 검파를 톡, 톡 치다가 옆을 돌아보았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욘.”

         

         

         시위로 배석한 이반의 의견도 들어봐야 했다. 그에게 아직 싸움을 계속할 여력이 있다면, 뭐. 한바탕 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욘?”

         

         

         이반은 그녀의 말에 대답 없이 눈을 깊게 감고 있었다.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게 고요히 서서. 묵묵하게.

         

         많이 피곤한 것인가? 하긴, 움직이는 것 자체가 기적인 몸 상태라 하겠다. 저 사내는, 아직도 믿기 어렵지만, 방금까지 칠용장을 홀로 상대하고 온 참이다.

         

         

         “욘. 괜찮으냐. 많이 피곤하다면 나가서 쉬어도 좋다.”

         “조용.”

         “…응?”

         

         

         이반의 목소리가 낯설었다. 떨리는 것 같기도, 숨을 간신히 참고 있는 것 같기도 한 흔들리는 목소리였다.

         

         에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반을 바라보았다.

         

         

        *

         

         

         ‘익숙하다.’

         

         

         훈련 받은 요원이라면 기시감을 결코 무시하지 않는다. 어딘가 익숙하단 뜻은, 어딘가에서 마주했던 인물이 변장한 채 붙었다는 의미로 파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반은 회의실에 들어서자마자, 집중된 시선을 에델에게 흘리고 그녀의 뒤에 서서 눈을 감았다.

         

         

         사람을 마주했을 때, 이반은 시각 정보보다 더 다양한 감각을 이용하곤 한다.

         

         체취, 긴장감과 두려움 따위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 땀과 함께 섞여 증발할 때 나곤 하는 그 특수한 패턴.

         

         청각, 심장 박동의 규칙적 맥동. 공포, 친애, 설렘 등. 인간의 몇 가지 감정 기복에 따라 심장의 수축 주기가 바뀌는 것을 인지하고.

         

         음성, 호흡과 성대를 통해 흘러 나오는 규칙성. 호흡의 깊이와 성대의 진동은 모든 사람이 제각각 다르므로.

         

         그래, 사람은 기본적으로 그 셋을 바꿀 수 없다. 생활 습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경우는 있어도 그 근본은 바뀌지 않는다.

         

         마치 지문과 같다. 지문처럼 명징하다. 훈련 받은 요원이라면, 닫힌 공간에서 근접했을 때 분장한 사람을 구분할 수 있다.

         

         지문을 육안으로 읽고 구별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난이도다.

         

         고도의 집중력과 기억력, 판단력을 요구하는 기술이다. 하지만 그건 다시 말해. 고작 지문을 육안으로 구별하는 수준의 난이도란 뜻이다.

         

         초인은 현대의 기계장치만큼 정밀한 감각기관을 지닐 수 있다. 수련 방식에 따라 더욱이.

         

         이반은 그런 수련을 극한까지 체화한 종류의 요원이었다. 따라서.

         

         

         “기억한다.”

         

         

         숨을 참고, 자신의 심박마저 최대한 억제하고, 청각과 후각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며.

         

         마침 잘 되었다. 극도로 피로해진 육신은, 따라서 지금 힘 없이 맥동하고 있을 따름이라. 생존본능이 극도로 자극된 지금, 오히려 타인의 생명 활동이 더욱 또렷이 들리고 있어서.

         

         이반은 마지막으로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을 한 차례 훑고는.

         

         11명의 의원과, 그 뒤에 시립한 시종들의 모든 심박, 모든 체취, 모든 호흡을 면밀하게 검토하고는.

         

         

         “욘. 괜찮으냐?”

         

         

        -철컥.

         

         

         에델의 말을 귓가에 흘리며 기계적으로 손을 뻗었다.

         

         과열된 신경, 찢어진 근섬유. 열량 부족으로 떨리는 손끝에도 불구하고 행동은 지극히 기계적이었으므로.

         

         이반의 손은 일말의 망설임도, 헛손질도 없이 품 안에서 권총을 쥐고. 약실에 삽탄하고, 장전까지 끝냈다.

         

         에델마저 반응하기 어려운 그 찰나의 순간, 이미 뻗은 손 안에 단단히, 권총이 쥐어져 있어서.

         

         들어 올리는 것과 동시에 조준선을 정렬하고.

         

         멈추는 것과 동시에 방아쇠울 안에 검지가 파고들어서.

         

         눈을 뜨는 것과 동시에, 호흡을 반치 아래. 짧게 내쉬고.

         

         가늠쇠울 아래로 푸른 눈이 음울하게 빛나는 것과 동시에.

         

         

        -타앙—!!

         

         

         “알렉산드르. 내가 너를 기억하고 있다.”

         

         

         총성이 울리는 사이로, 낮게 으르렁거렸다.

         

         

         “들켰는걸.”

         

         

         헤오드릭 경의 뒤에 서 있던 시종이 후드를 벗으며 웃었다.

         

         그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헤오드릭이 순간 비틀거리며 허물어졌다.

         

         그의 뒷목에서 손을 떼어내며, 알렉산드르는 빙긋 미소 지었다.

         

         

         “또 살아서 돌아올 줄이야.”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지각 죄송합니다!
    근데 한번 더 죄송할게요..

    내일도 지각합니다!!!
    *

    사유 : 전여친 아빠(장인어른)과 식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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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프롤로그에서 30년이 흘렀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got transmigrated into a game I’ve never seen before. I thought it was a top-notch RPG and spent 30 years on it. I retired as a war hero and planned to spend my remaining time leisurely. But it turns out, it was an academy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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