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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3

       

        

        

       “───디브리핑 시작 전, 여러분들께 정말 수고했다는 말을 먼저 드리려고 합니다.”

        

        

        

        와아아아아─!

        

        스무 명 가량의 인원만큼의 침대가 깔리기에 충분히 거대한 방 안, 그 내부가 박수와 함성으로 뒤덮었다. 하루를 마무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자 자정까지 고작해야 1시간 30분밖에 남지 않은 토요일의 늦은 밤이었지만, 그럼에도 이들의 목소리는 드높았다.

        

        게다가 방음도 잘 되니 걱정할 필요가 없었고.

        

        

        19명의 시선을 정면에서 받아낸 유진의 표정은 여전히 굳건했다. 특유의 사파이어같은 새파란 눈동자가 정면을 살폈다. 침대 위에 옹기종기 모인 한국 국가대표들이 그녀 자신의 말을 경청 중이었다.

        

        어쩐지 기억 속에 있는 광경인 듯하여, 환호와 함성이 점차 잦아들 때까지 유진은 이를 구태여 제지하지 않았다.

        

        그러한 기시감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에서 해결되었다.

        

        

        

       “유진 중대장님. 왜 지휘관 정신교육을 이 시간에 하나요? 마편 찌르겠습니다.”

        

       “허흐, 미친 놈.”

        

       “야! 이 새끼 매장해! 쫓아버려!”

        

       “끄아아악, 잘못했어…!”

        

        

        

        삽시간에 응징의 현장으로 돌변한 이들을 보며 유진이 뜻모를 한숨을 내쉬는 사이, 군대와 영영 연관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예정인 다이스는 눈을 끔뻑거리며 얘네들이 무슨 바보짓 중인지를 관람할 뿐이었다.

        

        그렇게 한바탕 헛짓거리가 지나간 뒤, 공중에 여러 홀로그램들이 떠올랐다. 전부 오늘, 한국 대표들이 토요일 동안 쌓아올린 발자취였다. 타 국가 선수와 비교하여, 그리고 작년과 비교하여 얼마나 성장했는지 역시 알아보기 쉬운 형태로 환산되어 있었다.

        

        수많은 체계적인 고난이 있었고, 그에 따른 실력의 향상이 있었다.

        

        오늘의 결과는 이 모든 것들이 함축되어 있다고 해도 무방했다.

        

        

        

       “분석 엔진을 통해 판단된 여러분들의 장점과 단점, 그리고 유념해야 할 부분들은 이미 이메일을 통해 개별적으로 전송된 상태이니, 추후 반드시 확인해보길 바랍니다.”

        

        

        

        그리 말하며 그녀는 주변을 둘러본다.

        

        모든 이들의 표정 전부가 밝지는 않았다. 이들 중 남들보다 실력이 우위에 있다고 느껴지는 이들도 있었고, 반대로 남들에 비해 자신의 실력이 그닥 좋지 않다고 스스로 판단이 가능한 이들도 있을 것이었다.

        

        아시아 예선전은 시청자들에게 있어선 축제였지만, 참가자들에게는 가혹한 경쟁의 장이었다. 심지어는 이번 년도에 그 어떤 나라보다도 우수한 성적을 산출한 한국이라고 하더라도 예외는 없었다. 이곳에 있는 스무 명 중 열다섯 명은 내년을 기약해야만 할 것이었다.

        

        그리 침울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리 희망찬 것도 아니었다.

        

        

        그것을 보고 있던 와중, 유진은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오늘 경기를 치르면서, 교전 그 자체에 두려움이나 압도감을 느낀 사람이 있습니까?”

        

        

        

        느닷없이 날아든 의중을 알 수 없는 질문. 그러나 질문에 역질문으로 답을 할 만큼 눈치없는 이들이 아니었기에, 유진을 제외한 열아홉은 전부 오늘 경기를 복기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런 경험이 없더라도 긍정을 표해야만 하는지 궁금해하던 이들이었으나, 그렇지 않았다는 여론의 수가 많아짐에 따라 분위기는 다시 가벼워진다. 어떻게 보면 그럴 수밖에 없을지도 몰랐다.

        

        이건 경기였고, 대회였으며, 게임이었으니까.

        

        수백만 명이 국가대표 팀을, 그리고 자신을 응원하고 있는데, 프로게이머로서 상대를 두려워할 이유가 있을까.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그러한 의견이 다수라는 것은 그렇지 않은 소수의 인원들 역시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스윽.

        

        

        

        말랑말랑한 분위기 속에서 몇몇 인원들이 쭈뼛쭈뼛 손을 들어올렸고, 놀랍게도 그들은 유진의 뒤를 이어 본선에 진출할 확률이 가장 유력한 이들이자, 동시에 토요일 아시아 예선전에서도 가장 우수한 결과를 도출해낸 유저들이었다.

        

        유진은 허공 위로 솟아오른 다섯 가량의 손을 슬그머니 훑었다.

        

        정적이 깨졌다.

        

        

        

       “그것이 바로 교전의 무게입니다.”

        

       “…네?”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가장 우수한 사람들의 손에 들린 가장 정교하게 갈린 칼날이 맞부딪히죠. 그로부터 튀어오르는 교전이란 이름의 스파크는 더 이상 대회라는 카테고리에 넣을 수 없을 정도로 간절하고 치열해집니다.”

        

        

        

        비록 게임이라고 하더라도 – 그것이 바로 교전이고, 상대방의 목숨을 거둔다는 것의 본질이었다.

        

        설명이 쉴새없이 이어졌다.

        

        

        

       “아시아 예선전이 시작되기 전까지, 재작년, 그리고 작년 본선에 진출한 모든 분들의 경기 데이터를 여러 번 확인해보았습니다. 거기서 여러분들이 맥을 못 춘 이유를 알게 되었죠. 여러 가지 핑계를 댈 수 있을 겁니다. 날이 추워서, 충분히 준비를 하지 못해서, 해외 원정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 순간 단 한 번의 손짓으로 화면을 끈 유진이 덧붙였다.

        

        

        

       “…그러나 가장 궁극적인 이유는, 본선을 단순히 대회라고 생각해서입니다. 제 질문의 의도를 깨달은 분들은 이 말을 이해하셨으리라 기대합니다.”

        

        

        

        머릿속에 벼락이 내리쳤다.

        

        그 말대로였다. 본선은, 파이널 챔피언십은 결코 대회가 아니었다. 상대방을 사람이나 선수가 아닌 사냥감으로, 그리고 반드시 죽여야만 하는 존재로 인식하고, 살아남기 위해 가진 바 역량 이상을 끌어내야만 상위 등수로 올라갈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교전은 대회라는 이름에 걸맞는 무언가가 아니었다. 오늘 다이스가, 미카엘이, 그리고 그 외의 이들이 느낀 건 바로 그런 교전의 본질이었다. 대회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대방을 죽여야만 한다는 압박감….

        

        의문이 솟구친다. 과연 유진은 이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정적이 끝났다.

        

        

        

       “그 압박감을 최대한 이해하고, 그에 익숙해지길 바랍니다.”

        

        

        

        그 후에는 이전보다 조금 더 간략한 디브리핑이 이어졌다.

        

        어느 맵에서 어떻게 행동하면 좋은지, 지형지물과 레볼루션을 어떻게 하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답이 이어지는 한편, 내일을 대비해 상정해둔 개별 전략에 대한 토론과 첨삭이 계속된다.

        

        그렇게 스무 개의 각기 다른 갈래는 자정까지 뻗어나갔고, 길지만 짧았던 디브리핑 위로 방점이 찍혔다. 

        

        

        10월의 토요일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모두가 잠든 가운데 일요일이 도래했다.

        

        

        

        

        

        

        

        

        

        

        

       “…야. 자냐?”

        

       “…아니….”

        

       “…왜 안 자는데?”

        

        

        

        부스럭.

        

        

        

       “…유진 선수 아바타가 진짜라는 게 안 믿겨서….”

        

        

        

        물론, 전부가 잠에 든 것은 아니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먼 길을 달려온 선수 분들을 위해 뜨거운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와아아아아아-!

        

        어제와 변함없는, 아니, 오히려 어제보다도 훨씬 뜨거워진 성원. 하지만 불과 수십 시간 전과는 다르게 중앙 무대를 통해 걸어나오는 이들의 발걸음에는 여유가 깃든 상태였다. 고작 하루가 지나면 사람은 이토록 달라지는 법이었다.

        

        가장 먼저 걸어나온 건 당연하게도 한국 선수들이었다. 어제보다 한 층 더 위풍당당한 모습은 모두에게 충분한 신뢰감과 믿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었다.

        

        

        

       “…쟤네 왜 저렇게 피곤해보이냐?”

        

        

        

        걸어나오던 타국 유저들을 본 한국 선수들은 아무도 들을 수 없도록 서로간 작게 속삭이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선수들만이 지닌 날카로운 눈썰미로 보았을 때, 한국 팀을 제외한 타 4개의 참가국 유저들은 전부 조금 피곤한 기색을 하고 있었다.

        

        한국으로서는 당연히 구체적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예상되는 바가 상당히 다양했기 때문이었다. 전술과 전략을 연구하고, 대처법을 논하느라 그랬을 확률이 제일 높긴 했지만, 결국 진실은 당사자를 제외하면 아무도 모르는 법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당사자들은 안다는 소리였다.

        

        

        

       ‘…이런 것도 한국의 심리전이라 봐야 하는가?’

        

        

        

        놀랍게도, 그리고 어이없게도 – 이는 어제 유진이 별 생각 없이 승낙했던 ‘모두와 함께 식사를 하는 것’때문이었다.

        

        다이스와 함께 한국 팀 내에서 현실의 정체를 아무도 알 수 없었던 바로 그 당사자가 그다지 큰 고려 없이 내려버렸던 결정 – 그것으로 인해 일본, 러시아, 중국, 그리고 대만의 선수 모두가 유진의 정체를 즉각 목도하게 되었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아주 쉽게 설명하자면 이러했다.

        

        

        

       ‘…저게 왜 진짜?’

        

        

        

        어떻게 보면 당연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 결정은 선수들로 하여금 심리적인 동요를 가져오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발현자의 정체 발설에 대해서는 엄중히 금해지고 있었다. 어느 한 곳에서 엄중하게 관리했다기보단 세상의 시간적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에 가까웠다 – 그러나 뭐가 어쨌든 간에, 선수들이라고 발설 제약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다르게 말하면, 정신 놓고 지내다가 입에서 뱉지 말아야만 할 말을 뱉는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게임 외적인 부분에도 충분히 신경을 써야만 했단 소리였다.

        

        게다가 그것이 의도한 결과가 아니라는 점에서도 참으로 아이러니였다.

        

        

        

       ‘…그, 설마. 유진 선수…!?’

        

       ‘네, 맞습니다. 반가워요. 현실에서 만나는 건 처음이네요.’

        

        

        

        어그로가 목적이었더라면 조금 더 다른 형태로 행동했겠지만, 적어도 유진이 어제 보여준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심리적 압박을 유도하려는 사람이 80명에 달하는 타국 선수들 전원과 악수를 해주고, 친근한 대화를 나눌 리는 없잖은가.

        

        그런 점에서 보면 다행이긴 했다. 추후 유진 선수와 만났을 때 어땠냐는 질문을 받으면 ‘좋은 사람이었다’라고 답할 수는 있을 터였으니까.

        

        이게 아시아 예선전인지, 아니면 팬미팅인지 소리를 들을 것 같긴 한데.

        

        

        아무튼 그런 모두의 생각과는 관계없이 시간은 흘러간다.

        

        이들에게 주어진 목표는 명확했고, 시계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착착 진행되었다. 각 나라 유저들이 어제와 동일한 자리에 착석한 뒤, 간단한 인삿말이 끝나고, 맵을 선택한다.

        

        토요일의 모든 경기가 끝난 후 많은 대화가 있었고, 여러 준비가 있었으며, 몇 번이고 전술과 전략들을 검토했다.

        

        한국 팀을 제외한 전원은 들고 나온 모든 택틱을 고작해야 하루만에 전면적으로 쇄신당할 위기에 처했으며, 제한 시간 내에 돌파구를 반드시 찾아내야만 한다는 사실을 강요받았다.

        

        어떤 식으로든 결과를 보여주어야 할 시간이 도래했다.

        

        

        

       “-첫 번째 맵은 캘리포니아 가스단지입니다!”

        

        

        

        세찬 화염과 연기 냄새가 코 끝을 아른거렸다.

        

        

        

        

        

        

        

        

        

        

        

        

        

        

        

        

        

       -자, 백 명에 달하는 유저들이 불타는 산맥에 배치됩니다. 이 중 단 한 명만이 헬기를 타고 이 자리에서 퇴각 가능합니다. 과연 승리자는 누가 될 것인가, 아시아 예선전 일요일 경기의 서막이 오릅니다.

        

        

        

        창공을 가로지르는 수송기로부터 점점히 흩어진 인영들이 하나둘씩 지상에 착륙한다.

        

        현실만큼 현실적으로 타오르는 불길들. 그 아래 정확히 100명에 달하는 인원들이 발을 디디자, 그에 호응하듯 적색 불길이 선명히 혓바닥을 낼름거린다. 화염으로 이뤄진 죽음의 원이 가스단지를 향해 좁혀들고 있었다.

        

        누군가는 전투가 가장 격렬한 곳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인적이 드문 곳으로. 적을 죽이기 위해 현 시점에서 가장 진보된 형태의 무기를 들고 도심과 숲을 누빈다. 걱정은 없었다. 발치에 채이는 게 무기였으므로.

        

        그랬어야만 했다.

        

        

        

       -[알림 : 현 시간부로 현 위치가 스킬 활성화 구역으로 지정됩니다. 활성화까지 앞으로 5분 20초.]

        

       “…흐음.”

        

        

        

        스킬.

        

        다크 존의 유저들을 한 차원 더 높은 곳으로 데려다줄 수 있는 전투 보조 도구들. 총기와 동등한, 잘만 운용하면 그보다도 더 높은 효율과 성능을 보여줄 수 있기에, 스킬 활성화 구역을 두고는 정말로 많은 눈치싸움이 벌어지곤 한다.

        

        아예 안 오든지, 미어터지든지, 혹은 눈치싸움에서 승리한 이들이 유유자적 스킬을 얻어가든지 –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스킬 활성화 구역으로 지정되는 순간, 주변에 있는 무기들의 스폰 확률이 급락한다.

        

        그리하여 현재, 아무리 잘 쳐줘도 소총 한두 자루, 평범하게는 권총. 그것만이 현재 가진 전부였다. 실드의 존재를 감안한다면 이것들로는 충분한 딜링을 가할 수 없었다.

        

        케이스는 빠르게 그 자리를 벗어나려다,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유진이 이곳에 올 가능성이 있을까?’

        

        

        

        그동안 보여준 경기에 따르면, 그녀는 스킬에 그다지 목을 매지 않는다. 구태여 이런 구역까지 와서 스킬을 활성화시키는 경우는 없었다. 어제 경기 뿐만이 아니라 이전까지의 플레이가 전부 그러했다.

        

        비록 한국 유저들의 실력이 눈에 띄게 상승했을지언정, 그 한 명만 아니라면 충분히 상황을 컨트롤할 자신이 있었고 – 어제 막바지부터 유세를 떨기 시작한 러시아가 걸렸다.

        

        가능하다면 최대한 킬 포인트를 벌어 꺾어놔야만 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주변을 관측하기에 최대한 용이한 건물에 들어가 사방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시간이 흐른다.

        

        킬로그에 여러 닉네임들이 떠오르며 하나둘씩 로비로 사출당하지만, 구역 활성화까지 고작해야 2분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치 소식이 없다.

        

        1분만이 남았을 때조차 아무런 일이 없자, 의구심이 자라난다. 그러나 그것은 신경쓸 바가 아니었다. 만약 정말로 아무도 오지 않는다면 자신은 눈치싸움에서 승리한 것이었고, 스킬을 얻은 후 이 자리에서 유유히 퇴출 가능했다.

        

        

        

       ───스윽.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수송기 엔진음이 들린다. 어둠으로 물든 하늘 위, 대형 낙하산이 달린 거대한 상자가 적색 불빛을 깜빡이며 서서히 떨어지고 있었다.

        

        쿠웅 하는 소리와 함께 흙먼지를 사방으로 내뿜으며 착지한 상자가 자동으로 분해되었다. 철컥철컥. 수백 개의 파편으로 변해 이동한 뒤, 근처 건물의 벽에 붙어 일종의 구조물을 형성하고, 위장한다.

        

        마치 처음부터 건물의 일부였던 듯한 스킬 활성화 구역. 바로 저 곳이 목표였다 – 조심스럽게 이동을 시작한다. 몇 번이고 확인했지만 인기척은 없었다. 그럼에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신중을 기한다.

        

        이유가 있었다.

        

        

        

       -부스럭.

        

       ‘…빙고.’

        

        

        

        아무도 없는 게 아니다.

        

        그저 숨어있을 뿐 – 그리고 누군지는 몰라도, 저 사람이 조금 더 조급했을 뿐. 그러나 확실한 결정타를 넣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무장이 투사할 수 있는 화력 총량은 위치조차 확실히 파악하지 못한 상대방의 확실한 말살을 보장할 수 없었다.

        

        그러니 확실히 기다린다. 기다림은 오퍼레이터의 덕목이었으니.

        

        

        저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화염의 벽이 뿜어내는 불빛의 조명 삼아, 짙게 내린 어둠을 음영 삼아, 사각지대에 숨은 케이스의 시선 너머로 한 명이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프로페셔널한 몸놀림이었다. 전술적으로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얼굴이 가려진 상태였기에 누군지는 파악할 수 없었으나, 어스름한 조명이 한순간 어깨를 훑자 러시아 국기 형태의 패치가 드러난다.

        

        그러나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스킬을 획득하기 전에 죽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했다.

        

        움직일 시간이었다.

        

        

        

       “…후우….”

        

        

        

        숙련된 트래커의 몸놀림.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뒤쫓는다. 활성화 구역까지의 거리가 점점 좁혀진다. 50m. 25m. 10m. 5m…아무리 무장의 상태가 영 아니라고 해도, 근거리에서 소총 한 탄창을 등 뒤에 전부 꽂으면 필연적으로 죽을 터.

        

        조정간은 미리 연발로 조정해둔 상태.

        

        스킬 활성화 구역을 고작해야 몇 미터 앞둔 적의 20미터 뒤, 반동에 대비하며 어깨에 단단히 견착하고 방아쇠울에 손가락을 집어넣는 찰나.

        

        

        적의 우측, 한순간 뜯어져나온 어둠이 그를 덮치고, 삼켰다.

        

        

        

       ───파앗!

        

       ‘무슨…!’

        

        

        

        우에서 좌로, 마치 청소기처럼 한순간 공간을 휩쓸고 지나간 무언가에 휘말려, 시야에서 순식간에 사라진다. 있을 수 없는 초유의 사태에 그가 긴장을 머리 끝까지 끌어올리는 사이, 둔탁한 소음이 들려왔다.

        

        퍼억. 으지직.

        

        현실에서는 절대 듣고 싶지 않은 소리였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 케이스가 소리를 죽인 채 수류탄을 꺼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둠 속에서 또 다른 어둠이 재빨리 움직였다.

        

        

        보였다.

        

        

        

       “…근래 운이 너무 없군.”

        

        

        

        경무장.

        

        그 몸에는 권총을 제외하면 단 한 자루의 소총도 들려있지 않았다. 자신과 비슷한 상황일 것이었다. 혹은 그것보다 더 열악했을지도 몰랐고.

        

        어둠 속에서 얼핏 보인 긴 생머리와 파란 눈, 그리고 오른손에 들린 소방도끼가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증명하고 있었다.

        

        

        

       ───투두두두!!

        

        

        

        총구에서 불이 뿜어졌다.

        

        케이스가 필사적인 퇴로 확보에 돌입하는 순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화염과 도끼

    언제나 가슴을 뛰게 만드는 단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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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귀환했지만, 총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Score 4.1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Just the fact that I came back couldn’t be the end of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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