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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3

        

         한 쪽은 완전 방탄에 신축자재, 사용자를 실망시킨 적이 없는 초고성능 전투 수트.

         그에 반해 다른 쪽은 정말 멋부리는 것 외 다른 용도는 없는듯 끝자락은 팔랑거리고, 그 외 부분은 몸에 쫙 달라붙어 움직임이 제한되는 파티 드레스.

         

         전혀 다른 양식과 목적을 지닌 두 복장 중에 뭘 골라야 할지 명쾌한 정답은 없는 이런 곤란한 상황에서.

         언제나 안전 제일을 지향하는 아나스타샤 씨는 과연 어떤 선택을 내렸을까요!

         

         네에… 정답은 ‘둘 다 챙겨 입는다’ 였습니다~

         ……답을 맞췄는데 상품은 어딨냐고? 상식도 없는 짓을 저지른 내가 그런 걸 따로 준비했겠어? 대충 맞췄구나 하고 넘어가십쇼 그냥.

         

         고민하는데 시간을 낭비할 바에는, 어차피 전투 상황이 발생할지 격식만 차리게 드레스 코드만 맞춰야 할지도 모르는데 그냥 다 껴입으면 되지 않나… 하는 얄팍하고 안일한 생각에서 비롯된 막장 패션.

         

         결국 원래 품에 여유가 있는 자켓은 대강 어깨 근처에 얹거나 옆구리에 끼어서 쓸데없는 노출을 좀 가리고.

         신축성이 뛰어난 바지는 단을 좀 말아서 안 보이게 착용, 이제 그 위에 이제 선물 받은 예복을 애써 갖춰 입었는데 막상 와보니 헛고생을 한 것 같았다.

         

         분위기도 그렇고 여타 손님들의 복장도 그렇고 생각 이상으로 자유분방해서 그냥 입고 다니던 대로 왔어도 충분히 괜찮았을 것 같은데… 아론 이 놈은 왜 사람 헷갈리게 옷을 따로 첨부해선!

         

         “……어우씨, 불편해라.”

         

         틱, 하고.

         

         거슬릴 정도로 달라붙는 주제에 제대로 늘어나지도 않는 재질의 예복을 잡아당기다가 놓쳐버렸다. 가게 내부가 시원해서 망정이지, 온도가 조금만 높았어도 환기가 안 돼서 푹푹 찌고 살갗이 땀투성이가 될 뻔했다.

         

         사람도 꽤 많을뿐더러, 도착하기 전의 내가 약간 프라이빗하게 방이 나눠져 있고 게임 테이블이 따로따로 있어서 여유롭게 거닐던 손님이 자리를 선택해 앉는 그런 광경을 예상했다면.

         

         저기 장막 너머로 펼쳐진 풍경은 그 영화에서나 보던 라스베가스 카지노의 슬롯머신 구역? 하여간 빼곡하게 들어찬 기계들과 그 이상으로 바글거리는 인파가 눈을 어지럽혔으니.

         

         “이봐? 스태프!! 기계가 칩을 먹었어! 레버가 안 당겨져!”

         “……고객님, 매장 기계류는 외부 전압을 감지했을 경우에만 작동이 긴급 중지되는데… 잠깐 손목을 좀 확인하겠습니다.”

         “아.”

         

         “주문하신 데일리 브루웍스의 민트 맥주! 민트 맥주 나왔습니다~~ 네? 시키신 적 없다고요? 저기 계신 분이 대신 계산하셨습 “에미, 씨벌.” 아…! 손님, 잠시. 가게 안에서 주먹다짐은…… 야, 가드! 빨리 와서 붙잡아!!”

         

         “플레이어 9! 그리고 뱅커 7로 내추럴. 플레이어의 승으로 이번 라운드는 마무리되었습니다.”

         “야 이 십새꺄! 부정 타게 자꾸 경계선에다 칩 좀 올려놓지 마라…!”

         “어차피 테이블이 알아서 표면적 인식으로 관리해주는 거 더럽게 민감하긴…… 누가 늙은이 아니랄까 봐.”

         

         머리가 웅웅 울린다. 그렇다고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니네 가게는 참 난장판이구나! 라고 필터 없이 말할 수도 없으니 내가 기껏 할 수 있는 건 제로와 뒷담화를 하는 정도.

         

         “으… 꽤 혼란한 그림이네.”

         

         – 도박장이라는 단어를 굉장히 경계했는데, 오히려 그때 연구소 직원들보다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계신 것 같아서 안심되는군요. –

         

         “……슈퍼 엘리트 과학자들이 카지노 손님보다 인격적으로 저평가 받는 게 맞아?”

         

         – 아, 당시 아샤님의 데이터가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연구진 일동의 학구열을 위험한 수준까지 끌어올리셨던 걸 감안하면 비슷한 수준이기는 합니다. –

         

         우리가 떠드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오가는 고성, 그리고 그 이상으로 공기를 달구는 노름의 열기에 코끝마저 찌릿찌릿해졌다.

         아론이 고른 카지노라 해서 좀 더 양식 있고 깔끔한 가게라고 멋대로 지레짐작한 건 너무 편견에 사로잡혔던 것이리라.

         

         솔직히 내 피, 땀, 눈물의 결정체나 다름없는 크레딧을 이런 집단 광기의 현장에 보태라 하면 기겁하면서 회피했겠지만.

         

         어라? 다행히도 오늘은 내 돈 쓸 일이 없네?

         하하! 진짜 딱 대라…!

         

         “안녕하십니까! 7번 테이블을 예약해주신 고객님! …아, 저희 랑데부 카지노는 이미 재력으로 스스로의 여유를 증명해주신 분들께, 감히 시시콜콜한 신원 검사 따위를 요구하고 있지 않으니 굳이 손목을 내밀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 그래요?”

         

         쾌활한 환영을 거듭하는 카지노 지배인(Manager)에게 뻗었던 팔을 멋쩍게 거두어들였다.

         커튼으로 살짝 가려진 게임장으로 들어서기 전에, 직원들이 도열한 리셉션 홀 같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길래 당연히 기본적인 체크부터 할 줄 알았는데.

         

         가져온 입장권을 바탕으로 내 좌석 번호만 안내받았을 뿐 이쪽에 크게 간섭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런데 그럼 일부러 이런 형태로 단체 인사를 시킬 필요가 있나… 싶었으나.

         

         “다만, 부정행위 방지를 위해 간단한 임플란트 체크와… 대동하신 경호 드로이드의 부품 중에 게임의 재미에 악영향을 미칠만한 특수 장치가 있는지 정도만 확인하고 바로 안내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빠른 검사를 위해 스태프들이 참고할 제품 명세서나 카탈로그가 있으십니까…?”

         

         “…얼마 전에 정비하고 나서 받은 전자 영수증은 있는데.”

         

         “아유, 그걸로 충분합니다!”

         

         기습의 이점이 훨씬 큰 제로의 장비 내역을 까발리는 건 썩 내키지 않았지만, 싹싹한 태도로 손을 비비는 지배인을 보고 얌전히 데이터를 건네주었다.

         

         예약이 완료된 시점에서 이미 모종의 조건은 충족했으니 신원 미상자로 놀던, 대충 가명을 쓰던, 카지노의 규칙만 잘 준수해주면 상관하지 않겠다는 뜻이려나?

         

         뭐, 딱히 무기를 압류하는 것도 아닌 데다가 치팅 방지라는 확실한 명목도 있으니까. 지금은 일단 따라주는 게….

         

         ‘……잠깐, 나는 왜 벌써부터 싸운다는 걸 전제로 쓸데없이 긴장하고 있냐.’

         

         한탄이 저절로 나왔다.

         아무래도 가는 곳마다 각박한 경험을 겪다 보니 자유와 평화를 존중하던 내 뇌가 오염된 게 아닐까? 대체 누가 게임이 폭력성을 증진시킨다 했냐? 현실이 이렇게 더 각박한데.

         

         지이잉….

         

         극히 조심스러운 자세로. 행여나 어색하고 문제가 될 신체 접촉이라도 일어날라, 막대기처럼 생긴 휴대용 탐지기를 든 직원이 몸 근처를 훑었고.

         

         ‘송수신용 사이버웨어 임플란트, 그리고 거래 및 인증용 회로형 필름 확인되었습니다.’ 하는 절제된 통보와 함께 그는 뒤로 물러났다.

         

         어깨와 손목에 있는 저 두 가지가 이 시대의 휴대폰과 지갑이나 다름없는 걸 고려하면.

         사실상 시술 같은 걸 아예 받지 않은 퓨어라는 결과를 보고 여러 미묘한 감정들이 담긴 눈길을 향해왔다.

         

         감탄, 납득, 거기에 미약한 부러움까지.

         

         ……최근에 분수에 맞지 않게 잘난 인간들과 어울릴 일이 많이 생겨서 더 뚜렷하게 느낀 건데.

         

         이 세상을 게임으로 접했던 나처럼 특이한 경우나, 정말 일신의 무력 하나만으로 미래를 쟁취해야 하는 절박한 사람이 아닌 부호들은. 여윳돈이 생겼다고 다짜고짜 본인 피부밑에다 철판 깔고… 편의성과는 거리가 먼 전투 임플란트를 열 몇 개씩 박지는 않더라고?

         

         물론 받지 않는 것과 받지 못하는 것에는 존나게 큰 차이가 있고, 부족한 임플란트 적합도에 절망해서 정신병마저 앓았던 미친년과 치다꺼리도 해본 나로서는 굉장히 심란했다만.

         

         부자들은 그런 대규모 개조 시술을 받고 평생을 귀찮게 관리하느니, 차라리 돈과 목숨을 모두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경호원을 두거나 보험에 가입하는 게 더 일반적인 선택이라나 뭐라나.

         

         아마 저들은 내가 그만큼 여유 있는 사람이라고 멋대로 착각하는 거겠지. …거 더럽게 억울하네!

         야! 그럼 내 권총은 무슨 패션 아이템이냐!? 콱, 씨. 어쩌면 실전 경험도 내가 더 많을지도 모르는데 ‘인생 쉽게 사는 것 같아서 부럽네~’ 비슷한 눈초리를 받으니까 억장이 무너진다 정말.

         

         “저기…… 손님?”

         

         “…예? 네??”

         

         속으로 스태프들의 무례한 지레짐작을 신나게 씹다가, 왜 자리로 안내해 주질 않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 때쯤 옆쪽으로 빠졌던 지배인 씨가 되돌아오셨다.

         

         궁금증은 금방 해소되었다.

         당장이라도 들여보내 줄 것처럼 말했던 거랑 다르게 질질 끄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 제 정식 분류는 경호 및 전투용 드로이드가 아닌, 어디까지나 주택 관리와 가사 보조에 특화된 보급형 케어봇 모델에 속합니다만. –

         

         “어… 음… 그래, 좋아. 그럼 이 뒤지게 크고 날카로운 블레이드는 뭐지 인공지능?”

         – ……두꺼운 고기나 야채를 매끄럽게 썰어내기 위한 특주 부엌칼입니다. 그리고 제 독립 명칭은 인공지능이 아니라 깡통입니다. –

         

         “깡통이라는 건 대체 무슨 소리…… 아니지. 그러면, 이 자율형 복합 관절은?”

         – …오렌지 주스를 선호하시는 분의 취향에 맞춰 신선한 과즙 음료를 즉석에서 제작하기 위한 믹싱 툴의 일부라고 대답하겠습니다. –

         

         “그건 또 뭔 십, 아니. 그럴 수 있지. 그럼 마지막으로… 어깨 부근에 내장된 자동화기 설비는??”

         – …다양한 용도로 쓰일 수 있지만 주로 장거리 화력 보조를 위한 투사체 발사기로서의 성능이 뛰어나군요. –

         

         “그럼 전투 목적도 있는 게 맞지 않나…!!”

         – 딱히 아니라고 한 적도 없습니다만. –

         “컥! 끆, 갸아아아아아악—!!!!”

         

         

         “데리고 오신 드로이드의 논리 회로를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협조적으로 바꿔 주실 수 있겠습니까…? 부품이야 모두 확인했는데, 저대로는 안전성 검사를 통과하지 못하기에 입장 허가를 내드리기가 곤란합니다만….”

         

         “어…….”

         

         머리를 쥐어뜯는 가게 측 검사 담당자와 세상만사가 전부 의심스러운 우리 바보 어린이의 환상의 콜라보레이션에 나는 심심한 사죄의 말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걔는… 원래 그럽니다. 별로 고장 난 건 아니니까 안심하세요! 네.

         ……제로! 야 임마! 그냥 솔직하게 말해도 돼! 여기는 무장을 압류하려고 물어보는 곳이 아니라니까!?

         

         

         

         

         “하아아….”

         

         털썩! …촤르륵!

         

         떡대가 장난 아닌 카지노 가드들이 지키는 층계참을 지나 위층에 도달한 나는 무너지듯 7번 테이블에 포함된 좌석에 주저앉았다.

         덤으로 무슨 이상한 카지노가 처음 온 손님한테 ‘기본 칩’을 주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대략 200만 어치 칩을 받아온 제로는 그걸 예쁘게 테이블에다 정리하기 시작했다.

         

         “…한 쪽 구석에다가 몰아 놓을래? 정면은 접시를 놔야 할 것 같으니까.”

         

         – 알겠습니다. –

         

         이제 막 들어온 것 같은데 진이 다 빠지네.

         

         의자를 적당히 끌어 돌려서 비스듬하게 주변을, 그리고 아래를 둘러보았는데 경치 자체는 괜찮았다.

         

         카드 게임 섹션, 슬롯머신 섹션, 무슨 로봇 격투 섹션 등등 다양한 구역에서 전해지는 흥분감은 생생하면서도.

         막상 여기는 느긋한 공기와 참가자들의 화려한 복식, 다른 손님들이 주문한 각종 음식들의 향기까지 겹쳐져서 여기저기 구경하기 좋은 환경이 되었다고 할까.

         

         …그 탓인지, 왠지 잘난 척하느라 바쁜 재수 밥 말아먹은 인간 군상들이 많이 보여서 그만큼 거슬리기도 하는데 아무튼.

         

         이렇게 나는… 우리는!

         지정된 장소에, 정해진 시간까지, 망할 드레스 코드마저 준수한 채로 출장 나오는데 성공했으니.

         

         이제 남은 문제점이라곤 아주 아주 사소한 의사 결정 과제밖에 없긴 하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잘 표현해야 복잡미묘한 내 고민거리가 기탄없이 전달되려나 음….

         

         “…이제 뭐부터 하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래서 이제 뭐함?’ 은 금칙어인 걸로.

    놀 생각이 만만한 건 아니고(절대), 성실하게 고민하고 있는 주인공입니다.

    항상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 댓글 다 너무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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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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