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93

     렘부르 군터 자작령까지 가는 철로는 없었다.

     그러나 렘버리 캠프가 결정되고 난 뒤, 모르가니아에서는 마법사를 대량으로 동원하여 철로를 깔았다.

     약 열흘.

     롤랜드 후작령으로 향하는 길에서 방향을 꺾기만 하면 끝나는 일이고, 제국은 철로의 방향을 바꾸는 기술을 기꺼이 제공했다.

     어쩌면 이러한 차이 때문에 왕국과 제국의 발전에는 큰 차이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

     왕국은 그냥 마법 한 번이면 철도가 열흘만에 쭉 깔리는데, 제국은 철도 하나를 제대로 깔려면 사업계획부터 착공 및 완공까지 수 년 단위로 계획을 짜야 하니까.

     덕분에 열차는 아무런 문제 없이 렘버리 캠프에 도착했다.

     

     “렘부르 군터역이 아니네요?”

     

     도착하자마자 아스타시아가 밖을 바라보며 물었다.

     

     “렘부르 군터역 맞습니다.”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고, 숲과 평야밖에 없는데요?”

     “역 맞습니다. 평범한 역과는 다르지만.”

     “…아하. 굳이 도심까지 연결하지는 않은 거군요?”

     “예.”

     철도가 깔리는 목적은 렘부르 군터 자작령의 영지민들을 위한 편의가 아닌, 오직 렘버리 캠프.

     그렇다면 학생들이 렘버리에 바로 올 수 있도록, 캠프 부지가 최종목적지가 되도록 철도를 깔고 역을 만들면 그만이었다.

     “발자크 자작 입장에서는 억울했겠지만, 모르가니아를 상대로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자작령 도심에서 여기까지 오가는데 최소한 한 시간은 걸릴 것 같은데요?”

     “그 뒤는 발자크 자작이 알아서 해야 할 문제 아니겠습니까? 도로를 새로 깔든, 마도자동선이 정기적으로 움직이게 하든, 아니면 이곳을 임시역으로 두고 도심에 새롭게 역을 만들든.”

     “모든 걸 날로 먹게 두지는 않겠다?”

     “예. 설령…이번에 방심하면 숙청하려고 해도.”

     이미 숙청할 수 있는 명분은 어느정도 쌓였다.

     

     역사를 짓는데 드는 인건비를 빼돌렸다거나, 철도를 까는데 들어갈 자재인 나무를 질 낮은 물품으로 공급했다거나, 역 앞에 설치하는 조형물에 2천만 골드를 태웠는데 그 예술가가 발자크 자작의 아는 사람이라거나.

     횡령.

     물건 빼돌리기.

     인건비 부정수령.

     

     이미 발자크 자작은 내가 뭔가 조언을 하거나 할 필요없이, 알아서 잘 비리를 저지르고 있었다.

     그저, 그 비리를 저지른 당사자들이 순순히 ‘모든 건 발자크 렘부르 군터가 시켜서 한 일이고, 증거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말할 상황은 아니라서 그렇지.

     “아스타시아. 혹시 나중에 어쩌다보니 황제가 된다거나 한다면, 더러운 수를 쓸 때는 이걸 명심하십시오. 권력자는 자신을 위해 오물을 뒤집어 쓸 자를 옆에 두고 살아야 한다는 걸.”

     “발자크 자작이 저지른 비리는 전부 발자크 자작 개인의 비리가 아니다?”

     “가솔이나 부하, 신뢰하는 사업 파트너 개인의 일탈로 꼬리 자르기를 하기에 용이해야 합니다.”

     “음…. 좋은 이야기는 아니네요.”

     아스타시아는 듣기 거북하다는듯 불편함을 내비쳤다.

     아무래도 내가 이런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사람이다보니, 이번에 이런 화제를 할 수밖에 없는 장소에 온 것 자체가 몹시 불편한 모양이다.

     뿌우우ㅡㅡㅡㅡ

     경적이 울린다.

     학생들을 소집하는 뱃고동같은 나팔 소리는 렘버리 캠프 앞에 도착하여 좌우를 훑고 있는 학생들이 하늘을 자연스레 올려다보게 만들었다.

     뿌우우우ㅡㅡㅡㅡ

     윈체스터 대공이 직접 아티팩트인 호각을 불며 비룡을 몰고 어디론가로 향한다.

     열차가 한 시간을 달린 거리였으나, 비룡들은 지친 모습 하나 없이 느긋하게 훈련장으로 떠났다.

     그 동안 오로솔 아카데미를 매일 수 바퀴 달리며 체력을 늘린 보람이 있는 모습.

     아마 용기병들 스스로도 한 명도 낙오 없이 열차에 밀리지 않았다는 것에 기쁠 것이다.

     “아, 슬슬 이동하네요. 저도 이만 떠나야겠어요.”

     “아스타시아.”

     나는 아스타시아를 붙잡았다.

     

     “저, 저기. 그레이? 저도 일단은 학생이라서 그런데, 캠프에 참여해야 하거든요?”

     “좀 더 있으면 안 되는 겁니까?”

     “저야 좀 더 있고 싶죠. 아니, 계속 여기에 있고 싶죠. 하지만…아무래도 다 같은 조건이잖아요? 캠프에 참가하는 건.”

     

     아스타시아가 아쉬워하며 내게 두 팔을 벌린다.

     “대신 포옹해드릴게요. 캠프에서 다른 학생들이랑 어울리게 되면 그만큼 만날 시간이 줄어들게 되니까, 떨어지기 전에 마음껏 즐기세요.”

     “아스타시아.”

     “네, 그레이.”

     “캠프와 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당연히 그레이죠.”

     

     아스타시아가 볼을 부풀리며 칼같이 답했다.

     “그레이가 만일 학생이었다면, 같은 조에서 같은 캠프에서 지낼 수 있었다면 저는 캠프를 무척이나 즐겁게 보낼 수 있었을 거라고요.”

     “그렇습니까? 그렇다면…어쩔 수 없군요.”

     나는 아스타시아에게 다가가 품에 안았다.

     “잠시만 이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이렇게 안고 있어야겠군요.”

     “예, 예. 어디 멀리 사라지는 거 아니니까, 안심하고 기다리고 있어주세요.”

     “위험할 수 있습니다. 무능왕이 정신줄을 놓아버리는 바람에, 그레이에게 복수하기 위해 아스타시아를 공격한다는 선택지를 내릴 수도 있습니다.”

     “설마 그러겠어요.”

     “아스타시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무능왕에게는 설마, 라는 단어는 통하지 않습니다.”

     “쉿.”

     아스타시아가 손을 들어 내 입술에 검지를 올렸다.

     “제가 위험에 빠지면, 왕자님께서 지켜주러 오실 거잖아요?”

     “…왕자님이라.”

     “아닌 가요?”

     “백마가 아니라 히포그리프거나 맨 발로 뛰어가거나 하겠지만, 그런 자들보다 더 빠르게 달려가서 구해드리겠습니다.”

     나는 아스타시아의 손을 잡은 다음, 그녀의 손등에 키스를 했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괜찮아요, 괜찮아. 캠프에서 다른 학생들이랑 어울리는 건데, 어디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잖아요.”

     아스타시아가 내 등을 토닥였다.

     “그리고 그레이 말고도 저를 이렇게 지켜주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

     “그러니까 얌전히 기다리기. 알겠죠? 약속.”

     아스타시아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약속을 하자는 신호였으나, 나는 그녀의 속내를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녀 또한, 떨어지기 싫어한다는 걸.

     콰득.

     “…그레이.”

     “그거 아십니까?”

     나는 아스타시아가 쭉 뻗은 새끼손가락을 이로 가볍게 물고 말했다.

     “이 캠프는 기사단 훈련을 체험하는 곳으로, 마스터가 되기 위한 방법을 체험하는 곳입니다.”

     “…또 무슨 궤변을.”

     “이미 마스터가 된 사람들은 렘버리 캠프를 체험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

     아스타시아가 뒤로 물러나기 전, 나는 바로 아스타시아의 허리와 몸을 꽉 붙잡고 옆으로 굴렀다.

     “꺄악…!”

     아스타시아가 ‘습관적으로’ 힘을 빼고 넘어진다.

     열차 특등석의 푹신한 소파에 그대로 엎어진 채, 흡사 내게 덮쳐지는 것처럼 소파에 눕자마자 아차싶은 얼굴로 인상을 찌푸린다.

     “으, 으으…!”

     “이제는 저항조차 없군요, 아스타시아.” 

     습관이라는 건 참으로 무섭다.

     예전에는 갑작스러운 포옹에 당황해서 힘을 주거나 그랬지만, 무의식이 발현되는 과정이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저항을 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마스터급이 아니니까, 저기 가서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거 아닐까요?!”

     “아스타시아.”

     나는 아스타시아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그대로 몸을 아스타시아의 위로 겹쳤다.

     “제가 왜 재단 이사장이 되었는지, 다시 또 설명을 드려야 하는 겁니까?”

     “그, 그건…!”

     “이게 다 재단 이사장의 권력을 써먹으려고 그러는 거 아니겠습니까.”

     나는 권력자이며.

     “캠프 활동에서 학생 한 명 빼내서 함께 지내는 건 일도 아닙니다.”

     “그게 제국 황녀인데요!”

     “황녀가 대수입니까. 저는 지브롤터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사랑 앞에 논리는 통하지 않으며, 남들이 논리적으로 말한다고 해도 면전에서 찍어누를 무력과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이럴 때 권력을 사용하기 위해, 기꺼이 재단 이사장 자리에 올랐다.

     “무, 무슨 명목으로 저를 여기에 가두려고 하시는 거죠?”

     “그건 나중에 보고서를 쓸 때 생각해보기로 하죠. 아니면 이곳에서 저와 함께 지내면서 차차 알아보시지 않겠습니까?”

     “으으, 정말…!”

     아스타시아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나를 올려다본다.

     “처음부터 이러려고…!”

     “화나셨습니까?”

     “…예! 이것만 해결된다면, 저는 군말없이 이곳에서 그레이랑 일주일 동안 있을게요.”

     아스타시아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물었다.

     

     “저와 같은 조로 편성될 학생들은 무슨 죄죠?”

     “그건.”

     “기본이 4인 1조잖아요. 그렇게 함께 움직이는데, 그 학생들은 한 명이 없는 상태에서 모든 게 진행되는 거잖아요? 더군다나…이미 조를 짠 친구들도 그렇고.”

     “그 또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마 잊으셨나본데.”

     지난 번에 침대에서 등을 마사지 해줄 때 말했었는데, 아무래도 그 때 잠시 잠들었었나보다.

     “조는 지금 현장에서 다 뒤바뀔 예정입니다. 미리 준비된 대로.”

     “……네?”

     “당신의 조원은….”

     * * *

     렘버리 캠프, 현장.

     [제 1회 학생 현장 체험학습 렘버리 캠프 입소식]이라는 현수막이 펄럭거리는 넓은 공터.

     

     “우리, 지금부터 뭐 어떻게 하면 되는 거야?”

     “몰라. 교수님들이 알아서 하겠지.”

     학생들은 집결지에 덩그러니 저마다 캐리어와 배낭을 둔 채, 멀뚱멀뚱 주변을 훑기 시작했다.

     “공주님! 혹시 뭔가 아시는 게 있습니까?”

     누군가 답답한 이들 중 왕국애호동아리에 소속되어 있던 이들이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을 찾았다.

     “학생회장님. 총장님도 사라졌고, 지금 아무도 없는데….”

     “나는 전해들은 바가 없다.”

     나리아는 팔짱을 낀 채 단호한 얼굴로 캠프 앞 연단만 바라봤다.

     “나는 그저 장소만 정했을 뿐, 교육과정에 대한 모든 권한은 아카데미에 있으니.”

     “하지만….”

     “그걸 내가 미리 아는 것은 월권이다. 나를 ‘아버지’처럼 만들 셈이냐?”

     “아, 아닙니다!!”

     나리아의 말에 왕국애호동아리원들이 기겁을 하며 입을 다물지만, 다들 궁금해하는 눈치는 역력하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혹시나 미리 언질이라도 받은 이가 또 있다고 한다면-

     “저기, 누아르 도련님?”

     “…….”

     누아르는 자신의 주변으로 모여드는 학생들에 표정을 굳혔다.

     “저기, 저희-”

     “하르마니아 자작 영애. 지금은-”

     “아아.”

     펄럭.

     하늘에서 비룡이 내려오며, 윈체스터 대공이 한 발로 천천히 연단에 착지했다.

     “어…?”

     쿵.

     그는 전쟁이라도 나가는 것처럼 한 손에 창을 쥔 채, 오로솔 아카데미의 문장이 새겨진 깃발을 펄럭이며 연단에 올랐다.

     “총장으로서, 마지막으로 말한다.”

     윈체스터 총장은.

     “지금부터 너희는 [오로솔 기사단]의 견습기사로서, 각 기사단의 훈련 프로그램을 일주일 동안 소화할 것이다.”

     “…….!”

     모두가 보는 앞에서 창을 크게 휘둘렀다.

     서걱.

     현수막이 갈라졌다.

     

     어딘가 꽃다운 봄처럼 화사했던 글씨의 현수막은 마스터의 창날에 갈기갈기 찢기고, 곧 하늘에서 두 기의 비룡이 좌우로 현수막 하나를 든 채 내려왔다.

     [제 1회 대륙단합 극기훈련 ‘단기군인체험’]

     하얀 현수막.

     딱딱한 글씨.

     그리고 붉게 칠해진 오로솔 아카데미의 문장.

     “지금부터 너희들을 ‘수습기사’로 대할 것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부터 윈체스터 대공이 아니라, 흑장미 기사단의 마스터.”

     펄럭.

     “나를 상대로 이길 수 있는 자만이, 이 훈련장을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윈체스터 대공의 엄포 하에, 하늘에서 비룡들이 하나둘 내려오기 시작했다.

     “조를 짜겠다. 친구, 신분, ”

     이곳에, 희망은 없다.

     “너희들은 지금부터, 모두 평등한 군인이다.”

     “…….”

     “가장 먼저.”

     쿵.

     “각자 알아서 텐트를 친다. 시작.”

     * * *

     잠시 뒤.

     “어.”

     “음.”

     “…….”

     세 명이 모였다.

     “그러니까….”

     “두 사람은 나를 따라오도록.”

     누아르. 웬즈데이.

     “마지막 조원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겠다.”

     “저기, 학생회장님?”

     “조용.”

     나리아.

     “우리는 지금부터 ‘특별교육대상자’인 것이다. 알겠지?”

     “앗, 네.”

     그리고.

     “어서와. 나의 특등실에.”

     열차 위에 다리를 꼰 채 기다리고 있는 붉은 정장의 남자-의 뒤에 서 있는 백발의 여학생, 아스타시아.

     “특별교육대상자들의 교육을 지원할 특별훈련강사, [협곡]의 그레이 지브롤터 경이다.”

     “저기….”

     “무슨 할 말이라도?”

     “이거, 특혜 아닙니까? 그…교관님?”

     “형이라고 불러라, 누아르. 그리고.”

     그레이는 고개를 옆으로 꺾으며 웃었다.

     “특혜 맞다.”

     “…….”

     “특혜인데, 뭐.”

     누아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너 10살에 했던 프로그램 그대로 압축해놓은 거 한 번 더 할래?”

     “그렇지만….”

     “참고로 마스터급 실전 대련은 아버지 대신 윈체스터 대공이 대신할 예정이다.”

     누아르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답했다.

     “귀족이면 특혜 한 번 정도는 누려도 될 것 같다고 생각해, 형.”

    다음화 보기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