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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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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바탕 소동이 지나가고, 리안과 제스는 얼굴에 시퍼런 멍이 든 두 수인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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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은 울창한 숲으로 이어졌다. 새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인 침엽수는 간간이 눈을 부스스 털어냈다. 눈보라가 한바탕 쏟아진 탓에 숲속은 끝없는 미로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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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과 뒤, 오른쪽, 왼쪽이 구분 가지 않을 정도로 똑같은 풍경이 연속적으로 펼쳐졌다. 수인들에겐 따로 보이는 게 있는 건지 나아가는 걸음이 거침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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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이리 흘긋거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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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눈동자를 굴려 약간의 거리를 두고 앞서나가는 수인을 바라보았다. 수인은 주변을 경계하는 것처럼 연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제스를 흘긋거렸다. 그건 다른 수인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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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의 꼬리가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슬금슬금 흔들리는 걸 보니 손가락의 거스러미처럼 묘하게 거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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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들과 제스가 무슨 사이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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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풀리지 않는 의문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사이에 길은 점점 가팔라졌다. 눈 덮인 돌길과 얼어붙어 미끄러운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자 가파른 길이 눈앞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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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스를 포함한 수인들은 설산에 살아가는 염소처럼 겅중겅중 뛰어 가파른 길을 쉽게 올랐지만, 평범한 인간인 리안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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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 입장에선 지렁이가 기어가는 것처럼 느려 보일 만큼 힘겹게 길을 나아가자 제스가 훌쩍 다가와 리안을 번쩍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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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엇?”하는 사이 시야가 훅훅 지나가더니 어느새 평탄한 길 위였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주변을 둘러보자 수인 둘이 당황한 얼굴로 두 사람을 보고 있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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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표정이 묘하게 조소를 담기 시작했다. 수인에게 강함은 곧 법이자 전부였기에, 리안의 모습은 ‘약자’로 비친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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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수인들의 비웃음은 리안의 시야에 1초도 담기지 못하고 따끈하고 말랑한 것에 가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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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읍..! 자, 잠깐! 제…프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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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왕 리안을 품에 안은 김에 내려놓고 싶지 않아, 제스는 리안을 제 가슴에 깊게 끌어안았다. 리안은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겨우 품에서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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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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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소를 담고 있던 두 수인의 눈동자는 어느새 진한 부러움과 질투만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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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스는 이곳에 리안과 자신 둘만 남은 것처럼 애정을 숨기지 않고 마음껏 표현했다. 그런 제스의 행동이 곤란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묘하게 거슬리던 감정이 기분 좋게 씻겨 내려가 마음이 편해졌다.
    ​
    ​
    ‘아아… 이게 딸이 아빠보다 친구가 좋다고 했을 때 느끼는 감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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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자신이 ‘질투’를 했다는 건 자각했지만 그 종류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헛발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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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간의 헤프닝이 지나가고 일행은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길이라고 부르기엔 거칠고, 정돈되지 못한 곳을 지나자 작은 계곡에 도착했다. 거기까지 지나고 나자 숲속 가운데 자리 잡은 야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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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에 자리를 잡은 지 오래되지 않았는지, 야영지의 삼분의 일 정도만 오두막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나머지 삼 분의 이는 텐트가 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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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행이 야영지에 가까이 다가가자 창을 든 여성 수인 둘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들에게 훅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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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0은 가뿐히 넘어 보이는 키, 날렵한 몸을 가진 여성 수인들은 한 마리의 포식자가 어슬렁어슬렁 걸어오는 것처럼 위화감을 풍겼다. 리안은 자신도 모르게 제스를 흘긋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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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는 귀여운 편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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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가 다른 여성 수인에 비하면 조금 작은 편이긴 하나 귀여운 수준은 아니었다. 그저 제스가 리안의 앞에서만 무해한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든 탓에, 리안의 머릿속 제스는 허리 언저리까지 오는 작은 키에 커다란 귀를 쫑긋거리며 눈을 반짝거리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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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그런 인식도 바다 어택 앞에선 허물어지곤 했지만, 기본적으론 그런 식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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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장?”
    “..! 대장 돌아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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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들의 앞까지 다가온 여성 수인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소리치자, 예민한 감각을 가진 수인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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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장?!”
    “대장님이 돌아왔다고!?”
    “대장!”
    ​
    ​
    온갖 종류의 수인들이 나타나 일행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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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영지 중심에 자리 잡은 텐트 안, 널찍한 공간에 두툼한 양탄자가 몇 겹이고 깔려있었다. 원뿔 형태의 텐트는 설산의 강한 바람과 눈이 쌓이는 걸 막아주고, 두껍게 깔린 양탄자는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어느 정도 막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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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양탄자 위에 제스와 리안이 상석으로 추정되는 방석 위에 앉아있었고 여섯명의 수인이 주르륵 둥글게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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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흥, 대장 그 인간은 뭐지? 비상식량인가?”
    ​
    ​
    3m에 가까운 키를 가진 곰수인이 두꺼운 검지로 리안을 가리키며 묻자, 다른 수인들도 다양한 감정이 담긴 시선으로 리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
    ​
    리안은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슬쩍 제스의 손등을 두드렸다. 
    ​
    ​
    ‘으아아… 적어도 자세만이라도 바꾸면 안 될까…!’
    ​
    ​
    리안은 방석 위에 방만한 망나니처럼 푹신한 곳에 반쯤 눕다시피 기댄 상태였다. 문제는 푹신한 곳이 쿠션이 아니라 제스의 뭉클한 가슴이라는 게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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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스는 리안을 등 뒤에서 끌어당겨 안은 자세로 씩, 능글맞게 웃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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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짝이야.”
    “뭐엇?!”
   “짜… 짝이라는 말은… 반려라는 말인가?!”
    “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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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인들이니까 ‘주인님’이라고 말해도 오해하지 않으려나?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던 리안은 입을 헤 벌린 채 멍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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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의 고백 공격에 리안의 뇌는 그대로 활동을 정지했다. 그러는 사이 수인들의 대화는 엉망으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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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장 격하게 반응한 건 세 명의 남자 수인들이었다. 힘이 곧 법이자 전부인 수인 세계에서 대장 자리를 차지한 제스는 모든 남자 수인들이 원하는 신붓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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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녀에게 매료된 남자 수인들은 제스가 여러 명의 첩을 두길 간절히 기도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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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의 반려 자리를 두고 소리 없는 전쟁이 오고 가는 와중 나타난 ‘리안’의 존재는 갑작스럽게 떨어진 폭탄이나 다를 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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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렇게 약해빠진 놈이 대장의 반려라고?’
    ‘말도 안 돼! 저런 덜떨어진 놈과 짝을 맺었다간 비실비실한 새끼만 낳게 될 거라고!’
    ‘약해 보이는데… 음, 대장 외모에 약하구나?’
    ​
    ​
    딱 봐도 약해 보이는 리안이 제스의 반려라는 말에 다들 납득하지 못한 얼굴을 했다. 그러든 말든 제스는 그저 기분 좋게 꼬리를 살랑거리며 리안을 더 깊게 끌어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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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으…고, 고마워?”
   
    ​
    리안은 삐걱거리는 머리를 겨우겨우 굴려 바보 같은 말을 툭 뱉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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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릿속에 미니 리안들이 “고마워라니! 완전 멍청해 보이잖아!”, “노아는 어쩔 거야!? 어쩔 거냐고! 이미 (상상 속에선) 아이까지 셋이나 낳아놓고!”라며 온갖 난리를 치는 바람에 더 이상의 말을 이어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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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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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는 그런 리안의 말에 기쁘다는 듯 웃으며 슬쩍 눈을 굴려 텐트 안에 자리 잡은 여성 수인들을 가느다랗게 뜬 눈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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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텐트 안에 자리 잡은 이들은 제스 다음으로 강한 여섯명의 수인들이었다. 제스보단 못해도 매력적인 여성 수인들이 무려 세 명이나 모여있었다. 텐트 밖에는 그보다 많은 여성 수인들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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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님의 수인은 나만 있으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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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대 그럴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하긴 하지만, 만분의 일이라도 리안이 다른 수인을 오냐오냐 쓰다듬는 일이 생길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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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만 해도 천 불이 끓어오르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짝’이라는 말로 냅다 침을 왕창 발라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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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은한 살기가 담긴 시선이 여성 수인들을 가볍게 훑고 지나가자, 그녀들의 꼬리가 삐죽하고 빠짝 섰다가 천천히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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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심이네.’
    ‘확실히 저 정도 외모라면 끼고 다닐 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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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렵한 몸을 가진 미모의 여성 수인 둘은 그리 생각하며 슬쩍 시선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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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비상식량이 아닌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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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인 남자를 한 손으로 거뜬히 들어 올릴 수 있을 것 같은 3m에 가까운 덩치를 가진 여성 (곰) 수인은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내 제스의 살벌한 시선에 강제로 납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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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장이 그런 거라면 그런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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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여성 수인들과 달린 남성 수인들은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리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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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가 여성 수인들에게 경고를 보냈을 때처럼 남성 수인들에게도 살벌한 시선을 보내려는 순간, 하이에나 꼬리를 가진 남성 수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으르렁거렸다.
    ​
    ​
    “크르릉…! 대장! 저는 저런 비실비실한 놈을 대장의 반려로 납득할 수 없습니다!”
    “맞아! 저런 약해빠진 놈을 대장님의 짝으로 인정할 수 없어!”
    “…!”
    ​
    ​
    한 사람이 목소리를 내자 뒤이어 두 명의 남성 수인도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매섭게 리안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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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식자가 내뿜는 살벌한 살기에 제스의 고백으로 고장나있던 리안의 생존본능이 요란하게 울리며 번뜩 정신을 깨웠다. 리안이 무어라 대처를 하기도 전에 제스가 나긋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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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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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흠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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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혀 화나지 않은 듯 부드러운 질문에 세 명의 수인의 꼬리가 빠르게 아래로 축 늘어졌다. 쫑긋 서 있던 귀가 눈치를 보듯 슬금슬금 아래로 처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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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정 못하면 어쩔 건데?”
    ​
    ​
    제스는 입꼬리를 휘어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여성 수인들은 눈치 빠르게 텐트 구석으로 사사삭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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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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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제가..드디어 ..다음화를 들고..왔습니다..흑흑..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ㅂ;다음화 보기

한바탕 소동이 지나가고, 리안과 제스는 얼굴에 시퍼런 멍이 든 두 수인의 뒤를 따랐다.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은 울창한 숲으로 이어졌다. 새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인 침엽수는 간간이 눈을 부스스 털어냈다. 눈보라가 한바탕 쏟아진 탓에 숲속은 끝없는 미로 같았다.

앞과 뒤, 오른쪽, 왼쪽이 구분 가지 않을 정도로 똑같은 풍경이 연속적으로 펼쳐졌다. 수인들에겐 따로 보이는 게 있는 건지 나아가는 걸음이 거침없었다.

‘왜 이리 흘긋거리는 거지?’

리안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눈동자를 굴려 약간의 거리를 두고 앞서나가는 수인을 바라보았다. 수인은 주변을 경계하는 것처럼 연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제스를 흘긋거렸다. 그건 다른 수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꼬리가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슬금슬금 흔들리는 걸 보니 손가락의 거스러미처럼 묘하게 거슬렸다.

‘저들과 제스가 무슨 사이이기에?’

풀리지 않는 의문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사이에 길은 점점 가팔라졌다. 눈 덮인 돌길과 얼어붙어 미끄러운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자 가파른 길이 눈앞에 펼쳐졌다.

제스를 포함한 수인들은 설산에 살아가는 염소처럼 겅중겅중 뛰어 가파른 길을 쉽게 올랐지만, 평범한 인간인 리안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들 입장에선 지렁이가 기어가는 것처럼 느려 보일 만큼 힘겹게 길을 나아가자 제스가 훌쩍 다가와 리안을 번쩍 들어 올렸다.

“엇?”하는 사이 시야가 훅훅 지나가더니 어느새 평탄한 길 위였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주변을 둘러보자 수인 둘이 당황한 얼굴로 두 사람을 보고 있는 게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표정이 묘하게 조소를 담기 시작했다. 수인에게 강함은 곧 법이자 전부였기에, 리안의 모습은 ‘약자’로 비친 탓이었다.

그런 수인들의 비웃음은 리안의 시야에 1초도 담기지 못하고 따끈하고 말랑한 것에 가려졌다.

“으읍..! 자, 잠깐! 제…프흡!?”

이왕 리안을 품에 안은 김에 내려놓고 싶지 않아, 제스는 리안을 제 가슴에 깊게 끌어안았다. 리안은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겨우 품에서 벗어났다.

“…”

“…”

조소를 담고 있던 두 수인의 눈동자는 어느새 진한 부러움과 질투만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제스는 이곳에 리안과 자신 둘만 남은 것처럼 애정을 숨기지 않고 마음껏 표현했다. 그런 제스의 행동이 곤란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묘하게 거슬리던 감정이 기분 좋게 씻겨 내려가 마음이 편해졌다.

‘아아… 이게 딸이 아빠보다 친구가 좋다고 했을 때 느끼는 감정인가?’

리안은 자신이 ‘질투’를 했다는 건 자각했지만 그 종류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헛발질했다.

약간의 헤프닝이 지나가고 일행은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길이라고 부르기엔 거칠고, 정돈되지 못한 곳을 지나자 작은 계곡에 도착했다. 거기까지 지나고 나자 숲속 가운데 자리 잡은 야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에 자리를 잡은 지 오래되지 않았는지, 야영지의 삼분의 일 정도만 오두막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나머지 삼 분의 이는 텐트가 쳐져 있었다.

일행이 야영지에 가까이 다가가자 창을 든 여성 수인 둘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들에게 훅 다가왔다.

170은 가뿐히 넘어 보이는 키, 날렵한 몸을 가진 여성 수인들은 한 마리의 포식자가 어슬렁어슬렁 걸어오는 것처럼 위화감을 풍겼다. 리안은 자신도 모르게 제스를 흘긋거렸다.

‘제스는 귀여운 편이었구나.’

제스가 다른 여성 수인에 비하면 조금 작은 편이긴 하나 귀여운 수준은 아니었다. 그저 제스가 리안의 앞에서만 무해한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든 탓에, 리안의 머릿속 제스는 허리 언저리까지 오는 작은 키에 커다란 귀를 쫑긋거리며 눈을 반짝거리는 모습이었다.

물론 그런 인식도 바다 어택 앞에선 허물어지곤 했지만, 기본적으론 그런 식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대장?”

“..! 대장 돌아온 거야?”

그들의 앞까지 다가온 여성 수인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소리치자, 예민한 감각을 가진 수인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대장?!”

“대장님이 돌아왔다고!?”

“대장!”

온갖 종류의 수인들이 나타나 일행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

야영지 중심에 자리 잡은 텐트 안, 널찍한 공간에 두툼한 양탄자가 몇 겹이고 깔려있었다. 원뿔 형태의 텐트는 설산의 강한 바람과 눈이 쌓이는 걸 막아주고, 두껍게 깔린 양탄자는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어느 정도 막아주었다.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양탄자 위에 제스와 리안이 상석으로 추정되는 방석 위에 앉아있었고 여섯명의 수인이 주르륵 둥글게 앉아있었다.

“크흥, 대장 그 인간은 뭐지? 비상식량인가?”

3m에 가까운 키를 가진 곰수인이 두꺼운 검지로 리안을 가리키며 묻자, 다른 수인들도 다양한 감정이 담긴 시선으로 리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리안은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슬쩍 제스의 손등을 두드렸다.

‘으아아… 적어도 자세만이라도 바꾸면 안 될까…!’

리안은 방석 위에 방만한 망나니처럼 푹신한 곳에 반쯤 눕다시피 기댄 상태였다. 문제는 푹신한 곳이 쿠션이 아니라 제스의 뭉클한 가슴이라는 게 문제였다.

제스는 리안을 등 뒤에서 끌어당겨 안은 자세로 씩, 능글맞게 웃음 지었다.

“내 짝이야.”

“뭐엇?!”

“짜… 짝이라는 말은… 반려라는 말인가?!”

“헤에…”

수인들이니까 ‘주인님’이라고 말해도 오해하지 않으려나?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던 리안은 입을 헤 벌린 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제스의 고백 공격에 리안의 뇌는 그대로 활동을 정지했다. 그러는 사이 수인들의 대화는 엉망으로 진행되었다.

가장 격하게 반응한 건 세 명의 남자 수인들이었다. 힘이 곧 법이자 전부인 수인 세계에서 대장 자리를 차지한 제스는 모든 남자 수인들이 원하는 신붓감이었다.

그녀에게 매료된 남자 수인들은 제스가 여러 명의 첩을 두길 간절히 기도할 정도였다.

제스의 반려 자리를 두고 소리 없는 전쟁이 오고 가는 와중 나타난 ‘리안’의 존재는 갑작스럽게 떨어진 폭탄이나 다를 바 없었다.

‘저렇게 약해빠진 놈이 대장의 반려라고?’

‘말도 안 돼! 저런 덜떨어진 놈과 짝을 맺었다간 비실비실한 새끼만 낳게 될 거라고!’

‘약해 보이는데… 음, 대장 외모에 약하구나?’

딱 봐도 약해 보이는 리안이 제스의 반려라는 말에 다들 납득하지 못한 얼굴을 했다. 그러든 말든 제스는 그저 기분 좋게 꼬리를 살랑거리며 리안을 더 깊게 끌어안을 뿐이었다.

“어,으…고, 고마워?”

리안은 삐걱거리는 머리를 겨우겨우 굴려 바보 같은 말을 툭 뱉어냈다.

머릿속에 미니 리안들이 “고마워라니! 완전 멍청해 보이잖아!”, “노아는 어쩔 거야!? 어쩔 거냐고! 이미 (상상 속에선) 아이까지 셋이나 낳아놓고!”라며 온갖 난리를 치는 바람에 더 이상의 말을 이어지지 못했다.

“…”

제스는 그런 리안의 말에 기쁘다는 듯 웃으며 슬쩍 눈을 굴려 텐트 안에 자리 잡은 여성 수인들을 가느다랗게 뜬 눈으로 바라보았다.

텐트 안에 자리 잡은 이들은 제스 다음으로 강한 여섯명의 수인들이었다. 제스보단 못해도 매력적인 여성 수인들이 무려 세 명이나 모여있었다. 텐트 밖에는 그보다 많은 여성 수인들이 가득했다.

‘주인님의 수인은 나만 있으면 돼.’

절대 그럴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하긴 하지만, 만분의 일이라도 리안이 다른 수인을 오냐오냐 쓰다듬는 일이 생길지도 몰랐다.

상상만 해도 천 불이 끓어오르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짝’이라는 말로 냅다 침을 왕창 발라버린 것이다.

은은한 살기가 담긴 시선이 여성 수인들을 가볍게 훑고 지나가자, 그녀들의 꼬리가 삐죽하고 빠짝 섰다가 천천히 내려앉았다.

‘진심이네.’

‘확실히 저 정도 외모라면 끼고 다닐 만 하지.’

날렵한 몸을 가진 미모의 여성 수인 둘은 그리 생각하며 슬쩍 시선을 피했다.

‘정말… 비상식량이 아닌 건가?’

성인 남자를 한 손으로 거뜬히 들어 올릴 수 있을 것 같은 3m에 가까운 덩치를 가진 여성 (곰) 수인은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내 제스의 살벌한 시선에 강제로 납득했다.

‘대장이 그런 거라면 그런 거겠지.’

그런 여성 수인들과 달린 남성 수인들은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리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제스가 여성 수인들에게 경고를 보냈을 때처럼 남성 수인들에게도 살벌한 시선을 보내려는 순간, 하이에나 꼬리를 가진 남성 수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으르렁거렸다.

“크르릉…! 대장! 저는 저런 비실비실한 놈을 대장의 반려로 납득할 수 없습니다!”

“맞아! 저런 약해빠진 놈을 대장님의 짝으로 인정할 수 없어!”

“…!”

한 사람이 목소리를 내자 뒤이어 두 명의 남성 수인도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매섭게 리안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포식자가 내뿜는 살벌한 살기에 제스의 고백으로 고장나있던 리안의 생존본능이 요란하게 울리며 번뜩 정신을 깨웠다. 리안이 무어라 대처를 하기도 전에 제스가 나긋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흠칫.

전혀 화나지 않은 듯 부드러운 질문에 세 명의 수인의 꼬리가 빠르게 아래로 축 늘어졌다. 쫑긋 서 있던 귀가 눈치를 보듯 슬금슬금 아래로 처지기 시작했다.

“인정 못하면 어쩔 건데?”

제스는 입꼬리를 휘어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여성 수인들은 눈치 빠르게 텐트 구석으로 사사삭 물러났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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