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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4

       “…….”

        

       부글부글 끓는 표정으로 앉아있는 클레어를, 앨리스와 샤를로트는 열심히 달래고 있었다.

        

       “실비아는 남자한테는 크게 관심 없어 보였으니까, 분명히 그렇게 같이 식사 한번 한다고 해도 큰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거야.”

        

       “너는 언니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당연히 식사 한 번 정도로 큰일이 일어나지는 않겠지! 한쪽은 남작이고 한쪽은 황녀니까!”

        

       앨리스의 말에 클레어가 결국 폭발했다.

        

       “아니, 그보다, 너는 언니가 레오랑 이어지지 않도록 도와주겠다고 했었잖아!? 그 자리에서 굳이 나를 끌고 나가는 건 왜 그런 건데? 샤를로트라면 모를까!”

        

       “클레어, 그건 별로 좋지 못한 생각이에요.”

        

       클레어의 말에 샤를로트가 반박했다.

        

       “아무리 언니를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언니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감정까지 어떻게 할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니까요.”

        

       아직 샤를로트는 클레어와 실비아 사이의 관계가 어떤 관계인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아무리 자세한 것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클레어가 실비아를 대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녀가 실비아를 진심으로 언니라고 생각하고 따르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원래 귀족이나 황족, 왕족 간의 관계는 대단히 복잡한 것이라, 설령 그사이가 황제와 남작가처럼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여도 종종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가까운 혈통을 숨기고 있기도 했다. 샤를로트는 클레어와 실비아의 관계를 대충 그런 관계로 해석했다.

        

       “아니, 언니가 다른 남자를 좋아한다면 이해해. 물론 잘 생기고 능력 좋고, 언니를 백 퍼센트 이해할 수 있는 혈통 좋은 집안의 남자라면 더 좋겠지만, 그래도 언니가 좋다면 내가 어떻게 하겠어? 지나치게 양아치 같은 성격만 아니라면 참고 보내줘야지.”

        

       “그래도 귀족으로서 최소한의 교양은 배운 모양이네요…….”

        

       샤를로트가 안심했다는 듯 가슴에 손을 얹고 숨을 내쉬자, 클레어는 바로 발끈한 표정을 해 보였다.

        

       “아니, 나도 나름대로 열심히 배웠거든?”

        

       “하지만, 클레어.”

        

       성질 뻗친 클레어를 달래듯, 샤를로트는 부드럽게 클레어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원래 귀족이라는 지위는 원하지 않는 결혼이라도 해야 할 순간이 오기 마련이에요. 특히 높은 집안, 왕족이나 황족이라면 더 그렇죠. 실비아는 황족이니 언젠가 자기보다 나이 많은 공작가에 시집을 가야 할지도 몰라요.”

        

       그 말에는 앨리스가 조금 모호한 표정이 되었다. 다행히 앨리스는 샤를로트 뒤쪽에 있었으므로, 샤를로트는 그 표정을 보지는 못했다.

        

       실비아는……. 사실 결혼하건 하지 않건 별로 상관없는 위치의 사람이었다. 오히려 연애 문제에 관해서는 공작가의 딸보다 훨씬 더 자유롭다고 할 수 있는 존재였다.

        

       물론 실비아가 본격적으로 ‘정략결혼’을 하겠다고 나선다면 받아 갈 집안이야 많겠지만…… 황제는 실비아의 위치를 정략결혼으로 허비할 만큼 멍청한 인간은 아니었다.

        

       “그러니 이런 가벼운 연애 정도는 눈감아주실 수 있잖아요? 그리고 실비아쯤 되는 인물이라면 결혼한 뒤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거랍니다. 정부라는 게 있잖아요.”

        

       “…….”

        

       클레어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샤를로트를 향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샤를로트, 너는 싫어하는 남자랑 첫날밤을 보낸 뒤 네가 좋아하는 남자를 정부로 두고 평생을 살고 싶어?”

        

       “…….”

        

       클레어의 그 말에는 샤를로트도 눈을 피했다.

        

       “아니, 그보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분명히 우리 아버지는 레오가 언니랑 결혼하겠다고 나오면 좋다고 달려 나오실 거란 말야! 우리 어머니도 은근히 언니가 마음에 든 눈치였고!”

        

       클레어는 분통 터진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레오와 클레어의 계급 차이는……”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앨리스는 샤를로트의 말을 딱 자르며 말했다.

        

       “지금 황족 중에서 결혼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니까. 나는 차기 황제가 될 몸이고, 실비아는 그런 나를 보조할 사람이야. 당연히 실비아가 누구랑 결혼할지는 중요한 게 아니지. 실비아의 자식이 황실의 이름을 짊어질 일도 없을 거고. 오히려 아버지는 실비아가 남작가와 결혼하는 걸 환영할걸? 적어도 실비아를 쥐고 흔들려는 움직임은 없을 거 아니야?”

        

       샤를로트와 클레어는 그렇게 말하는 앨리스를 멀거니 쳐다보았다.

        

       “그런데도 언니랑 레오를 같이 두고 온 거냐고!”

        

       그리고 클레어가 뒤늦게 다시 한번 폭발했다.

        

       “하지만 실비아는—”

        

       “제가, 뭐가 어떻다는 말씀이시죠?”

        

       “…….”

        

       뭔가 말하려던 앨리스가, 뒤쪽에서 들린 목소리에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언제부터 듣고 있었어?”

        

       “도착한 건 조금 전입니다. 교실 바깥에서도 소리가 들릴 정도로 크게 토론하고 계시더군요. 심지어 그 토론의 내용이 저의 연애사에 관한 이야기였고요.”

        

       교실 문 옆에 기대서서 그렇게 말하는 실비아의 목소리는, 어째 이를 악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레, 레오와의 대화는요?”

        

       평소라면 실비아가 어떤 모습을 보이건 겁먹은 표정을 보일 리 없는 샤를로트조차 말을 더듬을 정도였다.

        

       “…….”

        

       교실 문 옆에 기대 서 있던 실비아는 한동안 말없이 세 사람을 노려보다가, 벽에서 등을 떼었다.

        

       *

        

       아, 진짜 아니라니까!

        

       이쪽 세계의 귀족들은 사람 말귀를 못 알아먹는 것이 예의범절이라도 되는 걸까?

        

       아니면 ‘여자의 거절은 강한 찬성이다’ 같은 말이 정말로 통용되는 세상이기라도 한 거야?

        

       …….

        

       생각해보니 정말로 그럴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여성진들은 모두 이쪽 세계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어마어마하게 개방적인 여성진이었지만, 동시에 이제 막 19세기를 지나온 여자애들이기도 했으니까.

        

       아직 여성 참정권도 없는 시기다. 어떤 의미에서는 여기 있는 여자애들은 외모 빼고 나머지는 남자한테 인기 끌기에는 최악의 요소들만 모아두었다고 할 수 있을지도.

        

       “이참에 확실하게 말해두겠습니다만, 저는 레오에게 연애 감정이 없습니다.”

        

       괜히 돌려 말했다가는 또 오해만 키우게 될 테니, 나는 확실하게 말하기로 했다.

        

       “조금 전에 식사 신청을 했던 것도 그걸 확실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레오에게도 확실하게 말했으니 레오가 오해할 일은 없겠죠.”

        

       내 말에 샤를로트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무슨 일이시죠?”

        

       “그야 당연히 레오가 오해할 일은 없겠죠.”

        

       샤를로트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애초에 레오는 당신이 자길 좋아하고 있다는 생각도 하지 않고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저도 아까부터 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만.”

        

       “…….”

        

       나의 말을 들은 샤를로트가 나를 딱하다는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뒷목을 잡을 뻔했다.

        

       뭐지? 결투라도 신청해달라는 건가?

        

       여자한테 이런 감정을 느껴보는 건 또 오랜만이네.

        

       처음이 아니라 오랜만이라는 게 놀랍기는 했지만. 참고로 처음은 원작의 소피아였다. 스토리상 질 수밖에 없는 상대라는 게 열받긴 했지만.

        

       앨리스는 또 웃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언니, 정말이야?”

        

       아까 교실에서 앨리스와 샤를로트에게 연행되었던 클레어가, 두 사람 사이로 얼굴을 빼꼼 내밀고 그렇게 물었다.

        

       “물론입니다. 저는 당신 시누이가 될 생각이 없습니다.”

        

       “진짜? 진짜지?”

        

       아니, 이게 그렇게 좋아할 일이냐고.

        

       클레어가 나한테 벽을 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문제는 대사만 들으면 그렇게 들릴 수밖에 없다는 거지만.

        

       클레어는 이미 내가 자기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부모님을 공유한다던가, 같은 가정에서 자랐다든가 해서 생겨나는 울타리 안의 사람이 아니라, 인연으로 이어진 가족. 그렇기에 어린 시절 함께 지냈던 기간이 무척 짧았는데도 나를 보는 순간부터 언니라고 당당하게 부를 수 있었던 거다.

        

       그러니 클레어에게 ‘나를 오빠나 남동생의 아내로 만들어 가족으로 만든다’라는 과정 따위는 필요 없다.  생각해보면 무척 시원시원한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럼…… 이걸로 된 건가요?”

        

       내 쪽으로 다가온 클레어와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한 뒤, 나는 샤를로트와 앨리스를 보면서 말했다.

        

       앨리스는 그냥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여전히 표정이 재미있다는 표정이라서 조금 불안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확실하게 말했으니 그 일을 가지고 날 계속 괴롭힐 일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샤를로트였다.

        

       샤를로트에게는 나의 태도가 어떻게 보였는지, 아니, 내 태도보다는 클레어의 태도가 샤를로트의 기분을 더 언짢게 만들어버린 것 같다.

        

       결혼하면 성을 바꾸고 가족이 되는 이쪽 세계의 시선으로 볼 때, 자기 가족에 들어올지 모르는 나에게 결혼하지 말아 달라고 하는 것은 ‘가족이 되는 것’을 한사코 거부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테니까.

        

       정작 클레어 기준으로는 자기 남동생이랑 자기 언니가 결혼할지 모른다니 기겁했을 뿐이지만.

        

       “…….”

        

       어째 산을 넘고 넘어도 또 산이 있는 기분이다.

        

       나는 이쪽을 가만히 바라보는 샤를로트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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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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