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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4

    숲지기들의 단체 여름 휴가.

    덕분에 지금 바다로 향하는 인원은 꽤 많았다.

    자신과 예르나는 물론이요, 파이리스와 디아나, 다이튼에 추가로 소르비와 키르케, 그리고 다프네까지 말이다.

    루크는 빠르게 지나가는 차창 밖을 바라보며 아쉽다는 듯 말했다.

     

    “아쉽게 되었군, 이왕이면 서드도 함께 일식을 보러 갔으면 좋았을 텐데.”

    “어쩔 수 없지, 본인이 싫다는데.”

    “그건 그렇군.”

     

    싫다는 사람을 끌고 갈 이유는 없으니, 어쩔 수 없으리라.

    딱히 서드가 추가되지 않았더라도 이미 일행은 충분히 많았으니까.

     

    루크는 잠시 파이리스가 자신의 노트에 낙서를 했던 일을 떠올렸다.

    검은 태양이라니, 정말이지 타이밍이 좋았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그 정령이 자신에게 일식에 대한 것을 일깨워주지 않았다면 자신은 이번 해 일식을 놓쳤을테고, 그렇게되면 꽤 많은 시간을 어쩔 수 없이 허비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루크는 파이리스에게 감사를 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파이리스는 이번 여행을 가능하게 한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리 생각을 하며, 루크는 자신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잠들어있는 파이리스의 머리카락을 방해되지 않게 쓸어주며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어제부터 그렇게 기대하더니, 정작 차에서는 누구보다도 빠르게 잠들어버렸군.”

     

    어젯 밤 기대된다며 어찌나 호들갑을 떨며 시끄럽게 굴던지, 그때를 생각해보면 지금도 살짝 아찔해진다.

    특히 다이튼과 자신이 합심해 만들던 도시락이 마음에 들었는지, 바다에 가서 먹을 것조차 남기지 않고 다 먹어버리는 바람에 식재료를 또 사러 나가야 했었다.

    그 식사량은 루크와 다이튼이 동시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도대체 그 많던 음식들이 저 작은 몸뚱이에 어디로 사라져버리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모양.

    루크는 그것이 정령적인 마법현상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식사를 그대로 마력으로 분해해 자신의 몸을 이루는 배열로 재구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 비정상적인 식사량의 미스터리는 바로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라며 고개를 젓는 다이튼이었지만, 100% 물질계에 속한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소화과정은 매우 정상적이고 물리적인 방식으로 이뤄지므로, 그런 것은 아니라고 대꾸했다.

     

    뭐, 그렇다고 자신의 내장기관이 정말 일반인들과 완전히 동일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말이다.

     

    또한 장난을 하도 좋아하는 파이리스였기에, 안전규칙을 일일히 교육시키는 것도 꽤 힘이 들었다.

     

    바다에 너무 깊이 들어가지 말 것.

    너무 오래 잠수하지 말 것.

    다른 사람에게 장난치지 말 것.

    다들 보는 앞에서 정령으로 변하지 말 것.

    다른 사람들과 너무 멀리 떨어지지 말 것.

    바닷가에서 아무거나 주워먹지 말 것.

    등등.

     

    일반적인 어린아이가 물놀이시 지켜야 할 규칙과, 정령인 파이가 꼭 알아야 할 규칙을 다이튼과 루크가 번갈아가며 작성했다.

     

    해당 수칙을 어긴다면 당분간 말도 붙이지 않을 것이라 으름장을 놓았으니, 파이도 되도록이면 지키려고 노력은 할 것이다.

    본체인 파이는 비록 물질계에 속하지 않은 몸이니 죽음에도 비교적 자유롭지만, 정령의 아바타인 파이리스의 육체는 죽음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롭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제와서 밝히는 것이지만, 정밀검사결과 파이리스의 신체는 인간의 것과 완전히 동일하니까.

     

    그것은 날카로운 것에 찔리면 피가 나고, 숨을 쉬지 않으면 죽는 것은 인간과 같다는 말.

     

    정령화로 얼마든지 모든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곤 해도, 혹시모를 상황엔 언제나 대비를 해 두는 편이 나았다.

     

    만약 바닷가에 난데없이 어린아이 시체가 떠밀려오면 꽤 심각한 난리가 날 것이 분명하니.

     

    물질계에 미숙한 파이라면 자신의 몸이 죽는지도 모르고 죽어버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쓴 맛이나 고통, 악취마저도 단순한 하나의 자극으로 받아들일 뿐인 파이리스는 자신에게 가해진 위해가 위해인지 정확히 판단하지 못한다.

     

    이전에 파이리스를 혼낼 때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단지 루크의 감정에 분노가 섞여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얻어맞은 엉덩이가 아파서 그런 것이 아님을 루크는 알고 있었다.

    그렇다보니, 파이리스의 안전은 정령이라고 마냥 낙관하기 어려운 것이다.

     

    물론 파이리스의 죽음이 정령적 존재인 파이의 죽음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겠지.

     

    그렇다고 떼어놓고 올 수도 없었다.

    따라오지 말라고 해도 분명 어떻게든 따라왔을테고, 그것은 오히려 예상하지 못한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 높았으니까.

    어떤 일은 무조건적으로 금지하기보다는 허가를 하되, 규칙을 정해 처음부터 시야에 두는 것이 나을 때도 있다.

     

    그렇게 생각을 하던 루크는 차창 밖을 지켜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루하다’라고.

     

    마력시가 없어서 단순한 물질적인 형태만 볼 수 있는 지금, 세상이란 본래 이토록 지루한 것이었나 하는 생각에 조금은 씁쓸해진다.

    마치 세상에서 색이 하나 사라진 것 같았다.

     

    볼 수 없다는 것은, 생각보다 끔찍한 일인 것이다.

     

    ‘마력시를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두는 편이 좋으려나…….’

     

    검은 화염에 대한 연구가 끝난다면, 다음 연구는 마법적인 마력시의 구현을 목표로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루크였다.

     

     

    ——-

     

    “루, 다 왔어. 이제 일어나?”

    “으음…….”

     

    어느새 지루함을 못이겨 자버리고 말았는지, 루크는 자신을 깨우는 예르나의 손길에 눈을 떴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곳은 마구간……. 아니, 주차장인 듯 하다.

     

    ‘하하, 마구간이라니, 아직 잠이 덜 깬 것인가.’

     

    이 시대에는 마차를 끄는 말이 없는데 어찌 마구간이 있을 수 있겠는가.

    충분히 적응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가끔 반사적으로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찌 할 방도가 없다.

    이것도 시간이 해결해 줄까.

     

    “파이리스, 이만 일어나게.”

    “으응…….”

     

    루크는 자신의 무릎의 파이리스를 깨우고 눈을 비비며 고개를 들자, ‘오메런 해수욕장’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보인다.

    해가 뜬 높이와 각도를 계산해 보니, 정오 무렵으로 보인다.

    생각보다 도로 위에서 보낸 시간이 길었던 모양이다.

    새벽같이 출발한 일행이 점심이 다 되어서야 바닷가에 도착할 수 있었으니.

     

    루크는 확인 차 예르나에게 물었다.

     

    “예르나, 일식은 언제지?”

    “일식은 노을이 지기 직전에 일어날 거야.”

    “그렇다면 아직 시간은 꽤 있군.”

    “충분히 여유롭지. 걱정하지 마.”

     

    5000년이 지났다고해서 창조된 하늘의 작동 방식이 바뀌지는 않은 모양이다.

     

    차에서 내린 소르비는 크게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으그극, 차가 꽤나 막혔네.”

     

    이내 키르케가 운전석에서 내리며 지친 한숨을 쉬었다.

    오랜 운전으로 피곤했기 때문이었다.

     

    “뭐, 일식이니까. 바닷가에 오는 사람도 꽤 있는 거겠지.”

    “그건 그렇겠네. 아무튼 운전 수고했어!”

    “칫…….”

    “하하, 너무 그러지 마. 돌아갈 때에도 도와줄 테니까.”

     

    다프네는 그런 키르케의 어깨를 주물러주며 말했다.

    하여튼, 어디 놀러갈 때는 운전 면허가 있는 게 손해라니까.

     

    그렇게 키르케를 약올리던 소르비는 문득 떠올랐다는 듯 다프네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다프네 언니는 밖에서 같이 만나 노는 거, 정말 오랜만이네.”

    “그렇긴 하지.”

     

    그녀는 어깨를 조금 들어올리며 대답했다.

     

    “그런데, 이 기회를 어떻게 놓치니.”

    “그건 그렇죠?”

     

    소르비와 다프네는 서로 씨익 웃으며 표지판을 올려다보고 있는 루크를 바라보았다.

     

    머리가 짧아지고 뿔이 사라지고, 눈 한쪽을 가렸어도 루크는 여전히 귀여운 아이였다.

     

    그 때, 주차장 한켠에서 소르비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야, 소르비! 여기 와서 나좀 도와줘!”

     

    바닷가에서 사용할 파라솔, 돗자리, 먹고 마실 음식과 음료등이 담긴 아이스박스등등을 싣고 온 다이튼이었다.

    소르비는 얄미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어멋, 원래 그런 건 남자가 하는 일인데.”

    “개소리 하지 말고. 넌 진짜 안 거들면 국물도 없어!”

     

    다이튼은 그 말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었다. 자신은 이 일행의 유일한 남성이었으니까.

    저 말에 동의하는 순간, 자신은 말 그대로 호구가 되어버린다.

     

    “진짜 넌 저거라도 도와라.”

    “윽.”

     

    키르케가 소르비의 등을 밀쳤다.

     

    ———-

     

    “흐음…….”

     

    바닷가에 가까워질 수록, 루크는 자신의 발 끝만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을 둘 곳이 없었다.

    불편한 느낌에 얼굴이 붉어지고, 식은 땀이 절로 난다.

    루크의 그런 모습이 걱정된 예르나가 루크에게 물었다.

     

    “루, 왜 그래? 혹시 어디 아프니? 화장실 가고 싶어?”

     

    “아니, 그런 것은 아니네만…….”

     

    “그럼 왜 그래?”

     

    “그게…….”

     

    루크는 슬쩍 고개를 들어 바닷가에 즐비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거의 ‘헐벗었다’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살갗을 드러낸 상태였는데, 배꼽마저 고스란히 노출시키고는 아무렇지 않게 활보하는 모습이 루크에게는 굉장히 외설적인 모습으로 보였다.

     

    ‘어찌 태양 아래에서 저토록 살을 드러내놓고…….’

     

    수영복매장에서 소르비와 예르나가 했던 거짓말은…….

     

    아니, 거짓이 아니니 거짓말이라는 표현을 틀렸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이 반 나체로 아무렇지 않게 밖을 걷는다는 말은 무려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 미안하다. 예르나, 거짓이 아니었구나.”

    “아. 그거 때문에 그렇게 신경쓰고 있었던 거야?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은 걸. 얼른 옷 갈아입고 오자, 바다에 왔으니까 바다에 들어가야지!”

    “그…….”

     

    루크는 얼굴 옆으로 내려온 머리카락을 살짝 집어 문질렀다.

    어릴 적, 당황하면 자주 하고는 하던 버릇이었는데, 이제와서 다시 이런 행동을 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동안 이만큼 당혹스러웠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으며, 이 정도로 감정적인 동요가 일어난 적 또한 없었기 때문이었다.

     

    루크는 그렇게 공연히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머뭇거리다가, 예르나를 살짝 올려보며 말했다.

     

    “저기, 꼭 갈아입어야 하나?”

    “무슨 소리야, 루. 너 그 옷 안에 벌써 수영복 입고 있잖아?”

     

    사실, 바다에 들어갈 것이라며 루크는 처음부터 원피스 속에 이미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

     

    “……그럼, 이대로 수영을 하면 안되나?”

    “그 옷은 옷감이 섬세해서 바닷물이 닿으면 안 좋아. 그리고 그런 옷으로 수영하기는 불편할걸?”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미안하지만 수영은 하지 않는 것은…….”

    “루, 언니한테 수영 배우고 싶다면서……. 혹시 싫어진거야?”

    “윽.”

     

    루크는 입을 다물었다.

     

    루크는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예르나에게 수영을 가르쳐달라는 제안을 했던 것은 사실이다.

    할 수 있는 행동이 늘어난다는 것은 분명 언젠가는 반드시 이익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그것은 루크에게 일종의 약속이었다.

     

    ‘이번에 바다에서 예르나에게 수영을 배운다.’는 약속.

     

    마법사는 약속을 일방적으로 깨트릴 수 없다.

    그렇게 하면, 자신은 ‘거짓말’을 한 것이 되니까.

     

    예르나가 수영을 가르치지 않겠다고 선언해주지 않는 한, 자신은 거짓말쟁이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예르나는 그것을 무척이나 기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찌나 실망스런 표정인지…….

     

    “그, 그러지 말거라! 수영……. 할테니까!”

    “정말로?”

    “그, 그래…….”

     

    루크는 한결 밝아지는 예르나의 표정을 바라보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어쩔 수 없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뭐! 그게 거짓말이 아니었다고!

    근데 다이튼 ㄹㅇ뭐지?
    생각해보니 애들을 빼도 여자 4명이랑 바닷가에??
    근데 이게 하렘이 아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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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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