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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4

     

    파악!

     

    샤를이 호쾌하게 성검을 휘두르자 진조의 오른팔이 하늘을 날았다.

     

    “으음.”

     

    진조가 잘린 팔의 단면을 보며 씁쓸하게 미소지었다.

     

    “하앗!”

     

    틈을 주지 않고 샤를이 이격째를 쏘아낸다. 몸을 비틀어 검의 옆면을 쳐내 방어하고는 거리를 벌리는 진조.

     

    “용사를 상대할 순 없건만.”

     

    그가 한숨을 쉬고는 샤를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직후.

     

    ―카아아아!!

     

    사방에서 기괴한 울음소리가 격해졌다.

    감염된 하수인의 대군이 우리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내가 서 있는 시계탑 상층에서 대충 둘러봐도 숫자는 어림잡아 천이 넘는다.

     

    “이… 당장 멈춰!”

     

    샤를이 공격하지만 진조는 거리를 벌리며 궤적을 피했다.

     

    그가 가슴팍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마기가 가득 차 넘쳐나올 정도로 흉흉하게 생긴 구슬이었다.

     

    “용사를 상대하려면 나도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하겠지.”

     

    ―파악!

    그가 구슬을 터트리자 공중에 마법진이 새겨지며 공중에 구멍이 뚫렸다.

     

    “마법 저장구잖아.”

     

    딱 봐도 공간 마법이다. 소유물을 이동시키는 마법, 브링어. 상당한 고위계다.

    진조는 마법에 조예가 없으니 리치에게 받은 물건이 분명했다.

     

    쿠웅! 구멍에서 세 개의 관이 지면으로 떨어진다. 관이 열리자 안에는 재갈을 물려 잠재운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비장의 콜렉션이다. 이만한 인재들을 동시에 다루려면 상당한 피와 영혼을 바쳐야 하건만.”

     

    진조가 잘린 팔의 절단부를 깨물었다.

     

    “세상의 이치 아니겠나.”

     

    ―파앙!

    그의 등에서 마기가 폭발했다.

     

    동시에 관에서 튀어나온 소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흥, 약점을 드러내기는!”

     

    샤를이 진조를 향해 뛰었다. 소체에 집중하면 그의 본체는 부자유스러워진다. 틈을 노릴 셈이었다.

     

    ―카앙!

     

    하지만 샤를의 걸음은 금방 막히고 말았다.

    대마법사의 소체가 진조 본체를 막아서는 배리어를 구축했다.

     

    “비겁하게…!”

     

    말할 틈도 없이 샤를에게 폭격과도 같은 난폭한 주먹이 날아든다. 권왕. 무술의 극에 도달한 자의 소체다.

     

    피하는 게 고작이었건만, 창의 달인이 쏘아낸 일격을 맞고 샤를이 공중을 한참 날아 옆 건물에 처박혔다.

     

    눈을 감고 조종에 집중하는 진조 본체가 젠틀하게 웃었다.

     

     

    안 좋은데.

     

    진조가 저 소체들을 쓸 땐 파티원의 보조가 반드시 필요하다. 아무리 샤를이라도 혼자서 돌파는 불가능하다.

     

    ―카아아악!!

     

    심지어 하수인 떼도 달려오고 있고.

     

    저것들이 이 전장을 덮어버리면 움직일 동선까지 제한된다.

     

    “나도 여기 갇혀버리겠는데.”

     

    치료제가 있지만 넓게 뿌릴 방법이 없으니 마구잡이로 달려들면 버티기 힘들다.

     

    타개책을 찾는 와중에 진조의 창병과 눈이 맞았다.

     

    그가 미소와 함께 내가 서 있는 시계탑을 향해 창을 던져 쏘아냈다.

     

    ―쐐애액!

     

    난폭하기는. 일단 피하려 하는데 콰앙!!

    창이 공중에서 얼음과 함께 폭발하며 힘을 잃고 추락했다.

     

     

    역할을 다한 마법진이 소멸해가는 동쪽.

     

    그곳엔 제국 기사단과 함께 무시무시한 표정을 짓고 나를 향해 전진해오는 아셀라의 모습이 있었다.

     

    “하하, 나 참.”

     

    왜 여기 계셔.

     

    그녀의 얼굴을 보니 기분 좋은 헛웃음이 나왔다.

    어쩐지 전혀 예상 못 했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게, 나도 꽤나 아셀라에게 익숙해졌구나 싶었다.

     

    “라스!!”

     

    다짜고짜 내 이름부터 외치신다.

    분명 화가 잔뜩 난 모습인데 보고 있으니 왜 웃긴지 모르겠다.

     

    여기에 나타났다는 건, 진조와 직접 전쟁을 벌이기로 한 모양이다.

    위험한 현장에서 떨어지라는 내 의도는 전해지지 않은 듯했다.

     

    아셀라가 발걸음을 옮기려 하자 앰브로시아가 그녀를 만류했다.

     

    “3황녀님, 어디 가십니까. 전장을 통솔하라는 폐하의 명령이셨잖습니까.”

     

    “어의, 거기서 지원이나 해.”

     

    “허어.”

     

    앰브로시아가 고개를 젓고는 천황궁 병력과 함께 포진했다.

     

    그 덕에 난 틈을 타 나를 향해 일직선으로 뛰어오는 아셀라.

     

    나는 층계를 내려가 그녀를 맞았다. 우리는 시계탑 입구에서 부딪칠 뻔하며 재회했다.

     

    “야! 어떻게 나를 버리고 가!”

     

    아셀라가 다짜고짜 나를 향해 외쳤다.

     

    “에이, 버린 건 아니지요. 보시다시피 위험한 사태가 벌어졌으니 전략적 후퇴를 권해드린 거였습니다.”

     

    “그건 내가 판단해. 나는 놓고 가면서 쟤는 데리고 가?”

     

    아셀라가 손가락으로 샤를을 가리켰다. 진조와 싸우느라 정신이 없다.

    이럴 때까지 질투하는 모습은 아셀라답다.

     

    “용사는 마족 토벌에 필요하고, 황녀님은 본대에서 사령탑 역할을 해주셔야 했기에.”

     

    아셀라가 순식간에 마법진을 그려 얼음창을 쏘아냈다. 창병의 다리를 꿰뚫는다.

     

    확실히 실력은 좋네.

     

    아무리 재능을 하나 잃었어도 그녀만 한 마법사도 또 없다는 건가.

     

    “타냐 경이랑 함께 검잡이도 토벌하고 왔어. 내가 그렇게 못 미더워?”

     

    “그런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황녀님이 걱정되어서 그랬어요.”

     

    “걱정은, 무슨.”

     

    아셀라가 내 시선을 피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내 주치의라서?”

     

    “아뇨.”

     

    나는 그녀에게 또박또박 말했다.

     

    “혼약자니까요.”

     

    아셀라가 대답을 잃고는 향할 곳 잃은 입술을 오물거렸다.

     

    “제가 어떤 행동을 하든, 그건 황녀님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입니다.”

     

    아셀라의 눈 깜빡임이 빨라졌다.

     

    그녀의 빨갛게 물든 귓불을 볼 수 있었다.

     

     

    ―――――――――――

    ○ 굿엔딩

    [화타의 길]

    · ■■년 후, 다시 ■■에서 54% → 61%

    ―――――――――――

     

     

    아셀라에게 한 대답은 진심이었다.

     

    배드엔딩을 모두 지우고 나서 내가 향할 굿엔딩은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형태인지는 모르지만 아셀라에게도 굿엔딩일 것이 틀림없고.

     

    뭐, 간단하게 생각하면 그녀는 황제가, 나는 의사가 되는 길이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내가 겪었던 죽음처럼, 그녀가 내 적으로 남진 않으리라 믿는다.

     

    “라스.”

     

    “예, 황녀님.”

     

    “뭐가 필요해?”

     

    “음… 따뜻한 미소와 칭찬이요?”

     

    “그런 건 할 줄 몰라.”

     

    아셀라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여느 때와는 달리 소심하게 양팔을 뻗어 내 허리를 감싸왔다.

     

    토닥토닥, 어색하게 등을 두드리고는 거리를 벌리는 아셀라.

     

    “마족에게 이길 방법, 생각해 놨지.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

     

    “몰려드는 하수인들을 무력화할 치료제를 일단 만들었습니다만.”

     

    나는 아셀라에게 병에 담긴 액체를 보여주었다.

     

    “뿌릴 방법이 없습니다.”

     

    “희석해도 효과가 있어?”

     

    “예. 충분히 강화했어요.”

     

    “뚜껑 열고 들고 있어.”

     

    아셀라가 하늘에 커다랗게 마법진을 그린다. 봤던 모양이다. 연무회에서 시연했던 그것이었다.

     

    동시에 왼손으로 작은 진을 하나 더 그려 시전한다. 치료제가 소용돌이를 만들며 병에서 솟아오른다. 하늘로 빨려 올라간다.

     

    ―카아아아!!

     

    우리를 향해 점점 다가오는 하수인들. 이제 거리는 채 500미터도 남지 않았다.

     

    “후우.”

     

    아셀라가 심호흡을 하며 마지막 공정을 마쳤다.

     

    톡, 자신의 가슴을 찔러 시전을 마친다.

     

    ―화아악!!

     

    하늘에 구멍이 뚫린다. 고위계 공간 마법이다. 별안간 틈새에서 먹구름이 쏟아지며 뇌명이 울렸다.

     

    솟구쳐 올라간 치료제가 먹구름에 스며들며 퍼져간다. 그리고.

     

    ―쏴아아아!!

     

    폭우가 내리친다.

     

    치료제가 스며든 빗물이 너 나 할 것 없이 전장의 모든 이를 적시고, 지면에 반사되어 대기 중으로 퍼져간다.

     

    “하하.”

     

    뭐 이런 스케일이 다 있나.

     

    아셀라를 돌아보니 자랑스러워하는 얼굴로 당당하게 내게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털썩, 털썩. 광견병에 감염된 하수인들이 하나둘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으윽… 여기가 어디야.”

    “내가 지금까지 뭘…”

     

    무력화된 흡혈귀의 군대가 바닥에 널브러진다. 회복이 빠른 이는 벌써 정신을 차렸다.

     

    “전투를 멈춰라!”

    “공격 중지!”

     

    전투에 몰입해있던 각국의 병사들이 상황을 파악해 부상자들을 챙겼다.

     

    “적을 포위하라!”

     

    제국 기사단이 마지막으로 남은 진조의 본체와 그가 조종하는 소체 세 명을 에워싸며 진형을 좁혀간다.

     

    전투의 한복판에서 샤를이 기특하게 버텨주고 있었다.

     

    ―촤아악!

     

    빗물로 가득 젖은 돌바닥 위에서 스텝을 이어가는 샤를.

     

    나는 아셀라와 함께 기사들의 진형을 파고 나가 현장의 최전선에 섰다.

     

    “마족이여, 순순히 죽음으로 사죄하거라!”

     

    폭우 속에서도 아셀라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똑똑하게 들렸다.

     

    진조가 입꼬리를 활짝 올리고는 의연하게 대답했다.

     

    “생각지도 못했군. 나의 하수인을 막을 수단을 가진 치유사도, 저만한 마법의 구사자도 처음 보았어.”

     

    아직 방심할 순 없었다.

     

    놈이 다루는 3명의 소체는 인간 중에서는 상당한 달인이다.

     

    함부로 진압하려 했다간 기사들이 곤죽이 될 것이었다.

     

    “돕겠습니다.”

     

    타냐가 진입해 전투에 합류했다.

    샤를과 함께 진조의 권왕과 창병을 제압하기 시작한다.

     

    “불리하군.”

     

    진조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화아악!!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커먼 마기가 더욱 증폭했다.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바친 대가의 양이 늘었다는 의미였다.

     

    소체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진다. 진조의 대마법사가 다루는 마나의 양도 늘어났다.

     

    “방어는 맡겨주시오!”

     

    앰브로시아가 앞으로 나서 치유사대와 함께 보호막을 구축했다.

     

    기특하네.

     

    “라스, 용사가 이길 수 있을까?”

     

    “솔직히 반반입니다. 놈이 다루는 소체도 꽤 강한 편이라서요.”

     

    “뾰족한 수는 없어?”

     

    “본체의 허를 찌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대마법사 소체가 방어하고 있군요.”

     

    본체를 지키는 방어 마법은 돔 형태로 외부의 침입을 일체 허용하지 않는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진조가 서 있는 장소는 광장의 커다란 분수대 앞이다. 분수는 전투의 여파로 산산조각이 났다.

     

    ‘분수의 물길을 끌어오기 위한 지하도가 분명 있을 테고.’

     

    아래에서는 공격할 수 있다.

     

    나는 상태창을 열었다.

     

     

    ―――――――――――

    · 연성 목록

    · 니트로글리세린 = 머리카락 + 비료

    ―――――――――――

     

     

    “황녀님.”

     

    “응?”

     

    내가 아셀라의 머리칼을 쓰다듬자, 그녀가 눈을 커다랗게 꿈뻑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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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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