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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4

       엘라가 눈을 뜬 것은 다음 날 정오가 지나서였다.

         

       까마득한 높이의 천장이 보였다.

       그녀는 자신이 학교 강당에 누워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의 옆으로는 그녀가 누워 있는 자리와 같은 침상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그 사이로 의사와 간호사들이 분주히 오갔고, 종종 성직자 차림을 한 사람도 보였다.

         

       엘라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몸을 일으켰다.

         

       근처를 지나던 간호사가 그녀가 일어난 것을 발견하고는 강당 밖으로 나가더니 원더스타인을 데리고 들어왔다.

         

       “깨어났군요.”

       “어떻게 된 거야? 환영회는……?”

         

       원더스타인은 일단 그녀를 눕혀서 안정을 시킨 다음 어제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엘라는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신의 화신이 학교에 나타나다니.

       어째 가는 곳마다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죽거나 다친 사람은 없어?”

       “네. 모두 무사합니다. 파이렌 교수를 제외하면.”

         

       그녀는 시체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괴물에게 먹혀 소화된 것인지, 아니면 어디론가 날아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엘라는 강당 안을 한 번 둘러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행이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그녀는 베게에 머리를 파묻고 이불을 눈 아래까지 끌어 올리고는 천장을 바라봤다.

         

       원더스타인은 그녀에게 왜 그러냐고 묻지 않았다.

       이곳에 있으면서 시네페쿠스의 권능에 당한 피해자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충분히 들었다.

         

       혼자 가만히 생각에 잠겨있던 엘라는 이불 아래로 팔을 슬며시 꺼내더니 그에게 내밀었다.

         

       “손 좀 잡아줘.”

         

       원더스타인은 빙그레 미소지으며 그녀의 손을 받아들었다.

         

       “한 곡 추실까요, 부단장님?”

         

       그는 지난밤 있었던 무도회에서 그녀가 했던 말을 흉내 냈다.

       엘라는 어제 일을 떠올리고 킥킥 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낯빛은 다시 우울해졌다.

       그래도 원더스타인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가만히 그녀의 옆을 지켜주었다.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누워있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친구들 목소리였어.”

         

       아무 맥락 없는 말이었지만 원더스타인은 그녀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랬나요?”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걔들이 나를 저주했어.”

         

       그녀가 우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라고 학교 아이들과 전부 친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게 미움과 증오가 가득 담긴 욕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목소리 중에는 엘라와 친했던 아이들의 것도 있었다.

         

       “복수하겠다고……죽이겠다고…….”

         

       원더스타인은 대충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친구들은 자신들을 살리기 위해 엘라가 원더스타인을 따라갔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일 것이다.

         

       엘라의 성격이라면 혼자 감내하면 감내했지, 혹시나 자신을 구하겠답시고 친구들이 따라올 여지를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그녀를 배신자로 생각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저기 있지……내가 무슨 잘못을 저지른 거야?”

         

       원더스타인은 그녀의 눈동자에서 두려움을 읽었다.

         

       하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는 지금을 즐기면서 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진실의 일부를 엿보고 말았다.

       그것도 그녀에게 가장 아픈 형태로.

         

       그녀는 이제 계속 공포에 떨 것이다.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이 무엇인지 상상하면서 말이다.

         

       “혹시……당신이 기억을 숨기려고 한 것도 나를 위한 거였던 거야? 내가 무슨 실수나 잘못을 해서 숨겨주려는 거였어?”

         

       원더스타인은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을 믿고 있는 건가.

       기쁘면서도 서글픈 오해였다.

         

       “아뇨. 엘라 양은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어요.”

       “……정말이지?”

       “당신이 들은 목소리는 다 가짜입니다. 마신의 속임수예요.”

       “그래?”

         

       엘라는 헤헤하고 웃음을 흘렸다.

       그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은 바로 간파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을 위해 마음을 써주는 것이 너무 고마웠다.

         

       역시 자신이 그를 싫어했던 것은 뭔가 오해가 있는 것일 것이다.

       저번에 추리했던 ‘고백했다 차였다’라는 가설이 정말일지도 몰랐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고, 자신은 그를 좋아했다.

       그건 아무리 기억이 돌아온다고 해도 변하지 않을 사실이었다.

         

       “있잖아. 당신에게는 늘 고마워.”

         

       원더스타인은 쓴 미소를 지었다.

         

       지독한 농담이었다.

       그녀를 위로한 대상이 사실 그녀가 친구들의 원망을 사게 한 원흉이라니.

         

       그녀가 진실을 알게 되는 날에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누구의 자아를 기준으로 진실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일까?

         

       ‘지금의 엘라’가 배신감을 느끼게 되거나, 혹은, ‘원래의 엘라’가 수치심을 느끼게 되거나.

         

       원더스타인은 그것이 부디 후자이길 바랐다.

       후자라면 좀 부끄럽고 말겠지만, 전자라면 그녀에게 너무 큰 아픔을 주는 것일 테니까.

         

       울적한 기분을 털어버린 그녀는 화제를 전환했다.

         

       “그런데 어제부터 계속 혼자 있었던 거야?”

       “아뇨. 밤에는 유라크네 씨가 교대해주셨어요. 그리고 혼자가 아니에요. 마야 양이 저랑 같이 있었어요.”

         

       엘라가는 고개를 들어 좌우를 살펴봤다.

         

       “마야는 안 보이는데?”

       “마침 엘라 양이 깨어났을 때, 카렌 양도 깨어나서 그녀를 보러 갔어요.”

         

       원더스타인이 턱으로 그녀의 뒤를 가리켰다.

       과연 그곳에는 마야가 어떤 침상 앞에 서 있었다.

         

       “칫, 뭐야. 부단장님을 먼저 보러 와야지.”

         

       엘라는 짐짓 볼멘 목소리를 냈지만, 입에는 미소가 걸렸다.

       덕분에 한동안 원더스타인과 둘이서 있을 수 있었다.

         

       카렌은 마침 가까스로 입을 뗀 참이었다.

       그녀는 정신을 차린 지는 꽤 됐지만, 다른 사람들과 달리 부상의 후유증 때문에 몸을 움직이는 게 쉽지 않았다. 손끝을 움직이는 데만 해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어……안녕……?”

         

       카렌은 마야에게 어색한 인사를 했다.

       자신이 그녀의 목숨을 구해줬다지만, 그것이 화해나 우정의 회복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상대의 입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말이 나왔다.

         

       “걱정했어.”

         

       카렌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거, 걱정? 네, 네가 나를……?”

         

       그녀는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뒷말을 우물거렸다.

         

       “하, 하지만……나는……너에게 나쁜 마음을 품었는데…….”

       “괜찮아.”

         

       마야는 고개를 저었다.

       굳이 구질구질하게 자신의 오해가 어떤 것이었는지 설명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사과는 하고 싶었다.

         

       “심한 말 해서 미안해.”

         

       그렇게 말한 마야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카렌을 안았다.

       그녀가 자신에게 자주 하던 짓이었다.

         

       카렌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헉 들이켰다.

       마야의 머리카락과 살 냄새가 진하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자신이 그녀를 끌어안을 때는 킁킁대면 변태로 보일까 봐 본능적으로 숨을 참고는 했는데, 그녀 쪽에서 먼저 자신을 안은 건 처음이었다.

         

       아찔한 기분에 그녀의 시야가 술에 취한 것처럼 빙글빙글 돌았다.

       그녀의 얼굴은 그녀의 머리카락만큼이나 새빨갛게 변했다.

       공중에 붕 뜨는 것처럼 날아갈 것만 같은 쾌감을 느꼈다.

       마야가 자신을 놓아줄 때는 아쉬움에 탄식을 내뱉을 정도였다.

         

       카렌은 어색하게 웃으며 뺨을 긁적였다.

         

       “어……이거 혹시……내가 드디어 친구로 인정받은 거야?”

       “아니.”

         

       마야가 무표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친구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너는 원래 내 친구였어, 카렌.”

         

       카렌은 목구멍에 뭔가 단단한 것이 치고 올라오는 느낌을 받았다.

         

       친구.

       드디어 나에게도 여자인 친구가…….

         

       그녀는 숨을 거칠게 내쉬며 손바닥으로 눈가를 비볐다.

       축축했다.

         

       “울지 마.”

         

       마야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 보면 징징대지 말라고 짜증 내는 줄 알 것이다.

       하지만 카렌은 거기에 담긴 따뜻한 위로를 느낄 수 있었다.

         

       “아, 알았어. 대, 대신 그, 그러면 말이야……. 사죄의 의미로……음……내 볼에 뽀뽀해줘!”

         

       그녀의 말에 마야가 눈을 치켜떴다.

       그걸 보는 순간 카렌은 알아차렸다.

         

       아, 이번에는 진짜 짜증 내는 거다.

         

       어릴 때부터 주변 오빠와 아저씨들이 이런 징그러운 부탁을 장난삼아 말하는 것을 듣다 보니, 보고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그녀도 반사적으로 이런 말이 툭 튀어 나와버렸다.

         

       “취, 취소…….”

         

       카렌은 어색하게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시선을 피했다.

         

       “아, 그런데 맞다. 우리 오빠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그녀의 바로 옆 병상에 누워있던 환자였다.

         

       “빨리도 묻는다.”

         

       카렌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말문이 턱 막혔다.

         

       “어……홉스, 거기 있었어?”

       “그래.”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때, 강당 입구에서 검은색 쫄쫄이에 외투를 걸친 사람 셋이 들어왔다.

       파파엘 서커스의 단원들이었다.

         

       마야는 이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우리 부단장에게 가볼게.”

         

       그녀가 떠나는 것을 보면서도 카렌은 인사를 하지 못했다.

       입을 열기 너무 민망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마야에게 안겨 얼굴을 붉히고 뽀뽀를 해달라고 간지러운 목소리를 내는 걸 오빠가 옆에서 모두 봐버렸다.

         

       그녀는 이번 일이 첫 생리 한 것을 오빠에게 들고 가 병이 났다고 호들갑 떨었던 일만큼이나 부끄러웠다.

         

       홉스는 아무 말 없이 이불을 끌어 올리는 그녀를 보며 씩 웃었다.

         

       “아예 친구 따라 떠나는 게 어때? 응? 지금 입고 있는 교복도 잘 어울리는데.”

         

       히죽대는 그의 모습에 카렌은 으르렁거리며 이빨을 드러냈다.

         

       “지랄하고 있네, 파파엘 지분 30%는 내 거야. 근데 내가 어딜 가?”

         

       그녀가 평소의 걸걸한 말투로 돌아오자 홉스는 한 번 껄껄 웃고는 그녀를 계속해서 놀려댔다.

       단원들이 침상 옆에 도착할 때까지 그랬다.

         

       카렌은 그가 억지로 활기찬 척을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왜 그러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의 기분을 배려해서 그녀도 계속해서 장난으로 응대했다.

         

       마야가 엘라를 향해 다가오는 것을 보자 아르노는 이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이번 일의 경과를 원더스타인에게 알리기 위해 이곳을 찾았던 참이었다.

         

       원더스타인은 떠나는 그, 아니, 그녀에게 말했다.

         

       “언젠가 당신의 진짜 얼굴도 보고 싶군요, 후후.”

         

       그의 능글맞은 말투에 아르노는 싸늘한 목소리로 답했다.

         

       “……허튼소리.”

         

       그는 자신에게 인사를 하는 마야에게 고개를 한 번 까딱이고는 그녀를 지나쳤다.

       그 걸음에 어색함은 없었다.

       관절과 근육의 움직임, 땅을 밟고 체중을 이동하는 감각 모두 현실적이었다.

         

       아르노.

       그의 면사 안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애초에 면사 자체가 환상이었기에 바람에 날린다거나 안이 비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면사뿐만 아니라 그의 존재 자체가 환상이라는 것은 몰랐다.

         

       물론 면사 안에도 얼굴은 존재했다.

       자연스러운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투영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루미온이 빚은 ‘이상적인 남자’의 모습이었다.

       루미온은 면사 안에 있는 남자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 생김새는 어딘가 마야와 닮았다.

       만약 마야에게 10살 많은 오빠가 있었다면 이런 얼굴일 확률이 높았다.

         

       그의 진중하고 무거운 목소리만 들은 사람은 그의 본 얼굴이 이렇다는 걸 알지 못할 것이다.

       잘 생겼다는 말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미남자였다.

       그런데 표정 전체적으로 어딘가 느끼하고 밉살맞은 구석이 있었다.

         

       이것이 루미온이 기억하는 옛 동료의 모습이었다.

         

       루미온은 강당을 나가기 전에 한 번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자기 부단장과 뭐라고 말싸움을 하는 마야가 있었다.

         

       그녀는 아빠로부터 그 외모와 엄마로부터 하얀 머리카락과 붉은 눈동자를 물려받았다.

         

       그녀는 마야의 시선이 자꾸 원더스타인을 향하는 것을 눈치챘다.

         

       헤픈 웃음이나 짓는 바람둥이 같은 남자에게 빠지는 건 제 엄마에게 물려받은 것일까?

         

       그녀는 잠시 원더스타인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곧 몸을 돌려 강당을 떠났다.

       아르노의 면사가 잠시 흔들리다 원래대로 돌아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도로시 님, 50코인 후원! 스토리의 결정적인 부분마다 항상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 쓰는 입장에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재밌는 이야기를 짜내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피아피이 님, 100코인 후원! 묵묵한 마음 표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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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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