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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4

        

       직선을 그리며 떨어져 내린 칼은 단단하게 굳은 기를 내뿜었고, 내뿜어진 기는 그대로 앞으로 나아가며 산사태를 그대로 반으로 갈라버렸다.

         

       콰아아앙-!

         

       아래로 흘러내리던 흙은 물을 강하게 후려쳤을 때, 혹은 북을 있는 힘껏 후려쳤을 때 날법한 거대한 소리와 함께 하늘로 솟구쳤다. 그리고 솟구친 흙은 중력의 힘으로 약간 솟구쳤다가 다시 바닥으로 쏟아졌고, 흐르는 토사에 다시 합류하였다.

         

       카즈오는 반으로 갈려서 경로가 살짝 바뀐 산사태를 바라보며 다시 검을 들었다.

         

       콰아아-앙!

         

       카즈오의 검이 다시 한번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며 굉음이 울려 퍼졌고, 카즈오를 중심으로 양옆으로 갈라져 흘러내리던 산사태는 다시 한번 반토막이 났다.

         

       “히-야아아아아아아압!”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카즈오는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위에서 아래로.

       직선을 그리며.

         

       그는 오직 내려치기만을 반복했고, 검에 기를 잔뜩 불어넣은 채 검이 붓이라도 되는 것처럼 계속해서 움직이고 또 움직였다. 붓에 하얀빛을 물감처럼 붙여서 허공에 그림을 그리듯 그는 계속해서 선을 그렸고, 그 선이 겹치고 또 겹쳐서 굵은 기둥처럼 보이게 될 때까지 팔을 혹사했다.

         

       그의 근육은 미친 듯이 부풀어서 터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가 되었고, 시야를 가릴 정도로 내리는 폭우는 카즈오의 몸에 닿기 무섭게 열기에 증발하여 수증기가 되어 퍼졌다. 그리고 그것이 계속 반복되자 카즈오의 주변에는 안개가 퍼지듯 뿌옇게 변했고, 카즈오가 휘두르는 검의 경로가 마치 빛으로 면을 그리는 것처럼 허공에 빛을 수놓았다.

         

       콰앙-!

       콰앙-!

       파아아앙-!

       

       그리고 그렇게 내려치기를 반복함에 따라 산사태는 허공으로 튀고 아래로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수면에 포탄을 맞은 것처럼 높이 흩날렸다가 떨어지는 흙은 마을을 덮치기 위해 질주하던 동력을 잃어버렸고, 카즈오를 피해서 흘러내리려던 산사태는 그의 칼질에 계속해서 조각이 나며 그 세가 점점 줄어들었다.

         

       바다가 강이 되는 것처럼.

       강이 쪼개져서 천(川)이 되는 것처럼.

       천(川)이 쪼개져서 졸졸 흐르는 시냇물이 되는 것처럼.

         

       “후우우우-우우우—–”

         

       마침내 시냇물은 질량에서 오는 가속도를 잃어버리고 허무하게 장애물에 가로막히며 고여버리는 샘이 되었다.

         

       카즈오는 산사태가 힘을 잃어버리자 그제야 숨을 돌리려는 듯 뜨겁고 깊은숨을 내뱉었다. 그리곤 이제 되었다는 듯 검에서 기를 거두고 검집 안에 집어넣고는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마을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지켜낸 마을의 모습을 말이다.

         

       본래라면 나무로 된 집과 전봇대는 모조리 밀어버리고 콘크리트로 된 건물은 흙으로 파묻어버렸어야 할 산사태는 마을에 제대로 진입하지도 못했고, 마을의 외곽 부분에 약간의 피해를 주는 정도로 끝을 맺었다.

         

       산사태에 합류해서 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을 믹서기처럼 갈아버렸어야 했을 쓰레기는 마을 외곽 쪽에 세워진 콘크리트 건물과 도로, 논밭에 어지러이 널려서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었고, 어마어마한 양의 흙더미는 카즈오의 칼질에 그 끔찍한 질주를 멈추고 이곳저곳에 쌓여있었다.

         

       그렇게 쌓인 곳 중에는 나무로 된 집 역시 있었다.

       본래라면 나무로 된 집을 이리저리 밀다가 부숴버렸어야 했을 토사가 다행히도 집의 2층까지 덮치는 정도로 끝을 맺은 것이다.

          

       치이이익-

         

       카즈오는 자기 몸에 닿기 무섭게 수증기가 되어 사라져버리는 빗방울이 내는 단말마를 들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나는 산사태를 베었다.’

         

       그는 비명을 질러대는 근육과 고갈이 된 단전에서 오는 공허함을 느꼈다.

       당장이라도 쓰러져서 잠을 청해야 한다는 듯 눈은 연신 감기려고 했으며, 마치 심해에 들어온 것처럼 무겁고 축축 늘어지는 몸뚱어리는 그대로 주저앉으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게다가 평소라면 가득 차 있어야 할 단전에 기가 모조리 고갈됨에 따라 깊은 허무와 무력감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데도 카즈오는 그 자리에서 다리에 힘을 준 채 꼿꼿하게 서서 마을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보기만 해도 기쁘다는 듯.

       자신이 세운 위업의 결과가 바로 저것이라는 듯 말이다.

         

       그는 자연재해에 속하는 산사태를 자신이 저지했다는 사실에 환희에 젖어 있었다.

       또한 자신의 ‘무엇이든 벨 수 있다’는 신념이 구체적으로 형상화되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귀에 울려 퍼질 듯 미친 듯이 두방망이질 치는 심장의 소리를 감미로운 음악처럼 느끼며 슬며시 눈을 감았다.

         

       하지만 눈을 감았음에도 산더미처럼 쌓인 흙과 멀쩡한 마을의 모습은 그대로 보이는 듯 보였다.

         

       아마 이 기억은 오랫동안 이어지리라.

         

       그가 검을 놓는 그 순간까지.

       아니, 어쩌면 그의 숨이 끊길 때까지일지도 모른다.

         

         

         

         

        * * *

         

         

         

         

       마을에 내려온 저주는 용기 있는 무사에 의해 제대로 힘을 써보지 못하고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태산이 팔을 뻗어 손짓하는 듯한 거대한 질량은 내려찍는 검에 의해 조각이 났고, 물을 머금으며 집을 부숴 사람들의 고향을 잃어버리게 하려고 했던 흙더미는 단순히 마을 외곽 부분만을 덮는 것으로 끝을 맺었으니까.

         

       게다가 본래라면 산사태는 대피소 근처까지 들이닥치고 도로를 모조리 뒤엎으며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방해했어야만 했다.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사람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복구를 기다리며 대피소에서 먹고 자며 무기력하게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생업에 종사하며 마을을 다시 활기로 불어넣었어야 할 사람들은 무겁게 내려앉은 공기 속에서 무기력에 몸을 바둥거리고 있어야만 했으리라.

         

       하지만 카즈오의 위업으로 대피소뿐만 아니라 집 대부분이, 직장이 멀쩡하게 보존이 되었고 사람들은 안전하다는 방송이 나오자마자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돌아간 사람들은 자신의 터전과 자신의 밥줄이 끊기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였고, 금방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으리란 희망을 품게 되었다.

         

       게다가 사람이 산사태를 막아냈다는 어마어마한 업적 덕분에 단순히 ‘어떤 지방에서 어떤 재난이 있었습니다’로 가볍게 지나가야 할 사건이 화제가 되기까지 하였다.

         

       『 사츠마의 용, 산을 갈랐다! 』

       『 사람인가, 현세에 강림한 용인가! 무사의 위업! 산사태를 막다 』

       『 시현류가 막아낸 산사태, 마을을 지키다 』

       『 산사태가 쏟아진 마을,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 피어난 웃음꽃 』

       『 재난을 맞이했음에도 웃음이 떠나지 않는 주민들 』

         

       그 결과 마을을 복구하기 위한 기금이 모이기도 하였고, 전국에서 봉사하겠다며 마을을 찾아오는 사람도 많았으며, 가고시마의 한 업체에서는 ‘마을에 다시 희망을 불어넣기 위해 도움을 주겠다’라며 중장비를 잔뜩 이끌고 찾아오기까지 했다.

         

       그렇게 사람들은 쌓인 흙더미를 삽으로 퍼내고 포대에 담아 트럭에 싣는 힘든 작업을 하면서도 얼굴에 웃음꽃을 피웠고, 다 부서진 태양광 패널과 나무 조각들을 치우면서도 활기찬 목소리를 내었다.

         

       산사태가 끝났으니까.

       희망이 있었으니까.

       재난이 있어도 찬란하게 빛낼 내일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 쿠로츠루기미네의 산사태, 인재인가 하늘이 내린 단죄인가? 』

       『 심층취재, 쿠로츠루기미네의 산사태를 예고한 예지몽은 무엇인가! 』

       『 지장보살의 저주! 쿠로츠루기미네의 산사태는 귀신의 짓이었나?! 』

       『 집중취재! 산사태를 일으킨 지장보살의 저주를 추적한다! 』

         

       찬란하게 빛나는 빛이 있다면 짙은 그림자도 존재하는 법.

         

       단순한 산사태로 끝나야 할 사건이 화제가 됨에 따라 그것을 깊이 파고들려는 사람들 역시 생겨났고, 그렇게 이것저것 조사하던 기자들의 눈에 ‘지장보살의 저주’라는 소재는 아주 매혹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미친 듯이 파고들어서 마침내 진상에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 결과, 시현류의 사범이 이 일에 깊게 관련이 있다는 것 역시 밝혀지게 되었다.

         

       쿠로츠루기미네에 기이한 일이 일어났으며, 사범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위에 보고도 하지 않은 채 전문가들을 불렀으며, 마침내 일을 해결하기는 했지만, 그 후속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까지.

         

       그 모든 것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쿠웅!

         

       사범은 무릎을 꿇은 채로 크게 소리를 치다가 바닥에 머리를 박고 부복하였다.

         

       일본에서 도게자(土下座)라고 불리는 사죄의 행동이었다.

         

       사범은 너무 세게 박아서 피가 흐르는 이마를 닦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머리를 부복하였다. 엎어진 채로 입술을 꽉 깨물고 있는 그의 얼굴에서는 치욕스러움과 약간의 공포, 그리고 무언가를 결심했을 때 나오는 책임감이 가득 서려 있었다.

         

       “도게자의 의미는 잘 알고 있겠지?”

       “예! 알고 있습니다!”

       “목이 잘려도 괜찮다는 거냐?”

       “예! 다만 다른 녀석들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저 혼자서 독단적으로 행해서 이렇게 된 것이니, 오직 저 혼자만을 벌하고 끝을 내주셨으면 합니다!”

         

       사범은 자신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며 말하는 한 원로의 목소리에 목이 찢어져라 소리를 질렀다.

         

       “목이 잘려도 괜찮다…라.”

       “오직 자신만 처벌해달라?”

         

       원로는 도게자를 하고 죽여달라고 소리치는 사범의 모습을 보며 눈을 빛냈다.

         

       [ 흠. ]

       [ 사나이다운 모습이긴 한데….]

       [ 생각해보면 죽을죄까지는 아니기도 하고….]

         

       원로들은 더없이 비참한, 하지만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당당하고 사나이다워 보이는 사범의 모습을 호의적인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원로들은 전음(傳音)을 사용해 사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야기를 나눌수록 점점 긍정적으로 그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잠깐의 대화가 지나간 후.

         

       카즈오가 그에게 다가갔다.

         

       “너는 잘못을 했다. 알고 있겠지?”

       “예!”

       “그렇다면 사나이답게 그 책임을 져라.”

         

       그리곤 사범을 일으켜주며 말했다.

         

       “소홀했던 만큼, 남에게 폐를 끼친 만큼.”

         

       그는 피범벅이 되어버린 사범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목숨을 걸고 뒷수습하도록.”

         

       사범은 자신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카즈오의 자비로움에 감격하며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목숨을 걸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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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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