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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4

       

       

       

       

       

       우리는 지부 내부의 나머지 부분도 꼼꼼히 탐색한 뒤, 성 밖으로 나왔다. 

       

       “단장님! 부단장님! 괜찮으신 겁니까!”

       

       기사들이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가자, 기사들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으로 있다가 뛰쳐나와 우리를 맞이했다. 

       

       “말씀하신 대로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엄청난 빛이 새어나오더니 폭발이 일어나서 놀랐습니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수백 번도 더 고민했는데 신호가 없어서 가지는 않았습니다만….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레키온은 그 말에 허허 웃었다. 

       

       “우리야 괜찮지. 내가 어쩌다 조금 무리를 하게 되긴 했지만, 지부에 있던 악마의 추종자들은 전부 처리했다. 내부에서 정보가 될 만한 것들을 탐색하느라 좀 늦은 것뿐이야.”

       “그러셨군요! 저희를 불러 주셨으면 저희도 탐색을 도왔을 텐데 말입니다!”

       

       아무래도 밖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던 게 마음에 걸리는 듯했다. 

       

       하지만 레키온은 오히려 안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린 듯, 살짝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괘, 괜찮다. 놓치는 게 없으려면 어차피 내가 직접 구석구석 돌아다녀야 하니까.”

       “…? 단장님, 얼굴이 빨개지셨습니다. 몸이 좀 안 좋으신 거 아닙니까?”

       “그러고 보니 부단장님도…!”

       

       그러자 이번엔 데보라가 갑자기 버럭 화를 냈다. 

       

       “시, 시끄러! 문제 없다잖아. 너희들은 가서 물건이나 옮겨! 안에 옮길 게 산더미 같이 있으니까.”

       “아, 알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기사들은 갑자기 데보라가 화를 내자 영문도 모른 채 허겁지겁 성 쪽으로 움직였다.

       

       그들은 우리가 지상에 옮겨 놓은 물건들을 실어 날랐다. 

       

       산 아래쪽, 넓은 길이 나오는 곳까지만 옮기면 짐을 전부 옮겨 실을 수 있는 커다란 마차가 대기하고 있었기에 분주하게 움직였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무기가….”

       “이 갑옷도 품질이 굉장히 좋아 보이는데?”

       “탐난다….”

       “이거 다 수도로 보내지는 건가…?”

       “하하하, 이중 일부는 우리 기사단에서 직접 쓸 수 있도록 보고를 올릴 테니 걱정들 마. 수량이 충분하니 전부 하나씩은 가질 수 있을 거다.”

       “역시 단장님!”

       “나이스!”

       

       아무래도 파메라 기사단 자체가 제국 소속이고, 국가의 녹을 먹는 단체다 보니 이렇게 명백히 단독으로 공을 세웠을 때도 전리품을 온전히 가질 수는 없었다. 

       

       ‘물론 우리는 벌써 따로 챙기긴 했지. 후후.’

       

       금품 일부는 물론이고, 실비아와 내가 쓸 검과 단검, 그리고 나처럼 무거운 갑옷을 걸치지 않는 암살&마법 계열이 쓸 만한 스웨이드 아머.

       그리고 아르가 좋아하는 보석까지.

       

       이 정도면 도의적인 선에서 꽤나 짭짤하게 챙겼다. 

       

       “후우. 다 실었습니다!”

       “좋아. 출발하지.”

       

       전리품이 워낙 많았기에, 마차 하나를 통째로 짐칸으로 쓰고 나머지 기사들도 우리와 같은 마차 좌석에 타고 돌아가기로 했다. 

       

       좌석은 꽤 넓은 편이어서, 앞쪽에 레키온과 데보라, 우리가 쫘륵 앉고 뒤쪽에 기사들이 앉아서 가는 모양새였다. 

       

       “쀼우!”

       

       다시 말랑콩떡 모드로 돌아간 아르는 초코바를 먹으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고.

       

       “아유, 귀여워. 우리 아르.”

       

       레키온은 그런 아르를 보며 헤실거렸다. 

       

       “…귀엽네.”

       

       이제는 데보라도 작게 미소를 지으며 아르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아르에 대한 고마운 감정도 섞여 있는 듯했다. 

       

       ‘우리 아르가 복덩이긴 하지.’

       

       레키온과 데보라에게 아직 얘기하진 않았지만, 원작에서 둘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한다. 

       

       이어지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둘의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 볼 때 정말 최악의 결말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안타까운 상황이 오게 된다. 

       

       ‘결국 레키온은 데보라에 대한 마음을 접고 황녀와 결혼하게 되고, 데보라는 그 모습을 더 이상 보고 견딜 수 없어 제국에서 완전히 떠나게 되니까.’

       

       혁혁한 공을 세워 평생 제국에서 편하게 먹고 살 수 있는 데보라가 외딴 마을로 떠나 끝까지 소식이 묘연해지다니, 생각만 해도 슬픈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 아르가 그걸 막았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지만 서로 절대 만나는 일이 없는 평행선처럼 달려 가고 있던 둘의 관계를.

       

       아르의 조막만 한 젤리가 찰싹 붙여 준 것이다. 

       

       ‘나나 실비아 씨가 사실대로 말해 줬어도 결과적으로 이어졌을 수 있긴 하겠지만, 이렇게 극적으로 둘이 서로의 마음을 즉석에서 확인하는 일은 없었겠지.’

       

       아르의 순수한 마음이 삐걱거리던 둘 사이에 부드러운 기름칠을 해 준 셈이 되었고.

       

       둘은 서로에게 얽힌 오해를 그 자리에서 무사히 풀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 

       

       ‘…키스는 안 했지만.’

       

       솔직히 좀 아쉽긴 했다. 

       

       둘 다 불타오르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누가 보든 말든 열정적인 키스신을 보여줬다면 평생 잊지 못할 명장면이 되었을 텐데.

       

       물론 나라도 안 하긴 했을 거다.

       아르가 나보고 실비아 씨와 키스하는 모습을 보여 달라고 졸라도, 보여 줄 생각 같은 건 없다. 

       

       내로남불 아니냐고?

       원래 인생이 그런 거다. 

       

       하지만 키스는 안 해도 다른 변화가 있긴 했으니….

       

       “쀼우.”

       

       아르가 나를 한 번 올려다 보고, 내 손과 실비아 손을 한 번 슥 쳐다보며 눈치를 주었다. 

       

       “알았어, 알았어. 아르야. 잡을게.”

       

       나는 무릎 위에 앉은 아르의 배에서 한 손을 떼어 내 옆에 앉은 실비아 쪽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실비아도 빙긋 미소를 지으며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았다. 

       

       처음에는 손가락을 모은 채 잡았고, 잠시 후에는 자연스럽게 깍지를 꼈다.

       

       ‘…역시 부드러워.’

       

       매일 검술 실력을 갈고 닦는 노련한 9성 검사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실비아의 손은 부드러웠다. 

       

       성별의 차이를 떠나 검술을 수련한 시간만 놓고 보면 나보다 훨씬 거칠고 굳은살도 많이 박였어야 정상인데, 실비아의 손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부드러우면서도 탄력이 있었다.

       

       ‘이게 종족의 차이인가…?’

       

       역시 ‘아름다움’의 상징과도 같은 종족, 엘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실비아 씨 얼굴에 뾰루지 하나 나는 것도 본 적이 없었다.

       

       ‘다른 엘프들도 다 이런가? 그럼 진짜 사긴데.’

       

       문득 실비아 이외의 엘프를 본 적이 없는 나는 다른 엘프들도 이렇게 예쁜지, 피부가 이렇게 좋은 건지 순수한 궁금증이 일었다. 

       

       “무슨 생각 해요?”

       

       멍하니 손을 내려다 보고 있는 실비아가 내 눈을 보며 작게 속삭였다.

       나도 작게 대답했다.

       

       “아, 실비아 씨 손이 너무 부드러워서요. 그, 다른 분들도 그런가 조금 궁금해졌….”

       

       아무리 마차 안이라 소음에 가려진다 해도 엘프라는 단어를 직접 말하기가 좀 그래서 ‘다른 분들’이라고 순화해서 대답하던 나는 순간 헙, 하고 숨을 들이켰다. 

       

       “아하, 다른 여자 손이 궁금하시다?”

       

       아름다운 미소를 머금고 있는 실비아의 눈빛에서는 금방이라도 무언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컥.”

       

       꽈아악.

       

       실비아가 깍지 낀 손에 힘을 주자,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날 뻔했다. 

       손은 부드럽지만, 역시 9성 검사다운 엄청난 힘이었다.

       

       “아,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실수로 그만.”

       

       누가 봐도 실수가 아닌데요…?

       

       실비아는 짐짓 슬픈 눈으로 손에 힘을 풀며 말했다.

       

       “레온 씨가 원하시면 뭐, 다른 여자 손 잡으러 가셔도 돼요. 제가 어떻게 말리겠어요.”

       “아니, 아니에요. 저 진짜 실비아 씨밖에 없는 거 아시잖아요.”

       “…정말요?”

       “그럼요. 실비아 씨보다 제 이상형에 가까운 사람은 없을 거라고 장담해요.”

       

       이건 진짜 솔직한 마음이었다. 

       

       객관적으로 아름다움 점수가 똑같이 100점인 사람이 두 명이 있어도, 누굴 더 예쁘다고 생각하는지는 취향에 따라 다르기 마련.

       

       엘프가 전부 실비아처럼 아름답다고 하더라도, 실비아만큼 내가 생각하던 이상형에 부합하는 엘프는 아마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처음 봤던 그 순간부터 이보다 아름다울 수는 없다고 확신했었으니까요.”

       

       그 말에 실비아의 에메랄드빛 눈이 커졌다. 

       

       그리고, 곧 실비아는 진심이 담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끌어당겼다. 

       

       쪼옥.

       

       “……!”

       “……!”

       “쀼웃!”

       

       볼에 입을 맞춘 것뿐이었지만, 아르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두근두근 행복한 표정으로 아르는 꼬리로 내 무릎을 톡톡 두드렸고.

       

       주변에서도 눈을 휘둥그레 뜨며 우리를 차마 정면으로는 못 보고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그리고, 우리를 본 레키온과 데보라의 눈빛에도 순간 뭔가 여러 가지가 스쳐 지나갔다. 

       

       “데비, 우리도 손 잡을까?”

       “뭐, 뭐?”

       “손 정도는 괜찮잖아.”

       

       레키온은 씨익 웃으며 데보라의 손을 잡았다. 

       

       데보라도 당황한 얼굴이었지만, 레키온의 손을 피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기사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들의 눈빛에는 ‘설마 드디어!!’라고 쓰여 있었다.

       

       ***

       

       우리는 그렇게 블러드 구울 의뢰도 완벽하게 완료하고, 하무트교 지부도 완벽하게 격파한 후 파메라 성으로 복귀했다. 

       

       “그거 들었나? 단장님과 부단장님이 마차에서 손을 잡았다던데!”

       “뭣? 뭐 넘어져서 일으켜 주신 거 아니고?”

       “아니라니까! 이번엔 진짜인가 봐!”

       “캬, 내가 말했지? 두 분 서로 짝사랑 중이었다니까!”

       “잘 어울리시긴 하지.”

       “너무 강하게 부정하시길래 난 아닌 줄 알았는데….”

       “쯧쯧, 자네가 그러니까 연애를 못 하는 걸세.”

       “갑자기 왜 때리나?”

       

       성 내부에서는 레키온과 데보라가 교제한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쫙 퍼져 나갔다. 

       

       하지만 레키온도 데보라도 딱히 그 소문을 어떻게 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레키온은 우리에게 정말 감사한다며, 사비로 차린 만찬에 우리를 초대했다. 

       

       “쀼우우우! 이거 다 머거도 대는 거예여?”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진 만찬을 보며,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뚠뚠 아르가 눈을 빛냈다. 

       

       “그래, 아르야. 여긴 우리밖에 없으니 말도 마음껏 하고 음식도 맘껏 먹으렴.”

       “쀼웃! 쪼아여!”

       

       아르는 레키온이 특별히 아르를 위해 마련한 튼튼하고 커다란 의자에 앉아 먹을 준비를 마치고 팔을 쭉 뻗었다. 

       

       그렇게 경★레키온 데보라★축 만찬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려는 순간.

       

       순식간에 창문을 열고 누군가가 나타났다.

       

       “여기 5층인데…?”

       

       게다가 지금은 아르가 본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상태.

       

       아르도 눈앞에 있는 닭다리 하나를 야심차게 집은 상태로 눈이 똥그래져서 창가를 바라보았다. 

       

       지금이라도 다시 변신해야 되나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그때 레키온이 외쳤다. 

       

       “알렉스! 어서 와! 갑자기 어쩐 일이야? 엄청 바쁘다면서!”

       

       알렉스라고 불린 사내는 모자를 벗으며 레키온과 데보라를 바라보았다.

       

       “야, 니네 드디어 사귄다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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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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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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