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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4

       파티 자체는 의외로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진 않았다.

       

       내가 말하는 ‘이상한 방향’이라 함은, 바로 내 생일파티라는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는 일을 말한다. 갑자기 찾아와서 사업 이야기를 한다든지, 돈 이야기를 한다든지. 당연히 나에게 있어선 별로 달갑지 않은 이야기들이라면, 모두 ‘취지에서 벗어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많이 컸구나.”

       

       이게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였다. ‘많이 컸다.’. 아마 그만큼 나를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많다는 소리겠지.

       

       그리고, 어쩌면 그동안 관심도 보이지 않았을 사람들.

       

       “안녕하세요.”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사람들이지만, 일단은 웃으면서 인사한다. 그리고 옆에 있는 누군가가, 혹은 자신이 먼저 나에게 자기소개를 해 줄 때까지 기다린다.

       

       “너를 봤을 때가 세 살 때였는데—”

       

       “너희 어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었는데—”

       

       “너희 아버지는—”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나와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꺼내는 이야기들은 전부 나에 관련된 이야기는 아니었다.

       

       아버지, 그리고 돌아가신 어머니.

       

       내 기억 속에서 너무 희미하게 남아있는 사람들.

       

       당연히 이야기는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평소에 말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었으니 조금은 대화가 이어지지만, 그게 전부다.

       

       나는 그 사람들을 상대할 때는 언제나 웃는 얼굴이었지만, 절대로 상대방의 개인 사항에 관해서 묻지 않았다.

       

       그렇다고 대답을 제대로 한 것도 아니다.

       

       상대가 좋아하는 음식을 물으면 뭐든지 잘 먹는다고 대답했다.

       

       좋아하는 연예인을 물어보는 일도 있었지만, 나는 TV를 제대로 보지 않으므로 그저 잘 모른다고 대답했다.

       

       학교에 남자친구가 있냐는 물음을 했을 때는 부끄러운 척 몸을 꼬며 아직 없다고 대답한다.

       

       내가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의 묘기였다. 분명 상대가 듣기에는 제대로 된 대답이었고, 표정도 계속 웃는 표정을 유지했으니 뭐라고 꼬투리 잡기도 애매했다. 당연히 대화는 그저 얕게 끝날 수밖에 없었고, 상대는 몇 마디 더 섞는 것을 시도한 뒤에는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신묘한 묘기……라고 할 것까지는 없다. 사실 나로서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저 상황과 내 생각이 섞여서 만들어진 행운이라고 해야 하나.

       

       내 예상대로 파티에 온 사람들은 많았다. 단순히 내 친족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가족, 그리고 그룹에서 중요한 일을 맡은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 모두, 여기서 얻어갈 것은 없다.

       

       왜냐하면 여기 불려온 아이들은 거의 다 평범한 서민 가정의 아이들이었으니까.

       

       내가 암묵적으로 ‘내 사람’이라고 드러내고 있는, 붉은 옷을 입은 무리는, 자연스럽게 자기들끼리 섞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여기서 서로 마음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아이들은 그 아이들 서로뿐이었으니까. 설령 학교에서 자주 보지 못한 얼굴끼리 만나더라도, 붉은 옷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엄청나게 고역일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서로 말이 통할 사람들이 아니었으니까.

       

       하다못해 내가 화영 고등학교 안에 남아있는 재벌가의 아이를 데리고 왔다면 이렇게까지 할 말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열심히 공부만 한 아이들과 기업의 운영자들이 만나 나눌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애초에 면식이 전혀 없으니 아는 척을 할 수도 없었고.

       

       그렇기에, 원래대로라면 다소 무시당하고, 어떤 의미로는 따돌림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아이들이었지만—

       

       여기서는 다르다.

       

       그 아이들과 같은, 붉은 드레스를 입고 있는 내가 있었으니까.

       

       그 아이들을 욕하는 것은 초대한 나를 욕하는 것.

       

       무시하는 것도, 그 아이들을 초대한 나를 욕하는 것.

       

       당연히, 대하는데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붉은 옷의 물결은 파티장 안을 가르는 일종의 벽이 되어서, 돈 많은 이와 돈 없는 이를 나누는 경계선이 되었다.

       

       “사라야.”

       

       나를 부르는 소리에 몸을 돌렸다.

       

       ‘삼촌’이었다.

       

       하지만 내가 ‘숙부’라고 부르기엔 다소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아버지와는 사촌 관계였으니까.

       

       아마 이미 한참 전에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은 사람이리라. 유진 그룹이 급속도로 커진 것은 그 이후의 일이다. 그 이전에도 이미 대한민국 안에서는 손에 꼽는 규모이긴 했다지만, 유진 전자가 생긴 것은 의외로 아주 오래된 일은 아니었으니까.

       

       “네, 삼촌.”

       

       그렇기에, 일단 나는 이 사람이 주장하는 것처럼 삼촌이라는 호칭을 쓰고 있었다.

       

       “파티는 잘 즐기고 있니?”

       

       잘 즐기고 있는가, 없는가, 순수하게 감정으로만 따지자면 즐기지 못하고 있는 쪽이었다. 나는 차라리 친구들과 모여앉아 그냥 케이크나 나누어 먹고 차나 한잔 하는 편이 더 즐거웠으니까.

       

       얼굴도 처음 보는 모르는 사람들과 모여서 담소를 나누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런 파티를 계획해준 사람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수는 없다.

       

       “네, 즐겁게 즐기고 있어요.”

       

       “그래?”

       

       ‘삼촌’은 빙긋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친구가 무척 많구나. 삼촌은 안심했다. 사라가 그래도 학교생활은 잘하고 있었구나 하고.”

       

       물론, 그 말은 완전히 틀려먹은 말이었다. 나는 절대로 학교생활을 잘 한 적이 없었다. 잘한 것처럼 만들어지긴 했지만, 그건 최나경에게 뇌물을 받은 선생들이 조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런 말을 할 정도로 나는 멍청하지 않았다.

       

       나를 위해서 열심히 해 준 그 사람을 배신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네, 전부 제 친구들이에요.”

       

       “혹시, 몇 명 정도 소개해줄 수 있겠니?”

       

       저건 순수하게 호의에 의한 것일까, 아니면 나를 시험해보고 싶기 때문일까.

       

       나는 후자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저 사람들도 만만찮은 재산을 가진 사람들이다.

       

       심지어 어렸을 때부터 돈이 많았다는 것은 나와 같다.

       

       문제는, 내가 어린 시절부터 돈을 써 버릇하면서 자란 아이가 아니라는 것이고, 저 사람은 반대로 그 모든 것을 누리고 살아온 사람이라는 것이다.

       

       ‘돈으로 뭘 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당연히 나보다는 저 사람이 훨씬 더 대답을 잘하겠지.

       

       “네, 그럴게요.”

       

       하지만, 그 사람도 완전히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날밤을 새우는 와중에 정말로 옷만 맞춘 것은 아니다. 재단사들이 옷을 자르고 이어 붙이는 중에는 시간이 조금씩 남았다.

       

       그리고 그 남는 시간 동안, 나의 이름으로 초대된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열심히 사연을 들었다.

       

       당연히 모든 사람의 사연을 기억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래도, 그중에서 유독 기억에 남는 경우는 있는 법이었다.

       

       하늘이, 소희, 수아 중에서 한 명을 선택하는 방법도 고려해봤지만, 금방 포기했다. 그 아이들은 나와 함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이 ‘삼촌’도 이미 봤기 때문이다.

       

       기왕 ‘진짜 친구’티를 내려면, 아예 처음 보는 아이를 소개해주는 쪽이 좋겠지.

       

       시야를 돌리다가, 그 아이를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이쪽이에요.”

       

       “그래.”

       

       내가 천천히 걷자, ‘삼촌’이 내 뒤를 따른다. 작게 웅성거리던 붉은 물결이, 나의 걸음 소리가 가까워지는 것을 듣자 천천히 잦아들었다.

       

       주위의 시선이 나에게 와 꽂혔지만, 내가 보고 있는 아이는 한 명뿐이었다.

       

       “아름아.”

       

       “……어, 어어?”

       

       바로 조금 전까지 컵케이크를 손에 들고 열심히 먹던 아름이가, 나의 목소리에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내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가, 내 뒤에 따라붙은 아저씨를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아앗!”

       

       그제야 자기 입에 생크림이 묻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황급히 손으로 입 주위를 문질렀다.

       

       솔직히, 상류 사회에서 할 만한 행동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나는 안심했다.

       

       사실 상류 사회니 뭐니 하는 것은 나도 몰랐으니까.

       

       “삼촌, 이쪽은 제 친구 아름이에요. 학교에서 선도 위원을 맡고 있고,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예요.”

       

       “아, 에, 네! 안녕하세요! 제가 손아름입니다!”

       

       갑자기 소개받은 것에 거의 패닉에 빠져있던 손아름이, 삼촌한테 큰 소리로 인사했다.

       

       이쪽을 굳이 돌아보지 않고 있던 시선까지 모두 이쪽으로 확 쏠리게 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성량이었다.

       

       순간 주변에 정적이 흘렀다.

       

       “아, 아아…….”

       

       손아름은 잠깐 안타까운 신음을 흘린 뒤,

       

       “죄, 죄송합니다아…….”

       

       힘 빠지는 목소리로 그렇게 사과했다.

       

       더듬이처럼 한 가닥 나온 머리카락이, 기분 탓이지만 축 처진 것 같았다.

       

       잠깐의 정적 이후, 누가 풉, 하고 뿜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같은 학교 애 중 하나였으리라.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주변이 웃는 소리로 가득 찼다.

       

       비웃는 소리는 아니다. 정말로 유쾌하게 웃는 소리. 여기서 가끔 들리는 점잔 빼는 소리가 아닌, 제대로 된 웃음소리.

       

       “으으…….”

       

       손아름은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양손에 푹 묻고 있었다.

       

       옆에 서 있던 아이가 조금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손아름의 어깨를 토닥여준다. 몇몇 아이들이 이쪽으로 와 나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그런 광경을, ‘삼촌’은 보고 있었다.

       

       “……좋은 친구들이구나.”

       

       결국 그가 내놓을 수 있는 평가는 그거 하나뿐이었다.

       

       “그렇죠.”

       

       ……뭐, 대부분은 어제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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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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