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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4

        

         – ……. –

         

         얼핏 들으면 다소 황당하게 느껴질 수 있는 내 혼잣말을 듣고도, 제로는 아무런 반응없이 그저 잘그락거리는 칩 무더기를 칼같이 정렬하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무슨 확률의 마술사가 되어주겠다고 유난을 떨었으면서 막상 카지노에 도착해서는 뭘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니. 웃기지 않나?

         

         ……방금 ‘제로도 드디어 너를 포기했구나….’ 라고 안타깝다는 듯이 중얼거린 사람 누구야. 당장 튀어나와. 그냥 플라자 옥상에다 하루 정도 거꾸로 매달아버릴라니까!

         

         내가 고민하는 부분은 단순한 게임 순서나 식사거리 같은 게 아니라, 적어도 떠맡은 일에 대해서는 최대한 프로페셔널 하게 임하려는 내 자세와 관련된 이슈에 가까웠다.

         

         그게 대체 뭐냐고? 답은 간단하다.

         

         일단 명목상으로는 아론의 부름을 받고 일종의 출장을 나온 셈인데, 그런 당사자가 자리에 앉아서 얌전히 기다리기는커녕 공짜 칩 좀 눈앞에 쌓였다고 헤벌레~ 해서 놀러 나가는 건… 너무 무책임한 것 같아서….

         

         “으으음….”

         

         안정적인 받침대가 생겨 올려놓게 된 팔에 턱을 괴자, 자연스럽게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숙제를 채 마치기도 전에 노는 게 양심에 찔린다면 먼저 노력해서 끝을 내놓고 즐기면 될 일이지만.

         그렇다고 또 자리에서 마냥 밍기적거리고 있기도 뭐한 게, 그… 나는 구체적으로 여기서 뭘 해야 하는지 누굴 만나야 하는지에 대해서 거의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건 거듭 생각해도 그 녀석 잘못이 맞지?”

         

         – 약속 장소와 시간 이외의 필수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으니 상대의 실책이 객관적으로 훨씬 크다고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

         

         짜증을 살짝, 그리고 어이없음을 가득 담은 한탄에.

         심지어 그 누구보다도 가장 탈인간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애까지 동의해주었으니, 눈치 볼 사람도 없겠다 신나게 아론을 씹어 댔다.

         

         이래서 지 잘난 맛에 사는 천재들이 문제라니까! 어?? 자기만 머리 좋으면 다야?

         뭐가 가서 쉬엄쉬엄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세상 어떤 일이 가만히 팔짱 끼고 구경한다고 해결이 됐으면 용병은 왜 있고, 청부업자는 왜 있겠어.

         

         그리고…! 어떻게 주변 사람들이 척하면 척하고, 살얼음판을 걷는 긴장감과 뜬구름 잡는 듯한 추론이 뒤섞인 그 골치 아픈 선문답을 다 알아듣겠냐고요. 그렇게 생각하는 쪽이 오히려 더 이상한 놈이지!

         

         어쨌거나 저쨌거나, 결론적으로 나는 또 예전처럼 망할 비~밀 의뢰 때문에 하릴없이 접선책만 기다려야 하는 것과 비슷하게 무지한 상태에 놓였으니.

         

         아, 딱 하나는 안다. 아론 본인이 어디서 뿅 하고 나타나는 게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그때 본사로 돌아가봐야 한다는 인사를 받았으니까, 지금은 아마 네오 헤이븐 근처에도 없겠지 뭐.

         

         “으으음…… 좋아.”

         

         우선은 조금만 기다려보자. 겸사겸사 주변도 살펴볼 겸.

         

         그런 마음가짐으로 느긋하게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다음 시야각은 최대한 넓게 잡고, 혼자만의 고민을 가지느라 닫아 놨던 귀도 활짝 여니 빵빵한 냉방 시스템으로 으스스해지던 피부를 다시금 도박장의 광기가 달구기 시작했다.

         

         “콜…! 씨발, 코오오오올!!”

         “으하핫! 젊은 친구가 아주 화끈하구만!”

         

         “하여간… 저 낡은 카드 게임은 다들 질리지도 않으니 원.”

         “흐흠…… 종이 몇 장에 삶의 모든 희로애락을 맡기는 쾌감을 거부하기는 역시 쉽지 않지.”

         

         이 격리된 하이 플로어에도 여러 종류의 게임 테이블과 기계들이 준비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홀로 머리를 처박고 있는 사람은 굉장히 적었다.

         

         어느 정도로 적었냐 하면 한가롭게 음식이나 음료를 즐기는 손님에도 그 숫자가 미치질 못할 만큼…? 사실 거의 없었다고 해도 좋으리라.

         

         대부분은 난간에 비스듬히 몸을 걸치고 아래층을 구경하느라 바쁘거나-그 마저도 게임의 결과보다는 사람을 비웃는 것처럼-, 아예 자신의 개인 테이블에 사적으로 판을 벌여서 노름을 과열시키며 즐거운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심지어 그런 경우가 꽤 흔한 듯, 스태프는 익숙한 자세로 카드 세팅과 심판 역할… 경우에 따라서는 딜러가 해야 할 업무까지 처리해주는 모양인지 누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귀신같이 곁에 착석해서 진행을 도왔고.

         

         아무리 봐도 저런 진짜배기 노름꾼 중에 나와 만나기로 한 사람이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외려 있으면 있는 대로 문제일 수준?

         

         그야 어디로 어떻게 봐도 약속 전에 가볍게 즐기는 수준이 아니잖아 저건. 임플란트 하나 없는 내 평범한 눈깔로 봐도 얼굴이랑 팔뚝에 솟구친 핏줄이 저렇게 생생한데.

         

         “저 사람들은… 그럼 절대 아니겠고.”

         

         시원찮은 혼잣말을 일삼으며 계속해서 눈을 굴렸다.

         

         찾는 건 역시 접선책, 아니면 접견인? 아무튼 ‘은밀히 사람을 보냈다.’ 같은 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이래서야 끌려 다니는 을의 입장인 나만 죽을 맛이다.

         

         설마 기업 간의 거래에서도 이러지는 않을 텐데… 진짜 무슨 유령 회사라도 세워서 약속 창구를 만들어야 할지도. 아나스타샤를 불러내려면 똑바로 신원과 목적부터 밝혀주세요! 같은 느낌으로다가.

         

         나와라 나와. 이 파라다이스의 충직한 하수인인지 명령에 따르는 말단 직원인지 모를 인간아.

         댁이 얼른 나타나야 나도 좀 어? 저기 삐롱삐롱 소리를 내면서 애타게 자신의 레버를 당겨줄 손님을 찾는 녀석을 가지고 놀아 볼 거 아니요…!

         

         “……아?”

         

         애타게 찾은 보람이 있었냐고? 있긴 있었다.

         술이나 분위기에 취해 여기저기의 옷감이 구겨진 사람들과는 달리 아직 말끔한 옷차림, 또한 비교적 멀쩡한 안색. 무엇보다도 내가 쭉 근처를 확인할 때 마찬가지로 살짝씩 느껴지던 시선까지.

         

         더는 엇갈릴 필요가 없다는 듯 당당하게 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 한 명이 이쪽으로 다가오더니… 이내 풀썩! 하고 건너편 의자에 주저앉았다.

         

         저쪽도 이름만 듣고 얼굴을 몰라서 망설인 건가? 그래도 재깍재깍 눈치채고 먼저 달려와주었으니 나는 관대히 정상참작 해줄 수 있다. 있고 말고.

         

         “으음…? 내친김에 허락도 없이 합석해보긴 했는데, 딱히 놀라지도 않네? …아, 혹시 이런 걸 기다렸어 아가씨?”

         

         “네? 그야 저도 제대로 들은 게 없다 보니… 또 일은 몰라도, 이런 장소는 처음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간신히 만나자마자 꺼내는 첫마디가 이 따위시면 저도 곤란한데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속이기 위함일까? 구면이라 말해도 믿을 정도의 친근감과 쾌활함, 그리고 이죽거리는 미소를 가지고 접근해온 남자가 손짓 발짓을 곁들여가며 거들먹거렸다.

         

         그럼 십 당연히 알아볼 건덕지나 용모파기라도 건네받았을 그쪽이 찾아오는 게 맞지. 내가 여기서 ‘파라다이스의 높으신 분이 보내서 왔는데요! 저랑 약속 잡으신 분 지금 계십니까…!’ 라고 외쳐야 해?

         

         사람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다리나 떨고 있던 걸 뻔히 지켜본 주제에 얄밉게 구는 건 아론이랑 꼭 닮았네 거 참.

         

         “프하핫! 선수라고 뭐 상대가 누군지 자세히 알 때만 움직이나? 원래 남녀 간의 사업이라는 건 강렬한 충동이나 느낌이 빡 오면 본능대로 이끌리는 법인데, 아가씨는 그렇게 애타는 티까지 냈으니 뭐… 보기와는 다르게 조급한 스타일인가보다~ 하고 내가 얼른 자리부터 먹은 셈이지!”

         

         “음, 음…. 네에……… 예????”

         

         이해하기 힘든 말을 연속으로 파바밧 퍼부은 걸로도 모자라.

         신나게 떠든 남자는 자랑이라도 하듯 주변에 팔을 흔들어서 여전히 7번 테이블을 향해 있는 몇몇 사람들의 미련남은 시선을 털어냈다. 그래, 마치 자기가 여기를 선점한 게 무슨 자랑거리인 것처럼….

         

         ……에이, 설마. 미친, 아니겠지.

         

         “……저기 미안한데, 그쪽 지금 나한테 헌팅하러 온 거야? 그, 일 때문에 찾아온 게 아니라?”

         

         “아니, 나도 뭐 굳이 다른 즐길거리도 많은 카지노에서까지 연애 사업이나 밤놀이를 벌일 생각은 없었는데. 아가씨 같은 미인이 혼자 온 걸로도 모자라, 그렇게 열정적으로 합석자를 찾는 모습을 보니까 정말 참을 수가 없어서 말이야.”

         

         “그으으렇군요. 아하하….”

         

         나는 온갖 짜증과 착각의 쪽팔림을 눌러 담은 헛웃음을 터트리는 게 고작이었거늘.

         경직된 내 태도를 무너트리려는 너털웃음과 함께 그의 손이 슬금슬금 테이블 위를 기어오는 꼴이 보이길래 그만.

         

         찰싹!

         

         “억!?”

         

         재빨리 손바닥을 휘둘러서 더럽게 삿된 의도를 품은 접촉 시도를 미연에 방지했다.

         

         거 손등 좀 맞았다고 세상 놀란 표정 짓지 마십쇼. 아무리 내 손 매워 봤자, 얼마 전에 새 컴프레셔를 장착한 애한테 내려찍기 당해서 탁자랑 같이 박살나는 것보다는 덜 아플 테니까.

         

         자, 그럼 이제 이 큰 말썽 없이 이 인간을 원래 있던 별로 돌려보내야 한다.

         

         사소한 인식 상의 오해가 있었다고 구구절절 설명하기도 애매하고, 그냥 가라고 타일러도 따를 것 같지도 않고.

         

         이 어리둥절한 표정은 짓고 있는 놈팽이에게 대체 어떤 짧고 굵게 핵심만 담긴 작별 통보를 날려야 사라지게 만들 수 있을까. 음……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런지 고상한 표현이 잘 안 떠오르네.

         

         “뒤지기 싫으면 당장 꺼져.”

         

         “무, 뭣!? 이런 씹, 별 미친년을 다 봤네!”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린 것도 아니오, 사람이 기껏 활짝 웃는 얼굴로 전송해주려고 노력했건만.

         ‘지가 먼저 꼬리쳐 놓고!’, ‘…쪽팔리게스리 이렇게 대놓고 까다니!’ 같은 말-헛소리-을 누구 들으라는 것처럼 중얼거리며 남자가 멀어지자마자, 곧바로 벗어 놨던 자켓부터 받아서 걸쳤다.

         

         그리고 꼬리를 쳤다니 뭔.

         어? 내가 누굴 꼬셔서 어떻게 유리한 고지대를 점해볼라 했으면 말이야, 막 과감하게 노출도 해버리고~ 눈빛 연기까지 곁들여서 아주 그냥 정신을 못 차리게 했…!

         

         “…….”

         

         …꾸깃.

         왠지 장렬한 흑역사를 스스로 파내고 있다는 자각이 들어서 외투를 더 단단하게 여몄다.

         

         어쨌건! 팔자에도 없는 드레스? 기약 없는 좌석 대기? 모조리 기각이다 기각.

         이대로 있어봐야 무슨 미친 날파리만 더 꼬일지 도저히 감도 안 잡힌다. 난 지금부터 그냥 신나게 놀고 있을 거니까, 용건이 있는 놈 보고 알아서 찾아오라 해…!

         

         이젠 나도 몰라!

         

         

         

         – 도박을 심리적 피난처로 이용하시는 건, 정말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

         

         “……시끄러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플러팅, 곤란.

    원래는 한참 더 진행한 부분에서 끊을 예정이었는데 죄송합니다.
    아직도 앉아있거나, 몸을 굽히고 피는데 아릿하네요.

    허리에 임플란트를 박지 않은 작가에 대한 성토 또한 달게 삼켰습니다… 솔직히 누워있는데도 계속 아파서 꽤 무서웠는데 자고 일어나니까 훨씬 편해져서 어휴;

    08/14 00:54 일부 누락되었던 묘사가 추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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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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