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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4

     “이 열차 특등실은 일주일 동안 생활하는 것도 가능한 특별여객차량이지.”

     특혜란, 특별한 자들을 위한 혜택을 의미한다.

     “심지어 이곳에는 ‘특별캠프’가 열렸고, 정규 과정으로부터 벗어난 곳에서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학생들은 알게 될 거다.”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전부 특별하다.

     “사실, 이렇게 빠져주는 게 일반 학생들 입장에서는 마음이 편할 수도 있기는 해. 너도, 나도, 그리고 아스타시아도.”

     지브롤터의 장남과 차남.

     테르시안 제국의 황녀.

     “남들이 봤을 때 ‘저 사람이랑 같은 조가 되면 불편해서 미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다면, 때로는 이렇게 특권을 이용하는 것도 일종의 배려가 될 수 있지. 아카데미의 교육 모토인 화합에는 악영향을 미치겠지만.”

     “특권….”

     “그래. 누가 뭐라고 하겠어? 지브롤터가 그러겠다는데. 그런데.”

     특권은 ‘특별한 이들’을 위한 권력.

     “웬즈데이는 경우가 달라.”

     “…….”

     누아르 지브롤터에게 웬즈데이는 특별한 사람이지만, 대다수의 아카데미 학생들에게는 웬즈데이는 그저 특별한 누아르의 하인일 뿐이다.

     “누아르. 선택지를 세 개 주마. 하나는 웬즈데이와 함께 캠프로 복귀하는 것. 하나는 둘 다 이곳에 남는 것. 또 하나는 웬즈데이만 훈련 캠프로 복귀시키는 것.”

     “……!”

     “어느 쪽이든 일장일단이 있지. 하지만 이건 염두에 둬라. 무슨 선택을 하든 일반 대중의 시각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귀족은 평민의 시각을 모른다.

     그나마 제국은 표면적으로는 신분이 무의미하기에, 제국의 귀족들은 직간접적으로 평민의 시각을 이해하고 있다.

     “그들은 웬즈데이가 특혜를 누릴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네가 말하는 ‘내 사람’이라는 말이, 저들에게는 다른 의미로 들릴 뿐이거든.”

     나의 사람.

     내 사람.

     “나처럼 확실하게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내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지 않으면 온갖 의혹과 불합리에 시달리게 되지. 신경을 쓰지 않기에는 우리의 위치가 좀 많이 높거든.”

     누아르의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이들이 지금 렘버리 캠프에만 100명을 훌쩍 뛰어넘을 것이다.

     당장 하르마니아 자작 영애가 누아르의 안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것만 보더라도 두 말할 필요가 없다.

     “하인이나 사용인의 위치에 있을 때와는 다른 시선과 질투가 들어올 거다. 웬즈데이는 그걸 견뎌낼 수 있겠지만, 과연 그 소리를 듣는 네가 견뎌낼 수 있을까?”

     웬즈데이는 걱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걱정되는 건 누아르다.

     “웬즈데이가 받은 특혜를 걸고 넘어지는 이들을 상대로 검을 휘두른다거나, 주먹을 뻗는다거나, 지브롤터의 권력을 동원해서 반죽음으로 만들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

     “…….”

     “나는 너를 알아. 누아르.”

     여자는 그렇게 마구 안고 다녔던 주제에, 누군가가 술자리에서 그 여자를 건드렸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냅다 술병으로 그 남자의 대가리를 후려쳤던 게 누아르다.

     “자, 어떻게 할래?”

     “…그렇다면, 분명히 하면 그만이지.”

     누아르가 웬즈데이의 손을 잡아끌며 그녀의 손을 꽉 붙잡았다.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하면 되잖아? 웬즈데이는 그냥 사용인이 아니라고.”

     “도련님….”

     “특혜라는 게,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혜택이라고 했지? 그럼 웬즈데이도 특혜를 누릴 자격이 있어.”

     누아르가 눈을 부릅뜨며 말을 이었다.

     “웬즈데이는 누아르 지브롤터에게 특별한 사람이니까.”

     “…….”

     잠시, 가만히 멈춘다.

     다리를 꼰 채, 무릎 위에 깍지 낀 손을 올리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아무 말 없이 누아르를 바라본다.

     ‘오늘 점심 뭐 먹지.’

     슬슬 점심시간이다.

     아스타시아에게는 잠시 자리를 비켜달라고 한 만큼, 아직 점심을 뭘 먹을지 정하지 못했다.

     ‘고민 좀 더 해볼까. 저 모습 보는 거 재미있는데.’

     누아르가 서서히 눈을 좌우로 굴리기 시작한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빤ㅡ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 처음에는 눈을 부라렸다가 슬쩍 시선을 피하며 눈을 굴리고 있다.

     분명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고민하고 있겠지.

     내 입에서 나올 말을 예상하고 그에 대한 모범 답안을 찾는 중일 것이다.

     ‘크림파스타가 좋을까, 아니면 토마토 파스타가 좋을까.’

     나는 그저 아스타시아를 위한 점심 메뉴를 고르는 중이지만.

     ‘속 좀 썩혀봐라.’

     적어도 이런 소소한 재미는 느껴봐야, 내가 회귀 전에 그렇게 고생을 한 것에 대한 약간의 보상이라도 받지 않겠는가.

     ‘이걸로 퉁치는 거다, 이 녀석아.’

     회귀 전에 온갖 여자를 임신시키고 그 책임을 내게 떠넘겼던 그 새끼에 대한 복수는 이걸로 털어내리라.

     회귀 전의 문제를 가지고 째째하게 아직도 마음에 담아두는 거냐고 누가 묻는다면, 누아르 대신 내가 이름을 지어준 사생아만 십수 명에 그들의 양육비 지원도 내가 다 줬다고 답해주리라.

     이제, 그 새끼는 없다.

     내 앞에 있는 건 세상이 모두 적이 되더라도 내 사람을 지키기 위해 맞서 싸우겠다는 미친 지브롤터만이 있을 뿐이다.

     짝, 짝, 짝.

     

     장난은 여기까지.

     “그래. 그 자세다. 너는 그걸로 네 의지를 분명히 천명한 거다.”

     나는 웬즈데이의 손을 놓지 않는 누아르를 향해 손뼉을 친 뒤.

     “그런데, 그렇게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어…?”

     누아르가 당황하거나 갑자기 엇나가지 않게, 목소리를 누그러뜨리며 긴장을 푼다.

     

     “혹시나 웬즈데이가 걱정된다면 미리 하나 알려두지.”

     캠프를 빼고 열차 특등석에 온 것에 대해 누아르가 걱정하길래, 나는 누아르가 걱정하지 않도록 사실을 말해주기로 했다.

     “웬즈데이도 합스베르크 황제의 핏줄이다.”

     “…….”

     “웬즈데이, 합스베르크 황제의 딸이라고.”

     “…….”

     

     웬즈데이 또한, 일단은 고귀한 핏줄이다.

     “…뭐지, 그 반응은?”

     “어, 그게, 그러니까….”

     “여태 몰랐던 거냐?”

     “아니, 그게.”

     “아니면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었는데, 내가 그걸 지금 갑자기 이야기를 할 거라고 생각을 못했나?”

     누아르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다.

     “…완전하게 알고 있었던 건 아니야. 반신반의하고 있었어.”

     “황제의 핏줄이라는 걸?”

     “나도 제국신문 보고, 아카데미 1년 동안 사람들로부터 들은 게 있어.”

     누아르가 웬즈데이의 하얀 머리카락을 슬쩍 바라봤다.

     “제국 황제에게는 사생아들이 세 자릿수나 된다. 흰색머리의 제국인은 대부분 황실의 피가 섞인 이들이다. 어쩌면 아카데미에는 황녀가 한 명만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제국은 참 정치적으로 잔인한 곳이다. 뭐 그런 이야기들.”

     “…….”

     “하지만 믿지 않았어. 웬즈데이가 직접 이야기를 해주기를 기다렸지.”

     “웬즈데이가 하는 말은 믿으려고 했나?”

     “응.”

     누아르가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웬즈데이의 어머니가 노예였다고 하더라도, 황제의 핏줄이 아니라 그냥 태어날 때부터 머리가 하얗게 태어나서 황제의 핏줄로 사람들을 속일 수 있게 섞여들어온 사람이라고 했어도 다르게 보지 않았을 거야.”

     “…….”

     “항간에서 말하는 첩자들. 그러니까…제국에서 보내는 첩자들은 황제의 자식인척 은근히 압박을 주기 위해, 일부러 머리를 하얗게 물들이는 이들도 있다는 소문. 설령 그런 거였다고 하더라도….”

     누아르는 웬즈데이를 지키듯이 선 자리를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았다.

     “나는 웬즈데이를 지킬 거야. 10살때부터 내가 봐온 웬즈데이는 웬즈데이니까. 뭐…그 때는 웬즈데이가 아니었지만.”

     이름은 사람을 드러내는 중요한 부분이지만, 때로는 그런 이름보다 함께 한 시간과 경험이 중요하게 작용할 때가 있다.

     “설령 형이 언제나 하는 것처럼 ‘그런 걸’로 만든다고 해도….”

     “안심해라. 웬즈데이의 친부는 황제의 핏줄이다. 조사는 이미 끝났어.”

     “…….”

     “그녀의 어머니는 귀족가문은 아니었지만, 전통있는 예술가 집안의 영애였다.”

     아카데미 들어오기 전까지는 조사하지 않았다.

     “황제의 딸 맞아. 아스타시아와는 어머니가 다른 이복자매지.”

     아카데미 들어오고 난 뒤로 누아르의 시선이 어딘가로 계속 향하게 되기 시작한 이후로-좀 더 깊게 들어가면 내가 붙여주기로 한 화이트 중에 누아르가 웬즈데이로 정한 걸 군말없이 따르기로 한 이후로, 나는 혹시나 싶어 웬즈데이의 태생을 찾았다.

     “그런….”

     “왜 웬즈데이가 얘기하지 않고 내가 이걸 이야기하냐고? 그건-”

     “그럴, 사정이 있기 때문이겠지…?”

     누아르가 내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답을 도출해냈다.

     “황제의 자식인데 지금까지 황녀 취급을 받지 못했다면 그건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거야. …내가 알아야 하는 거야?”

     “모르는 채로 계속 지내겠다고?”

     “뭔가 정치적으로 꼭 알아야 하는 거라면 그럴게. 하지만 나는 웬즈데이가 어떤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바라보는 시각은 변하지 않을 거야.”

     “호오.”

     누아르가 당당히 자신의 포부를 드러냈다.

     

     “웬즈데이는 내 사람이고, 내가 아카데미에서 생활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야.”

     “그렇군.”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마지막 수단을 쓰는 수밖에.”

     “…형?”

     “아아. 크흠.”

     나는 품에서 미리 준비한 마도수정구를 꺼낸 다음, 수정구 안에 마나를 흘려넣었다.

     “그건…?”

     “원격통신마법진이 내부에 음각되어있는 마도구다. 모르가니아를 통해서 비싸게 사들인 물건이지.”

     나중에는 제국산 마도공학 통신기에 밀려서 사양되겠지만, 그 전까지는 마법의 기적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물건이기도 하다.

     “잠시.”

     삐빅.

     상대가 호출에 응했다.

     [그래. 그레이. 무슨 일이지?]

     “제국 황녀 자리 하나 더 만들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

     답이 없다.

     수정구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누아르는 갸웃거리지만, 웬즈데이의 눈동자는 하릴없이 떨리며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다.

     그야말로, X됐다.

     딱 그런 표정.

     [흐음….]

     “황위계승권을 인정하지는 않되, ‘보험’으로는 두겠다. 그 정도로 하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만.”

     [황녀가 한 명일 때와 두 명일 때의 정치적 차이는 자네도 알고 있을텐데?]

     “그 정치적 부담은 알아서 해결해주시고요.”

     [그러면 내게 무슨 이득이 있지?]

     “글쎄요.”

     이득이라.

     “지브롤터의 후계들을 완전히 제국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 카드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

     “딸’들’을 이용해서 그레이 지브롤터는 물론이거니와, 누아르 지브롤터까지 제국의 사람-”

     아니지.

     “합스베르크의 사람으로 만들었구나. 그것 하나만으로 충분한 이득이 될 것 같습니다만.”

     [……갑자기, 이렇게 나오는 이유가 뭐지?]

     “제 동생이 당신의 딸을 각별히 여겨서.”

     […….]

     “후.”

     안 되겠다.

     이렇게 된 이상, ‘나리아의 방법’을 쓰기로 했다.

     “합스베르크 폐하.”

     회귀 전에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지만, 나는 나리아를 떠올리며 목을 가다듬고 간신히 머리로 조합해낸 음절을 목소리로 뱉어냈다.

     “그냥, 해주시면 안 됩니까?”

     […….]

     “부탁드립니다.”

     [……생각해보지.]

     삑.

     통신이 끊어지고, 나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

     그래.

     어차피 죽일 인간.

     죽기 전까지 귀에 듣기 좋은 말 해주는 게 어디 뭐 별 일인가.

     그렇게, 웬즈데이는 특혜를 누릴 수 있는 이가 되었다.

     아직 대대적으로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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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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