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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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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쩐지 텐트 내부의 온도가 좀 더 떨어진 것만 같았다. 제스는 부드러운 웃음을 유지한 채 딱딱하게 굳어 슬슬 눈을 피하는 남성 수인들에게 말했다.
    ​
    ​
    “그래서 어쩔 거냐니까?”
    “그… 그게..”
    ​
    ​
    그들은 죽지 않을 정도로만 무자비하게 패던 제스의 손길이 떠올라 몸이 절로 떨렸다. 몸이 자동반사적으로 굴복하려는 순간, 제스의 품에 편안하게 안긴 리안의 얼굴이 수인의 시야에 들어왔다. 
    ​
    ​
    “결투! 결투를 원합니다…!”
    ​
    아득한 공포 앞에 꾹 눌려있던 자존심이 울컥하고 치솟아 올라 입 밖으로 툭 튀어나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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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제가 저놈과 결투하여 이긴다면 대장님의 짝이 될 기회를 주십시오!”
    ​
    ​
    입가의 미소까지 사그라들어 설산의 눈보라처럼 차갑기만 한 제스의 표정에 순간 말을 떨었지만, 하이에나 수인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겨우 전부 전할 수 있었다.
    ​
    ​
    하이에나 수인은 식은땀을 주르륵 흘리면서도 밝은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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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저놈을 가볍게 묵사발 내는 걸 보신다면 분명 대장님도 날 반려로 맞아주실 거야!’
    ​
    ​
    그의 머릿속엔 엉망으로 바닥을 구르는 리안의 모습과 사랑의 빠진 얼굴로 그에게 달라붙는 제스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
    ​
    망상에 집중하느라 눈동자가 위쪽을 바라보고, 표정이 풀어져 인중이 길어졌다. 개그 필터의 영향으로 그 어느 때보다 흉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본인은 자각하지 못했다. 
    ​
    ​
    다른 두 수인도 기대감을 숨기지 못한 채 축 늘어뜨리고 있던 꼬리를 슬금슬금 들어 올렸다. 제스는 기대감에 가득 젖어가는 남성 수인들을 단 한마디로 전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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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굳이? 내가 대장인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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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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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족을 전부 찍어누를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진 황제가 천한 신분을 가진 여자를 황비로 올린다고 막을 수 있는 자가 과연 존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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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이 곧 전부인 수인들에겐 제스는 폴리모프한 드래곤 황제만큼 막강한 존재였다. 비실비실해 보이는 리안을 반려로 맞이한다고 해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없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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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 죽을지도 모른다.’
    ​
    ​
    남성 수인들은 그제야 자신이 어떤 짓을 저지르고 있는 건지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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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스가 무려 ‘반려’라고 선언한 것에 불만을 가지고 목소리를 높였으며, 무려 그녀가 ‘그래서?’라는 질문으로 살 기회를 줬음에도 멍청하게 짖어대고 말았다.
    ​
    ​
    그녀의 말을 무시한다는 건 곧, 대장 자리를 내놓으라는 말과 같았다. 대장의 말을 무시할 수 있는 건 오로지 힘을 가진 새로운 대장뿐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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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인들의 꼬리가 자연스럽게 가랑이 사이를 파고들고 귀가 축 늘어져 파들파들 떨었다. 중력이 어깨를 짓누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몸이 슬슬 낮춰져 무릎을 꿇어앉아 고개를 푹 숙였다. 그대로 머리를 땅바닥에 박을 듯 자세가 비굴하게 낮춰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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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스가 사냥감을 눈 앞에 둔 고양이처럼 눈앞에 있는 수인을 죽일지 말지 고민하고 있을 때, 슬쩍 리안이 한 손을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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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기… 괜찮다면.”
    “응?”
    ​
    ​
    제스가 곧바로 말랑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리안을 바라보았다. 눈동자에서 별이 쏟아질 듯 애정이 가득해 리안을 들어 올렸던 손으로 제 볼을 긁적거렸다. 살벌한 표정을 보고 난 뒤라 그런지 저 표정이 평소보다 더 간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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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런 표정도 지을 수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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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섹시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던 표정이 떠올라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걸 느끼며 황급히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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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인들은 힘으로 서로를 탐색하고 그러는 거잖아? 그러니까 목숨을 건 결투는 곤란해도 대련 정도라면 -… 괜찮지 않나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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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안이 수인들의 도전을 받아들인다는 말에 축 늘어져 있던 남성 수인들의 귀가 슬금슬금 위로 치켜 올라가고, 구석에서 재미있는 구경을 하던 여성 수인들의 눈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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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지만… 괜찮아?”
    ​
    ​
    제스는 조심스럽게 리안의 볼을 검지로 쿡 찌르며 많은 의미가 담긴 질문을 속삭였다. 원래의 몸이 아닌데 괜찮냐는 의미였다. 이에 리안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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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인의 세계에선 수인의 규칙을 따라야지.”
   “힘들면 따르지 않아도 돼. 여기선 내가 제일 강하니까 -…”
    “제스는 내 가족… 이나 다름없으니까 가족의 문화에 익숙해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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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처럼 ‘의남매’라는 의미를 담아 ‘가족’이라는 단어를 뱉어냈다가, 제스가 언급했던 짝이라는 말이 머리를 쿵 하고 지나쳐 순간 말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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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한 오빠와 동생 사이 같은 거란 의미였다고 다시 말해야 하나…? 으으.. 그래버리면 제스의 고백을 대놓고 거절하게 되는 거잖아! 그, 그렇지만 받아줄 것도 아니라면… 나에겐 노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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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빙글빙글 돌던 생각은 ‘아닌 건 아닌 거다! 마음이 없으면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해라!’라는 쪽을 지나, ‘그, 막 단호하게 대답할 정도로 마음이 없는 건 아니고…’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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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머릿속에 화장 자국처럼 남은 설산 동굴 속 장면이 연이어 떠올라 볼이 홧홧하게 타올랐다. 그저 동생으로 만 보던 존재를 ‘여자’로 인지하고 호감을 가지게 된 것에 머릿속이 불이 난 것처럼 혼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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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안의 머릿속 미니리안들이 ‘어떡하지? 어떡하지?’ 상태가 되어 괴상한 댄스를 추고 있을 때, 제스는 감격으로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볼을 보기 좋게 붉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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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히.”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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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안에게만 보여주는 사랑스러운 웃음을 한껏 지어 보이더니 이내 그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리안의 머릿속은 재차 정지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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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
   “크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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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리스마의 아이콘이나 다름없던 제스가 길들여진 강아지처럼 사랑스럽게 웃으며 애정을 마구 흩뿌리는 장면에 남성 수인들은 으득으득 이를 갈았다. 저러다 송곳니가 부러지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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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드시 이긴다! 이겨서 저 자리를 쟁취해내겠어!’
    ‘크윽… 부럽다… 부러워… 하지만 승리한다면 저 자리는 내 자리가 되겠지.’
    ‘탐…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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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호 동의하에 목숨을 건 결투 -… 아니 대련이 결정되었다. 열정이 활활 불탄 덕분인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대련 장소가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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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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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하얀 눈이 단단하게 굳어 땅이나 다를 바 없는 하얀 공터 위에 여러 마리의 수인들이 땅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그런 그들 앞에는 리안이 태연한 얼굴로 검을 든 채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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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장 먼저 대련을 신청했다가 10초도 지나지 않아 땅바닥을 뒹굴게 된 하이에나 수인이 감기려는 눈꺼풀을 파르르 떨어 겨우 떠 리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
    ​
    “어떻… 게 이런… 실력을…커흑..!”
    ​
    ​
    그는 말을 전부 잇지 못하고 맥없이 철퍼덕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리안은 그들을 보며 빈손으로 볼을 긁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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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게 이렇게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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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그 세계에선 열심히 할수록 능력치가 제대로 상승하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룰이 존재한다. 반대로 꾸준히 적당히 노력하면 세계 정상급으로 성장한다는 룰도 존재했다. (물론 상황에 따라 룰이 천차만별로 변하기에 다른 경우의 수도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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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안은 마검을 좀 더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마검과 틈날 때마다 검술 연습을 하곤 했다. ‘고작 그 정도로?’싶은 수준의 연습이 매일매일 개그 필터를 통해 미친 효율을 보였고, 결국 마검 없이도 웬만한 놈들은 가볍게 정리할 수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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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지만 수인들을 쓸어버릴 정도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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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런 리안이 그들을 쓸어버릴 수 있었던 건 리안이 마왕을 들여다보고 그녀의 내면을 깊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던 권능이 과거부터 마검과 떨어지기 직전까지, 마검과 리안을 동조시켰기 때문이다. 
    ​
    ​
    마검을 들고 싸우는 정도로 강해진 건 아니지만 다크 판타지 세계에서 ‘강자’ 끝자락에 드는 이들 정도는 가볍게 정리할 수준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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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기에 반쪽짜리긴 하지만 개그 필터가 작동까지 하는 데다가 타인의 모든 것을 들여다볼 수 있는 출처를 알 수 없는 권능까지 발동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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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그 필터는 상대의 다리를 꼬이게 만들거나, 리안이 빠르게 달릴 때마다 ‘잔상’을 만들어냈고, 출처를 알 수 없는 권능은 상대의 공격이 어디서 어떤 식으로 올지 미리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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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기지 않는 게 힘든 싸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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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 인간들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더니 정말이었네.”
    “역시 대장님이 선택한 반려는 다르구나.”
    “어엇?! 대장님의 반려였어? 내가 슬쩍 찜하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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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그 필터가 제대로 작동할 땐 적들이 혼자서 자폭하는 것 같은 모습으로 싸움이 이어졌지만, 지금처럼 반만 작동할 땐 꽤 그럴듯한 싸움처럼 보였다. 그 덕분에 구경하던 수인들의 눈엔 리안이 굉장히 뛰어난 실력을 갖춘 검사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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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이 곧 전부인 수인들에게 리안이 호감으로 다가오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자연스럽게 리안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가진 듯 묘한 시선을 보내는 여성 수인들이 늘었다. 대장의 반려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시선이 줄어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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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무리에서 강한 수컷들을 모조리 쓸어버린 임팩트가 워낙 강한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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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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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시선에 예민하게 꼬리를 빠짝 세운 이가 있었으니… 바로 무리의 대방인 제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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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따끈따끈한..한편 가져왔습니다..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여유가 된다면 한편더 가져오겠습니다..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어쩐지 텐트 내부의 온도가 좀 더 떨어진 것만 같았다. 제스는 부드러운 웃음을 유지한 채 딱딱하게 굳어 슬슬 눈을 피하는 남성 수인들에게 말했다.

“그래서 어쩔 거냐니까?”

“그… 그게..”

그들은 죽지 않을 정도로만 무자비하게 패던 제스의 손길이 떠올라 몸이 절로 떨렸다. 몸이 자동반사적으로 굴복하려는 순간, 제스의 품에 편안하게 안긴 리안의 얼굴이 수인의 시야에 들어왔다.

“결투! 결투를 원합니다…!”

아득한 공포 앞에 꾹 눌려있던 자존심이 울컥하고 치솟아 올라 입 밖으로 툭 튀어나오고 말았다.

“제, 제가 저놈과 결투하여 이긴다면 대장님의 짝이 될 기회를 주십시오!”

입가의 미소까지 사그라들어 설산의 눈보라처럼 차갑기만 한 제스의 표정에 순간 말을 떨었지만, 하이에나 수인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겨우 전부 전할 수 있었다.

하이에나 수인은 식은땀을 주르륵 흘리면서도 밝은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내가 저놈을 가볍게 묵사발 내는 걸 보신다면 분명 대장님도 날 반려로 맞아주실 거야!’

그의 머릿속엔 엉망으로 바닥을 구르는 리안의 모습과 사랑의 빠진 얼굴로 그에게 달라붙는 제스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망상에 집중하느라 눈동자가 위쪽을 바라보고, 표정이 풀어져 인중이 길어졌다. 개그 필터의 영향으로 그 어느 때보다 흉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본인은 자각하지 못했다.

다른 두 수인도 기대감을 숨기지 못한 채 축 늘어뜨리고 있던 꼬리를 슬금슬금 들어 올렸다. 제스는 기대감에 가득 젖어가는 남성 수인들을 단 한마디로 전멸시켰다.

“굳이? 내가 대장인데?”

“…!”

그 말 그대로.

귀족을 전부 찍어누를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진 황제가 천한 신분을 가진 여자를 황비로 올린다고 막을 수 있는 자가 과연 존재할까?

힘이 곧 전부인 수인들에겐 제스는 폴리모프한 드래곤 황제만큼 막강한 존재였다. 비실비실해 보이는 리안을 반려로 맞이한다고 해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없어야 했다.

‘…주… 죽을지도 모른다.’

남성 수인들은 그제야 자신이 어떤 짓을 저지르고 있는 건지 알아차렸다.

제스가 무려 ‘반려’라고 선언한 것에 불만을 가지고 목소리를 높였으며, 무려 그녀가 ‘그래서?’라는 질문으로 살 기회를 줬음에도 멍청하게 짖어대고 말았다.

그녀의 말을 무시한다는 건 곧, 대장 자리를 내놓으라는 말과 같았다. 대장의 말을 무시할 수 있는 건 오로지 힘을 가진 새로운 대장뿐이었기 때문이다.

수인들의 꼬리가 자연스럽게 가랑이 사이를 파고들고 귀가 축 늘어져 파들파들 떨었다. 중력이 어깨를 짓누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몸이 슬슬 낮춰져 무릎을 꿇어앉아 고개를 푹 숙였다. 그대로 머리를 땅바닥에 박을 듯 자세가 비굴하게 낮춰지기 시작했다.

제스가 사냥감을 눈 앞에 둔 고양이처럼 눈앞에 있는 수인을 죽일지 말지 고민하고 있을 때, 슬쩍 리안이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저기… 괜찮다면.”

“응?”

제스가 곧바로 말랑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리안을 바라보았다. 눈동자에서 별이 쏟아질 듯 애정이 가득해 리안을 들어 올렸던 손으로 제 볼을 긁적거렸다. 살벌한 표정을 보고 난 뒤라 그런지 저 표정이 평소보다 더 간지러웠다.

‘그런 표정도 지을 수 있었구나.’

섹시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던 표정이 떠올라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걸 느끼며 황급히 말을 이었다.

“수인들은 힘으로 서로를 탐색하고 그러는 거잖아? 그러니까 목숨을 건 결투는 곤란해도 대련 정도라면 -… 괜찮지 않나 싶어서.”

리안이 수인들의 도전을 받아들인다는 말에 축 늘어져 있던 남성 수인들의 귀가 슬금슬금 위로 치켜 올라가고, 구석에서 재미있는 구경을 하던 여성 수인들의 눈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그렇지만… 괜찮아?”

제스는 조심스럽게 리안의 볼을 검지로 쿡 찌르며 많은 의미가 담긴 질문을 속삭였다. 원래의 몸이 아닌데 괜찮냐는 의미였다. 이에 리안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수인의 세계에선 수인의 규칙을 따라야지.”

“힘들면 따르지 않아도 돼. 여기선 내가 제일 강하니까 -…”

“제스는 내 가족… 이나 다름없으니까 가족의 문화에 익숙해지고 싶어.”

평소처럼 ‘의남매’라는 의미를 담아 ‘가족’이라는 단어를 뱉어냈다가, 제스가 언급했던 짝이라는 말이 머리를 쿵 하고 지나쳐 순간 말이 떨렸다.

‘친한 오빠와 동생 사이 같은 거란 의미였다고 다시 말해야 하나…? 으으.. 그래버리면 제스의 고백을 대놓고 거절하게 되는 거잖아! 그, 그렇지만 받아줄 것도 아니라면… 나에겐 노아가… ’

빙글빙글 돌던 생각은 ‘아닌 건 아닌 거다! 마음이 없으면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해라!’라는 쪽을 지나, ‘그, 막 단호하게 대답할 정도로 마음이 없는 건 아니고…’으로 이어졌다.

머릿속에 화장 자국처럼 남은 설산 동굴 속 장면이 연이어 떠올라 볼이 홧홧하게 타올랐다. 그저 동생으로 만 보던 존재를 ‘여자’로 인지하고 호감을 가지게 된 것에 머릿속이 불이 난 것처럼 혼란스러웠다.

리안의 머릿속 미니리안들이 ‘어떡하지? 어떡하지?’ 상태가 되어 괴상한 댄스를 추고 있을 때, 제스는 감격으로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볼을 보기 좋게 붉혔다.

“히히.”

“어?”

리안에게만 보여주는 사랑스러운 웃음을 한껏 지어 보이더니 이내 그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리안의 머릿속은 재차 정지해버렸다.

“아..”

“크윽..”

카리스마의 아이콘이나 다름없던 제스가 길들여진 강아지처럼 사랑스럽게 웃으며 애정을 마구 흩뿌리는 장면에 남성 수인들은 으득으득 이를 갈았다. 저러다 송곳니가 부러지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반드시 이긴다! 이겨서 저 자리를 쟁취해내겠어!’

‘크윽… 부럽다… 부러워… 하지만 승리한다면 저 자리는 내 자리가 되겠지.’

‘탐… 난다.’

상호 동의하에 목숨을 건 결투 -… 아니 대련이 결정되었다. 열정이 활활 불탄 덕분인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대련 장소가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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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눈이 단단하게 굳어 땅이나 다를 바 없는 하얀 공터 위에 여러 마리의 수인들이 땅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그런 그들 앞에는 리안이 태연한 얼굴로 검을 든 채 서 있었다.

가장 먼저 대련을 신청했다가 10초도 지나지 않아 땅바닥을 뒹굴게 된 하이에나 수인이 감기려는 눈꺼풀을 파르르 떨어 겨우 떠 리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떻… 게 이런… 실력을…커흑..!”

그는 말을 전부 잇지 못하고 맥없이 철퍼덕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리안은 그들을 보며 빈손으로 볼을 긁적거렸다.

‘이게 이렇게 되네.’

개그 세계에선 열심히 할수록 능력치가 제대로 상승하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룰이 존재한다. 반대로 꾸준히 적당히 노력하면 세계 정상급으로 성장한다는 룰도 존재했다. (물론 상황에 따라 룰이 천차만별로 변하기에 다른 경우의 수도 존재했다.)

리안은 마검을 좀 더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마검과 틈날 때마다 검술 연습을 하곤 했다. ‘고작 그 정도로?’싶은 수준의 연습이 매일매일 개그 필터를 통해 미친 효율을 보였고, 결국 마검 없이도 웬만한 놈들은 가볍게 정리할 수준이 되었다.

하지만 수인들을 쓸어버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 리안이 그들을 쓸어버릴 수 있었던 건 리안이 마왕을 들여다보고 그녀의 내면을 깊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던 권능이 과거부터 마검과 떨어지기 직전까지, 마검과 리안을 동조시켰기 때문이다.

마검을 들고 싸우는 정도로 강해진 건 아니지만 다크 판타지 세계에서 ‘강자’ 끝자락에 드는 이들 정도는 가볍게 정리할 수준은 되었다.

거기에 반쪽짜리긴 하지만 개그 필터가 작동까지 하는 데다가 타인의 모든 것을 들여다볼 수 있는 출처를 알 수 없는 권능까지 발동하고 있었다.

개그 필터는 상대의 다리를 꼬이게 만들거나, 리안이 빠르게 달릴 때마다 ‘잔상’을 만들어냈고, 출처를 알 수 없는 권능은 상대의 공격이 어디서 어떤 식으로 올지 미리 알려주었다.

이기지 않는 게 힘든 싸움이었다.

“와… 인간들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더니 정말이었네.”

“역시 대장님이 선택한 반려는 다르구나.”

“어엇?! 대장님의 반려였어? 내가 슬쩍 찜하려고 했는데..”

개그 필터가 제대로 작동할 땐 적들이 혼자서 자폭하는 것 같은 모습으로 싸움이 이어졌지만, 지금처럼 반만 작동할 땐 꽤 그럴듯한 싸움처럼 보였다. 그 덕분에 구경하던 수인들의 눈엔 리안이 굉장히 뛰어난 실력을 갖춘 검사처럼 보였다.

힘이 곧 전부인 수인들에게 리안이 호감으로 다가오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자연스럽게 리안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가진 듯 묘한 시선을 보내는 여성 수인들이 늘었다. 대장의 반려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시선이 줄어들지 않았다.

리안이 무리에서 강한 수컷들을 모조리 쓸어버린 임팩트가 워낙 강한 탓이었다.

“으르릉…!”

그런 시선에 예민하게 꼬리를 빠짝 세운 이가 있었으니… 바로 무리의 대방인 제스였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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