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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4

   양아치가 내게 변장을 권유한 이유는 간단했다.

   

   경매장 안에 들어갈 때 문제가 되는 것은 루시 알른이라는 존재 그 자체.

   

   그렇다면 내가 루시가 아니게 된다면 그 어떤 이상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거기까진 납득할 수 있었다. 그 뿐일까.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고 여겼다.

   

   허나 양아치가 들고 온 변장용 복장을 본 순간 나는 기겁하며 고개를 저었다.

   

   뜨거운 햇빛을 막아줄 검은 양산. 눈에 띄는 머리카락을 가려줄 챙이 큰 검은 모자. 거기에 더해 너풀거리는 검은 색 드레스.

   

   메스가키 캐릭터를 만드는 데 거부감이 없을 만큼 일본 문화에 가까웠던 나는 이 복장을 무어라 부르는지 알고 있었다.

   

   고스로리.

   

   무언가를 감추고 있거나 속이 시커먼 꼬맹이 캐릭터들이 자주 입던 옷.

   

   ‘저기요. 양아치 씨. 변태세요?’

   “양아치. 왜 변장에 네 성적 취향을 끼워 넣는 거냐? 이렇게 노골적인 변태라니. 역겹다 못해 징그러워.”

   

   “아뇨! 그런 것이 아닙니다!”

   

   양아치가 이 옷을 내민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눈에 띄는 내 얼굴을 양산과 모자로 감추고 하얀 피부를 기다란 옷으로 가린다.

   

   이런 복장을 입은 영애는 성격이 소극적인 경우가 많아 입을 다물고 있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으니 내 목소리는 물론이고 특징적인 말투 또한 숨기는 게 가능하다.

   

   저 복장의 효용은 이해했어.

   

   이해했지만 그래도 싫어!

   

   저런 옷을 입기 싫어서 이러고 있는 건데 자처해서 저 옷을 입으라고?

   

   하겠냐?!

   

   “잘 어울릴 것 같다만.”

   

   내 머리 위에 있던 얼빠 여우가 무어라 중얼거렸지만 난 그를 무시했다.

   

   그리곤 억지를 부려가며 양아치에게 다른 복장이 없냐 따져 물었다.

   

   허나 나의 투정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시간이 문제입니다.”

   

   느긋하게 준비할 시간이 있었다면 다른 식으로 변장하는 게 가능했을 것이다.

   

   적어도 며칠 전에 미리 연락해 두었다면 여러 방법이 생겼겠지.

   

   허나 난 경매가 시작되기 두 시간 전 갑작스레 여기에 방문했다.

   

   준비된 것도 없고, 준비할 여유도 없으니 양아치로써는 지금 자신이 꺼낸 것이 최선이었던 것이다.

   

   “경매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구매하실 생각이라면 대리인을 보내는 것도 방법입니다. 여기 적혀 있는 것은…”

   

   양아치는 그리 이야기를 하며 내게 리스트를 건네주었다.

   

   나는 그를 받았지만 진지하게 읽지는 않았다.

   

   어차피 경매 리스트의 적힌 물건은 외우고 있으니까.

   

   니그 경매장의 경매에는 두 가지 종류의 상품이 존재한다.

   

   리스트에 적힐 만큼 귀하고 가치 있는 상품.

   

   이 물건 하나를 구매하기 위해 여러 사람들이 몰릴 만한 물건.

   

   다른 하나는 경매장에 의해 잡다하다 판단된 물건.

   

   계속해서 비싸고 귀중한 물건만 내놓아서야 숨 돌릴 틈이 없으니 사람들에게 여유를 주기 위해 중간중간 끼워 넣어지는 녀석들.

   

   이 중에서 전자는 항상 고정되어 있고 후자는 매 회차마다 랜덤하게 결정된다.

   

   그리고 보통 유저의 입에서 대박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물건은 후자 쪽에서 발견되지.

   

   난 전자와 후자 모두를 노리고서 여기에 방문했다.

   

   고인물 특유의 지식과 꾸준히 상승시킨 감정 스킬. 거기에 높은 내 운 수치가 더해진다면 충분히 대박을 노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니까.

   

   그러니만큼 어지간해선 경매에 참가하고 싶지만.

   

   리스트에서 눈을 떼고 옷걸이에 걸린 고스로리 복장을 눈에 새긴 난 한숨과 함께 고갤 숙였다.

   

   <저 복장이 그렇게 싫으냐?>

   

   입을 우물거리면서 고민을 하고 있으려니 할배가 목소리를 냈다.

   

   ‘네. 싫어요.’

   <왜지? 크게 흠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대에게 안 어울릴 옷도 아니라 생각한다만?>

   ‘물론 그렇죠.’

   

   귀여운 여자아이가 저걸 입는다고 생각하면 크게 이상하지는 않다.

   

   색감이 약간 음울하긴 하지만 그 뿐. 사람에 따라서 충분히 귀엽다거나 예쁘다는 말이 튀어나올 복장이라고 본다.

   

   허나 그건 어디까지나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다.

   

   저를 입는 것은 물론이요 저를 입고 남들 앞에 선다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부끄러운 게야?>

   ‘그거랑은 비슷하면서도 달라요.’

   

   부끄러움이라는 단어가 뒤섞여 있는 것은 사실이다.

   

   허나 이 감정을 부끄러움이라고만 묘사할 수는 없다.

   

   그러기에는 이 안에 담긴 감정의 단어가 너무 많으니까.

   

   굳이 따지자면 이건 거부감일 것이다.

   

   여성스러움에 대한 거부감.

   

   아직 루시의 몸에 빙의하고서 채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그 동안에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긴 했지만 난 여전히 스스로를 남자라 생각하고 있다.

   

   반 강제적으로 아카데미의 교복을 입느라 치마라는 옷에 익숙해진 건 사실이지만 거기에도 정도가 있어.

   

   저런 나풀거리고 귀여운 옷은 좀 그래.

   

   루시의 옷장에 들어있는 옷보다야 훨씬 정상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지난 번 숲에서 괴상한 옷을 잘만 입기에 이런 것은 신경 안 쓴다 생각했다만.>

   ‘그 때는 불가항력이었잖아요!’

   

   할배! 간신히 기억 속에서 지우고 있었는데 흑역사를 굳이 끄집어내야겠어요?!

   

   ‘그리고 뭣보다 그 땐 얼빠여우 앞에서만 보여준다는 조건이었다고요!’

   

   결국 거기에 있던 파티원 모두에게 바니걸 복장을 보여주게 되었다만 애초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었다.

   

   얼빠 여우 앞에서만 보여준 후 마음속에 묻어 둘 생각이었지.

   

   원래 기행이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혼자서 집 안에서 생지랄을 하는 것과 남들 앞에서 생지랄을 하는 것은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법.

   

   전자는 잠깐의 현자타임을 느끼면 끝이지만 후자는 평생 동안 이불을 걷어찰 흑역사가 된단 말이다!

   

   멍하니 있다가 바니걸 복장을 다른 사람들한테 들켰을 때가 떠오르면 얼마나 괴로운 지 알아?!

   

   난 그런 경험을 다시 겪고 싶지 않다고!

   

   [빛을 바꾸는 반지.]

   

   어라?

   

   할배에게 대꾸하며 대충대충 리스트를 넘기던 나는 이번 경매 리스트에 있어선 안 될 물건을 보고서 한쪽 눈썹을 치켜들었다.

   

   저게 대충 뭔지는 안다.

   

   두 반지가 한 쌍이 되는 물건으로 저 안에 마력을 담으면 색이 바뀌는데 한 쪽의 색이 바뀌면 반대쪽의 색도 바뀌는 녀석이다.

   

   보통은 색 마다 의미를 정해두고 긴급한 연락을 하는 용도에 쓰이는 걸로 안다.

   

   사이드 퀘스트에 등장하기에 기억하고 있다.

   

   나름 귀하지만 그렇다고 비싼 물건도 아니라 잡템으로 분류되는 녀석인데 왜 리스트에 적혀 있는 거지?

   

   그를 의아하게 생각해서 양아치에게 물었더니 자기가 건네준 건 이번 경매에 나오는 모든 아이템의 리스트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니까 경매장에서 내어준 리스트 뿐 아니라 그 이외의 모든 아이템이 모두 적혀 있다는 이야기지?

   

   ‘그런 거였으면 빨리 말하라고요!’

   “야. 양아치. 그런 거였으면 빨리 말해야 할 거 아냐. 머리에 여자 생각밖에 없어서 다른 쪽으로는 생각이 잘 안 굴러가나 보지? 징그럽고 무능한 변태같으니.”

   

   “저 분명 이야기를 드렸습니다만?!”

   

   그랬나? 하고 옆쪽으로 시선을 돌렸더니 포셀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말했었는데 내가 못 들었을 뿐인가.

   

   이게 다 할배 때문이야.

   

   괜히 바니걸 입었던 이야기를 꺼내서 날 괴롭게 만들다니!

   

   <내가 말을 걸기 전에 이야기를 한 것이다만.>

   

   어쨌든 잘 됐다.

   

   이러면 마음 놓고 대리인을 보내도 괜찮아.

   

   여기에서 사고 싶은 물건과 우선순위를 정해주면 알아서 해결해 줄 테니까.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나는 느긋하게 리스트를 구경했다.

   

   마력을 먹는 보석?

   

   오. 이것도 나왔구나. 이건 조이한테 주면 좋겠다.

   

   꾸준히 마력을 담아서 개화시키면 꽤 쓸만한 녀석이 되니까.

   

   이거 사무작업할 때 효율을 올려 주는 아이템이었지?

   

   이건 베네딕한테 주면 좋을 테고.

   

   그리고 이건…

   

   머릿속으로 지금 내가 가진 예산을 생각하면서 살 물건을 고민하던 나는 리스트에 적혀 있는 한 문장을 보고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키 씨. 이거…’

   “양아치. 이 물건 진짜 나오는 거 맞아?”

   

   “예. 별 대단찮은 물건입니다만 이번에 들어온 물건이 영 적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경매 물건의 순서를 정하는 담당자에게 들은 이야기라는 양아치의 말에 난 미간을 찌푸린 채 문장을 노려봤다.

   

   [신성을 담으면 빛나는 석판]

   

   이건 겉으로 보기에는 잡템에 불과하다.

   

   신의 길에 들어선 자가 신성을 담으면 환한 빛을 내지만 그 뿐.

   

   실질적인 효과는 아무것도 없었지.

   

   설명에 의미심장한 문구가 적혀 있는 데다 석판마다 설명이 달라서 무언가가 있는 거 아니냐는 소리를 들었다만 대부분의 유저는 그런 걸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래도 드랍템으로 나오면 다들 좋아했다.

   

   이 석판 드랍율이 엄청 낮은 대신 상점이나 경매장에 넘길 때 비싸게 받아 줬거든.

   

   주신 교회와 관련된 물건을 모으는 거상들이 비싸게 사준다나 뭐라나.

   

   허나 게임이 발매되고 나서 이 주에 달하는 시간이 지나 이 아이템의 평가가 뒤집혔다.

   

   이 물건이 특정 장비를 얻기 위한 단서 혹은 열쇠가 되는 물건이란 사실이 한 유저에 의해 밝혀진 것이다.

   

   그 후로 ‘신성을 담으면 빛나는 석판’은 성직 계열 캐릭터를 키울 때 여유가 된다면 보관해두어야 하는 물건.

   

   다른 캐릭을 키운다면 거들떠 볼 필요 없이 팔아넘기는 게 나은 물건이 되었다.

   

   그런데 있잖아.

   

   지금 나는 성기사 트리를 타고 있는 입장이란 말이지.

   

   허접 주신이 나를 놓아줄 리가 없으니 이 직업을 바꿀 수도 없을 테고.

   

   머리가 아파졌다.

   

   ‘신성을 담으면 빛나는 석판’은 비싸다.

   

   진짜 더럽게 비싸다.

   

   지금 내가 들고 있는 예산 모두를 투자한다 하더라도 아슬아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만약에 이걸 구매하게 된다면 내가 계획하던 모든 걸 포기해야 하겠지.

   

   여러 사람들에게 줄 선물은 물론이고 유희의 팔찌마저도.

   

   이건 대박이야.

   

   경매장에 이게 나왔다고 게시판에 올리면 비틱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그치만 무작정 구매할 수는 없어.

   

   이게 단서가 되는 석판인지 열쇠가 되는 석판인지를 모르니까.

   

   나에게 단서는 필요치 않다.

   

   그에 대해 모든 걸 외우고 있는데 굳이 단서를 찾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허나 열쇠는 필요하다.

   

   신성 계열. 그것도 전위인 성직자로 일하는 입장인 이상 반드시.

   

   두 개를 구분할 수 있냐고?

   

   가능해. 감정 스킬로 보면 바로 나올 테니까.

   

   바꾸어 말하자면 저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내가 경매장에 가야 한다는 이야기지.

   

   “알른 영애. 어찌 하시겠습니까?”

   

   시간이 촉박한 것인지 양아치가 어색한 웃음과 함께 나를 재촉한다.

   

   그런 그의 뒤에는 고스로리 복장이 여전히 자신의 귀여움을 자랑하고 있었다.

   

   남자로써의 나냐. 소울 아카데미 썩은물로써의 나냐.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전자는 쓰잘데기없는 자존심이었지만 후자는 현실이었으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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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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