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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5

    저녁 노을이 지는 시간.

     

    모든 일을 끝마치고, 네르는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베르그가 어디서 무얼하고 있는지부터 볼 생각이었다.

     

     

    시엔과 잠시 포옹을 나눴던 베르그는 이후 굳은 표정으로 떠났고, 네르는 계속해서 그의 상태를 걱정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네르는 시엔부터 찾았다.

     

     

    -똑똑.

     

    ‘들어오세요.’

     

     

    네르는 방안에 들어서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시엔을 보았다.

     

    가련한 분위기가 그녀에게서 흘러나왔다.

     

    베르그와 함께 있을때는 느끼지 못했던 분위기였다.

     

     

    “…콜록…! 콜록…!”

     

    네르는 자신이 왜 그녀를 찾게 되었는지도 알지 못했다.

     

    어떠한 대화를 분명 나누고 싶었는데…그게 어떤 대화일지는 본인도 아직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당장의 감정이 뭔지도 알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사태에 네르 또한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약은 드셨나요.”

     

    네르가 시엔에게 물었다. 어쩌면 베르그에게 이야기할 주제를 찾고 싶은 마음에 이곳에 온걸지도 몰랐다.

     

    시엔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고개를 돌려 네르를 바라본 시엔은 작게 미소를 지어보이며 답했다.

     

    “…감사해요.”

     

     

    네르는 시엔을 보며 침을 삼키다, 예의차 걱정의 말을 건네주었다.

     

    “…오늘은 따뜻하게 주무세요. 땀이 날 정도여도 괜찮아요. 혹시나 참기 힘들만큼 목이 간지러워지시면, 옆에 구비해둔 약초도 씹으시고요.”

     

    “네.”

     

    “…”

     

     

    할 말을 잃은 네르는 결국 몸을 돌렸다.

     

    어색함을 견디는게 쉽지 않았다.

     

     

    “…걱정돼요.”

     

    그때, 떠나는 네르에게 시엔이 속삭였다.

     

    네르는 그 말에 시엔을 돌려보았다.

     

    아까는 보지 못한 두려움이 그녀의 얼굴에 새겨져 있었다.

     

     

    “…”

     

    이번에도 네르는 자신의 감정은 일단 접어둔채, 예의를 차려 대화를 이어갔다.

     

    “…나으실 수 있을거에요.”

     

    하지만 그 말에 시엔은 고개를 저었다.

     

     

    “…제가 걱정된다는 게 아니라…베르그가 걱정돼요.”

     

    “…”

     

    “…티내지는 않았지만, 베르그도 힘들어하고 있을텐데.”

     

     

    시엔이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콜록! 콜록…!”

     

    그리고 그와 동시에 기침이 터져나왔다. 기침없이는 한숨조차 제멋대로 쉴 수 없는 듯 보였다.

     

     

    시엔은 그렇게 기침을 내뱉다, 호흡을 진정시키며 네르에게 말했다.

     

    “…베르그를 조금만 지탱해주세요.”

     

    “….네?”

     

    “힘겨워하는 상황에…저까지 이래서는…”

     

     

    네르는 시엔의 말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입술을 가볍게 깨물다보니 입술이 가볍게 젖어간다.

     

     

    그녀는 시엔의 말에 오히려 반문했다.

     

    “…베르그에게 다가가지 말아달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며칠전 베르그를 떠올리며 그의 침대에 누워있다 걸렸던 네르였다.

     

    그때의 수치심으로 아직까지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하고 있었다.

     

     

    시엔은 그 말에 쿡쿡 웃었다.

     

    “어차피 다가가실 것 아니신가요?”

     

    “…”

     

    “저도 당신의 자리에 있던 적이 있어서 잘 아는걸요.”

     

     

    따지고 보면, 시엔 또한 베르그에게 거절 당한 적이 있었다.

     

    이제는 상황이 뒤집혔을 뿐이었다.

     

    그런 기준으로 보았을 때, 시엔은 자신의 마음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일지도 몰랐다.

     

     

    시엔에게 반박의 말을 찾지 못할 동안, 그녀가 말한다.

     

    분위기가 한층 진중해진다.

     

     

    “…저도 싫어요.”

     

    시엔은 고개까지 숙여가며 표정을 숨겼다.

     

    “하지만…상황이 이렇게 됐는데….제 욕심만을 내세울 마음은 없어요.”

     

    “…”

     

    “저는 베르그만 행복하면 돼요.”

     

     

    네르는 시엔이 베르그에게 가진 마음의 깊이를 이렇게나마 실감했다.

     

    그것을 통해 시엔과 베르그의 끈끈함까지도 엿볼 수 있었다.

     

     

    그럴수록 네르는 마음이 답답해졌다.

     

    끼어들 공간이 없다는 걸 실감할때마다 이렇게나 아팠다.

     

     

    “콜록…! 콜록…!”

     

    네르는 시엔의 기침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더 오랜 시간 이곳에 있으면 안될 듯 했다.

     

     

    네르는 시엔을 어깨너머로 바라보며 말했다.

     

    “…따뜻하게 주무세요. 내일 뵐게요.”

     

    “네. 내일 뵐게요.”

     

     

    .

    .

    .

    .

     

     

    네르는 베르그가 마을을 잠시 떠났다는 이야기에, 밖으로 나섰다.

     

    베르그가 마을 밖에서 휴식을 취할 곳이라고는 한 곳 밖에 없었다.

     

    네르조차 자주 방문했던 곳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넓은 평원, 살짝 높은 언덕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고 있는 베르그의 모습이 보였다.

     

    “…”

     

    그는 힘든 티를 잘 내지 않았지만, 이렇게 지켜보고만 있으면 그의 마음이 전부 전달되어 날아온다.

     

    베르그가 극도로 힘겨워하고 있다는게 느껴졌다.

     

     

    네르는 말 없이 그에게 다가갔다.

     

    이대로 그를 안아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를 위로할 수 있는 위치에 머무르고 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지 못하는 그녀는 베르그의 옆에 조용히 앉기 밖에 더 하지 못했다.

     

    “…”

     

    베르그도 그런 네르의 존재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네르는 계속해서 고민했다. 어떠한 말을 해주어야 하는지 계속해서 생각했다.

     

     

    “…베르그.”

     

    “…”

     

     

    네르는 가만히 노을을 바라보고 있는 베르그를 보다 속삭였다.

     

    “…나을 수 있을거야.”

     

    “…”

     

    “…너무 힘들어하지 마.”

     

     

    하지만 말을 하면서도, 네르는 내면의 악마가 속삭이는게 들렸다.

     

     

    혹시나 시엔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

     

    …좋지 못한 끝이 예정되어있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도무지 비집고 들어갈 수 없을것만 같은 그와 시엔의 관계였다.

     

     

    …시엔에게 문제가 생기면…틈이 생겨나진 않을까?

     

     

    “…”

     

    그 악마의 속삭임에 네르는 자신이 정말 망가져 가고 있다는 걸 깨닫고 있었다.

     

    이런 생각을 가져볼거라 상상도 하지 못했다.

     

     

    네르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털어냈다.

     

    자신을 구원해준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그녀를 흔들고 있었다.

     

    당장은 자신의 감정을 내세울 순간이 아니었다.

     

     

    힘겨워하는 베르그에게 힘이 되어주어야하는 상황이었다.

     

    네르는 숨을 들이쉬다 말했다.

     

     

    “…건강해 보였어.”

     

    “…?”

     

    베르그의 관심이 옮겨왔다. 그가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해주었다.

     

    “오기 전에 시엔님을 만나고 왔는데, 건강해 보이셨어.”

     

    “…”

     

    “나도 노력해서 꼭 낫게끔 할게. 특히나 더 신경을 쓸게. 날…믿어줘.”

     

     

    네르는 믿어달라는 말을 내뱉을 위치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모든게 틀어진 이유도 바로 그 믿음이 깨져서였다.

     

    어쩌면 그래서 그 믿음을 더 수복하고 싶었던걸지도 몰랐다.

     

     

    “…”

     

    베르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그녀 앞에서 약한 모습을 드러내는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 사실에 네르의 심장이 더 거칠게 뛰었다.

     

    베르그의 도움이 되어주고 싶어 미칠 듯 했다.

     

     

    “…난 왜 항상 소중한 사람들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려 하는걸까.”

     

    베르그는 자신도 모르게 푸념을 흘리고 있는 듯 했다.

     

    참고 참았던 감정들이 비집고 나오는 것 같았다.

     

     

    “…부모도 누군지 모르고. 형제도 없고. 슬럼의 친구들을 각자 갈길로 떠나 이별을 했고. 용병단의 동료들도. 아담 형도. 너와….”

     

     

    ‘너와’ 이후 누군가를 말하려던 베르그는 이내 입을 닫았다.

     

    네르는 심장이 짓눌리는 압박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감정이 쥐어짜내지듯, 베르그를 향한 마음은 깊어지기만 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네르는 자신의 꼬리가 베르그에게 닿아있음을 깨달았다.

     

     

    베르그는 한숨 뒤 말을 이었다.

     

    “…근데 이제는 시엔까지. 또 이렇게 위기가 오고 있어. 내 아이까지도…어떻게 될지 모르고.”

     

    “…베르그.”

     

    “왜 난 이렇게 혼자여야 하는거지. 소중한 존재들이 곁에만 있어줘도 난 충분한데.”

     

     

    -콱!

     

    결국 네르는 베르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그의 얼굴을 붙잡았다.

     

    “…넌 혼자가 아니야, 베르그.”

     

    네르가 말했다.

     

    이것만큼은 그가 분명히 알아주어야 했다.

     

    “…난…죽을때까지 네 편이야. 무슨 일이 생겨도…네가 어떠한 모습이 되더라도, 어떠한 상황에 놓이더라도 난 네 편이야.”

     

    힘 없는 베르그의 눈빛이 그녀의 말에 잠시 살아났다.

     

    과거에는 이런 거리감이 그 어느때보다 익숙했었다.

     

    그를 안아도, 만져도, 잡아도 그 무엇도 문제가 되지 않았었다.

     

     

    베르그는 그런 네르를 잠시 바라보다, 손을 저으며 네르의 팔을 밀어냈다.

     

    “…놔, 네르.”

     

    “…”

     

    네르는 베르그의 부탁에 힘없이 그를 놓아주었다.

     

    그저 제자리에 다시 앉아 베르그만을 바라보고 있게 된다.

     

     

    베르그는 예전처럼 그녀를 격하게 밀어내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네르는 자신이 약해진 베르그의 틈을 파고 들었다는 걸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그에게 다시 다가가고 싶었다.

     

    예전처럼 다시 부부가 되고 싶었다.

     

     

    가능성 없는 꿈을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베르그는 한숨을 내쉬다, 네르에게 말했다.

     

    “…고마워.”

     

    무엇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시엔을 보살펴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이었을까, 아니면 방금의 위로에 대한 고마움이었을까?

     

     

     

    무엇이 되었든, 네르는 베르그의 그 따스한 말에 울컥했다.

     

    오랜 기억들이 다시금 되살아난다.

     

     

    “…베르그.”

     

    이어서, 부적절한 생각이 그녀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감정이 격해지니 마음을 참기가 어려웠다.

     

    어차피 여기서 최악의 결과는 거절일 뿐이다.

     

    시도는 한 번 해보고 싶었다.

     

     

     

    “…나 입맞춰도 돼?”

     

    그녀가 물었다.

     

    노을빛에 물든 베르그의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단둘이 머무는 상황속에서 그에게 묻지 않는게 오히려 더 어려웠다.

     

    게다가, 아직 그의 내면에서 자신의 흔적들을 찾을수 있는 듯 했다.

     

    그가 자신이 경험한 아픈 이별들을 이야기하며, ‘너와’라고 속삭인 것은 아직도 뇌리에 박혀 있었다.

     

     

    이 제안은 그녀 나름의 위로이기도 했다.

     

    베르그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이렇게나마 알려주고 싶었다.

     

    “…시엔님한테는 이야기하지 않을게.”

     

    “…네르.”

     

    “나 아직 좋아하잖아… 나 아직 소중히 여기잖아…베르그…”

     

    “…”

     

    그 말에 베르그는 쉽사리 반박을 내뱉지 못했다. 네르는 베르그라는 사람을 알았다.

     

    베르그는 애정을 깊이 나누었던 사람은 쉽게 잊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그랬으니 7년이 지나서도 시엔이라는 사람과 다시 이어진 것이고, 아직도 아담 단장을 놓아주지 못한 것이다.

     

     

    “…”

     

    네르는 천천히 베르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비밀로 할게.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을게.”

     

    “…네르.”

     

    “…”

     

    가까이서 본 베르그라 그의 모든 감정이 더 생생히 보였다.

     

    살짝은 찌푸려진 눈썹. 조금씩 흔들리는 눈동자. 거절의 의사.

     

    “…”

     

    그 모습에 네르는 천천히 팔을 풀었다.

     

    그 무엇보다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의 향기가 멀어져갔다.

     

    그녀는 물러서며 베르그에게 말했다.

     

     

    “…미안.”

     

    베르그는 대답 대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려 떠나기 시작했다.

     

     

    네르는 뒤늦게 밀려드는 후회에 그대로 자리에 앉아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베르그도 알아주어야 했다.

     

    감정을 억누르는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베르그도 그 사실을 무엇보다 잘 알 것이었다.

     

     

    “뭐해.”

     

    그 순간, 베르그가 네르에게 말했다.

     

    네르는 화들짝 놀라 떠나가던 베르그를 바라보았다.

     

     

    “…어?”

     

    “…일어나. 가자.”

     

     

    베르그는 자신이 같이 따라오기를 기다려주고 있었다.

     

    어쩌면 기승을 부리는 도적들 때문에 그러는 걸 수도 있었다.

     

    하지만 네르는 이유는 상관이 없었다.

     

    자신을 걱정해주었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응…!”

     

    그렇게 그녀는 다시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마만에 느끼는 행복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모코박스님! 1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ㅋㅋㅋ스포가 되니 비밀로 하겠습니다.

    gim_526님! 12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열심히 써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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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IW 섞일 수 없는 이종족 아내들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Polygamy is abolished.

We don’t have to force ourselves to live together any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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