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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5

       그사이 홀로 일어난 청이 도복 자락을 툭툭 털며 말했다.

         

       “어머, 모용 소저? 혹시 취하셨나요? 왜 갑자기 바닥을 구르시고.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나버리고 말았네요. 아, 혹시 저를 일으켜 주시려는 독창적인 수법이셨나요?”

         

       “바, 바닥이 좀 미끄럽네요. 서문 소저가 의외로! 상당히! 무거우신가 봐요. 묵직한 걸 잡아당기는 바람에 중심을 잃고 말았는데, 무슨 쇳덩이처럼! 무거운! 것이, 서문 소저가 그리 안 보였는데 몸무게가!!! 아차, 죄송. 제가 말실수를 했네요. 악의는 결코 없었답니다.”

         

       어제는 청이 두다다 약점만 골라서 쏘아댔기에 넋 놓고 당한 것이지, 모용주희의 독설도 어디 가서 지지는 않는다.

         

       청이 생각했다.

       몸무게야 여인들이나 신경 쓰는 거고. 내가 그런 걸 신경이나 쓸 줄 아나?

       전혀 타격도 없고 기분도 안 나쁜데?

       상대를 알고 덤벼야지 이, 이 멍청한, 대가리 텅텅 빈, 망할 년이.

       정말 아주 쪼금, 반의반의반의반푼어치도 기분이 상하지 않았거든?

       누가 저런 유치한 소리에 긁힌다고.

         

       전혀 타격을 받지 않은 청이 대답했다.

         

       “아니요. 사실인데 죄송할 것이 무어 있겠어요. 가슴팍에 묵직한 살덩어리를 달고 있는 바람에. 모용 소저가 정말 부러워요. 어깨가 정말정말 너무너무 가벼우시겠다.”

         

       청의 인간 초월 청력이 모용주희가 아드득 이를 가는 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아! 이런! 아니다! 괜찮으신가요!? 저는 넘어져도 받쳐줄 것이 있는데. 모용 소저는 없으시지 않으신가요. 저보다 많이 아프시겠는데, 죄송해서 어쩌지, 이게 무거워서, 에잇 못된 가슴 같으니라고, 드릴 수 있다면 나눠드리고 싶은데.”

         

       청이 제 가슴을 찰싹찰싹 두드리며 탓을 하니, 모용주희의 이마에 핏대가 선명하게 솟아올랐다.

         

       “피, 필요 없으니까, 으윽. 그래요, 오늘, 아주 마시고 죽어. 봐요. 끝장을 보자구요.”

         

       모용주희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러면서 애써 생각하기를.

         

       참자. 참아.

       어차피 술 대결 앞두고 나는 차 마시고 저년은 멍청하게 술이나 퍼먹는 것도 모르니까, 하고.

         

       그렇게 자리로 돌아가 두 병 정도 비우고 나니, 아까 내려간 여인이 술 대결 준비가 다 되었다는 소식을 알렸다.

         

       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준비가 돼?

         

       그러자 모용주희가 의기양양 사악한 표정으로 보란 듯이 으스대며 말하는 것이었다.

         

       “이제, 진짜 대결을 하러 가 보실까요?”

         

         

         

       중원에서 주량이란 사내의 자존심과 직결되는 아주 중대한 문제였다.

         

       그 예를 들자면 장비가 있겠다.

       장비가 술을 처먹고 주사를 부리다가 결국 어떻게 되었건가.

       취해서 자던 와중에 칼날이 목에 닿자, 모기가 앉은 줄 알고 손으로 칼등을 힘껏 내리쳤으니 단칼에 제 목을 잘라낸 것이다.

       즉, 암살이 아니라 자살이었다.

       목숨 걸고 목 베러 왔던 두 명의 암살자는 또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동생의 버르장머리를 진작에 잡지 않은 두 형이 장비를 죽였다고 할 수 있겠다.

         

       평소에 그렇게 술을 처먹는데도 불구하고 형들이 어찌했는가.

       호걸이라면 술 처먹고 주사 좀 부릴 수 있지, 왜 우리 아우 기를 죽이느냐고 극성맞은 학부모처럼 굴었던 것이다.

       왜냐면 주량은 사내의 자존심이며, 동생의 자존심이 곧 의형의 자존심이기에.

         

       덕분에 완전히 개새끼로 진화하여 술만 먹으면 보이는 부하를 전부 채찍질했다.

       그제야 유비가 말리는 척을 하기를-

       그렇게 개같이 굴다 뒤통수 맞을 수 있으니 좀 삼가라고, 사실 그조차 장비가 걱정되어서 하는 말이었다.

       의동생에게 채찍을 맞아 사경을 헤매는 천한 부하놈들 따위 뭐 죽으면 또 구하면 되지만, 이제 하나 남은 아우는 다시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유비에게는 아들조차 자子는 또 낳으면 되는 하찮은 존재였으니(지가 낳는 것도 아닌데), 이름 모를 군사 따위 알게 무어란 말인가.

         

       유비는 아우 둘을 다 잃자 모든 신하와 백성들을 쓰레기처럼 내다 버린 최악의 군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쨌거나, 장비가 술을 마심에 의형들이 역시 우리 동생 최강이다 박수를 치고 찬사를 보내며 연회마다 출격시켜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주량으로 기강을 세게 잡도록 했다.

       중원 사내에게 주량이란 이런 것이다.

         

       사실, 이는 중원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주량이란 문화권을 초월하여 사내의 본질에 맞닿은 어떤 본능이라고 하겠다.

         

       그러하니 중원에서 술 대결이라 하면 그 체계도 어느 정도 잡혀있는 것이다.

       술 대결의 규칙은 이러했다.

         

       탁자 위에 술동이 놓고, 옆에는 아예 술독에 바가지를 띄워놓는다.

         

       술동이는 딱 한 번만 입을 대고, 이후로는 머리 위로 털어 남은 술을 뒤집어써야 했다.

       상의가 흠뻑 젖게 되면 패배하게 되기에, 한번 입을 대면 흘리지 않고 깔끔히 비우는 것이 중요했다.

         

       그 외에도 패배의 조건은 여럿이 있었다.

       더는 못 마시겠다고 물러나는 쪽이 패배.

       몸을 못 가눠 술동이를 깨뜨려도 패배.

       토하는 쪽이 패배.

       내기로 주정을 밀어내다 걸리면 천하의 개쌍놈.

       술이 다 떨어지면 그대로 대기하다 먼저 소변을 보러 가는 사람의 패배로 쳤다.

       당연히, 술이 떨어지기 전에 변소에 가면 그 즉시 실격패다.

         

       모용주희가 준비한 진정한 함정이 바로 이것이었으니, 준비하러 보낸 친구(따까리)가 각 층을 돌면서 금양검화 대 면사녀의 주량 대결을 열심히 떠들어댔다.

       참고로, 금양검화 대 면사녀라는 어휘 선택부터 참으로 악의적이었으니, 무림오화 초미인과 얼굴 가린 추녀의 대결로 몰아간 신묘한 한 수였다.

         

       그렇게 일 층에 결투장이 만들어졌다.

       용봉지회의 천무대, 지룡대 그리고 그에 아직 소속되지 않은 중소방파의 후기지수 호소인까지 몰려들어 아예 식탁 의자 전부 치워버려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생 보기 힘들 여인들의 정식 술 대결이 아니던가.

       여인들이 주량을 자랑하는 소리조차 듣기 쉽지 않은 세상에 아예 사람들 앞에서 공개 대결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청과 모용주희가 술동이 올라간 식탁을 두고 마주 보았다.

       그리고 사이에는, 청이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누구신데 가운데서 심판을 보시지?

         

       정답은 누각의 주인이었다.

       그러나 어차피 청 뿐만 아니라 모두 관심이 없어서 모르는 일이었다.

         

       “자, 한 잔이요!”

         

       누각 주인이 커다란 두로 술독에서 술을 퍼 올려 동이에 담아냈다.

       두斗란 술을 푸는 국자를 말하는 것으로, 같은 글자를 쓰는 북두칠성은 북쪽의 국자 모양을 한 일곱 개의 별이라는 뜻이다.

         

       모용주희는 자신만만했다.

       칠 층에서 이미 어느정도 승패를 굳히고 왔으니, 오히려 차를 열심히 퍼먹느라 고역이었다.

       그에 비하면 저년은 그 독한 두강주를 일곱 병이나 비우고 온 참이 아니던가.

         

       청은 그냥 좀 감탄했다.

       이걸 위해서 쌓아 올린 계획이었구나.

       만취해서 약점 잡아 놀려먹겠다는 게 아니라 아주 온 사람들 앞에서 제대로 추태를 보여주겠다고.

         

       그러나 상대가 너무 나빴다.

       지피지기를 외친 손자는 오늘도 연전연승 백전백승 불패 신화를 쌓아가고 있었으니.

         

       청이 막 동이를 들려는 때였다.

         

       “잠깐! 서문 소저. 면사는 벗으셔야지요? 이대로라면 제가 너무 불리하지 않나요? 머리 위에 다소 남기더라도 면사가 먹으면 그만큼 제가 불리한 것 같은데요. 나금은 귀한 물건일수록 술이 많이 들어갈 텐데.”

         

       나금이란 비단으로 짠 면사를 말한다.

       자기는 차 마시면서 청에게 술을 퍼먹인 여인이 하는 소리였다.

         

       그러자 좌중의 시선이 청에게 몰렸다.

       옳소! 누군가 소리치는 소리.

       청이 훗 웃으며 되받아쳤다.

         

       “모용 소저가 마땅히 이 정도는 감수하셔야 하지 않으시겠어요? 모용 소저께서는 술을 드시다 흘리시더라도 상의가 젖을 일이 없으시잖아요?”

         

       청이 마치 턱수염을 쓰다듬는듯한 손모양을 하며 말했다.

       실은 턱에 맺힌 물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었으니 사람들도 곧장 그 진의를 알아차렸다.

       좌중의 시선이 청의 가슴팍으로, 그리고 모용주희의 가슴팍으로 분주히 왔다 갔다 오가는 것이다.

         

       그 또한 옳소! 누군가 다시 소리를 치는 통에, 좌중에 한바탕 웃음소리가 요란했다.

         

       모용주희의 꽉 쥔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그리하여 한 동이.

         

       “두 잔이요!”

         

       그리고 두 동이.

         

       “세 잔이요!”

         

       “네 잔이요!”

         

       “다섯 잔이요!”

         

       이쯤 되니 구경꾼 중에서도 안색이 흐려지는 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동이를 내려놓은 모용주희가 살짝 비틀거리다 가까스로 한 발 물러나며 중심을 잡았다.

         

       “어머, 모용 소저? 무리를 하고 계신 것이 아니신가요? 저는 이제 겨우 조금 취기가 도나 싶은 참이랍니다, 이렇게 연약하신 분께서 어찌 술 대결을 청하셨나요?”

         

       “누가, 취했다고. 안 취했어! 다음 잔!”

         

       구경꾼들이 생각했다. 취했네. 취했어.

         

       “여섯 잔이요!”

         

       “일곱 잔이요!”

         

       이쯤 되니 승패가 보이기 시작했다.

       모용주희의 소매 좁은 붉은 저고리는 반쯤 젖어 몸에 달라붙은 상태였다.

       반면에 청의 무복에는 물기 한 점 없이 깔끔한 상태였다.

         

       “모용 소저. 이쯤에서 모자람을 알고 물러나시는 편이 좋지 않으시겠어요? 혹여 이 많은 세인 앞에 흉한 꼴을 보이시지 않을까……”

         

       “시끄러워! 누가, 취했다고…….”

         

       “취했다고는 말씀드리지 않았는데. 소저 많이 취하신 것 같은데……”

         

       “다음 잔! 다음 잔 가져와!”

         

       “여덟 잔이요!”

         

       누각 주인이 그리 말하며 술을 퍼올리기 시작했다.

         

       청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야 이 많은 사람 앞에서 망신을 주려고 한 그 마음씨야 괘씸하기 그지없지만, 이러다 정말로 큰일 치르게 생기지 않았는가.

       악업이라도 쌓은 년이라면 당장에 끝장을 보겠는데. 그도 아니니 멀쩡한 여인을 욕보여서야 어른이 할 짓이 아니었다.

         

       청이 동이를 들어 술을 마시다가 돌연 손을 놓으니 와장창 쨍그랑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펴졌다.

         

       “어머. 제가 패배하고 말았네요. 술 대결은 모용 소저께서 승리하셨으니 저는 이만 물러나도록 하겠어요.”

         

       청이 그리 말했지만, 구경꾼 중 그 누구도 그리 생각하지는 않았다.

       누가 봐도 상대를 걱정하여 적당히 지고 물러나는 모양새였으니, 얼굴 가린 여인이 마음씨는 참으로 고운 모양이라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다.

         

       어우. 배불러 죽겠네.

       청이 배를 쓰다듬고 싶은 욕구를 억지로 참아내며 계단으로 향하는 참이었다.

       물러나더라도 쓰러진 공손요예는 챙겨가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무천각 가서 해장용 탕국이나 끓여달라고 해야겠다고, 그럼 맑은 게 낫나 얼큰한 게 낫나 고민하는 와중이었다.

         

       “야! 너! 거기 안 서! 이게 무슨 짓이야!”

         

       “패자는 말없이 물러나는 법이 아니겠어요? 오늘은 몸 가누기가 힘들어 돌아가려 하니, 승자로서 아량을 베풀어 주시지요.”

         

       “너, 너! 내가 우스워!? 그깟 젖가슴 좀 크다고 유세를 떠냐고! 그래, 나 가슴 없는 년이다! 나 가슴 없는데, 네가 뭐 보태준 거 있어!?”

         

       성대한 자폭이었다.

         

       아이고야, 이 꼴 안 보려고 물러났는데.

       청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소저, 많이 취하셨어요.”

         

       “그래, 이것도 다 가짜다! 그래서 뭐! 야이 나쁜 년아! 사람 아픈 데를 후비고. 씨, 이딴 게 다 무슨 소용이야!”

         

       그리고는 가슴팍에 손을 쑥 집어넣더니 솜 넣어 꿰맨 뭉치를 꺼내 팩 내팽개쳐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씨익씨익 분한 숨을 내쉬다가 돌연 눈물이 주륵주륵 내렸다.

         

       “씨이. 나도, 이렇게, 씨이……”

         

       심지어 가짜 가슴을 한 쪽만 빼낸 탓에 짝짝이로 한쪽은 소담하게 봉긋하고 한 쪽은 사내처럼 주저앉았다.

       차라리 양쪽을 다 빼냈으면 모를까, 오히려 대비가 되어 더 납작해 보였다.

         

       청이 차마 못 볼 꼴이라 다시 말했다.

         

       “그 모용 소저 친우분들께서 좀……”

         

       그러자 어쩔 줄 모르던 패거리들이 우르르 모용주희에게 몰려들었다.

         

       “뭐야! 놔! 놓으라고!”

         

       “주희야 그만 해. 우리도 그 마음 다 아니까, 우리도 같이 속상하니까, 이러지 말고 일단 올라가서……”

         

       “너네가 어떻게 알아! 너네는 조금이라도 있잖아! 아무도 내 마음 몰라! 모른다고! 게다가 가슴만 작은 줄 알아! 나도 큰 거 있업, 으읍!”

         

       차마 듣다 못한 친구 중 하나가 모용주희의 입을 단단히 틀어막았다.

       그렇게 양팔을 단단히 붙들리고, 뒤에선 입을 막아 완전히 제압이 된 모용주희가 그대로 질질 끌려 나가고 말았다.

         

       그리고 나선 장내에 엄숙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덕분에 읍읍 막힌 소리로 아직도 악을 쓰는 소리만 도드라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좋아하시겠지, 하고 연참 준비했는데 노벨피아 오류로 글이 안 올라가서..
    해결되었다는 연락 받고 올렵니다.

    요즈음에 팬아트도 쏟아지고 후원에 주간 랭킹까지 기쁜 마음으로 드리는 연참이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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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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