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95

       시간을 돌리는 능력을 갖추고는 있지만, 그 능력을 쓰는 것에 망설여지는 순간이 있다.

        

       내가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면 당연히 능력을 쓰는 것이 맞다. 그렇게 해서 크게 다칠 사람이 다치지 않게 된다거나, 죽어야 할 사람이 살 수 있게 된다든가 하면 그건 무조건 남는 장사니까.

        

       내가 완벽한 인간으로서 있기 위해서 능력을 쓸 수도 있겠다. 시간을 돌려서 시험공부를 완벽하게 하여 훌륭한 점수를 유지할 수도 있고,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총을 쏘더라도 백발백중할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나는 실제로도 그렇게 해왔다. 전장에서는 총 한 발 맞지 않고 전선 자체를 붕괴시켰고, 제국의 군사기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이미 죄다 알고 있었다. 전함 설계도나 지도를 완벽하게 그려보라고 하면 당연히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어느 부분이 어떻게 중요한지 설명해보라고 하면 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나한테 덧씌워진 오해를 푸는 것은 정말 더럽게 어려웠다.

        

       그래, 능력에 한계는 없으니 여기서도 시간을 계속 돌려가며 설득하면 될 일일지도 모른다. 내가 전생에 보아온 수많은 회귀능력자의 능력을 생각하면, 이런 식으로 고민하는 것조차 그들에게는 배부른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

        

       기어코 어제 시간을 돌리지 않은 나는 오늘도 삼자대면 중이었다.

        

       앨리스는 적어도 내 연애사에 더 이상 참견하지 않겠다고 했다. 아무래도 내가 진심으로 짜증 난 상태라는 것을 확실하게 읽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앨리스는 그 말대로, 오늘 점심시간에도 굳이 나한테 말을 걸거나 조언을 하지 않았다.

        

       클레어는 나를 믿는다. 내가 이렇게 말해두고 정말로 레오와 사귀기라도 해버리면 클레어는 무척 큰 상처를 입겠지만, 걱정할 건 없다. 나는 남자랑은 사귈 생각이 없으니까.

        

       게다가 내 전생이 가지고 있던 일반 상식이라는 것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나이보다 조금 더 발육이 훌륭한 10대 중반 소녀였지만, 내용물은 그냥 아저씨였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10대와 그런 이야기가 도는 것이…… 영 불편했다.

        

       샤를로트는 앨리스를 따라서 더 참견하지는 않기로 했지만, 교실을 나가는 우리 세 사람을 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예전에, 인터넷 방송을 보던 시절에 인터넷 방송을 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악질 우결충을 싫어하냐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바로 그 꼴이었다.

        

       이젠 왜 싫어하는지 알 것 같아. 나는 인방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

        

       우리가 간 곳은 어제와 똑같은 빵집이었다. 빵집 사장은 나를 보자마자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아무래도 오늘도 빵을 잔뜩 사야 할 것 같다. 하긴, 오늘도 대화하려면 다른 애들을 죄다 쫓아내야 할 테니까.

        

       “……그래서.”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입을 열었다.

        

       “오늘은 그쪽에서 먼저 식사를 하자고 했는데, 이유를 조금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아— 그게.”

        

       레오가 입을 열기도 전에, 소피아가 손을 번쩍 들었다. 수업 시간에 발표하려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소피아.”

        

       레오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나는 소피아에게 말했다.

        

       “어제 황녀님께서 레오를 포기하신 이유는 모르겠는데요.”

        

       “…….”

        

       나는 레오 쪽을 보았다. 레오는 이미 양손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다행히 손 옆으로 보이는 얼굴의 일부나 귀가 붉어지지는 않았다.

        

       “저는 그러실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전제 조건이 이상하기는 합니다만,”

        

       어차피 내가 말한다고 해도 들어 먹을 생각도 없으니까.

        

       “제가 레오를 포기하면 안 될 이유라도 있습니까?”

        

       “그야 당연히, 사랑은 쟁취하는 것이니까요.”

        

       소피아가 얼굴에 굳은 의지를 드러내며 말했다.

        

       …….

        

       뭐지.

        

       어린 시절에 수녀원에서 몰래 돌아다니던 로맨스 소설이라도 손에 넣어 읽은 걸까? 그랬어도 이상하지는 않을 것 같다.

        

       “쟁취라는 것이 있다면 포기하는 수단도 있는 법일 텐데요.”

        

       “저는 납득할 수 없어요!”

        

       소피아가 나에게 얼른 말했다.

        

       “그런 식으로 이기는 건—”

        

       “이겨?”

        

       평소에는 눈치라고는 정말 눈에 낀 눈곱만큼도 없는 녀석이, 이럴 때는 저런 단어만 어떻게 저렇게 쏙쏙 골라 듣는 건지 모르겠다.

        

       “저기, 레오.”

        

       나는 레오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혹시 우리 두 사람이 대화하는 동안, 잠깐 빵집 밖에서 기다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거기까지 말하고서, 나는 바깥이 무척 쌀쌀하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덧붙였다.

        

       “그렇게까지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

        

       나의 말에 레오는 다소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행이다. 여자한테는 철저하게 신사답게 구는 녀석이라서. 만약 레오 성격이 제이크 같았다면 능글맞게 웃으면서 이 자리에 앉아있으려고 했을 텐데.

        

       나는 레오가 나가는 것을 보고는, 의자를 끌어서 소피아 바로 옆으로 갔다.

        

       꽃향기가 물씬 풍긴다.

        

       이기느니 뭐라느니 했던 걸로 봐서는, 레오 만나겠다고 향수라도 뿌리고 온 모양이다. 참, 교회 사람이면서도 남녀관계에 이렇게 적극적이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네.

        

       “어, 어?”

        

       내가 옆자리에 바싹 붙어 앉자, 소피아가 당황했다.

        

       “조금 불편하겠지만 잠깐 이대로 대화를 조금 나누죠. 다른 사람들 귀에 들어가면 안 될 이야기니까요.”

        

       소피아는 조금 겁에 질린 것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피아, 레오를 좋아하고 있죠?”

        

       “…….”

        

       거의 반사적으로 아니라고 할 뻔한 표정이었지만, 소피아는 잠깐의 고민 끝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당신이 왜 레오를 좋아하는지, 어디에 어떻게 끌렸는지는 관심 없습니다. 애초에 제가 관여할 바가 아니지요. 남의 연애사에는 별로 관심도 없고요.”

        

       제이크와 로티는 이어주려고 노력하긴 했지만—

        

       —그 효과가 좀 너무 굉장했다고 생각한다. 그 둘은 친해져도 너무 친해졌어. 한 걸음만 더 나가면 게임의 장르가 바뀌어버릴지도 모른다. 주로 19세 이용가적인 의미로.

        

       그래서 좀 그랬다. 아무래도 평생 여자친구 없는 삶을 살았던 나였기에, 두 커플이 나란히 붙어 다니는 광경을 보고 있는 것은 별로 속이 좋지 않았다.

        

       레오한테 여자친구가 생길지 아닐지는 알 바 아니다. 그게 소피아가 되는 것은…… 만약 원작의 소피아였다면 백 퍼센트 다른 생각이 있다고 생각하며 방해했겠지만,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이 소피아에게는 그런 면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주로 레오의 그 외모에 끌린 거겠지.

        

       “하지만, 다시 한번 말하는데, 저는 레오를 굳이 좋아했던 적이 없습니다. 친우로 생각하고는 있습니다. 만약 위험에 처하면 도움을 줄 수는 있겠고, 정치적으로 필요한 일이 있다면 제 황녀라는 지위를 기꺼이 사용해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레오가 제 취향인 남자라서가 아닌, ‘친우’라서입니다.”

        

       나는 소피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어, 아. 엑.”

        

       아주 가까운 곳에서 눈을 마주쳐서 그런지, 소피아는 대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뭐, 그럴 수밖에. 일부러 당황하라고 그런 거니까.

        

       그렇다고 몸과 몸이 닿을 정도인 것은 아니다.

        

       “앨리스나 클레어, 미아나 레나에게도 비슷한 이유로 정치적인 도움을 줄 수 있겠죠. 하지만 이 경우에도 제가 그 상대들을 제 연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 그런가요?”

        

       “그렇죠.”

        

       그렇게 말하고, 나는 다시 의자를 끌어 자리를 뒤로 살짝 뺐다.

        

       “물론 샤를로트에게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만, 샤를로트는 일국의 왕녀니까요. 게다가 앞으로 그 나라의 왕이 될 사람이기도 하죠. 제가 아무리 황녀라고 해도, 샤를로트가 여왕의 자리에 오르고 나면 제가 그녀를 ‘도와줄 만한’ 지위는 아니게 될 겁니다.”

        

       “…….”

        

       소피아는 잠깐 생각에 빠진 모양이었다.

        

       “그리고, 당신. 소피아 비앙키.”

        

       내가 자기 이름을 부르자, 소피아는 눈을 깜빡였다.

        

       “어쩌면 당신에게도 그 ‘친우로서의’ 도움이 갈 수 있을지 모르죠. 작은 기사 가문을 돕는 정도는 할 수 있을 테니까요.”

        

       “…….”

        

       내 말에, 소피아의 표정이 조금 미묘하게 바뀌었다.

        

       나는 이미 소피아의 정체를 알고 있고, 소피아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한 말에서 도움을 받을 대상은 ‘작은 기사 가문’뿐.

        

       법국을 도울 생각은 없지만, 소피아 개인을 도울 생각은 있다.

        

       아무리 소피아의 사고가 조금 단순하다고 하더라도,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잘 알아들었으리라고 본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자꾸 사실도 아닌 루머를 퍼뜨려서 저의 기분이 나빠지면, 당신이 저의 친우 목록에서 빠지게 될지도 모릅니다만.”

        

       “아.”

        

       그리고 이어진 나의 말에, 소피아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래, 신나게 학교생활을 즐기는 건 알고 있다만, 그래도 해야 할 일은 해야지.

        

       법국에서 보낸 첩자면 법국 첩자의 임무도 수행해야 하는 법이다.

        

       그리고 그 수행의 가장 우선순위는 나, 실비아 팬그리폰과 친해지는 것이었다.

        

       새파랗게 질리는 소피아를 보면서, 나는 내 생각이 제대로 먹혀들어 갔다는 것에 만족감을 느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