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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5

    탈의실 한켠에서, 그야말로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는 아이가 있었다.

     

    “하아아…….”

     

    루크였다.

     

    벌써 몇번째인지 모를 한숨이다.

     

    옷을 수영복으로 갈아입기 어려워서 그런 것은 물론 아니다.

    그야, 이미 수영복은 입고 있으니까.

     

    다만 문제는 그 수영복이라는 복장은, 루크의 기준으로 복장의 역할을 전혀 수행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영복을 고를 때, 소르비의 말을 믿어야했다.

    힘이 든다는 핑계로 대충 고르기보다는, 마지막까지 조금 더 신중히 선택해야했다.

     

    “정말 이대로 나가야 한다니…….”

     

    거울 속에는 어린아이에게 입히기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런 외설적인(?) 의상을 입은 채 한없이 부끄러워하는 여자아이가 비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곤란한 것은, 거울에 비치는 그것이 바로 루크 이루시 자신이라는 것이다.

     

    루크는 공연히 꼬리부분을 가리는 프릴을 잡아당기며 중얼거렸다.

     

    “너무 짧잖은가…….”

     

    치부를 가리기 위한 스커트가 아닌, 단순히 장식적인 역할을 수행할 뿐인 프릴은 꼬리나 둔부를 가리기엔 당연스럽게도 너무나 짧다.

    또한 그렇게 애써 프릴을 내려봤자, 파충류 특유의 뿌리가 두꺼운 형상을 띄는 루크의 꼬리의 형태를 타고 도로 올라가고 만다.

    원래도 꼬리가 남들보다 두꺼운 것도 신경이 쓰이던지라, 덥지만 않다면 가리는 것을 선호하는 루크였다.

    그런데 이토록 자신의 몸을 완전히 노출하는 형태가 되어버리니, 부끄러움에 그야말로 죽어버릴 지경이었다.

     

    정말 아무리 봐도 속옷차림이 맞지 않은가, 이 안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배꼽도 전혀 가릴 수 있는 것이 없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보다는 조금 나은 수준.

     

    5000년 전, 이런 모습은 절대 밖에서 돌아다닐 차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일반적인 문화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으리라, 바닷가에서 배꼽을 드러내고 아무렇지 않게 태양을 만끽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았으니까.

    이성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은 하지만, 루크의 가슴 속에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정말 그것이 옳은가?’라며 끊임없이 되묻고 있었다.

     

    루크는 잠시 눈을 감은 채 생각에 빠졌다.

     

    마법사는 이성적인 존재, 필요가 있다면 몸을 드러내는 것에 부끄러움 따위는 없다.

    그래야 하는데, 자신은 어째서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는가?

     

    그렇다면 과거의 자신은 이러한 상황에 놓였을 때, 정말 아무렇지 않게 이런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을까?

     

    물론, 그리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 할 필요가 ‘절대로’ 없었을 테니까.

     

    어쩔 수 없는 상황?

    하.

     

    과거의 자신을 상황에 집어넣고 강요할 수 있는 존재는 결코 많지 않았다.

    만에하나, 그런 제안을 꺼내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몇 가지 마법으로 순식간에 구워버리는 것을 선택했겠지, 그 제안에 응한다는 선택은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과연, 그렇다면 지금 자신이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도 설명이 가능하다.’

     

    지금 자신은 바로, 자신의 ‘약함’이 부끄러운 것이다!

     

    약해진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결코 그릇된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자신의 약함을 깨닫는 것은 발전으로 향하는 원동력.

    자신의 약함이 부끄러운 것이라면, 강해지면 그만인 것이다.

     

    그렇게, 루크는 스스로 결론내리고 자신의 주먹을 내려다보며 다짐했다.

     

    반드시, 대마법사가 될 것이라고.

    그 무엇도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고, 어떤 상황도 강요받지 않는.

     

    “루크, 방금 뭐한 거야?”

    “햐악!”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예르나가 굉장히 즐거운 듯 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

     

    탈의실 출구에서 기다리던 예르나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루크가 나오질 않네.”

     

    부끄러우니까 혼자서 갈아입겠다고 사람이 없는 구석으로 갈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루크는 나오질 않았다.

    원래 루크 이루시로서의 자아가 남아있는 루크로서는 단지 부끄러워서 뿐 아니라, 자신이 다른 여성들의 나신을 보는 것 또한 실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만.

     

    예르나는 팔짱을 낀 채로 탈의실 한켠에 걸려있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간은 충분히 지났다.

    그냥 옷만 벗으면 끝나는 루크가 이토록 오래 걸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디아나랑 파이리스는 진작에 다 갈아입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텐데.’

     

    혹시 어디서 넘어졌나?

    걱정이 되기 시작한 예르나는 결국 기대어있던 벽에서 몸을 떼고 루크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루, 어디에 있어?”

     

    탈의실이 꽤 넓었지만, 루크는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비교적 사람이 적은 구석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있는 아이.

    루크는 뭔가 스스로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것 처럼 보였다.

    그것이 무척이나 귀여워서, 당장에 말을 걸고 싶었다.

     

    “루크, 지금 뭐하는 거야?”

    “햐악!”

     

    그런데 어찌나 놀랐는지, 루크는 꼬리와 어깨와 귀가 일제히 발딱 일어서며 극도로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 아아, 아무것도 아닐세!”

     

    말까지 더듬는 것을 보니 상당히 놀랐나보다.

    시선도 잘 못 마주치고 있을 정도였다.

     

    그것은 언제나 어른스럽게 굴던 루크에게 나올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신선한 아이다운 반응에, 예르나는 그야말로 입꼬리가 쭈욱 올라갔다.

    그야 처음으로 입어보는 수영복이니, 당연히 부끄럽겠지.

    그래도 이정도로 부끄러워할 줄은 정말 몰랐다.

     

    예르나는 루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게 부끄러워?”

    “…….”

     

    루크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곧 루크는 탈의실 출구 바로 앞까지 도착했다.

    그 앞에 다다르니, 루크는 이제 정말 몇 걸음이면 바깥으로 나가고, 수많은 시선에 무방비하게 노출될 것이라는 사실에 크게 긴장되었다.

    무엇보다, 저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배꼽이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가장 참기 어렵다.

     

    배꼽을 손으로 가린 채 어쩔 줄 몰라 뒤를 축 늘어트린 루크를 본 예르나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왜 그래? 어디 아프니? 혹시 배 아파?”

     

    루크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여전히 배를 쥔 손은 내려가지 않았다.

    분명 무슨 이유가 있는 것 같은데.

     

    “그럼 왜 그렇게 배를 붙잡고 있는 거야?”

     

    “그, 그것이…….”

     

    루크는 우물쭈물 거리며 말을 이었다.

     

    “이 수영복, 배꼽이 나오는 것이 부끄러워서…….”

     

    “배꼽?”

     

    아, 루크는 자신의 배꼽이 남에게 보여지는 것이 부끄러운 듯하다.

    신체적인 콤플렉스인가?

    하지만 루크의 배꼽은 딱히 특별히 못생겼다는 느낌은 전혀 받지 않았다.

    오히려 귀여우면 귀여웠지.

     

    예르나는 루크의 손을 잡고 이끌며 계속해서 용기를 복돋아주는 말을 했다.

     

    “괜찮아, 루. 네 배꼽은 전혀 이상하지 않아! 예쁘고, 귀여워! 그러니까 자신감을 가져!”

     

    예르나는 주먹까지 쥐어보이며 루크를 응원했지만, 그 말을 들은 루크는 그 말에서 마냥 용기를 얻을 수 없었다.

     

    “…….”

     

    배꼽을 칭찬받아봤자, 전혀 기쁘지 않다.

     

    배꼽이 예쁘고 귀엽다니?

    그게 대체 무슨 칭찬이란 말인가?

    예르나가 용기를 복돋아주기 위해서 건넨 말은, 루크에게는 그야말로 성희롱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칭찬에 으레 답하듯 ‘고맙구나’라고 답하지도 못했다.

    별로 고맙지가 않았으니까.

    고작 이런 것으로 거짓말을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덕분에 루크의 낯빛은 더욱 더 붉어졌으며, 루크의 귀는 더욱 더 쳐졌다.

    비록 아주 조금이지만 눈물도 났다.

    심장의 마나가 미친 말처럼 날뛰어대도 금방 다잡을 수 있을 정도로 서클이 미약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루크는 서클을 안정화시키며 생각했다.

     

    정말 이 시대의 사람들은 배꼽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인가?

    하지만 예르나에게 배꼽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설명하는 것도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예르나도 현재 배꼽이 드러나는 의상을 입고 있었으니까.

     

    사실은 자신 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리 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밝히기 어려웠다.

    공들여 설명을 해 봤자, 자신만이 이상한 성적 취향을 지니고 있는 듯한 느낌이 될 것이 분명하기에.

     

    루크는 그저 곤란한 표정으로 발 끝을 바라볼 뿐이었다.

     

    어느 새 밖이 다가왔는지, 샌들에 밟히는 땅에 황금빛의 모래가 일부 보이기 시작한 순간, 루크는 돌연 발걸음을 멈추었다.

    정말로,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저기, 정말이지 더는 못 갈 것 같구나. 이런 건 나와 전혀 어울리지도 않고……. 수영은 나중에 배우면 안되겠는가?”

    “괜찮아, 진짜 잘 어울려, 아무도 이상하다고 생각 안 할거야! 빨리 가자, 다른 애들도 다 널 기다리고 있어.”

    “그, 하지만…….”

     

    루크의 발가락이 꼼질거리는 모습이 샌들 너머로 보였다.

    꼬리도 안쓰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긴장한 걸까?

    예르나는 그런 루크의 앞에 앉아 두 손을 잡은 채 눈높이를 맞추곤 말했다.

     

    “정말 힘들어? 우리, 그럼 수영하지 말까?”

     

    반면 배꼽을 가릴 손이 사라져 극도로 긴장한 루크는 그 걱정이 담긴 눈빛을 마주할 수조차 없었다.

     

    “저기, 예르나. 정말, 나는…….”

     

    그렇게 말을 제대로 잇지도 못하며 시선을 마구 흔들던 루크의 눈 앞에 구원의 동아줄이 내려왔다.

     

    “루크 언니! 이거봐라! 이거 있으면 수영 못해도 물에 뜰 수 있대!”

    “뭐?”

     

    파이리스가 무언가를 허리에 끼우고 있는 것을 본 루크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그거 이리 당장 내놓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예르나에게 무자각 성희롱당한 루크…
    손발이 벌벌 나고 눈물이 떨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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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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