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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5

       화신이 건 광역 저주의 힘은 강력했다.

       저주에서 벗어난 지 하루가 된 지금도 후유증에 시달리는 피해자가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환자들은 정교회 성직자들에게 영적 치료를 받은 후에야 퇴원할 수 있었다.

         

       “나는 진짜 멀쩡하다고!”

       “아뇨. 절대 안 됩니다.”

         

       물론 환자 본인의 의사와 보호자의 동의가 있으면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원더스타인은 엘라의 퇴원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가 무리하다가 탈이 나는 모습을 그가 어디 한두 번 봤던가.

       이참에 푹 쉬게 두는 것도 괜찮았다.

         

       원더스타인과 마야는 그녀를 두고 강당을 나왔다.

         

       “마야 양은 몸이 좀 어때요. 괜찮나요?”

       “네.”

         

       그녀가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지만 그녀의 자기 보고는 믿을 게 못 됐다.

       그녀 역시 아픈 것을 드러내는 타입은 아니었으니까.

         

       원더스타인은 그녀의 얼굴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미 2주 전부터 파피락스로 고생했다고 들었는데요.”

         

       그의 말에 마야는 발걸음을 멈추고 그를 돌아봤다.

         

       “……어떻게 아셨나요?”

       “아르노 씨가 말씀해주셨습니다.”

         

       마야는 이를 살짝 악물었다.

       비밀로 해준다고 약속했으면서.

       그녀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침착해.

       아직 들킨 게 확정된 건 아니야.

         

       “그……파피락스의 원인에 대해서도 들으셨나요?”

       “아뇨. 하지만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겠더군요.”

         

       그녀는 심장에 돌이 쿵 하고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녀는 지난 2주 동안 단장님 앞에서 했던 사소한 행동과 말들을 떠올렸다.

       확실히 자신은 너무 티를 낸 걸지도 몰랐다.

       특히나 보란 듯이 꾸미고 와서 다른 남자랑 어울리며 질투를 유발했던 작전은 노골적이었다.

         

       그러고 보니 카렌도 단장님께 자신이 당신과 함께 무도회에 가길 원한다는 등의 소리를 지껄였다.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최악이었다.

       아르노와 카렌, 두 사람의 입방정을 속으로 저주했다.

         

       혹시나 단장님이 착각한 걸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그의 다음 말에 좌절되었다.

         

       “제 제자가 되고 싶다고 하셨으면서 그런 마음을 품으면 되겠습니까?”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 역시나.

         

       그녀의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녀는 차마 단장님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저, 저는…….”

       “걱정하지 마세요. 그 나이대는 다 그런 거니까, 후후.”

         

       그는 그녀의 행동이 귀여운 듯 쿡쿡 웃음을 흘렸다.

         

       마야는 갑자기 부끄러움이 싹 가시면서 화가 났다.

       그가 지금까지 그의 얼굴을 보고 꼬였던 여자들과 자신을 비슷하게 보는 것 같았다.

         

       “단장님이 생각하는 것보다……복잡한 문제예요.”

       “압니다. 잘 알지요.”

         

       다 이해한다는 식의 말투.

       아마 그는 그녀의 마음을 사춘기 소녀가 성인 남자에게 가지는 동경 정도로 치부하는 것 같았다.

         

       “어린애 취급하지 마세요.”

         

       그녀의 싸늘한 목소리에 원더스타인은 미소를 조금 가라앉히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음, 그래서 마야 양은……제 답이 듣고 싶은가요?”

         

       마야는 숨을 헉하고 들이켰다.

       심장이 멎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녀의 얼굴에 붉은색이 더 빠르게 번져 나갔다.

       맥박이 쿵쿵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렸다.

         

       확실히 궁금했다.

       단장님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네. 듣고 싶어요.”

       “좋습니다. 그럼 따라오세요. 좋은 곳이 있으니까.”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테트로미노 광장을 가로질렀다.

       마야는 그가 자신을 어디로 데려가는지 궁금했다.

         

       얼마 후, 두 사람은 어느 건물 앞에 섰다.

       그것은 제과 공장 맞은편에 세워진 것으로 무려 20층에 달하는 높이를 자랑했다.

         

       “자, 여깁니다.”

         

       그것을 올려다본 마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의 안면 근육이 경련이 일어난 듯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그녀를 데려온 곳은 그녀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이었다.

         

       예테린푸르크에서 가장 높은 건물.

       바로 호텔이었다.

         

       그는 뻔뻔한 미소를 지으며 돌처럼 굳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그녀를 돌아봤다.

         

       “왜 그러시죠? 답을 알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제야 그녀는 그의 본질을 기억해냈다.

         

       바람둥이, 색골. 변태.

         

       그에 대한 경멸감이 치솟았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이 기뻐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힘들었다.

         

       그가 자신을 이곳에 데려온 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마야 너 예쁘잖아.

       -물론이지! 내가 보증해!

       -분명 좋아서 덩실덩실 춤을 출 거야!

         

       카렌, 네 말이 맞았어.

         

       단장님이 자신의 마음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무작정 기뻐할 수 없었다.

         

       잠자리를 가지는 건 너무 이르지 않나?

         

       그녀가 감정 표현이 적다고 해서 상식이 부족하거나 도덕에 초탈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단장님을 유혹한다는 작전을 세웠을 때, 나름 바라던 것과 기대하던 것이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다짜고짜 마지막 단계로 넘어가다니.

         

       마야는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나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연애에 대해 낭만적인 동경을 품는 것 같은 소리는 자신을 더 어린애로 보이게 만들 것 같았다.

       거기다 처음 만나 사이라고 하기에는 그들은 지난 몇 달 함께했다.

       무엇보다 만약 여기서 자신이 거절한다면 그가 영영 자신에게 손을 뻗어줄 것 같지 않았다.

         

       마야는 침착하게 숨을 골랐다.

       사실 단장님이 자라온 환경과 신분을 생각해보면, 그분이 영 상식과 동떨어진 제안을 한 것도 아니었다.

         

       듣기로는 시골에서는 14살만 되도 또래랑 이것저것 해보는 게 보통이고, 지금 그녀 나이면 결혼을 하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더군다나 그는 떠돌이였다.

       마음에 들면 처음 만난 사람과도 함께 잠자리를 가지는 일이 많았을 것이다.

         

       자작이라는 신분을 가진 여자도 공공장소에서 안았던 남자였다.

       그가 그녀를 이곳에 데려온 것은 오히려 그녀를 배려한 것이라 봐야 했다.

         

       그녀도 단장님과 잠자리를 가진다는 상상을 한 적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레이나가 단장님과 잤다고 오해했을 때, 자신이 그 자리에 대신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저 갑자기 적극적으로 나오는 단장님의 돌변한 태도가 두려울 뿐이었다.

       어제 작전이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던 걸까?

         

       그녀가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원더스타인은 데스크에 갔다가 돌아왔다.

       방을 잡은 모양이었다.

         

       “자, 그럼 올라갑시다.”

         

       마야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호텔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기계식으로 움직이는 물건은 예전부터 존재했지만, 전기 동력으로 움직이는 이것은 최근 대도시의 고층 건물을 중심으로 보급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승무원은 그들을 최상층으로 안내했다.

       아무래도 원더스타인은 가장 비싼 방을 잡은 모양이었다.

         

       마야는 승무원이 자신과 원더스타인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다.

         

       너무 나이 차이가 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아니면 너무 잘 어울리는 커플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만이 적막한 공간에 울리며 엘리베이터가 위로 올라갔다.

         

       마야는 두 다리를 가운데로 모아 꼼지락거렸다.

       두려움 때문일까 기대감 때문일까, 아까부터 아랫배가 간지러웠다.

         

       많이 아플까.

       처음은 무척 아프다고 들었는데.

         

       엘리베이터가 최상층에 도착했다.

       그는 그녀를 이끌고 정면에 보이는 문으로 데려갔다.

         

       그는 그제야 그녀가 어깨를 떨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마귀나 화신과도 당당하게 맞서는 애가 이런 걸 두려워할 줄이야.

       과연 애는 애구나 싶었다.

         

       “처음인가요?”

         

       그의 질문에 마야의 표정이 굳었다.

       평소에 다정다감하던 그녀의 스승은 여자 문제에서라면 인간이 참 저급해졌다.

         

       “네.”

       “제가 너무 급하게 끌고 온 건 아니죠? 생각의 정리가 필요하다면 이대로 돌아가도 돼요.”

         

       나쁜 사람.

       여기까지 와서 저런 소리를 하다니.

         

       마야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할 수 있어요. 부탁드릴게요.”

         

       그녀는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각오한 일이었다.

         

       첫 상대가 단장님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오늘 자신은 어른이 될 것이다.

         

       둘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동시에 갑자기 소음이 확 밀어닥쳤다.

         

       식당으로 보이는 공간이었다.

       수십 명의 사람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통유리로 된 창들이 식당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 너머에는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는 외부 테라스가 있었다.

       그곳에도 사람들이 꽤 되었다.

         

       마야는 어리둥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뭐야 이게?

         

       그녀는 곧 입구 위에 달린 표지를 발견했다.

       그녀는 그것을 읽으며 눈을 깜빡였다.

         

       <스카이라운지: 테트로미노 광장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대 식당>

         

       “오늘 여기서 마야 양을 파피락스에 빠트린 문제를 해결하고 갈 겁니다.”

         

       원더스타인은 아르노로부터 그녀가 파피락스에 빠져 있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그 원인이 뭔지 알아차렸다.

         

       그는 그녀가 몇 주 전부터 매달리던 문제를 기억했다.

       테트로미노 광장 바닥의 수수께끼.

       숱한 학자들을 미치게 만든 그것에 마야가 휘말린 게 틀림없었다.

         

       그는 스카이라운지에서 음료를 하나씩 시키고는 외부 전망대로 나갔다.

       테라스 아래로 테트로미노 광장 전체가 내려다보였다.

         

       현대인인 그에게 이 정도 높이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마야는 처음이라고 했다.

       무서워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는 TT2가 발매되고 나서 몇 주 동안 전 세계의 플레이어들이 매달려 풀었던 문제의 해답을 공개했다.

         

       우선 바닥의 타일에는 각각에 숨겨진 의미가 있었다.

         

       정사각형 4개를 조합하여 만들 수 있는 도형의 개수는 총 7개.

       J, L, T, Z, S, O, I.

       그것들은 게임 ‘테트리스’에 나오는 블록들이기도 했다.

         

       이것이 무엇으로 치환되는지는 다른 스테이지에 등장하는 연금술 길드의 문서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연금술 길드에는 현실의 ‘주기율표’와 비슷한 원소를 정리한 표가 있었다.

         

       물론 판타지 세상인 만큼 현대의 주기율표와는 달랐다.

       마법적 신비가 가미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물, 불, 바람, 전기가 당당히 원소 중 하나로 등록되어 있기도 했다.

         

       그것은 현실의 주기율표처럼 알록달록한 색깔로 칸칸이 나누어져 있었는데, 그것으로 저기서 7개 해당 도형에 해당하는 원소가 현실의 어떤 원소를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산소, 탄소, 수소, 질소, 인.

       각 도형은 현실의 다섯 가지 원소를 의미했다. 그리고 다른 두 도형은 ‘물’과 ‘타키온’을 의미했는데, 물의 경우는 이곳에서는 하나의 원소지만, 현실에서는 산소와 수소로 이루어져 있어서 ‘결합’을 상징했고, 타키온은 현실에서는 없는 것으로 판명된 입자라 ‘공백’을 상징했다.

         

       그렇게 다섯 가지 원소에 결합, 공백을 더해 250만 개의 테트로미노 타일을 치환하면 다음과 같은 형상을 띄게 됐다.

         

       현대인이라면 한 번쯤은 본 적 이중의 나선.

       DNA였다.

       그 DNA 2개가 동시에 나선을 이루고 있었다.

         

       즉, 사중 나선이었다.

       당연히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구조였다.

         

       “저기 광장 중앙에 성 빅터가 전염병에 죽은 환자들을 위해 세운 위령비가 있죠. 2개의 이중 나선 말입니다. 답은 대놓고 우리 눈앞에 있었던 겁니다.”

         

       그는 제작진들이 왜 DNA 구조를 게임 안에 숨겨뒀는지 알고 있었다.

       아마 생체물질을 조작하는 원더스타인의 능력을 상징하는 의미에서 넣었을 것이다.

         

       설명을 마친 그는 그녀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표정에는 어딘가 화나고 짜증이 난 빛이 서려 있었다.

         

       그녀는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더니 찬 바람이 쌩쌩 부는 목소리로 말했다.

         

       “관심 없어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휙 몸을 돌려 전망대를 나갔다.

         

       저게.

       기껏 설명해줬더니.

         

       자신이 제일 잘 났다고 믿는 사춘기 나이였다.

       평소에는 제자를 자처하다가 막상 문제에 부닥치니 도움을 청하지 않고 혼자 해결하려다가 문제를 키운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기껏 스카이라운지 입장권도 샀는데 그냥 가버리다니.

       어른인 자신이 이해해줘야지 싶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asolxnmz, 5코인 후원!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모기, 200코인 후원! 이번 건 조금 길다 싶었는데 좋은 평가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어굴해 님, 100코인 후원! 앗, 두 번째 후원! 꾸준한 관심과 응원 감사합니다!

    다음 화가 이번 에피소드 마지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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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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