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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5

        

       목숨을 걸겠다는 사범의 말.

       원로와 카즈오의 귀에 틀어박히며 생생하게 사범의 각오를 전달한 그 말은 충분한 감정이 서려 있었고, 한 번의 기회를 더 주자는 의견을 내기에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목소리가 아무리 각오가 들어차 있다고 한들 그것이 모든 사람의 마음을 동하게 할 수는 없는 법이다.

         

       “목숨을 건다?”

         

       사범과 원로, 카즈오가 있는 도장에서 멀리 떨어진 신사에 있는 진성은 사범의 목숨을 걸겠다는 말을 무미건조하게 따라 읊었고, 입 밖으로 소리를 내었음에도 마음이 동하지 않은 모양인지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허어, 목숨을 건다라. 참으로 각오가 대단하고 대단하다.”

         

       진성이 조용히 중얼거리며 눈을 뜨자 타오르는 불꽃이 일렁였다.

         

       밖에서 흘러들어오는 빛에 일렁이며 나타나는 눈동자의 광채는 야생의 불꽃처럼 일렁였으며, 공포를 불러일으키기라도 하려는 듯 넘실거리며 타오르며 혀를 날름거렸다. 그리고 자신이 불꽃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부딪치며 부서지기를 반복하며 불똥을 만들었고, 눈동자의 바깥쪽에 자그마한 불씨를 피워내었다.

         

       “목숨을 걸겠다고 하였으나 내심은 목숨도 건지고 모든 일을 마무리하기를 원하는 것이라. 다만 명예와 자부심이 목숨보다 앞서 있으니 저런 말을 한 것인즉.”

         

       진성은 벌레의 시야로 사범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도장에서 한 번의 기회를 더 받은 사범은 긴장이 풀려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도게자 자세가 근육에 무리를 준 것인지 일어나면서도 휘청거렸다. 게다가 각오가 잔뜩 묻어나오고 있는 얼굴은 피범벅이 되어 있었는데,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피와 엉겨 붙으며 끔찍하고 역겨운 몰골을 만들고 있었다.

         

       진성은 처량해 보이는 사범의 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뒷수습, 뒷수습이라. 내 기꺼이 소원을 들어주겠느니라.”

         

       그 중얼거림을 끝으로 그는 입을 닫았다.

       그러자 진성 혼자 있는 공간은 침묵으로 가라앉았고, 창밖에서 흘러나오는 빛도 때를 맞춰서 서서히 흐려지기 시작하더니 가라앉으며 방 안을 어둠으로 가득 메웠다. 거기에 진성의 눈마저 닫히자 도깨비불처럼 허공에 흔들리는 한 쌍의 불꽃 역시 꺼지며 방을 때아닌 밤으로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진성은 무언가를 기다리듯 어둠 속에 기꺼이 녹아든 채 숨소리마저 조심하였다.

         

       따르르릉-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진성의 기다림이 열매를 맺었다.

         

       그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한 것이다.

         

       진성은 핸드폰에 뜬 번호를 보고 입꼬리를 올리곤 애를 태우기라도 하듯 약간 기다렸다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아, 안녕하십니까. 사이고 차기 신관님 되십니까? ]

       “아, 네. 목소리를 들어보니…. 사범님이시군요. 무슨 일이신지….”

       [ 후우, 그게. ]

         

       전화를 건 것은 사범이었다.

         

       [ 그…. 산사태가 일어난 것은 들으셨습니까? ]

       “네. 참으로 안타깝게도 산이 무너져버렸다고…. 하지만 신의 보살핌인지 다행히도 인명피해는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 그렇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

         

       사범은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은지 몇 번이고 멈칫거렸다.

       하지만 이내 결심이 선 모양인지 강한 어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 후우. 제가 교토 사람도 아니고, 이리저리 말을 돌리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다른 뉴스도 보셨습니까? ]

       “아, 네. 봤습니다. 기자들이 어디에서 냄새를 맡았는지 지장보살 이야기와 저주에 대한 기사를 잔뜩 썼더군요. 방금 전에도 뉴스에서 그걸로 떠드는 것도 봤습니다.”

       [ …그렇군요. 차기 신관님. 그…. 산사태 말입니다. ]

         

       진성은 속도가 느려지는 사범의 말을 듣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질문을 던졌다.

         

       “산사태의 원인이 뭐냐, 혼령 때문이 맞냐. 이런 질문을 하려고 하신 겁니까?”

       [ 그, 크흠! 네, 그렇습니다. ]

         

       자신이 하려는 말을 빼앗긴 사범은 당황하며 헛기침을 했다. 하지만 사범은 어떻게든 당황을 가라앉히며 진성의 말에 긍정했지만….

         

       “모릅니다.”

         

       이내 진성의 단호한 말에 다시 한 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 모른다, 니요? ]

       “흠.”

         

       진성은 설명하기가 어렵다는 듯 잠시 말을 멈췄다가 입을 열었다.

         

       “일단 제 생각은 전과 같습니다. 그 혼령의 저주는 별 효과가 없을 가능성이 높거든요. 무슨 대악령이나 대악귀도 아닌데 어떻게 산사태를 일으키겠습니까. 고작 혼령이 그런 산사태를 일으킬 수 있었다면, 인류는 세계대전이 벌어졌을 때 튀어나오는 악귀와 악령들 때문에 멸종했어야 맞습니다.”

       [ 흠. ]

       “그런데 또 아리송한 것이, 뉴스에서 이런 이야기를 봤거든요. 산사태가 덮치기 전 마을 사람들 몇몇이 예지몽을 꿨다. 예지몽에서는 얼굴만 떠다니는 지장보살이 나와서 저주를 퍼부었다…. 뭐 이런 내용이던데. 사범님. 혹시 이게 사실입니까?”

       [ …예. 사실입니다. ]

       “이게 제 상식으로는 혼령이 산사태를 일으키지 못하는 것이 맞는데, 또 예지몽 이야기를 들어보면 묘하게 아귀가 맞는 듯 맞지 않는 듯 애매한 느낌인지라…. 이거 참….”

         

       진성은 무표정한 얼굴과는 다르게 난처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사범에게 말했다.

         

       “일단 제 생각은 혼령의 저주가 아니라는 쪽인데, 뉴스에서 계속 저러니까 헷갈리기도 하고. 참 난처합니다.”

       [ …예지몽이라는 게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겁니까? ]

       “큰 의미를 가지고 있냐라…고 물으면. 글쎄요. 예언자나, 꿈을 매개로 이능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꿈이라는 게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게 맞는데. 흠….”

         

       잠시 말을 흐린 진성은 의문이 담긴 목소리로 사범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조금 아리송하군요. 사범님. 저 예지몽이라는 거, 대체 몇 명이나 꾼 겁니까?”

       [ 잘은 모르지만, 뉴스에 나오는 걸로 봐서는 다섯? 여섯? 아마 많아봐야 열 명은 넘지 않을 겁니다. ]

       “많아봐야 열 명도 넘지 않는다….”

         

       그는 사범이 한 말을 따라서 중얼거리더니 무언가 알겠다는 듯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충 짐작이 가는군요.”

       [ 짐작이요? ]

       “뉴스에서 떠들어대는 예지몽이라는 거, 관심을 꺼도 될 것 같군요.”

       [ 관심을 꺼도 된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가짜라는겁니까? ]

       “그렇습니다. 아, 정확하게 말하면 가짜라기보다는…. 아마 소수가 비슷한 꿈을 꾸기는 꿨을 겁니다.”

         

       무표정한 얼굴에서 튀어나오는 자신감 가득한 말은 전화를 넘어 사범의 귀에 꽂혔다.

         

       “그냥 평범한 악몽, 혹은 진짜 수호령이나 초월적인 힘, 혹은 종교적인 힘에 의해서 위험을 예지한 것일수도 있겠죠. 혹은 동물적 본능이 무의식에 경고해서 꿈에 나타났을 수도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런 꿈을 꾼 사람은 아마 소수일 겁니다.”

       [ 그렇다면…? ]

       “네. 뉴스에서 떠들어대는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꿈, 진짜 저주인가!’, ‘지장보살의 피눈물과 저주. 마을 사람들에게 경고를 날리다!’ 뭐 이런 제목으로 떠들어댈만한 일은 아닐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 … ]

       “아마 시작은 악몽을 꾼 사람들의 푸념이었겠죠. 하지만 그 푸념은 들은 사람들의 무의식에 자리를 잡았을 것이고, 산사태라는 거대한 재앙 앞에 혼란스러운 정신의 사이에서 슬그머니 흘러나와 머리를 장악했을 겁니다.”

       [ … ]

       “물론 대부분은 ‘누가 어떤 꿈을 꿨다더라’ 정도로 끝났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기 쉬운 사람들이나, 혹은 애매모호한 꿈을 꾼 사람들은 ‘나도 이런 꿈을 꿨다’며 기억을 바꿨을 겁니다.”

       [ 그게, 가능합니까? ]

       “네. 가능합니다. 사람이라는 동물이 의외로 암시에 약하거든요. 비슷한 사례들도 얼마든지 있구요.”

         

       진성은 결론을 짓듯 말했다.

         

       “결론은 저건 매스컴의 잘못인거죠.”

       [ 그렇, 군요. ]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사범은 그런 뜻이 담긴 진성의 말을 듣자 약간 물기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마 인터뷰를 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런 꿈을 꾸지 않았음에도 꿨다며 말을 지어내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관심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지금의 상황은 그야말로 꿈에서나 볼 법한 무대나 다름이 없을 테니까요.”

        [ 그럼…. ]

       “네. 그러면…. 흠. 이거 애매하군요. 혼령도 아니고, 저주도 아니고, 예지몽도 관련이 없는 것 같고…. 그렇다면 초자연적인 일이 아니라 그냥 단순한 자연재해이거나, 사람이 직접 일으킨 재앙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인데.”

         

       사람이 일으킨 재앙.

       그 단어에 사범은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 사람이 일으킨 재앙이라니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

       “네? 아. 이런, 조금 오해를 할 법한 표현이었군요. 그러니까 제 말은 누가 테러를 저질렀다는 말이 아닙니다.”

       [ 그러면…? ]

       “사람이 일으킨 재앙, 인재(人災)를 말하는 것이지요. 그 왜, 부실공사로 건물이 무너지거나, 폐기물을 잘못 버려서 자연이 오염되거나 하는 것을 인재(人災)라고 표현하지 않습니까?”

         

       그 말에 사범은 무언가 짚이는 것이 있는지 중얼거렸다.

         

       [ 인재(人災)…. ]

         

       두 단어를 조용히 중얼거리던 사범은 문득 스쳐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 그러고 보니, 산사태가 태양광 시설 쪽에서 났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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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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