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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5

       짙은 회의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검은 머리 천마라니.

         

       “내가 이러려고 무림에 온 게 아닌데….”

         

       자괴감이 들고 괴로워졌다.

         

       힘없이 늘어진 고개를 들어 다시 하늘 위에 떠 있는 천마를 보았다.

         

       예쁘다.

         

       진짜 예쁜데.

         

       “그래도 이건 아니지….”

         

       믿고 말았다.

         

       ‘NovelGod’이 등신이긴 해도 트렌드는 잘 따라가려고 노력하는 작가였기에, 당연히 천마 또한 핑챙 천마이리라 믿었건만.

         

       “이걸 또 속네….”

         

       트렌드를 있는 그대로 잘 따라가면 절대 안 팔리는 작가일 리가 없다는 걸 망각하고 말았다.

         

       “삼류…, 아니, 십팔류 작가 새끼.”

         

       그렇게 백우진은 실연당했다.

         

       “에이, 씨.”

         

       그는 그대로 주저앉아 병나발을 불어대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혈수마녀가 어이없다는 투로 물었다.

         

       “지금…, 뭐 하는 게냐…?”

         

       백우진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혈수마녀의 얼굴을 보았다.

         

       사실 얼굴이 잘 보이진 않았다.

         

       그 아래 자리 잡은 커다란 봉우리가 그녀의 얼굴을 반쯤 잡아먹은 상태였기에.

         

       백우진은 처연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지금 술이라도 안 마시면 속이 터질 것 같아서 그럽니다….”

         

       이 세상에 낭만 따위는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기에.

         

       그런 날에 어찌 술을 마시지 않고 배길 수 있으랴.

         

       그런 백우진의 모습에 혈수마녀는 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대체 무슨 일이…!”

         

       그녀가 꽉 막힌 가슴을 두드리며 무어라 말하려 할 때.

         

       “후후.”

         

       별안간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하늘에서 이쪽을 지켜보고 있던 천마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아하하!”

         

       그녀는 지금의 상황이 퍽 우습게 느껴졌다.

         

       “나름대로 위엄 있게 등장했다고 생각했건만, 그렇지도 않은가 보군.”

         

       현경의 고수들도 내공 소모가 심해 오래 떠 있지 못한다는 능공허도까지 아낌없이 사용했는데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천마는 그저 궁금할 따름이다.

         

       이번엔 무엇 때문에 자신에게 실망했는지.

         

       “왜 본좌를 보고 실망하였나.”

         

       그녀의 물음에 백우진이 고개를 들었다.

         

       처음 볼 때만 해도 넋이 나간 표정을 짓더니, 이제는 무심하기 짝이 없다.

         

       그가 독한 말을 내뱉었다.

         

       “넌 글러 먹은 천마야.”

       “호오…?”

         

       처음 들어보는 말에 그녀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허나, 그 말 한마디에 머리끝까지 분노에 찬 이가 있었으니.

         

       진미연이었다.

         

       그녀는 제 주인을 모욕하는 말에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

         

       “너, 감히 주인님께…!”

         

       저 건방진 주둥아리를 으깨버리려 했으나, 그녀는 그러지 못 했다.

         

       “그만두거라.”

         

       제 주인이 그것을 원치 않았기에.

         

       자신이 추태를 부렸음을 깨달은 진미연이 넙죽 엎드렸다.

         

       “죄, 죄송합니다.”

       “괜찮다.”

         

       천마는 인자한 말투로 그녀의 추태를 용서했다.

         

       “그러나 한 번으로 끝나야 할 것이야.”

         

       이번 한 번만.

         

       “크흑…!”

         

       심장을 옥죄는 듯한 짙은 살기에 진미연은 제 이마를 땅바닥에 내리찍었다.

         

       쿠웅!

         

       땅은 움푹 파였는데, 그녀의 이마엔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인간의 탈만 뒤집어쓴 그녀의 거죽은 바위보다 질기고 단단했다.

         

       “며, 명심하겠습니다.”

       “뒤로 물러나 있거라.”

       “…존명.”

         

       진미연이 곧장 멀찍이 떨어지자, 천마는 백우진을 향해 재차 물었다.

         

       “내가 왜 글러 먹은 천마라고 생각하지?”

         

       그는 분노에 찬 시선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걸 진짜 몰라서 물어?”

       “난 모르겠군.”

         

       그의 검지가 허공을 갈랐다.

         

       “네 머리!”

         

       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박력에 천마마저 움찔하는 순간, 백우진이 말을 이었다.

         

       “네 머리의 색은 도저히 천마에 어울리지 않아악!”

       “…….”

         

       참으로 대단한 이유에 천마가 말문이 막힌 사이, 이를 지켜보고 있던 혈수마녀가 한심하다는 투로 백우진에게 물었다.

         

       “혹 정말로 미친 게냐…?”

         

       백우진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전 어느 때보다 정신이 멀쩡합니다.”

         

       이는 진심이었다.

         

       두 번째로 빙의당한 이후 백우진은 제정신으로 살았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제정신이다.

         

       유일하게 쫓던 낭만 하나가 박살이 나버린 순간 찾아온 슬픔은 그 누구도 알지 못 하리라.

         

       “머리 색이라….”

         

       천마는 제 머리카락을 몇 가닥 집어 제 눈앞에 가져갔다.

         

       윤기가 흐르는 검은색.

         

       제 머리를 관리하는 시비나 변장 상태로 외유를 나갈 때면 모두가 탐스럽고, 아름답다며 입을 모아 칭찬했건만.

         

       그에게는 그것이 매력적이지 못한 듯했다.

         

       “그렇다면 묻겠다.”

         

       궁금했다.

         

       현직 천마조차도 알지 못하는, 천마에게 어울리는 색이란 것이 따로 있는 것인지.

         

       “천마에게 어울리는 머리 색이란 게 대저 무엇인가.”

         

       그녀가 묻자, 백우진이 당당하게 답했다.

         

       “핑… 아니, 분홍색!”

       “분홍색…?”

       “그래, 그것도 그냥 분홍색이 아니라 벚꽃을 닮은 아리따운 분홍색이어야 하지.”

         

       이를 듣고 있던 모두가 당황했다.

         

       처음에는 하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기에 천마의 앞에서 정신을 놓아버려서 저리 됐다 생각했건만, 우스갯소리가 아니었다.

         

       지금 그가 내뱉은 말투에선 강인한 신념이 느껴졌다.

         

       그것이 아니면 안 된다고, 온몸을 다해 부르짖는 것만 같았다.

         

       “분홍색이라….”

         

       대저 분홍색이 무엇인지 이리도 사람을 귀찮게 하는지.

         

       천마는 쓰게 웃으며 묘한 눈길로 백우진을 내려다봤다.

         

       “본좌의 머리 색이 분홍색이면, 그대는 본좌의 초청에 응할 텐가?”

       

       길게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백우진은 즉답을 내렸다.

         

       “물론.”

         

       핑챙 천마의 초청을 거절하면 그건 사람이 아니다.

         

       적어도 지구에서는 그게 상식이니까.

         

       “그렇단 말이지.”

         

       천마의 입가에 즐거운 미소가 맺혔다.

         

       변화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바람에 흩날리던 그녀의 검은 머리칼이 물들기 시작했다.

         

       “헉.”

         

       그가 그토록 바라고 바랐던 벚꽃을 닮은, 아름다운 분홍빛으로 말이다.

         

       그것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검은 머리가 서서히 제 이상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보며 이 세상엔 왜 영상을 저장할 수 있는 도구가 없는지, 땅을 치고 후회할 정도.

         

       머리끝까지 물든 분홍빛 머리카락이 까만 밤하늘에 휘날렸다.

         

       마치 하늘에 아름다운 벚꽃이 흩날리는 것만 같은 황홀한 기분.

         

       “자, 이제 그대는 본좌의 초청에 응해줘야겠어.”

       “그야 당연…, 아, 아니지.”

         

       넋이 나간 채 고개를 주억거리던 백우진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리곤 의심의 눈초리로 그녀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 머리, 가짜 아니야?”

         

       그가 날카롭게 지적했다.

         

       원래 분홍색인 것과, 분홍색을 덧칠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생각해 보라.

         

       호박을 녹색으로 칠하고, 검은 줄을 긋는다고 해서 수박이라 부를 수 있는가?

         

       아니다.

         

       그 속은 여전히 호박의 내용물을 담고 있기에 그것은 절대 수박이라 부를 수가 없다.

         

       머리 색도 이와 같은 이치다.

         

       겉에 분홍색을 덧칠했다고 한들, 그 안에는 가증스러운 검정이 숨어 있을 테니.

         

       천마는 여유롭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게 본좌의 원래 머리 색이다. 다만, 이 색으로 저자를 돌아다니면 눈에 띄어 잠시 변장을 했을 뿐.”

         

       그녀는 입에 침 한 방울 바르지 않고 그럴싸한 거짓말을 내뱉었다.

         

       그 말도 안 되는 거짓을, 백우진은 믿었다.

         

       “으음…,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이곳 사람들의 머리 색은 하나같이 검은색이니, 그 사이에 분홍색이 돌아다니면 튈 법도 하다.

         

       생각해 보면 유화연도 그러했다.

         

       예쁘기도 예쁜데, 머리 색이 금색이라는 이유만으로 더 많은 주목을 받았었지.

         

       천마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럼 이제 본좌의 초청에 응하는 거겠지?”

       “어…, 마지막!”

         

       백우진은 검지 하나를 들어 올렸다.

         

       슬슬 천마도 짜증이 났는지, 인상을 구기며 그에게 되물었다.

         

       “또 뭔가.”

         

       백우진이 얼굴을 붉혔다.

         

       “그 머리, 한 번 만지게도 해주나…?”

       “…….”

         

       듣다 참지 못한 혈수마녀가 그의 뒤통수를 거세게 후려쳤다.

         

       빠악!

         

       “억!”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며 앞으로 고꾸라지는 백우진을 향해 그녀가 일갈했다.

         

       “네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처음에는 단순히 천마의 방심을 유발하기 위한 술책인가 해서 지켜보고 있었더니, 진짜로 천마를 따라갈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아이고, 나 죽네!”

         

       백우진이 드러누운 채 뒷머리를 부여잡고 데굴데굴 구르자, 혈수마녀가 양손으로 그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이놈아, 대체 왜….”

         

       혈수마녀의 신형이 자신에게로 향하는 천마의 시야를 완전히 가린 순간.

         

       백우진의 얼굴이 돌변했다.

         

       “제가 없는 동안 조원들 잘 붙들고 계셔야 합니다.”

       “무, 무슨….”

       “절대, 절 구하겠다고 조원들이 나서는 일은 없어야 할 겁니다. 그래야만.”

         

       그의 얼굴이 성큼 다가왔다.

         

       “그래야만 제가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백우진은 힘이 풀려버린 그녀의 손으로부터 제 멱살을 빼내어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콧김을 씩씩 내뿜으며 천마를 향해 외쳤다.

         

       “내 제안, 받을 거야, 말 거야?”

         

       천마는 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이 반경에서 그녀가 듣지 못하는 소리 따위는 없다.

         

       그렇기에 아무리 시야를 가렸다고 한들, 그가 혈수마녀에게 한 이야기는 모두 들었다.

         

       그러나 못 들은 척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백우진 또한 이를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뿐.

         

       ‘내게도 한 말인가.’

         

       그는 혈수마녀에게 당부함과 동시에 자신에게도 말을 건 것이다.

         

       순순히 응할 테니, 제 주변 사람 중 누구도 건드리지 말아 달라고 말이다.

         

       천마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한 번 정도는 만지게 해주지.”

       “아싸아!”

         

       주먹을 내지르며 기뻐하는 백우진의 모습을 보며 천마는 의아함을 느꼈다.

         

       저건 진심일까, 연기일까.

         

       천마는 백우진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의 의지에 따라 휘몰아친 내기가 그의 온몸을 휘어 감았다.

         

       그 순간, 백우진의 몸이 둥실 떠올라 천마의 곁으로 이끌렸다.

         

       “오오.”

         

       그것이 못내 신기한 듯, 하늘을 내려다보는 백우진.

         

       그러다 혈수마녀와 눈이 마주쳤다.

         

       이를 바득바득 갈며 분노한 그녀의 얼굴에 백우진은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잡혀가는 와중에도 천진한 척 연기하는 모습에 울컥한 혈수마녀가 울분을 토해냈다.

         

       “천마, 저놈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반드시 네년을 죽일 것이다.”

         

       원독어린 음성에도, 천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웃으며 대답했다.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오만이 아닌 자신감으로부터 비롯된 말에 혈수마녀는 이를 악물었다.

         

       “그럼 가지.”

         

       천마는 백우진을 팔에 낀 채로 허공을 날았다.

         

       제 팔에 조용히 안겨 있던 백우진이 이상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킁킁, 킁킁.”

         

       허공에 날리는 제 머리 냄새를 자꾸만 맡으려 드는 그를 보며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그가 지금까지 보인 행동들이 전부 연기인 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어쩌면 진짜 머리를 내주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어제 물난리로 인해 또 글 쓰는 시간이 미뤄지는 바람에 잠자는 시간이 또 꼬이고 말았네요…

    원래 이렇게 예민한 사람이 아닌데 왜 이러는지, 원…

    다음 편부터는 천마와의 꽁냥꽁냥 생활… 이 아니라, 천마신교에서 깽판치는 주인공의 모습이 그려질 예정입니다.

    많관부!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고, 저는 내일 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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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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