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95

       돌탑을 뒤로하고.

       말라 죽은 나무를 두드리고.

       특정한 곳의 원반형 돌을 치우고.

       몇몇 패턴을 파훼하고 쭉 나아가면 적당한 크기의 동굴이 하나 나타난다. 살짝 아래로 경사져서 지하로 이어진 곳이다.

       ​

       이곳이 유일한 통로.

       그 동굴을 넘어가면.

       ​

       “저곳이 아칸벨리인가.”

       ​

       뻥 뚫린 하늘과 외딴 성이 나타난다.

       솔직히 성이라고 부르긴 애매하다.

       아직 규모가 작고 사방이 절벽에 막힌 공간에 우두커니 있을 뿐이다. 성의 영토라고 해봐야 사방 200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

       다만, 경치는 나쁘지 않다.

       분명 땅속이지만, 마법으로 뻥 뚫린 하늘과 태양 빛이 비치고, 들판 같은 땅에는 농작물과 풀,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

       동화 같은 곳이랄까.

       나쁘지 않은 감성이다.

       하지만 저 대규모 마법은 내가 훔치러 온 히페리온 동력원으로 유지되고 있다. 곧, 이 아름다운 경치가 사라질 거라는 소리다.

       ​

       하지만.

       ​

       “역시 작아.”

       ​

       소규모 신생 세력이라던가.

       아름답긴 해도, 큰 성채 하나가 전부다.

       다른 세력 본거지를 봐선 모르지만, 세오른만 해도 도시를 제 것처럼 부리고 있었다. 그에 비하면 얼마나 초라한 건지….

       ​

       “환영합니다. 세리아스님.”

       ​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누군가가 나타나 정중히 인사했다.

       ​

       아마 아칸벨리의 노예다.

       고층에 있다고 해서 다 강하진 않다.

       알고 보면 고층에 갇혀 누군가의 발판으로 살아가는 이런 약자가 굉장히 많다. 탑에는 노예가 흔하다고 들었다. 또한 게이트를 이용할 수도 없으니 도망치지도 못하겠지.

       ​

       나는 노예에게 지시했다.

       ​

       “내가 온 걸 굳이 알리진 마라.”

       ​

       “네?”

       ​

       “여기 가만히 있으라고.”

       ​

       “…예, 예!”

       ​

       여성 노예는 가만히 자리를 지켰다.

       원래라면 먼저 뛰어가서 성에 내 소식을 보고하고 맞이할 준비를 하지만, 그러면 마음대로 돌아다니기 힘들어진다.

       ​

       따라서 녀석을 놔두고 나아갔다.

       아칸벨리의 성으로.

       ​

       ‘저 꼭대기에 아칸이 있겠지.

       ​

       아칸이란 자는 아칸벨리의 수장이다.

       자존감이 매우 높은지 세력에 자기 이름을 붙인 놈이다. 세리아스 기억에 의하면 150층까지 등반한 강자로 다른 큰 세력에서 머물다가 뜻이 맞는 지배자들 몇몇을 뼈와 창설한 곳이 바로 이곳 아칸벨리가 된다.

       ​

       세리아스도 그때부터 함께했다.

       아칸벨리의 주축이 되어 빠른 성장을 위해 드워프를 침략했다.

       ​

       하지만 놈들은 잘못 건드렸다.

       침략했으면 침략받을 각오도 해야 하는 법.

       오늘 아칸벨리는 파괴된다. 거래 따위는 일절 없다. 추악하고 제멋대로인 녀석들이라는 건 이미 다 알고 있으니까.

       ​

       방심하고 있을 때 모두 죽인다.

       ​

       자박.

       ​

       그리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외길을 걸어 성문에 도착.

       경비가 나를 맞이한다.

       ​

       꾸벅.

       ​

       나를 알고 있는 반응.

       고개 숙이는 세력원의 인사에 아무런 대꾸 없이 쭉 걸어갔다.

       ​

       현재 나는 세리아스다.

       최대한 그녀의 흉내를 내야 한다.

       ​

       “열어라.”

       ​

       “예.”

       ​

       지이잉!~

       ​

       마법 기술인 걸까.

       누군가 장치에 손을 넣자 마나의 유동과 함께 철문이 위로 올라갔다.

       ​

       제지받을 일은 없다.

       나는 이곳의 2인자다.

       ​

       안으로 진입했다.

       ​

       ​

       ​

       *

       ​

       ​

       ​

       성 1층 내부.

       넓은 복도로 움직였다.

       성은 5층 규모로 수백명 정도 머물 수 있다. 대부분은 노예들이며, 지금은 1명의 지배자와 10명 정도의 세력 간부가 머물고 있다.

       ​

       혼자선 살짝 부담되는 전력.

       내 힘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배자와 아칸은 각개격파할 필요가 있다.

       ​

       우선 지하로 향했다.

       이곳에 히페리온 동력원이 있으니까.

       ​

       1억짜리 보물.

       싸우기 전에 일단 그것부터 챙길 생각이다. 

       중간에 수틀려 도망가도 빈손은 아니도록 말이다.

       ​

       내게 쏠리는 시건은 모두 무시했다.

       그렇게 0층으로 향하는 지하 문에 도착.

       ​

       하지만.

       ​

       “세리아스님. 생각보다 일찍 돌아오셨군요. 원정은 성공하신 겁니까?”

       ​

       한 간부가 날 알아보고 다가왔다.

       도마뱀 머리를 한 리자드맨이었다.

       세리아스의 기억에서 엿보기 힘든 걸 보면 중요한 인물은 아닐 것이다.

       ​

       어서 지하로 내려가고 싶지만….

       우선 대화를 받아줬다.

       ​

       “주제넘은 질문이군.”

       ​

       “큼. 만약 실패하신 거라면 메리안님이 슬퍼하실지도 모르니까요.”

       ​

       이놈이 누군진 모른다.

       대신 메리안이라는 이름은 안다.

       이곳에 주거 중인 지배자의 이름 중 하나.

       다른 놈들과 마찬가지로 남들의 피땀으로 배를 채우는 작자 중 하나지만, 세리아스와는 별로 친하진 않은 관계다.

       ​

       대충 경쟁 관계 정도.

       어차피 내 알 바 아니지.

       ​

       “네놈 이름이 뭐지? 내가 어떤 놈을 짓밟아야 하는지 궁금해졌거든.”

       ​

       “네?… 무, 무례를 범할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

       “난 이름을 물었는데?”

       ​

       “그….”

       ​

       “함부로 나불대지 마라. 메리안이 내게서 널 지킬 수 있을 것 같나?”

       ​

       “죄, 죄송합니다!!”

       ​

       어차피 세리아스는 2인자다.

       하지만 메리안은 3인자라 하기에도 살짝 애매한 위치에 있는 놈이다. 

       ​

       게다가 난 진짜 세리아스도 아니지.

       이참에 머릿수를 줄여도 괜찮을 터.

       ​

       괜히 시비를 걸었다.

       ​

       “알 것 같군. 메리안이 날 떠보라고 시킨 거겠지. 내 말이 맞나?”

       ​

       “……아닙-”

       ​

       쩌적!!!

       “…!!?!”

       ​

       녀석의 목을 잡았다.

       얼음 능력을 극도로 끌어올려 녀석의 상반신을 통째로 얼렸다. 대답을 망설인 순간, 아니, 내가 여기 온 순간부터 어차피 죽을 운명이었다. 조금 앞당겨 줬을 뿐.

       ​

       이걸로 암살 끝.

       나름 300레벨의 강자 같지만….

       지배자급에겐 사냥개 정도에 불과한 정도.

       녀석은 꽁꽁 얼어붙어 움직이지 못했다. 그 옆을 스쳐 지났다.

       ​

       “허업!….”

       ​

       한 노예가 이 장면을 본 것 같지만, 무시했다.

       굳이 죄 없는 노예까지 죽일 생각은 없다.

       이대로 지하에 내려가자.

       어서 보물이나 훔쳐야지.

       ​

       쾅!~

       ​

       잠긴 문짝을 발로 뻥 차고 진입했다.

       ​

       ​

       ​

       *

       ​

       ​

       ​

       툭.

       ​

       지하에 도착.

       이 복도를 걸어가면 내가 찾던 히페리온 동력원이 나온다.

       ​

       하지만 그전에….

       ​

       휙.

       ​

       그대로 뒤돌았다.

       누군가가 따라왔거든.

       ​

       

       ​

       “야!! 너 진짜 미쳤어?”

       ​

       금발 머리의 여성.

       지배자 메리안이 나타났다.

       방금 얼려 죽였던 녀석의 주인으로 마안 능력을 가진 자다. 눈빛으로 환각을 보이게 하는 스왈리오스 계열이라 보면 된다. 날개가 있는 걸로 보아 평범한 인간은 아닌 듯하다.

       ​

       찌푸려진 이마.

       날 주시하고 있었던 걸까.

       내게 잔뜩 화가 난 모양새다.

       자기 부하를 일말의 망설임 없이 죽였으니, 어이가 없겠지. 진짜 세리아스라면 굳이 이렇게 분란을 조장하진 않았겠지만, 이곳을 파괴하러 온 내 입장에선 아무렴 상관없다.

       ​

       싸악

       ​

       잠시 주변을 쓸어보았다.

       식물의 시야로 복도 끝에 반경 2m의 구체가 허공에서 느릿하게 회전하는 게 보인다.

       ​

       저것이 히페리온 동력원.

       이 성의 모든 동력을 책임지고 있다.

       어차피 저걸 훔치려 하면 메리안이 날 이상하게 보고 덤벼들 터. 그럼 순서를 바꿔 저놈부터 처리하는 게 좋겠지.

       ​

       나는 세리아스인 척 녀석을 도발했다.

       ​

       “메리안. 귀찮게 하지 말고 꺼져.”

       ​

       “뭐? 내가 할 말이야! 드워프를 침략한 네가 왜 혼자 몰래 복귀해서 멀쩡한 부하를 죽이고 여기 지하에 숨어든 거지?”

       ​

       “네가 알아서 뭐 하려고?”

       ​

       “허? 그 정돈 말해줄 수 있지 않아?”

       ​

       “나와 싸워 이기면 알려주마.”

       ​

       “뭐, 뭐?… 설마 진심이야?”

       ​

       “너도 내가 싫잖아? 나도 네가 싫고. 그러니 이참에 우열을 가리는 게 어때?”

       ​

       “…너 이상해. 무슨 목적으로 여기 온 거야. 이상하게 말 돌리면서 도발하지 말고 여기 온 이유부터 말해.”

       ​

       “너야말로 쫄아서 말 돌리는 거냐? 됐다. 보내줄 테니까 가라.”

       ​

       훠이훠이.

       ​

       손짓으로 약 올리며 뒤돌아 움직였다.

       아마 참기 힘들 거다. 

       꼴에 지배자니까.

       ​

       “이 미친놈이!!… 그래. 한 판 붙자. 새끼야!!”

       ​

       다행히 예상대로 움직여줬다.

       이마의 핏대를 세우고 주먹을 쥔다.

       ​

       그렇다면 망설일 것 없지.

       먼저 뒤돌아 돌격했다.

       ​

       콱!!

       “큭!?”

       ​

       한 팔로 내리쳤다.

       메리안도 마찬가지로 한 팔로 방어했다.

       방금 죽인 부하 놈과 다르게 내 기습에 여유롭게 대응한 것이다.

       ​

       쩌저적!!

       ​

       그 팔을 얼렸다.

       왼손으로는 얼음의 창을 만들어 찔렀다.

       ​

       훅!!

       “이 새끼가 진짜!!!”

       ​

       파악!!

       ​

       녀석은 얼어붙은 손을 쳐내고 반대 손으로 얼음 창을 밀어 방향을 바꿨다.

       ​

       “무슨 속셈인지 밝혀주마!!”

       ​

       눈동자에 녀석이 반격하는 게 보인다.

       허나, 실제 녀석은 위에서 머리를 노리고 발을 내려찍고 있다. 아마 환각계 능력으로 수작을 부린 듯했다.

       ​

       물론, 식물의 감각에는 소용없다.

       애초에 육체의 눈뿐만 아니라, 피부 전체가 시각을 식물의 시야를 가졌다. 눈동자는 능력 발현 및 확대 기능을 가진 기관일 뿐이다.

       ​

       그럼에도 대단하다.

       한 번 펄럭인 날개와 순식간의 위쪽을 점하는 속도는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다.

       ​

       하지만 전부 보인다.

       대응하는 건 일도 아니지.

       살짝 몸을 틀어 내려찍기를 회피.

       ​

       콰앙!!!

       ​

       바닥이 부서질 듯 굉음이 터졌다.

       단순 신체 능력이 꽤 좋은 듯하다.

       녀석은 착지의 충격을 회전으로 승화시켜 팔꿈치를 휘둘렀다.

       ​

       굳이 받아줄 이유 없다.

       나도 놈과 비슷한 걸 쓸 수 있으니.

       ​

       파아~

       ​

       빛나는 눈동자.

       스왈리오스의 능력이다.

       예전엔 단순 흉내가 전부였지만, 이젠 그 메커니즘을 온전히 안다. 최면까진 힘들어도 감각을 뒤트는 건 지배자에게도 통한다.

       ​

       후웅!!

       “어!….”

       ​

       녀석은 내 옆.

       허공을 휘둘렀다.

       시원한 바람이 머릿결을 뒤흔든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는데, 공격이 이상하게 빗나가니 꽤 당황한 눈치다.

       ​

       “네 능력을 너무 믿진 마.”

       ​

       훅!!

       “크읏!!”

       ​

       그 틈에 얼음 창을 찔렀다.

       제대로 수련해본 적 없는 창 공격이지만, 세리아스의 기억을 엿보면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대충 감은 잡고 있다. 기억을 엿보는 걸 넘어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퍽!!

       쿠궁!!

       ​

       녀석은 두 팔을 태극처럼 휘둘렀다.

       강력한 반탄력이 나타나 공격을 막았다.

       ​

       역시 쉽게 당해주진 않는다.

       그렇다면 저항할 수 없게 만들어야겠지.

       ​

       텁!!

       쩌저적!!

       ​

       녀석의 양팔을 두 손으로 잡았다.

       피하려 했지만, 뒤틀린 감각에 당황한 녀석은 그대로 손목을 붙잡혔다. 공장 떨쳐내려 했지만, 이미 양팔이 얼어붙은 뒤다. 섣불리 떼어내면 자신도 위험한 상황.

       ​

       “으윽… 뿔?….”

       ​

       그런 한시가 급한 상황.

       녀석은 당황스럽게 내 이마를 바라봤다.

       ​

       이게 뭔가 싶겠지.

       내 머리에 뿔이 자라났으니까.

       이건 폐기장에서 섭취했던 지배자 아르곤의 힘이 담긴 뿔이다. 아르곤의 힘의 근원이자 강력한 파동을 쏘아내던 파동 능력. 이것의 장점으론 손이 필요 없다.

       ​

       우웅!!

       ​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이대로 발사하면 끝.

       ​

       “흡!!”

       ​

       녀석은 날개를 활짝 펼쳐 오러가 씌워진 깃털로 나를 폭격했다.

       ​

       촤라락!!

       까각!!

       팅!!~

       ​

       “허?”

       ​

       허나, 내겐 소용없다.

       강력한 위력과 관통력을 가졌지만 내 피부에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

       위기감을 느낀 녀석은 곧장 합장하듯 움직여 얼음을 깨트렸다. 아쉽게도 능력으로 만든 얼음이 더 약했다.

       ​

       얼음으로 속박하는 건 무리.

       게다가 녀석은 구속을 푸는 순간 내게 환각계 능력을 사용했다. 물론, 식물의 감각을 가진 내게는 귀여운 장난질로 보일 뿐이다.

       ​

       쥬륵!!

       ​

       가볍게 무시하고 녀석이 얼음을 깨트린 순간 나는 양손을 변형시켰다.

       ​

       휘리리릭!!

       “으윽!!?

       ​

       스왈리오스의 촉수다.

       안쪽에는 줄기도 함께 들어있다.

       유연성과 붙잡는 건 줄기가 좋지만, 점착력과 상대를 붙잡는 건 촉수가 나았다. 따라서 2개를 섞어 놈의 팔을 휘감았다.

       ​

       “왜 안 빠지는!!-”

       ​

       얼음으론 무리지만, 이건 다르다.

       이건 단순한 부속물이 아닌, 본체 육신이다. 모양새가 이렇지만, 놈을 붙잡은 괴력은 온전한 내 힘이다. 따라서 녀석의 팔을 휘감고 상반신으로 침투해 크기를 키웠다.

       ​

       슈르르륵.

       “그으윽!!”

       ​

       휘감은 곳을 강력하게 조였다.

       녀석은 당황한 듯 몸을 비틀었으나, 이번에는 구속을 풀지 못했다. 줄기 촉수는 쉽게 끊어질 수 없는 점성과 내구를 가지고 있어 한 번 걸리면 빠져나가기 힘들었다.

       ​

       그것이 지배자일지라도.

       이제 남은 건 마무리뿐.

       ​

       슥.

       ​

       파동 공격을 준비했다.

       ​

       “그만!! 그만해!!! 내가 졌어!!!”

       ​

       다급해진 걸까.

       녀석이 그리 고함쳤다.

       어느새 메리안은 하반신까지 검은 촉수에 뒤엉켜 구속된 상태다.

       ​

       하지만 멈출 생각 전혀 없다.

       지배자 하나는 죽이고 시작하는 게 좋잖아? 

       널 죽여야 아칸을 죽이기 쉬워진다고.

       애초부터 그걸 노리고 도발한 거였고.

       ​

       그럼, 잘 가라.

       ​

       “그마!!-”

       푸화아아아악!!!!

       ​

       강력한 파동이 발사되었다.

       뿔에서 쏘아진 무형의 힘은 순식간에 여성의 얼굴을 관통했다.

       ​

       

    다음화 보기


           


The Broken Goddess Tries to Raise Me

The Broken Goddess Tries to Raise Me

망가진 여신이 나를 키우려 한다.
Score 8
Status: Ongoing Author:
I have become the World Tree that the goddess is obsessed with. I ended up taking care of the broken goddess, and at some point, she started exerting her strength to raise me.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