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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5

       

       

       

       

       

       ‘알렉스?’

       

       처음엔 모자를 깊게 눌러 쓰고 있기도 했고, 알렉스라는 인물 자체가 원작 스토리에서도 굉장히 바쁜 인물이었기에 설마 이렇게 특별한 이벤트도 없는데 나타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설마 알렉스겠나 싶었는데, 이게 진짜 알렉스네?

       

       ‘이제 알렉스 실물까지 봤네.’

       

       모니터 너머 구린 그래픽으로만 보던 원작 주연 3인방을 이렇게 전부 실물로 보니 뭔가 감회가 새로웠다. 

       

       ‘다들 실물이 훨씬 낫긴 해.’

       

       알렉스도 생각했던 것보다 꽤나 잘생겼다.

       진한 갈색 머리에, 중세 시대 탐정을 연상시키는 콧수염이 게임에선 좀 우스꽝스럽기도 했는데 실제론 굉장히 세련되고 잘 어울리는 편이었다.

       

       ‘…근데 진짜 왜 온 거지?’

       

       설마 그 사이에 레키온이랑 데보라가 사귄다는 소문을 입수해서 그거 하나 확인하려고 호다닥 뛰어온 거야…?

       

       황실 소속 초 엘리트 암살자 정보원이…?

       

       “어? 진짜로 사귀는 거 맞냐고?”

       

       알렉스는 레키온과 데보라를 번갈아 보았다. 

       

       “그게….”

       

       레키온과 데보라가 얼굴을 붉히며 살짝 뒷걸음질치자, 알렉스가 피식 웃었다. 

       

       “반응 보니까 맞네.”

       

       그러고는 천장을 보며 소리쳤다. 

       

       “와, 이 개자식들! 드디어 사귀는구나!!!”

       “알렉스! 목소리가 너무 커! 물론 어차피 근처에 아무도 없긴 하지만….”

       “야, 그렇게 크게 소리 안 쳐도 되잖아!”

       

       하지만 알렉스는 십수 년 묵은 게 쑥 내려간 얼굴로 말을 이었다. 

       

       “소리 안 치게 생겼어? 내가 진짜 너네들 이러다가 평생 못 사귀고 끝나는 거 아닌가 걱정했다니까?”

       

       어, 원작에서는 그렇긴 한데요.

       아주 정확히 보셨네.

       

       “아주 둘이 각자 나한테 말하지 말라고 부탁과 협박을 오가면서 하는데…. 중간에서 답답해 뒈지는 줄 알았어. 뭐, 니들 인생이니 알아서 하겠지 생각은 했다만.”

       

       아하!

       

       ‘그래서 알렉스가 다 눈치를 채고 있었는데도 둘이 못 이어졌던 거구만.’

       

       알렉스의 반응을 보니 둘이 서로 좋아하는 걸 알고는 있었던 모양인데, 왜 저렇게 찐친이 옆에서 알고 있었는데도 둘이 못 이어졌는지 좀 의아하긴 했다. 

       

       레키온은 레키온대로 알렉스한테 절대 알리지 말아 달라고, 데보라랑 혹시라도 서먹한 사이가 될까 봐 부탁을 했을 거고.

       

       데보라는 또 데보라대로 알렉스한테 ‘말하면 죽여버릴 거야!’라며 협박으로 입을 막았던 거다. 

       

       알렉스 성격 상 속으로 걱정은 하면서도 방금 했던 말마따나 너희들 인생이니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내버려 뒀을 거고.

       

       ‘아니면 조금씩 힌트를 주긴 했는데 저 눈치 밥 말아 먹은 두 명이 못 알아들어서 결국 포기했거나.’

       

       저렇게 가까운 절친도 눈치 주는 데에 실패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했을까. 

       

       ‘진짜 아르 아니었으면 원작대로 갔겠는데.’

       

       이쯤 되니 내가 사실대로 말을 했어도 레키온이나 데보라가 들어먹었을까 하는 의문까지 들었다. 

       

       ‘역시 아르야. 우리 아르, 장하다.’

       

       어찌 됐건 간에, 알렉스는 레키온과 데보라가 드디어 사귄다는 사실에 굉장히 후련해했다. 

       

       그리고 눈치 밥 말아먹은 레키온과 데보라는 그제서야 알렉스가 가운데에 껴서 모든 상황을 알고 있었음을 깨닫고 2차 자괴감에 빠졌다. 

       

       “…야! 양쪽에서 이러고 있는 걸 알았으면 진즉에 어떻게 좀 해 주지 그랬어!”

       “그래, 당연히 나만 너한테 털어놓은 줄 알았지!”

       “얼씨구? 이제는 이 자식들이 내 탓을 하네? 진짜 양심이란 게 있긴 한 거냐?”

       

       알렉스가 눈을 부라리자 레키온과 데보라가 흠칫했다. 

       

       솔직히 알렉스 말이 맞긴 했다. 

       

       ‘이게 알렉스 탓은 아니지.’

       

       저 정도면 오히려 알렉스가 보살이다.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사귀게 된 건데? 썰 좀 풀어 봐. 바쁜데 그거 들으러 여기까지 온 거니까.”

       

       알렉스는 어쨌든 결과가 좋긴 하니 화가 누그러진 듯, 둘을 재촉했다.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레키온은 하무트교 지부에서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와…. 그럼 저기 지금 닭다리 뜯고 있는 드래곤 덕분에 이렇게 된 거야?”

       

       알렉스가 아르를 보며 말했다. 

       

       아까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상태에서 들켜 멈칫했던 아르는 침입자의 정체가 자신이 드래곤임을 알고 있던 알렉스였음을 알자마자 가슴을 쓸어내리고 맘껏 치킨을 뜯고 있었다. 

       

       “쀼우! 아르가 해내써여!”

       

       아르는 행복한 표정으로 부드러운 닭고기와 튀김옷을 입 안 가득 냠냠 씹으며 한손으로 브이를 해 보였다. 

       

       레키온은 그 귀여운 모습을 보고 흐뭇한 얼굴로 말했다. 

       

       “아이구, 우리 아르. 그래, 아르가 해냈지. 처음엔 갑자기 아르가 내 비밀을 말하길래 큰일났다는 생각밖에 없었는데, 데보라 쪽 이야기도 알고 한 말이었을 줄이야.”

       

       데보라도 닭다리를 뼈에 광택이 돌도록 깔끔하게 발라 먹는 아르를 보며 말했다.

       

       “확실히 아르가 한 말이 아니었으면 그 자리에서 내가 헛소리 하지 말라고 주먹을 날렸을지도 몰라.”

       

       알렉스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넌 그러고도 남지.”

       

       그러고는 설탕 든 소다수를 벌컥벌컥 마시고 있는 아르에게 가서 말했다. 

       

       “이름이 아르라고 했지? 고맙다. 내 답답한 친구 녀석들이 네 덕분에…. 후우. 그리고 얘길 들어 보니까 네 덕분에 하무트교 지부도 발견했다면서? 내가 그 지부 찾으려고 틈틈이 온갖 정보 수집해 가면서 날도 많이 샜는데…. 진짜 생각지도 못한 곳에 있었더군.”

       “그뿐만이 아냐. 아르랑 레온 님, 그리고 실비아 님이 대륙 남부에서 헤카르테라는 마왕도 봉인시키고 온 거였대. 네가 말했던 뒷골목 세력 정리한 게 그거랑 관련이 있었던 거고.”

       “뭐? 헤카르테? 그건 또 뭔 소리야?”

       

       연속으로 자신이 몰랐던 일들이 언급되자 알렉스는 살짝 멘탈이 흔들린 듯 이마를 짚었다. 

       

       “그건 제가 설명해 드릴게요.”

       

       나는 적절하게 나서서 알렉스에게도 하무트교와 헤카르테교에 대해 말해 주었다.

       

       다만, 내가 사실은 다른 차원에서 이 세계의 미래를 본 사람이라는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아르랑 실비아는 어차피 나랑 셋이 끝까지 함께할 관계이기도 하고, 둘 다 원작 스토리와는 크게 관계가 없는 인물, 용물(?)이다.

       

       아르는 원작에서는 등장하지 않고 실비아의 경우 극히 제한적인 상황에서 잠깐 등장하는 정도니까.

       

       ‘하지만 레키온이나 데보라, 알렉스는 원작에서 주연이 되는 핵심 인물들이야.’

       

       괜히 필요 이상의 정보를 알려줬다가 만약 인물들의 행동 양상이 예상 범위 밖으로 흘러가게 되면 일이 골치 아파질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미래를 알고 있다는 말 대신, 이드밀라와의 만남을 조금 각색해서 들려 주었다.

       

       우연히 아르를 데리고 이드밀라를 만나, 그녀에게서 대륙의 과거 이야기나 마왕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걸로 노선을 정하고 그에 맞게 적당히 썰을 풀자 알렉스뿐 아니라 레키온과 데보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된 거였군요.”

       “그럼 그때 봉인된 마왕이 몇이나 남아서 부활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아직 모르는 거네.”

       “하신 말씀이 사실이라면 정말 귀중한 정보로군요. 고룡에게 직접 들은 정보니, 아무리 저라도 아는 게 이상한 거였습니다.”

       

       자신의 정보력에 대한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날 뻔했던 알렉스는 살짝 안심하는 듯했다. 

       

       “이렇게 어린 드래곤이 계약자와 만나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신기한데, 돈 주고 살 수도 없는 귀한 정보를 알려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혹시라도 저에게 궁금하신 점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알려드릴 수 있는 선에서는 전부 알려드리겠습니다.”

       “으음, 지금 당장 떠오르는 건 없네요.”

       

       나머지 하무트교 지부의 위치도 이미 알게 되었고, 대략적인 원작 정보들도 내 머릿속에 있으니 딱히 지금 알렉스에게 알아내야 하는 정보는 없었다. 

       

       “그런….”

       

       내가 고개를 젓자, 알렉스는 잠깐 고심하는 듯했다.

       아무래도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한다는 성격 때문인 것 같았다.

       알렉스는 잠시 후 품에서 작은 코인 칩 같은 걸 하나 꺼내더니 나에게 내밀었다. 

       

       “그렇다면 이걸 받아 주십시오.”

       “이건…?”

       

       칩을 보자마자 나는 그게 어떤 물건인지 알아봤지만, 일부러 모르는 척했다.

       

       “아직 세간에는 공개되지 않은 원거리 정보 송신 아티팩트입니다. 제국의 워프 포털, 그리고 대륙의 몇몇 마력이 모이는 지점을 매개로 빌려 쓸 수 있어 설사 대륙 반대편에 있다고 해도 대략적인 위치는 알 수 있죠. 켜 두시면 저에게 위치가 뜨고, 다시 한번 마력을 주입해 저에게 알림을 전송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원하지 않으실 때는 꺼 두시면 됩니다.”

       

       한마디로 대륙의 특정 좌표들을 중계소로 이용한 삐삐 같은 아티팩트라고 할 수 있었다. 

       

       아마 저게 발전하고 발전하면 언젠가 이세계 스마트폰이 진짜 나올 수도 있겠지.

       

       ‘스토리 중에 이걸로 황실 암살자들 버스터콜 해서 마왕군을 측면에서 급습하고 전세를 유리하게 이끌기도 했었지.’

       

       원래대로라면 한참 후에 등장해야 할 아티팩트인데, 미공개 버전을 나에게 미리 공개한 것 같았다. 

       

       ‘받아 두면 나중에 쓸 데가 있겠지.’

       

       알렉스가 레키온이나 데보라만큼 정면 전투가 강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엘리트 암살자인 만큼 강점은 뚜렷하다.

       

       “감사합니다. 받아 둘게요.”

       “좋습니다. 그럼 전 다시 일이 있어서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거리가 아주 멀지 않을 땐 좀 더 자세한 정보도 공유가 가능하니, 제가 새로 알아낸 도움이 될 만한 정보가 있으면 이걸로 공유 드리겠습니다. ”

       “알렉스, 벌써 가는 거야? 온 김에 뭐 좀 먹고 가지.”

       “그래. 너무 빨리 가는 거 아냐?”

       

       알렉스는 고개를 저었다. 

       

       “너네 사귄다는 소식 듣고 시간 쪼개서 온 거야. 새로운 정보까지 입수했으니 조사할 게 늘었어.”

       “그래도….”

       “아쉽네.”

       

       그때 아르가 손을 번쩍 들며 알렉스를 불렀다.

       

       “쀼우! 알렉쓰 삼촌, 치킨 하나만 먹구 가여! 이거 진짜 마싰는데….”

       “사, 삼촌…?”

       

       아르는 종류별로 놓인 치킨 중 자신이 좋아하는 간장 치킨을 한 조각 집어 들고는 의자에서 일어나 알렉스 앞까지 가서 손을 쭉 내밀었다. 

       

       알렉스는 자기보다 키 큰 뚠뚠 아르가 삼촌이라 부르며 치킨을 내밀자 살짝 당황한 듯했다. 

       

       “레키온 삼쵼한테 들어써여. 아르랑 레온이랑 실비아 온니랑 방에서 마싰는 거 먹고 있는데 알렉쓰 삼촌이 밖에서 보구만 있었다구 했어여. 아르가 그때 알아쓰면 삼촌두 가치 먹자구 해쓸 텐데….”

       

       아르는 진심으로 아쉽다는 눈빛으로 알렉스를 바라보았다. 

       

       “이거는 아르가 만든 거는 아니지만 엄청 맛있으니깐 삼촌이랑 가치 먹구 시퍼여. 쪼끔만 먹구 가면 안 대여?”

       “…….”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르와 눈이 마주친 알렉스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곧 피식 웃었다. 

       

       “그래. 좀만 먹고 가자, 그럼.”

       

       알렉스는 아르가 자신의 입 앞에 내민 순살 간장 치킨 조각을 텁, 하고 받아 먹었다. 

       

       “…맛있네.”

       

       알렉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씩 웃자, 아르의 표정이 밝아졌다. 

       

       “쀼웃! 요기 달달꾸리한 소다수도 있어여! 이것두… 삐유우욱!”

       

       손에 치킨 기름기가 잔뜩 묻은 아르는 신이 나서 소다수 병을 집어 들고 오다가 미끄러져 떨어뜨렸다.

       

       쨍그랑!

       

       “삐유우…! 째송해여!!”

       

       아르의 비명 소리에,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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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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