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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5

       오로지 펜이 움직이는 소리만 들려오는 집무실.

         

       책상에 앉은 프란체는 식사도 거르며 일이라는 늪에 빠져 있었다.

         

       현재 제국 전체에 이뤄지고 있는 마도 혁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까닭이었다.

         

       따라서 혁명을 일으킨 데카르트 마탑의 주인, 프란체와 수석 교수 카자르에겐 일이 끊이지 않았다.

         

       안 그래도 바쁜데, 여기서 학구열이 불타오른 마법사들이 몸을 갈아가며 만든 안건과 새로운 발명이 시도때도 올라왔다.

         

       그 탓에 프란체는 식사할 시간도, 진과 만날 시간도 없었다.

         

       “후.”

         

       몰려오는 두통에 프란체는 눈을 감고 미간을 주물렀다. 옆에서 시중을 들던 헬레나가 제안했다.

         

       “공작님, 조금은 쉬시는 게 어떠세요? 여행 다녀온 이후로 여유가 없으셨잖아요.”

         

       그녀의 말대로였다.

         

       신혼여행을 즐기던 때가 당장 어제 같은데, 벌써 2개월이나 흘렀다. 일에 치여 살아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던 걸까.

         

       “아니, 얼마 안 남았으니까 걱정 마.”

         

       그러나 프란체는 헬레나의 제안을 거절했다.

         

       분명 약한 모습을 보이고 휴식을 취하면 진이 돕겠다며 나설 것이 뻔했다. 프란체는 지금껏 모든 걸 해준 진에게 그 무엇도 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저 곁에 있어 주기만 바랄 뿐.

         

       “그러면 아직 식사도 못 하셨으니 집무실로 가져다드릴게요…….”

         

       프란체는 “부탁해.”하곤 다시 펜을 움직였다.

         

       이어 서빙 카트에 음식을 담아 집무실로 들어온 헬레나. 프란체는 손으로 집무실의 소파와 탁자를 가리켰다.

         

       “저기에 놓아줘.”

       “네.”

         

       탁. 탁. 식기와 접시들이 책상 위로 놓였다. 프란체가 워낙 소식가였기에 많은 양은 아니었다.

         

       프란체는 하던 일을 적당히 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파에 앉아 식기를 들었다. 우선 버섯 샐러드부터 먹으려 했는데…….

         

       “우욱…!”

         

       구역질이 나왔다. 드레싱의 냄새가 원래 이렇게 역했나? 속이 음식을 거부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어, 공작님?”

         

       화들짝 놀란 헬레나가 다가왔다. 프란체는 한손으로 입가를 가리고 오만상을 구기더니 접시를 앞으로 밀어냈다.

         

       “이거, 냄새가 좀 이상한데.”

         

       매번 먹던 버섯 샐러드다. 드레싱의 뒷맛이 깔끔하고 버섯의 식감이 부드러워 프란체가 자주 먹는 음식이었는데, 갑자기 쳐다도 보기 싫어졌다.

         

       “이상하네? 이거 오늘 아침에 한 건데…….”

         

       헬레나는 고개를 기울이며 손짓으로 냄새를 맡았다.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혹시 모르니 맛까지 봤다. 매번 먹던 것과 같았다.

         

       “음식에는 문제가 없는 거 같은데요…?”

       “…그래? 분명 냄새가 이상했는데.”

         

       고개를 갸웃거린 프란체는 다시 샐러드의 냄새를 맡았다. 역한 냄새에 바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우욱!”

         

       이어 구역질까지. 위장이 솟구치며 뒤집히는 듯하여 몹시도 불쾌했다.

         

       “어, 어…!”

         

       그 모습을 본 헬레나는 어찌할 바 모르며 발을 동동 굴렀다.

         

       “다, 달리아 씨를 불러올까요? 최근에 너무 일만 하셔서 몸이 상하신 거 아니에요?!”

         

       말은 그렇게 해놓고 이미 집무실의 문을 연 헬레나. 프란체의 허락이 떨어지기도 전에 먼저 나가버렸다.

         

       쿵.

         

       집무실에 혼자 남은 프란체는 한껏 인상을 쓰며 고개를 내저었다.

         

       ‘왜 이러지.’

         

       정신까지 혼미한 걸 보니 음식의 냄새를 맡은 이후로 컨디션이 급격히 나빠졌다.

         

       “후우…….”

         

       소파에 몸을 젖힌 채 머리를 부여잡은 그때였다. 덜컥! 집무실의 문이 다급히 열리며 헬레나와 달리아가 들어왔다.

         

       “공작님!”

         

       초조함이 몰려온 헬레나는 뒤에서 조용히 손톱을 물어뜯었다. 달리아는 숨을 고르며 프란체에게 다가갔다.

         

       “상태가 안 좋으시다고 들었어요. 일단 검사해보려는데, 괜찮으시겠어요? 흑마법사인 공작님의 몸에 신성 마법이 몸에 들어가는 거라 부담이 생기실 수도 있어요.”

         

       매번 프란체의 건강을 확인할 땐 조심해야 했다. 신성 마법과 흑마법은 상극이니 말이다.

         

       보기 드물면서 까다로운 게 흑마법이기도 했다. 감정에 영향을 주는지라 제어하기 어려울뿐더러, 장소나 다른 속성과의 상성도 따지니 말이다.

         

       “괜찮아. 검사해줘.”

       “조금이라도 불편하시면 바로 말씀해주세요.”

         

       달리아는 드레스의 팔을 걷곤 신성력을 흘렸다. 일순 거부감에 몸이 움찔거린 프란체였지만, 크게 불편한 기색은 없었다.

         

       “어…….”

         

       검사를 진행하던 달리아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꿈틀거렸다. 이를 본 프란체는 눈을 끔뻑이며 물었다.

         

       “왜, 무슨 일인데?”

       “그게…….”

         

       달리아는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축하드려요, 공작님.”

       “뭐가?”

       “이제 후계를 보시겠네요.”

       “…후계?”

         

       프란체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이를 가졌다는 건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그간 진의 아이를 원한 건 맞지만, 좋은 소식은 없었다. 그래서 그냥 언젠가는 생기겠지, 하고 잊고 있었건만…….

         

       이렇게 갑자기 찾아올 줄은 몰랐다.

         

       “어, 어? 어떡하지? 뭐부터…….”

         

       프란체의 머릿속에 혼란이 찾아왔다. 혀가 꼬여 말이 버벅거렸다. 기쁜 건 맞지만, 당혹감도 섞여 있었다. 아직 남은 일이 산더미인데? 아, 진에게 알려야지.

         

       달리아는 쿡쿡거리며 허둥지둥하는 프란체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일단 진 씨에게 알리러 가야죠. 기다려왔던 기쁜 소식이잖아요?”

         

       달리아가 어깨를 으쓱이자 프란체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그녀의 말대로 일단 진에게 알리는 게 먼저였다.

         

       사랑의 결실이 드디어 생겼으니까.

         

         

       * * *

         

         

       데카르트 연무장의 지하실.

         

       간단한 공사를 통해 그림자들의 거처로 만들었다.

         

       아쉽게도 현재는 스칼렛 비스콘티만 있지만, 점차 늘어날 예정이다.

         

       ‘인력을 어디서 보충해야 좋을까.’

         

       외부 인력을 데려오는 건 빠르고 간편해서 좋지만, 신뢰를 쌓기가 어렵다. 충성이라는 건 그리 쉽게 생기는 게 아니니 말이다.

         

       그렇다고 스칼렛 비스콘티처럼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매번 카자르에게 부탁해 노예 계약을 사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육성인가.’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데려와 수용하는 것도 좋은 선택지였다. 더러운 일에 가담시키는 게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책상을 두드리며 고민에 잠긴 그때였다.

         

       -치직. 치지직.

         

       별안간 주머니에 있던 마도 통신구가 울렸다. 나는 빠르게 연락을 받았다.

         

       “무슨 일이야?”

       [공작부군님 빨리 침실로!]

       “왜, 뭔데?”

       [빨리, 빨리요!]

         

       달리아가 다급히 말했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긴 건가? 나는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라 판단해 빠르게 움직였다.

         

       서둘러 침실에 도착하니 달리아와 헬레나가 보였다. 프란체는 침대에 반쯤 누워 있었다.

         

       “뭐야? 혹시 어디 아픈 거야? 무슨 일인데?”

         

       다급했던 달리아의 목소리. 침대에 있는 프란체. 초조한 눈빛의 헬레나. 심상치 않은 일이 있다는 건 분명했다.

         

       “다들 나가줄래? 단둘이 있고 싶어서.”

         

       프란체가 싱긋 웃으며 말하자, 달리아와 헬레나는 가볍게 인사한 뒤 나를 지나쳐 갔다. 뭔데?

         

       “여기, 이리로.”

         

       그녀는 온화하게 미소지으며 내게 손짓했다. 침대 옆에 있는 의자에 앉으라는 뜻이었다. 일단 프란체의 말대로 했다.

         

       “진, 듣고 놀라지 마.”

       “뭘?”

       “아이가 생겼어.”

       “……어?”

         

       일순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당혹감으로 물듦과 동시에 굉장히 기쁘면서 심히 걱정스러웠다.

         

       “내가, 내가 아빠가 된다는 건가?”

       “그렇지.”

         

       프란체의 눈이 호선을 그렸다. 입꼬리는 광대에 걸쳐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드디어 생겼어.”

       “그러네…….”

         

       아까까지만 해도 일 관련해서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온통 아이 생각으로 뒤덮어졌다.

         

       “기쁘지 않아?”

         

       내가 말을 꺼내지 않고 멍하니 눈을 끔뻑이고 있자 프란체가 조심스레 눈치를 봤다.

         

       “아니, 당연히 기쁘지. 기쁜데…….”

         

       솔직히 말해서 걱정이 앞섰다. 내가 아빠의 역할을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왕자로서 자라나던 시절엔 가족에게 사랑을 받기보단 군주의 교육을 받았다. 왕자라는 의무에 사로잡혀 컸으니까.

         

       군주의 교육, 경제학, 역사, 언어, 사회 등등…….

         

       어린아이의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세계를 넘어가 지구에서 보낸 어린 시절도 다를 바 없었다. 그때도 엘리트 교육이라는 명목하에 사랑보단 교육을 많이 받았다.

         

       부모님께선 이것만 끝내면 선물을 주겠다고 하시거나 놀러 가자는 거짓된 약속을 빌미로 공부를 강요하셨다. 그래서 내가 지키지 못할 약속을 극도로 싫어하는 것이고.

         

       “걱정되는 거지?”

         

       이러한 내 마음을 단번에 알아챈 프란체였다. 얼굴에 그렇게 묻어나 있었나.

         

       “…걱정될 수밖에.”

       “그건 나도 그래.”

         

       프란체가 쿡쿡거리며 웃었다. 생글생글한 미소가 걱정으로 가득한 가슴 한 가운데에 박혔다.

         

       “너의 어릴 때는 들어보지 못해서 잘 모르지만, 일단 나는 가족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잖아? 어머니는 태어날 때부터 돌아가셨고, 외가 쪽은 아예 연락이 끊겼고.”

         

       꼬옥. 프란체는 떨리는 내 손을 잡은 채 고개를 기울이며 싱긋 웃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하려고. 내가 어렸을 때 받고 싶었던 사랑을 아이에게 주는 거야. 내가 하고 싶었던 것, 바라왔던 걸 아이에게 주는 거지.”

         

       나는 눈만 끔뻑이며 조용히 프란체의 말을 경청했다.

         

       “우리 애한테 내가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을 줄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프란체의 결심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아이가 생기기 전부터 그러기로 마음먹었을지도 모르겠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프란체는 그게 얼마나 고독하고 고통스러운지 알고 있으니 말이다.

         

       또한, 저 대답은 정답에 가까웠다.

         

       당시 내가 원했던 걸 아이에게 주면 되는 거다. 그리고 귀를 열고 아이가 원하는 걸 들어주면 되는 것이다.

         

       “…맞네. 나도 내가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을 줘야지. 그리고 아무런 걱정도 없이 자라날 수 있도록 가정을 지켜야 하고.”

         

       내가 아무리 수천 년의 삶을 반복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인형과도 같은 삶이었다. 하나의 목적만을 위해 움직였으니 말이다.

         

       이곳에서의 삶과 지구에서의 삶을 보내며 인생을 두 번이나 살았다고 하더라도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이었다.

         

       어리숙하고 부족한 점이 많을 테지만…….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아이 이름은 어떡할 거야?”

       “이름?”

       “응. 의미 깊은 거로 지어주고 싶은데.”

         

       이름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나는 눈썹을 좁힌 채 턱에 손을 짚었다. 프란체도 심각한 얼굴로 입가에 손을 가져다 댔다. 생각에 잠긴 분위기였다.

         

       그러다 문득 이러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웃겨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걱정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둘이서 심각하게 이름을 고민하고 있다니. 행복한 고민이었다.

         

       “음, 떠오르는 이름이 없네.”

         

       프란체는 어깨를 으쓱이곤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고는 나를 바라보며 배시시 웃었다.

         

       “아빠가 지어주는 건 어때? 진 아빠?”

         

       아빠라는 말을 듣자 가슴이 간지러웠다. 프란체와 결혼을 했을 때도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열이 올랐지만…….

         

       지금은 또 색다른 열이 올랐다.

         

       “그래, 오늘부터 모든 문헌을 뒤지면서 좋은 이름을 찾아야겠네.”

         

       나는 흔쾌히 프란체의 제안을 수락했다. 아이의 이름을 내가 직접 지어주는 일 만큼 기쁜 것도 없으니까.

         

       “그런데 이름 두 개 찾아야 해.”

       “…두 개?”

       “응. 쌍둥이니까.”

         

       ……쌍둥이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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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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