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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5

       파티는 계속 진행되었다.

       

       도중에 파티의 주인공인 나의 말을 듣겠답시고 청중들이 주목하게 만들어 엄청나게 쪽팔렸던 적도 있고, 아무리 영양가 없는 이야기의 연속이라고는 하지만, 아니, 어쩌면 그래서 더 지쳤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는 아주 많은 사람을 상대해야 했으니까.

       

       대부분은 인상이 그리 깊게 남지 않았다. 몇 명 정도는 기억난다. 그중에서도 이 사람은 꼭 기억해야겠다 싶은 경우를 제외하면, 머릿속에 남은 인물들은 거의 없었다.

       

       그 모든 것이 쓸데없이 느껴졌다.

       

       나는 좁은 세상을 원했다.

       

       좁은 세상에서 너무 오래 살아온 나머지 거기 익숙해져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고, 그냥 천성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손에 들어온 것을 일부러 포기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너무 많이 늘려서 손 밖으로 흘러넘치는 것도 싫었다.

       

       결국 한 시간 정도 그렇게 서 있고 나서 완전히 지쳐버린 나는, 파티가 벌어지고 있는 로비 근처의 한 작은 방에 틀어박혔다.

       

       파티에 온 사람 대부분은 이미 친한 사람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으니, 나를 찾아올 사람이라고 해봐야 하늘이, 수아, 소희 정도였다.

       

       아니면 양혜인도 있으려나.

       

       뭐, 그 사람들이라면 얼마든지 찾아와도 상관없었지만.

       

       원래는 뭐 하는 방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방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엇이든 들여놓으면 그대로 써도 될 방이긴 했다. 화장실이나 샤워실이 딸려있지는 않아서 방으로 쓰기에는 조금 불편하긴 하겠지만.

       

       그렇게 비어있는 방이더라도, 의자 몇 개 정도는 있었다. 그중의 하나에 기대앉아,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서 있었을 때는 잘 몰랐는데, 아무래도 나는 다리가 엄청 아팠던 모양이다.

       

       그렇게 체력을 길렀는데도, 아직 한참 모자란 모양이다.

       

       조금 부은 다리를 손이 닿는 곳까지 주무르고 있는데, 방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사라야.”

       

       들어온 이는 하늘이었다.

       

       “괜찮아?”

       

       내가 다리를 주무르고 있는 것을 본 하늘이가 조금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응, 괜찮아. 그냥 조금 지쳐서 쉬는 중.”

       

       나는 조금 부드럽게 대답했다.

       

       날을 세울 필요가 없는 상대였으니까.

       

       평소와는 다르게 머리를 풀고, 붉은 드레스를 입은 하늘이는 서민 가정의 아이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만약 나와 하늘이가 오늘 처음 보는 사이였고, 누군가가 하늘이를 데려다가 어디 어디 그룹 회장의 손녀라고 소개했다면 나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만큼, 돈이 많은 사람이나 적은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느꼈다.

       

       뭐, 하늘이는 어디를 가도 거기 녹아들려고 노력하는 노력파여서 더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르겠지만.

       

       하늘이는 다시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내 쪽으로 걸어와 옆자리에 앉았다.

       

       “…….”

       

       “…….”

       

       잠깐 말이 없었다.

       

       사실 거의 매일같이 대화하는 사이였다 보니, 의외로 나눌만한 이야깃거리가 많지는 않았다. 심지어 우리는 경험하는 것도 거의 비슷했다. 매일 붙어 다녔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그 침묵이 불편한 것은 아니었다.

       

       이 침묵은, 할 말이 없어서 생긴 침묵이라기보다는 굳이 둘이 말을 나눠야 할 이유가 없기에 생긴 공감의 침묵이었으니까.

       

       “저기, 사라야.”

       

       “응?”

       

       “생일 축하해.”

       

       갑자기 하늘이가 그런 말을 해서, 나는 다리를 주무르던 손을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허리를 펴 하늘이를 보았다.

       

       하늘이는 나를 보고 있었다. 얼굴을 살짝 붉히고, 손을 꼼지락거리고 있다. 지금 이 상황이 조금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하늘이는 아마도, 이 말을 내가 아니라 ‘그 사람’에게 하고 싶었으리라.

       

       그런 의미에서는 조금 미안하긴 했다.

       

       은근슬쩍 자리를 바꿔서 내가 그 사람인 양 행동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별로 양보하고 싶지는 않았다.

       

       “고마워.”

       

       나는 하늘이에게 빙긋 웃어 보였다.

       

       그 사람이 생일의 날짜로 나의 생일을 말해준 것은 다행이었다. 덕분에, 나는 어색하지 않게 감사 인사를 할 수 있었으니까.

       

       “생일 선물은 방에 준비해놨으니까, 파티 끝나면 줄게.”

       

       그사이에 또 선물을 준비한 모양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대단한 수완이었다.

       

       생일 선물이 무엇이건 상관없다…… 는 것은 그 사람과 같았다. 내 친구들이 준비해 준 선물에 투덜거릴 생각은 전혀 없었다. 무엇을 받건 기쁠 테니까.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받아보는 제대로 된 선물이었으니까.

       

       사실 그 사람이 인터넷으로 주문해둔 선물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는 했지만, 별말은 하지 않았다. 기왕이면 모른 척 받고 싶었다.

       

       “그럼…… 파티도 열심히 진행해야겠네.”

       

       나는 웃으며 그렇게 말하고, 몸을 일으켰다. 잠깐 앉아있었더니 한결 몸 상태가 나아졌다.

       

       파티는 언제쯤 끝나려나.

       

       아무리 그래도 한 시간쯤 더 하고 나면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지. 삼촌한테 눈치 주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내가 몸을 일으키자, 하늘이도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나란히 방을 나가려고 걷던 찰나에—

       

       하늘이가, 내 오른 손목을 잡았다.

       

       불시에 기습당한 나는 반항하지도 못하고 그 힘에 이끌려서 몸을 빙글, 반 바퀴 돌렸다.

       

       그리고 하늘이와 그대로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사라’야.”

       

       “어, 어……?”

       

       “나는 사라한테도 축하 인사를 하고 싶은데.”

       

       하늘이의 웃음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것 같은 웃음이었다.

       

       “어, 아니, 내가 사라잖아.”

       

       “아니지, 너는 ‘사라’잖아?”

       

       하늘이가 나의 이름에 강세를 넣어서 물었다.

       

       ……어떻게?

       

       분명히 나는 따로 말을 하지는 않았는데?

       

       “그러니까, 기왕이면 사라를 불러주는 건 어때? 응? 직접 주고 싶은 선물이 있거든.”

       

       “……싫다면?”

       

       들켰으니, 더 이상 숨길 이유도 없었다.

       

       내가 똑같이 하늘이를 이글거리는 눈으로 바라보자, 하늘이는 그대로 내 몸을 뒤로 밀쳤다. 당연히 힘 대 힘으로는 하늘이를 이길 수 없는 나는, 속절없이 뒤로 밀려서 벽에 등을 기댔다.

       

       쾅!

       

       “으, 으에…….”

       

       하늘이의 왼손이, 내 왼쪽 얼굴 옆의 벽을 쾅 쳤다.

       

       하늘이의 얼굴이 바싹 붙어왔다. 그 얼굴에서 발산하는 열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무, 무슨…….”

       

       “만약 네가 불러내지 않으면, 내가 직접 부를 거야.”

       

       “…….”

       

       하늘이의 몸이 나에게로 붙어온다.

       

       드레스는 그리 천이 두껍지 않았기에, 나와 몸을 붙인 하늘이의 몸의 라인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심장 뛰는 것이 서로에게 느껴질 것만 같았다.

       

       “해, 해 볼 거면, 해 보던가.”

       

       나는 짐짓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어차피 너는 첫 키스일 것 아냐? 그 첫 키스를, 그 사람도 아니고 나랑 해버릴 생각이야?”

       

       “너‘는’ 이라니?”

       

       앗.

       

       “그러니까…… 너는 키스를 해봤다는 말이야? 누구랑?”

       

       “…….”

       

       “사라랑? 어떻게?”

       

       “…….”

       

       하늘이의 눈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사실 아까부터 계속 타오르고 있기는 했지만, 이제는 어떤 물리력이라도 생길 것 같았다.

       

       “어, 어떻게 했건 상관없잖아?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어. 어차피 첫 키스도 아니고.”

       

       나는 있는 힘껏 허세를 부렸지만—

       

       “나도 상관없어.”

       

       “어?”

       

       하늘이는 그 허세를 한 손가락으로 박살 내버렸다.

       

       “어차피 이 몸은 사라의 몸이기도 하니까,”

       

       “어어?”

       

       “그대로 입술을 붙이고, 사라가 올 때까지 기다리면, 그걸로 첫 키스로 치면 되는 거잖아?”

       

       끊어지지 않는 긴 키스라면, 그걸로 첫 키스라고 쳐도 되지 않을까?

       

       “그게 무슨 헛소리야!”

       

       하지만, 하늘이의 얼굴은 이미 한껏 가까워졌다.

       

       “아니, 잠깐만, 하늘아, 정신 좀 차으에!”

       

       얼굴을 옆으로 돌려보았지만, 벽을 짚고 있던 하늘이의 손이 내 턱을 잡아 다시 자기 쪽으로 돌렸다. 한 손은 여전히 손목이 잡혀있었고, 다른 한 손으로 반항해보았지만,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정신이 혼미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감각이었다.

       

       아무리 그 사람과 내가 자유롭게 몸을 바꿀 수 있다고 하더라도—

       

       외부적인 요인으로 몸이 바뀌는 것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던 모양이다.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한 나는 눈을 꽉 감았다.

       

       시야가 차단되었는데도, 앞에 누가 있는지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몸과 몸이 달라붙고,

       

       코끝에 코끝이 스치고,

       

       입술에, 뭔가 부드럽고 따뜻한 것이 와 붙었다.

       

       마지막으로 느낀 것은 달큰한, 립글로스 향기였다.

       

       *

       

       ……어?

       

       어어?

       

       잠깐만.

       

       아니, 아니, 아니.

       

       잠깐만.

       

       나는 조금 전까지 의식 안에서 쭉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의식이 전환되어, 눈을 떠보니 시야가 흐릿했다.

       

       뭔가 너무 가까이 있어서 제대로 초점이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불 꺼진 건물에 스위치를 하나씩 올리는 것처럼, 몸의 감각이 하나씩 돌아왔다.

       

       제일 먼저 느낀 것은 향기였다.

       

       향긋한 꽃향기 같았다.

       

       어쩌면, 지금 나와 붙어있는 사람한테서 나는 향기일지도.

       

       그다음으로 돌아온 것은, 내 등 뒤에 있는 딱딱한 벽, 그리고 내 앞에 딱 붙어있는 부드러운 몸이었다.

       

       그리고, 입술에 붙어있는, 어떤 따뜻하고 부드러운—

       

       어쩌면, 상대의 입술.

       

       “…….”

       

       천천히, 상대가 뒤로 물러났다.

       

       제대로 잡히지 않던 초점이 잡히고, 그래도 상대를 아주 잠시 혼동하다가, 나의 뇌가 지금 눈앞에 있는 상대는 머리를 푼 하늘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 뒤이어서, 한가지 추론을 내놓았다.

       

       ……바로 조금 전까지, 나와 하늘이는 입술을 붙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른바 키스를 했다.

       

       “……으헿?”

       

       그리고, 그 결론이 너무 이상해서, 내 입 밖으로 그런 오류음이 튀어나왔다.

       

       “생일 축하해.”

       

       그런 나를 보고, 하늘이는 생긋 웃어 보이며 그렇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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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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