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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5

   EP.195

     

   검으로 명성이 자자한 남궁세가.

     

   오직 검 한 자루로 무림의 한 축을 평정하고 역사 속의 선조들 중 누군가는 하늘을 갈랐다는 소문마저 무성한 그곳에도 사람이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이 있었다.

     

   “흐아암……”

   “자네 어제 잠을 설쳤나? 아까부터 하품을 자주 하는군.”

   “어어.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말이야. 몸 상태가 영……”

     

   빗자루를 들고 있던 남궁세가의 하인 중 하나가 하품을 하자 옆에 있던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받았다.

     

   “어? 자네도 그랬나? 나도 어젯밤에 몸이 좀 이상했네. 원래 한 번 잠들면 누가 업어 가도 모르는 편인데 어제는 새벽에 자꾸 눈이 떠졌어.”

     

   그의 말에 옆에 있던 다른 하인들이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만의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어젯밤은 평소의 밤과 사뭇 다른 기분이 드는 날이었다. 한 번씩 몸이 떨리기도 하고 쇠가 부딪치는 자잘한 환청 같은 게 들리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하인도 소리의 출처를 확인할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실제로 검이 부딪쳤던 소리가 들렸다면 밤의 낭만을 찾는 또라이 남궁들의 밤 비무거나 누군가가 남궁가를 습격한 상황 정도밖에 없었다.

     

   비무라면 신경을 끄고 자면 된다.

   습격이라면 하인들이 할 수 있는 건 쥐 죽은 듯이 방에 숨어 있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이다.

     

   “뭐… 비무였겠지.”

   “그게 제일 타당하긴 하네. 세상에 어떤 머저리가 감히 남궁가에 암습을 시도하겠는가.”

     

   무림에 단 5명뿐이라는 현경의 무인이 남궁에 있었다.

   심지어 가주의 자리에 앉아 두 눈 시퍼렇게 뜨고 가문을 지키고 있는데 그 누가 덤빈다 하더라도 두려울 것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만약 습격이 있었다면 난리가 났을 걸세. 누군가 자객을 발견했다면 소리를 질렀겠지 누가 바보같이 칼싸움만 하고 있었겠나?”

   “듣고 보니 맞는 말이군.”

     

   그들에게 남궁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 있는 산이자 그들을 비호하는 방패였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이 분명한 견고한 성.

   그리고 그들의 생각이 엇나가기 시작한 것은 그들이 매일 아침 청소를 해야 할 가주전의 안뜰이 보일 때쯤이었다.

     

   “응……?”

   “그…… 진짜 이상한 말로 들릴지도 모르겠네만, 지금 이거 꿈 아니지?”

     

   가주전으로 통하는 문이 박살나 있었다.

   그 벽이 허물어진 것은 물론이요. 무슨 포탄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가주전은 엉망진창의 상태에 처해 있었다.

     

   “가, 가, 가주니이이임!!!”

   “이익! 이게 대체 무슨 날벼락이야?!”

     

   하인들 중 일부는 다른 식솔들을 깨우기 위해 뒤돌아 달렸고 남은 하인들은 가주인 남궁학의 안위를 확인하기 위해 곧장 가주전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들이 가주전에 헐레벌떡 진입했을 때 보게 된 것은 누군가의 싸늘한 시신도, 피비린내도 아닌 가부좌를 튼 채 연못에 앉아 있는 남궁학 뿐이었다.

     

   고오오……

     

   “등평도수…?”

     

   한 하인의 말에 하인들의 시선이 연못 위의 남궁학을 향했다.

   물 위에 떠 있는 신형. 정확히는 물 위, 공중에 떠 있는 능공허도라는 비행술이었지만 안목과 경지가 부족한 그들이 이해하기에는 그 수준이 터무니없이 높은 상태였다.

     

   남궁학은 사람들이 오든 말든 신경 쓰지 않은 채, 자신의 운기를 이어갔다.

     

   어젯밤에 만났던 그 자객과의 비무에서 깨달은 것이 있었기에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기 전까지는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과연……’

     

   그저 여느 때와 다를 것이 없는 달밤이었다.

     

   현경이 된 이후로 찾아오지 않던 자객이 정말 오랜만에 가주전에 발을 들였고 그 무모한 용기에 감탄하여 조금 가르침을 주고자 했던 것이 시작이었다.

     

   ‘달이라……’

     

   날은 차가웠다. 현경의 경지에 들고 한서불침이 생긴 이후로 춥다는 감각을 제대로 느낀 적이 없었지만 그 자객에게서는 인간이 담을 수 없는 거대한 음기를 느낄 수 있었다.

     

   달빛 아래에서 펼쳐진 빛의 군무.

   현경의 경지에 다다르며 수많은 무인을 상대했던 남궁학이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부류의 무공이었다.

     

   ‘아름다웠다.’

     

   그의 무공은 화려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충분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에 맞서기 위해서는 남궁의 절기인 제왕검형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스윽.

     

   남궁학은 눈을 떴다.

     

   그의 무공을 계속해서 떠올리고 있으면 오히려 깨달음에 독이 될 것 같았기에.

     

   “기쁘구나.”

     

   비무의 결과는 참패.

   어째선지 자신을 습격한 그 자객… 아니, 손님은 몇 차례 검을 더 섞다가 자리를 벗어났지만 만약 끝까지 싸움을 이어 나갔다면 지금 이 연못이 남궁학의 무덤이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장로들이 보면 나잇값 못한다고 한소리 하겠군.”

     

   오랜만의 두근거림이었다.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싸움을 해 본 것도 오랜만이었고 더 강해지고 싶다는 열의가 이렇게까지 치솟은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갑자기 아이들이 보고 싶군.”

     

   남궁의 이름으로 검을 배우는 제자들이 보고 싶었고 자신과 피가 섞인 모든 아이들이 비무를 하는 모습이 보고 싶어졌다.

     

   “명이 녀석을 불러봐야겠어.”

     

   자신의 혈육 중 가장 자신감이 부족했던 녀석.

   남궁에서의 경쟁이 두려워 도망친 막내 녀석의 정신머리를 한 번은 뜯어 고쳐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

     

   “흠흠, 이렇게 하고…… 다음이 이거였나?”

   “……뭐 하고 계세요?”

     

   그리고 같은 시간 천월문에서는 수련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검을 휘두르는 나를 보며 남궁명이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어제 누구랑 대련을 좀 했는데 뭘 좀 배운 것 같거든.”

   “대련이요? 어제 수련 끝난 뒤에는 꽤 늦은 시간이었을 텐데요.”

   “맞아. 그러니까 그때 싸웠지.”

     

   그가 이해하지 못했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검을 휘두르기에는 너무나도 늦었던 밤.

   뭔가 오묘한 뜻이 있기보다는 실제로 천월신공은 달이 뜨면 더 강한 힘을 발휘했기에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애초에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며 이치를 깨닫고 자신의 검을 개안하는 무공이 천월문의 근본이었으니까.

     

   ‘그나저나… 너무 쉽게 생각했나?’

     

   탑을 오르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봤지만 성좌가 아닌 존재가 그렇게 강한 힘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특히 남궁의 궁극기라는 제왕검형은 초식을 목도하는 순간 탈람바르의 일격이 떠오를 정도의 압박감이 있었으니 당황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그래도 얻을 건 얻었으니까.”

   “네?”

   “일단 다른 사람들 오기 전에 궁명이 너한테만 뭐 하나 가르쳐 줄게.”

     

   나는 남궁명의 답변을 듣기도 전에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가장 기본적인 자세인 동시에 가장 안정적인 자세인 중단세.

     

   하지만 그저 단순한 동작이라고 하기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후우……”

     

   어젯밤 내가 남궁의 가주를 통해 본 제왕검형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

     

   첫 번째는 이 검법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까다로운 동작들을 요구한다는 것. 물론 그것이 허리를 뒤틀고 팔을 꺾을 수 없는 방향으로 이리저리 휘두른다는 말은 아니었다.

     

   오히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단순하기 그지없었다. 그저 중단세에서 시작해 검을 들어 올리는 게 다였으니까.

     

   스윽.

     

   하지만 그 경지가 달랐다.

     

   “어?”

     

   내가 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자 나의 동작을 가만히 보던 남궁명이 탄식하며 눈을 크게 뜬다.

     

   “지금부터 잘 봐.”

     

   남궁명은 제왕검형을 익히기 위해서는 천뢰제왕신공이라는 심법을 우선적으로 익혀야 한다고 말했었다.

     

   특정한 검법을 배우기 위해 특정한 심법이 도움이 된다는 것. 그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고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도움이 된다는 것’일 뿐. 무조건적으로 그것을 배울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만류귀종이라는 말 알지?”

   “시작은 다를지라도 끝까지 가면 결국 같은 지점에 도달한다는… 뭐 그런 뜻 아닌가요?”

   “잘 아네.”

     

   무공이라는 것은 어떤 선행 스킬을 배워야 다음 스킬을 익힐 수 있는 스킬트리 같은 게 아니었다.

   그저 원리를 알고 그것을 펼칠 내공이 있다면 행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것은 2층에서의 기연으로 천무지체에 가까운 몸이 된 성좌에게는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나는 자세를 굳힌 채, 온몸 구석구석에 마력을 흘려 신체를 강화했다.

     

   강 强

     

   남궁이 말하고자 하는 검은 그리 특별할 게 없었다.

   그저 꺾이지 않는 것. 그 어떤 고난과 역경에도 포기 하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 그들의 정신이었다.

     

   “흐읍!”

     

   중 重

     

   그들은 가문과 자신의 책임 등, 어깨에 짊어진 모든 것을 거추장스러운 짐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저 지켜야 할 대상으로 그것들을 바라봤고 그 모든 것에 동화되어 그들의 일검에 실었다.

     

   쾌 快

     

   나아간다.

     

   망설임 따위는 없었고 그랬기에 그들의 검은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빨라야 했다.

   그 어떤 적도 남궁의 일보를 막을 수 없었다. 그들의 앞을 막아서면 그저 파괴되고 절단될 뿐.

     

   남궁세가는 그렇게 무림의 정점에 올랐다.

     

   쐐애액!!!

     

   나는 오른발을 떼며 검을 아래로 내리그었다.

     

   제왕검형 제일식 帝王劍形 第一式

   진검 進劍

     

   오직 한 걸음.

     

   일보와 그 안에 압축된 일격이 정면을 향했고 그 투박하기 그지없는 일검에 나의 제자이자 남궁의 막내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

     

   나는 남궁명에게 내가 본 제왕검형을 가르쳤다.

     

   물론 제왕검형을 제대로 펼치기 위해서는 천무지체에 근접할 몸의 밸런스와 내공이 있어야 했지만 그 초식에 담긴 심상을 이해시키는 것만으로도 수련에 큰 도움이 되었으니 아쉬울 건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저기…… 스승님?”

     

   남궁명이 수련을 하다 말고 우물쭈물하며 운을 띄웠다.

     

   “질문 있어?”

   “아버지께서 저를 찾으셔서 잠시 본가에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제가 천월문에 와서 배운 것들을 보고 싶어 하시는 것 같습니다.”

     

   녀석이 근심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가문의 경쟁이 두려워 대문을 뛰쳐나온 어린 막내. 검에 대한 재능이나 열정 같은 건 둘째치더라도 녀석은 아직 미숙한 꼬맹이에 지나지 않았다.

     

   “그 말을 나한테 한 이유는?”

   “스승님도 같이 가주시면 좋겠는데요……”

   “왜?”

   “무서워서요.”

     

   역시.

     

   녀석은 아직까지 자신의 재능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한 번 본 무공을 엇비슷하게 따라할 수 있는 안목과 한참 부족할지라도 꾸준히 나아갈 수 있는 끈기과 열의.

     

   제왕검형을 배우기에 더 이상 알맞은 인재가 없을 정도로 뛰어난 녀석이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래 가자.”

   “네?”

   “학부모 참관 한 번 해보자고.”

     

   자신이 범인지 모르는 바보 같은 제자.

   녀석의 재능도 알아보지 못 하는 형제들과 아버지를 만나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예비군 잘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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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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