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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6

       황성으로 간 이유는 달리 없었다.

       ​

       ‘로즈마리.’

       ​

       그녀의 의자매를 찾기 위해서였다.

       ​

       “크악!”

       “크헉…!”

       “으윽….”

       ​

       황성을 수색하던 이들이 몇 명 있었다. 에테르는 이들을 보이는 족족 때려눕히며 지나갔다.

       ​

       ‘캘리퍼스를 꺼낼 가치도 없다.’

       ​

       스태프를 쓴 건 아니었다. 금안족과 수인족이 쓰는 호신술. 체술을 사용했다. 이런 약자들은 엎어치기 한 번으로도 기절하기 일쑤였다.

       ​

       그렇게 1층부터 정리하며 올라갔다.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시체의 수도 늘어났다.

       ​

       ‘전부 토터스에게 당한 모양이군.’

       ​

       에테르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아갔다. 그녀의 목적지는 상층에 위치한 어느 방이었다.

       ​

       끼익. 문고리를 잡고 돌렸다.

       ​

       천장이 뜯어진 곳이다. 양옆으로 시체가 쌓여있다. 방바닥에는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다. 축조진. 토터스를 이곳에 소환할 때 쓴 대형 스크롤이었다. 해당 스크롤 주변에는 검은 액체가 흩뿌려진 상태였다.

       ​

       마지막으로, 한쪽에는 소녀의 신형이 널브러져 있었다.

       ​

       에테르는 그 소녀와 눈을 마주쳤다. 힘없이 풀린 동공. 금색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본다.

       ​

       “……로즈마리.”

       ​

       에테르는 눈을 가늘게 떴다.

       ​

       그녀가 여기 온 이유는 로즈마리를 추궁하기 위함이었다. 왜 토터스를 풀어 놓았느냐. 도대체 뭐가 문제길래, 내가 인간들과 잘 살려고 했던 것을 방해했느냐. 그리 물어보고 싶었다.

       ​

       그런데.

       ​

       그럴 수가 없었다.

       ​

       “어, 언니…….”

       ​

       로즈마리는 고개를 까딱였다. 끄으으, 하고 신음까지 흘린다. 그런 와중에도, 소녀는 울먹이며 말했다.

       ​

       “내가, 내가 미안해.”

       ​

       에테르는 멍한 표정으로 다가갔다. 자세히 보니 팔다리 곳곳에 구멍이 뚫려있었다.

       ​

       고운 드레스는 여기저기 찢어져 있었다. 몸 곳곳이 그을렸다. 군청색 머리카락은 산발이었다.

       ​

       처량한 모습. 눈가에 주었던 힘이 풀린다. 에테르는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

       “너, 너 왜 그래.”

       “내, 내가 미안해…. 한 번만, 한 번만 용서해 줘….”

       ​

       로즈마리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미안하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

       화를 내고 싶었는데.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분노가 사그라들었다.

       ​

       “원, 래, 로드스톤만 먹고 튀려고 했는데……. 갑자기 이사장이 나타나서…. 그래서, 마법을 맞아서….마력초 물 시간이 없어서……. 그래서, 그만…. 내, 내가 미안해…….”

       ​

       로즈마리는 거기까지 말하고 핏물을 토해냈다.

       ​

       “저, 저거…….”

       ​

       로즈마리가 손으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에테르는 그 방향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담배처럼 돌돌 말린, 손가락 크기의 스크롤. 에테르는 그것을 보자마자 눈에 핏발을 세웠다.

       ​

       ‘내가 만든 거잖아.’

       ​

       백야의 열화판이었다.

       ​

       ‘그래, 그렇게 된 거였어.’

       ​

       한순간에 타올랐던 분노가 눈 녹듯이 사라진다. 에테르는 망연자실한 사람처럼 고개를 푹 떨구었다. 동생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었다.

       ​

       ‘이럴 때가 아니지.’

       ​

       퍼뜩 정신을 차렸다.

       ​

       백야는 플레어보다 관통력이 수십 배는 높다. 심지어 물질을 이온화하는 효과를 지닌다. 마법이 관통했을 때. 맞은 부위 일부가 순식간에 플라스마처럼 변했다가 돌아왔을 것이다. 지금은 치료가 급선무였다.

       ​

       ‘그런데 어떻게 치료하지?’

       ​

       에테르는 사고를 더듬었다. 그러다가 무언가가 생각나 고개를 들었다.

       ​

       ‘양장본.’

       ​

       여신이 자신의 또 다른 자아에게 준 아이템.

       ​

       여신 르퀴네스. 그녀는 미덥지 않은 상대였다. 하지만, 로즈마리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여신의 힘이라도 기꺼이 써 주겠다.

       ​

       에테르는 아공간에서 양장본을 꺼냈다.

       

       “치유, 치유 마법 같은 거 없나…?”

       ​

       책의 목차를 펴보았다. 그러나 이전까지와는 달리 목차는 다른 글들로 빼곡히 적혀있었다.

       ​

       [치료 마법을 찾으십니까?]

       [현재 당신이 해야 할 것은 파괴입니다.]

       ​

       에테르는 눈살을 찌푸렸다.

       ​

       [TIP : 모든 마법을 파괴하고 다음 앙상블로 이동하십시오.]

       ​

       [화계마도 : 0/1049]

       [수계마도 : 0/992]

       [지계마도 : 0/1007]

       [공계마도 : 0/824]

       [전계마도 : 0/2252]

       [미분류 : 0/149]

       ​

       무언가가 바뀌었다. 에테르는 책을 아무렇게나 동댕이쳤다.

       ​

       보통 이렇게 책을 막 굴리면 툴툴대는 소리가 들려와야 하는데, 양장본은 조용하기만 했다. 마치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

       “빌어먹을.”

       ​

       이젠 다른 방법이 없다. 직접 마왕성으로 가서 치료하는 수밖에.

       ​

       ‘시간이 촉박하다.’

       ​

       에테르는 로즈마리를 끌어안았다. 그때 뚫린 천장 사이로 누군가가 내려왔다.

       ​

       붉은 로드스톤을 들고 있는 용인이었다. 그녀가 누구인지는 불 보듯 뻔했다.

       ​

       “두 달 만이군. 안 그런가?”

       “…….”

       ​

       민천(旻天)의 요르문간드.

       ​

       둘 사이에 꾸민 말은 불필요했다. 1천 년을 함께한 동료란 그런 것이었다.

       ​

       대화는 짧게, 행동은 빠르게.

       ​

       요르문간드가 잔잔하게 미소지었다.

       ​

       “기운이 달라졌군. 결의라도 바꾸었나?”

       “…이제 다 끝났다.”

       “그렇군.”

       ​

       요르문간드는 감았던 눈을 떴다. 딱, 하고 그녀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하늘 위로 메카닉 와이번 두 체가 날아들었다. 1군단의 정예. 그녀의 먼 친척뻘 되는 마수들이다.

       ​

       하늘을 올려다보는 에테르를 향해, 요르문간드가 손짓했다.

       ​

       “동포의 귀환을 환영하지. 자, 타라.”

       ​

       ​

       **

       ​

       ​

       와이번이라고는 하나, 실상은 지구에 있는 전익기와 다름없다.

       ​

       안에 사람이 탈 수도 있고, 아래쪽에는 폭약을 적재할 수도 있다. 머리 부분만 도마뱀처럼 생겼을 뿐이다.

       ​

       이 또한 ‘철화의 저주’를 받은 결과다. 본래 와이번은 날아다니는 도마뱀에 불과했다. 마왕의 저주가 단순한 육식성 동물을 완전한 괴물로 뒤바꾼 셈이다.

       ​

       이런 와이번은 동작도 날렵하다. 제트기에 맞먹는 수준. 아니, 그 이상이다. 제국에서 마왕성까지 30분이면 날아간다.

       ​

       “이 정도면 됐겠지.”

       ​

       그동안 요르문간드는 로즈마리를 응급처치했다.

       ​

       “이러고 있으니 오랜만에 옛날 생각이 나는군.”

       “대전쟁 때 말인가?”

       “그래.”

       ​

       1천 년 전, 대전쟁 시절.

       ​

       그땐 야전사령관이 곧 치료사이기도 했다. 요르문간드는 직접 전투하면서 전선의 장병들을 치유했었다.

       ​

       “처치 실력은 녹슬지 않았어. 호천(昊天)보단 아니지만.”

       “물의 로드스톤도 얻었다고 했나?”

       “물론. 이제 녀석의 영혼을 끌어올 수 있을 터다.”

       ​

       먼 옛날. 대전쟁에서 마왕군이 정령에게 대패했을 때,마왕과 홤께 봉인되었던 두 존재가 있었다.

       ​

       ‘창천(蒼天)’의 파스모.

       ​

       ‘호천(昊天)’의 길라흐.

       ​

       각각 봄 하늘과 여름 하늘을 다스리던 사천(四天).

       ​

       그들은 전쟁 마지막까지 정령을 도륙했다. 패색이 짙어짐에도 항복하지 않았다. 하여 각각 불의 정령왕과 물의 정령왕에게 덤벼들었다. 그 결과는 영 좋지 못했다.

       ​

       “놈들이 깨어나면 우리보고 한 소리 하겠군. 마왕군 기강이 말이 아니라면서 말이다.”

       “봉인 당한 것보단 백 배 낫다고 받아치면 그만이다. 주군이 그랬잖아? 강자는 늘 살아남아야 한다고.”

       ​

       두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때웠다. 그 사이에 증기의 비에 젖었던 옷도 다 말라갔다.

       ​

       문득 창가를 내려다보았다. 하늘 아래로 구불구불한 설산이 보인다.

       ​

       눈발 날리는 날씨였다. 이따금씩 얼음이 동동 떠다니는 강도 보였다. 세상이 온통 하얀색이었다.

       ​

       누나타크 지형. 엘랑카야 산맥을 마주한 에테르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

       “……집이군.”

       ​

       생소했다. 마왕군에 못 있겠다 싶어서 뛰쳐나왔더니, 결국 돌아온 곳은 원점이었다.

       ​

       쿠우우웅! 와이번은 꽤나 요란하게 착지했다.

       ​

       에테르는 로즈마리를 둘러맸다. 곧바로 탑 입구까지 달려갔다.

       ​

       척, 처걱!

       ​

       머리가 모니터처럼 생긴 마수 둘이 에테르의 앞을 가로막았다.

       ​

       한 팔에는 드릴, 다른 팔에는 경기관총을 단 이물들. 얼굴에선 치지직, 하는 소리가 났다. 또한 키는 5m에 육박하는 듯했다.

       ​

       까가각!

       ​

       두 마수가 머리를 위아래로 한 바퀴 돌리며 총을 겨누었다.

       ​

       “…신원을 밝혀라.”

       ​

       에테르는 고개를 들었다.

       ​

       “비켜. 뒤지기 싫으면.”

       “……넵.”

       ​

       철의 마탑.

       ​

       마왕성은 아니지만, 마왕성과 가까운 장소. 여기라면 야전병원으로 써도 그만이다.

       ​

       얼마 만일까. 복잡하게 얽힌 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에테르는 헤매는 일 없이 치료소에 도착했다.

       ​

       ‘메디컬 캡슐이…. 저기 있군.’

       ​

       에테르는 로즈마리를 캡슐에 넣었다.

       ​

       [치료를 시작합니다.]

       ​

       마수는 마석을 적출당하지 않는 한 명줄이 질기다. 오장육부가 다 뜯겨 나가더라도 마석만 간직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살아난다. 다행히 로즈마리는 마석이 있는 곳에 직접적인 피해를 당한 흔적이 없었다.

       ​

       “후우.”

       ​

       급한 불도 껐겠다. 에테르는 담배를 물고 밖으로 나왔다. 계단을 타고 상층으로 올라간 것이다.

       ​

       마탑의 최상층. 청소를 안 한 건지 눈이 소복하게 쌓여있다. 에테르의 시선이 자연스레 하늘로 올라갔다.

       ​

       ‘벌써 보름인가.’

       ​

       만월. 대륙의 자전축을 안정시키는 위성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

       손을 호호 불어서 덥힌다. 에테르는 목도리를 풀어서 두 손으로 펼쳤다.

       ​

       하얗고 보드라운 목도리. 여전히 누가 준 건지는 모르겠다. 상표명도 없다.

       ​

       하지만.

       ​

       ‘따듯하군.’

       ​

       

       어째서인지 계속 두르고 있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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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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