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96

       만족스럽다.

        

       그날의 그 대화 이후로 소피아는 더 이상 나한테 이상한 소리를 하지 않는다.

        

       레오는 애초에 오해한 적 자체가 없었고, 앨리스는 반쯤은 나를 놀리고 싶었을 뿐이었으니 더 놀릴 이유가 없는 이상은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것이다.

        

       샤를로트는 종종 나를 슬픈 눈으로 보긴 했지만 그뿐, 나를 더 레오와 엮을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어떤 큰 사건을 해결할 때, 시간을 돌리지 않고 해결하는 것만큼 뿌듯하고 기분 좋은 일은 없다.

        

       예전에야 그런 치트 능력이 있으니 아무 때나 막 써도 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인간관계가 달라졌으니까.

        

       내 주변에 있는 친구들은 문자 그대로 나의 ‘친구들’이었다. 그리고 그 애들과 나눈 대화 하나하나는 전부 추억이었다.

        

       시간을 돌린다는 행위는 나의 실수를 되돌려 만회한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 모든 기억이 전부 사라진다는 뜻이기도 했다.

        

       학기 초만 하더라도 내 완벽한 이미지를 위해서 능력을 몇 번이나 써왔지만……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이미지가 너무 많이 깨질 것 같으면 쓰긴 하겠지만, 그래도 작은 실수 하나하나에 전부 능력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특히 인간관계로 이어지는 대화 이후에는 더욱.

        

       그렇기에, 어떤 사람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능력을 쓰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만족스러운 것이다.

        

       뭐,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능력을 쓸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정말이지, 신출귀몰이라니까.”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 것은 키아라 베라티였다.

        

       온몸에 붕대를 칭칭 감은 채 침대에 누워있는 그녀는 내 쪽을 보며 힘없이 웃고 있었다.

        

       “그것도 그렇게 편하지도 않은 옷을 입었으면서.”

        

       “이렇게 보여도 신소재가 많이 사용된 교복입니다. 활동성에 지장은 없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쿵.

        

       문 쪽에서 그런 소리가 들렸다. 몇 번 더 크게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웅얼웅얼 들렸다.

        

       당연하지만, 아무리 다친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성당 기사였다. 손에 무기가 들리지 않더라도 일반 병사는 쉽게 쓰러뜨릴 수 있는 존재였기에 이렇게 다친 상황에서도 갇힌 곳은 제도 한가운데 있는 황성 깊은 곳이었다.

        

       ……사실 이렇게까지 다친 사람을 굳이 이런 곳에 가둬둘 필요가 있나 싶기는 한데.

        

       “대체 어떻게 빠져나가려고…… 라고 물어봐야 대답해주지 않겠지?”

        

       “글쎄요.”

        

       키아라 베라티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말했다.

        

       “지금부터 나눌 대화에 따라서는 알려드릴 수 있을지 모르죠.”

        

       “흥. 그래도 어차피 내가 알아서 상관없을 부분만 알려줄 테지.”

        

       “약속해드리죠. 제 비밀을 확실하게 알려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갑자기 가면녀가 튀어나오지만 않으면 시간을 못 돌릴 일도 없을 테니까.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 갑자기 튀어나올 일도 없다고 생각한다. 가면녀는…… 지보가 관련된 일에만 나타났으니까.

        

       그 지보가 처음으로 내 앞에 나타나는 시점 때마다. 지난번 황제가 주웠다던 가방도 이미 한참 전에 확인했다. 워낙 꼭꼭 숨겨져 있어서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일까지 해가면서 알아내야 했지만, 그때 나한테 다쳤던 사람들 모두 지금은 멀쩡했으니 괜찮지 않은가.

        

       그러니까, 아마도 가면녀는 그 지보 때문에 능력을 쓰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 가면녀가 나올 때마다 내가 능력을 봉인 당했듯이.

        

       여신의 힘이 연관되어있는 물건이, 나나 그 가면녀의 능력을 막는다.

        

       “그리고 날 죽이기라도 할 생각이야?”

        

       “…….”

        

       만약 내 능력이 막히는 순간이 온다면 그래야 할지도 모르지.

        

       나의 침묵에, 키아라 베라티는 인상을 썼다.

        

       그리고 한참 생각하다가, 이내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 말해봐. 뭔가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이야기해주실 겁니까?”

        

       “나한테 선택권은 있고?”

        

       쿵, 하고 문 쪽에서 다시 소리가 들렸다. 어쩌면 저쪽에서 마법이나 대포라도 준비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 대포까지는 아니려나. 그건 황제가 막을지도 모르겠는데.

        

       “지난번에 루카스가 당신에게 물었던 것이 무엇입니까?”

        

       “지보에 대해서.”

        

       키아라 베라티는 자기 말대로 순순히 대답했다.

        

       “그 지보가 어떤 물건이고, 우리가 왜 지보를 찾고 있는지에 관해서 물었지.”

        

       “당신은 그렇게 높은 사람이 아니라서 잘 모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걸 곧이곧대로 믿었어?”

        

       “그건 아닙니다만.”

        

       거기서 더 물어본다고 해서 더 이야기해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지. 그렇다고 앨리스 앞에서 사람을 고문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

        

       키아라 베라티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말했다.

        

       “나는 지보를 탐색하기 위해 제국으로 파견된 인간이야. 그리고 그곳이 노스우드가 아니더라도, 지보를 찾아볼 만한 장소는 많지. 예를 든다면 이곳, 황성이라던가.”

        

       “지보를 찾기 위해 일부러 잡혀 오셨다는 말입니까?”

        

       “아니. 일부러 잡힌 건 아니야. 하지만 잡혀 온 김에 그 위기를 기회로 바꿔보려고 해봤지.”

        

       “성공하셨습니까?”

        

       “아니.”

        

       키아라 베라티는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가장 중요한 포로를 가져다 놓을 정도로 중요한 장소이면서도, 지보는 여기가 아니라 다른 곳에 숨겨둔 모양이더라.”

        

       “그 지보는 어떻게 찾으실 수 있습니까?”

        

       “지난 수백 년간 법국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던 건 아니거든. 신성한 지보를 찾아 여신께 힘을 돌려드리기 위해…… 여신님께서 다시 이 세상에 임하실 수 있도록 우리는 장치를 완성하려고 했던 거야. 당연히 수백 년 전의 기록만을 바탕으로 움직이지는 않지. 법국의 가장 높은 사람들만 쓸 수 있는 신성 마법이 있어. 사람한테 쓰는 마법이고, 원리는 몰라도 그 마법을 받아들인 인간은 지보 근처에 있으면 위화감을 느끼는 법이니까.”

        

       “그 위화감을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

        

       “법국에서는 그 감각을 확실하게 알 수 있도록 법국이 가지고 있는 지보로 훈련을 시키거든.”

        

       “그리고 그 지보 중 하나가 지금은 제국에 있게 된 거고요.”

        

       “……그렇지.”

        

       키아라 베라티는 길게 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 마법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하게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 마법이 외부로 퍼지는 것을 법국의 높으신 분들이 원하지는 않으시니까. 마법 자체는 대상을 잠들게 한 뒤에 행해지고, 깨어난 뒤에도 그 증거가 없어. 혹시 내 몸에 문신이라도 새겨졌을까 하면 오산이야. 뭔가 새겨진 건 맞는데, 그걸 확인하려면 또 법국만의 마법이 필요하니까.”

        

       “그렇습니까.”

        

       쿵!

        

       우지끈, 하는 소리가 같이 들려서 시선을 돌려보니, 문이 이쪽에서도 볼 수 있을 만큼 확실하게 움푹 들어와 있었다.

        

       “이 이야기를 제게 들려주는 이유에 대해서 알 수 있겠습니까?”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그렇게 물었다.

        

       불과 얼마 전— 그러니까, 루카스가 쳐들어와서 심하게 당한 뒤에 정신을 잃기 전. 그때는 철저하게 비협조적으로 나오던 인물이었는데.

        

       “하아, 그러게.”

        

       키아라 베라티는 시선을 천장으로 멍하니 향하며 말했다.

        

       “나는 지금까지 여신님을 위해서는 그냥 죽어도 된다고 생각했거든? 교리상 자살은 안 되겠지만, 그래도…… 여신님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죽자는 생각은 하고 있었어.”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법국은 나를 어떻게 구해줄 방법도 없는지 계속 방치 중이고, 심지어는 무슨 인간 같지도 않은 녀석이 갑자기 튀어나와서는 내 옛 동료를 죽여버렸다고 하고. 법국은 또 지보까지 빼앗기고. 그냥…… 이게 뭔가 싶다. 내가 지금까지 굳게 믿어왔던 게 다 박살 난 것 같아. 솔직히 말하자면 그때 정신을 잃은 채 그냥 일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을.”

        

       “그게 이유입니까?”

        

       “그래. 그리고 네가 말했잖아. 네 능력이 대체 어떤 것인지 말해주겠다고. 나를 어떻게 찾았고, 여기서는 어떻게 탈출할 생각인지. 솔직히 말하자면 엄청나게 궁금하거든.”

        

       문의 경첩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그렇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렇다면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이미 일어날 일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바깥에서 보고 돌아왔으니까요.”

        

       “……미래를 알고 있었다는 소리야?”

       

       키아라는 허, 하고 숨소리를 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저는 시간을 돌리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

        

       “그러니 탈출로를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필요한 것을 얻으면 그냥 돌아가면 그만이니까요.”

        

       “하.”

        

       키아라 베라티는 어이없다는 듯 웃음소리를 냈다.

        

       “믿지 못하십니까?”

        

       “아니. 그건 아니고. 논리적으로 말은 안 되지만, ‘그런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면 딱딱 들어맞기는 하니까. 그냥…….”

        

       키아라 베라티는 한참 동안 말없이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쾅! 문이 완전히 부서지고, 갑옷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키아라 베라티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쪽에서 나한테 엎드리라느니 뭐라느니 소리를 지르고 있었지만, 그 사이로도 키아라 베라티의 말은 선명하게 들려왔다.

        

       “허무하네. 여신님의 힘을 위해서 그렇게 애썼는데…… 실제로는……”

        

       하지만 뒤로 말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하긴, 이 정도만 들어도 들을 만큼 들었지.

        

       다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