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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6

    수영을 하지 못하는 자라도 손쉽게 물에 뜰 수 있도록 돕는 보조도구, 수영 튜브.

     

    튜브를 허리에 끼워 배꼽을 가린 루크는 그제서야 조금은 안도하며 바닷가를 거닐을 수 있게 되었다.

     

    “휴우…….”

     

    어린이용으로 제작되어 조금은 작은 느낌이 들기는 해도, 아무렴 어떠한가?

    대놓고 배꼽을 드러내고 다니는 꼴 보다는 훨씬 나았다.

    최소한 밖으로 발을 옮길 수 있을 정도로는 부끄러움을 참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루크가 밖으로 나오자, 디아나가 손을 흔들며 외쳤다.

     

    “루크언니! 여기야, 여기! 빨리 가자!”

     

    어쩜, 저 어린 아이조차 배꼽을 저리 드러내는가!

    통탄할 지경이었으나, 이곳의 모든 사람들 중에 배꼽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자신밖에 없는 듯 하다.

    하여, 시선을 돌리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이었다.

     

    “그, 그래. 너는 먼저 가서 놀거라.”

     

    “응!”

     

    루크의 말을 들은 디아나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 단어를 외치며 바다를 향해 맹렬히 달려가기 시작했다.

     

    “바다다! 바다!”

     

    파이리스는 그런 디아나를 보고 따라서 달리려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배꼽을 신경쓰는 반사적인 작용으로 루크는 파이리스의 배꼽이 있을 장소로 눈이 향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파이리스의 수영복에 배꼽은 드러나지 않았다.

    대신, 수영복에 그려진 캐릭터가 비친다.

     

    마법소녀 메루루…….

     

    원체 파이리스는 원피스를 좋아하기도 했고, ‘정령’이기도 했으니, ‘정령소녀’원피스 수영복은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었다.

     

    정령이 정령소녀 캐릭터가 그려진 옷을 입고 있는 것이 참 재미있는 농담거리이긴 하지만…….

     

    루크는 지금 그런 것에 웃을 정신이 없었다.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루크를 바라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언니, 왜 그래? 바다 맘에 안 들어?”

    “……아니, 아닐세.”

    “그래?”

     

    솔직히 바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바다란 그야말로 생명의 원천.

    그렇기에 혹자는 바다를 물로 이뤄진 숲이라 부르곤 한다.

     

    생명을 품고 끊임없이 흐르며 태동하는 드넓은 푸른색은, 육지에서 나고 자라 바다의 마나에 어울리지 않는 인간일지라도, 바다 특유의 청량감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동기를 불어넣고, 마법사에겐 종종 새로운 관점을 선사한다.

     

    또한 이것은 무려 이 시대에 눈을 뜬 이후 처음으로 맞이하게 된 바다이니, 마법사적 관점에서는 환영할 일이다.

    분명 기뻐하는 편이 맞으리라.

     

    그러나 루크에게는 현재 그 바다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의 아름다움을 느낄 마력시가 없었기에, 마냥 마법적인 사고를 지속하기는 어려웠다.

    단지 물질만을 바라보는 시야는, 그야말로 물질계에 꽁꽁 묶여 속박된 느낌마저 든다.

     

     

    아니, 어쩌면 자신을 속박하는 것은 바로 자신 일지도 모른다.

     

     

    루크는 자신의 허리를 두른 이 단순한 도구를 바라보았다.

    배꼽을 가리기 위해 그것이 마치 국보라도 되는 것 마냥 양 손으로 잡아 전전긍긍하는 자신의 손을 의식하게 된다.

     

    어째서 부끄러워하는가?

    배꼽을 내보이기 때문에?

    그것은 단지 문화이고 규칙일 뿐이다.

     

    사람을 비로소 짐승으로부터 분리하여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규칙이지만, 그 규칙에 과도하게 몰두하여 자신을 잃는 것이 정녕 옳다고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분명 자신이 현재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해서 육체를 따라 정신마저 나약해진다면 정녕 대마법사라고 부를 수 있는가?

     

    인간은 육신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그 한계를 깨는 것이 바로 영웅이다.

     

    영웅은 그래선 안된다.

     

    루크는 숨을 고르고, 눈의 초점을 바로했다.

     

    루크는 드디어 부끄러운 자신이 아닌, 저 드넓은 대양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바다 특유의 묻어나오는 듯한 마나는 전혀 보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육안으로 보이는 저 색만은 여전하고 또, 충분히 푸르렀다.

     

     

    비록 마력시가 없어도, 서클을 돌릴 수 없어도, 이런 몸이 되었더라도…….

     

     

    추구하는 것은 그 너머, 저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이므로.

     

    루크는 그러기 위해 가장 먼저, 자신이 현재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루크는 한결 진중해진 목소리로, 예르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예르나, 수영을 가르쳐주게.”

     

    “응! 그럼, 잠깐만 기다려봐.”

     

    ——–

     

    예르나는 루크가 튜브를 얻고나서 드디어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을 보고는 생각했다.

    그렇게 물이 무서웠던 것일까, 하고.

     

    루크는 튜브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발걸음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았다.

    그것이 루크의 몸이 불편해서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잔뜩 경계하며 어깨에 힘이 들어간 모습을 보면, 무언가를 크게 두려워하는 것 처럼 보였으니까.

    아마도 그건 저 바다겠지.

     

    루크는 수영도 하지 못하니까, 바다가 무서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긴, 보통의 고양이 수인들은 원래 목욕한번 시키는 것도 어렵다고 들었다.

    비록 루크가 정말 고양이는 아니라곤 하지만, 그래도 고양이스러운 행동을 자주 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고양이 수인과 특성이나 본능이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루크가 바다와 수영을 기피하는 것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루크는 도망치지 않았다.

    그렇게 본능적인 공포에 맞서는 루크는 대견해 보이기도 한다.

    쉽지 않을 것이 분명한데 말이다.

     

    그래서 정말 싫은 것이라면, 수영은 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하려고 했다.

    예르나는 그저,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에 루크가 아쉬워하지 않기를 바랬을 뿐이니까.

     

    바다에 한번도 들어가지 않고 집에 돌아갔다면, 옷 아래에 수영복까지 입을 정도로 기대를 했는데 루크가 정말 아쉽지 않았을까?

     

    그런데, 저토록 용기를 내고 있다니.

    예르나는 그 모습이 정말로 좋아보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튜브가 커다란 심리적 안정이 되는지, 그것을 마치 보물이라도 되는 것 처럼 허리에 딱 잡아둔 채로 어기적 어기적 걸어가는 모습이, 예르나의 눈에는 정말 귀여워 보이는 것도 사실이긴 했다.

    -찰칵, 찰칵.

     

    “뭐하냐, 너.”

    “음, 음! 이것도 귀여워! 한번만 이쪽 봐줬으면 좋겠는데!”

    “가서 부탁해보던가? 지금은 네가 사진을 찍는데도 저렇게 얌전한데.”

    “안돼, 지금 루크는 이게 사진기인줄 몰라서 그런거야. 그러니까 지금 많이 자연스러운 모습을 찍어놔야 해!”

    “뭐, 그게 정말이야? 그거 참 별나네…….”

    “아하하, 그러고보니 루크는 옛날에 사진 찍히면 브이도 만들어주고 그랬었는데. 그때 더 많이 찍어둘걸.”

    “그러게요, 요즘엔 휴대폰만 꺼내도 사진 찍히겠다 싶으면 어디론가 숨어버리니까 그게 참 어렵단 말이죠.”

    “그래도 언젠가는 브이도 다시 해주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네요! 저렇게 귀여운데.”

     

    보라, 루크의 귀여운 모습은 절대 자신의 주관적인 판단이 아닌, 객관적인 의견이었다.

    예르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볼에 손을 가볍게 얹으며 한숨처럼 말을 내뱉었다.

     

    “하아, 다이튼. 정말로 귀엽지 않아?”

    “어? 어어. 정말로…….”

     

    다이튼은 갑작스러운 예르나의 물음에 놀라 살짝 어깨를 움츠렸다.

    혹시 자신이 계속 흘겨보고 있던 시선이 들킨 것일까, 싶어서 조마조마했지만 예르나의 시선을 따라가보니 그것은 아닌 듯 하여 작게 한숨을 쉬었다.

    예르나는 그저 루크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하……. 하긴, 지금은 다들 루크에 가장 신경을 쓰고 있겠지.’

     

    아무래도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이들 중에선 바로 루크였으니까.

     

    디아나는 비록 약간이지만 수영을 할 줄 알고, 파이리스는 애초에 인간도 아니니까 조금 걱정을 덜지만, 루크는 그렇지 않으니 말이다.

     

     

    디아나는 진작에 바다로 달려가 발을 적시고 있었지만, 루크는 곧장 바닷가로 달려나가지는 않았다.

    아직 마음의 준비를 하는 중인가 보다.

     

    이내 파이리스까지 바닷가로 달려가 물을 뿌리며 놀기 시작하자, 이내 다이튼은 텐트와 돗자리 등을 예르나에게 건네주고는 그쪽을 향해 다가가며 ‘준비운동 먼저 하고 놀아!’라며 외친다.

     

    예르나는 그 모습이 꽤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야, 우락부락한 거한이 자기 반도 안 될 것 같은 꼬마 아이들을 신경쓰며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모습은 우습지 않을 수 없다.

    다이튼은 겉은 굉장히 남성스러우면서도, 속은 정말로 여리고 귀여운 아이다.

     

    언젠가 분명히 좋은 남편이 되겠지.

     

    루크한테 신경도 잘 써줄 것 같고…….

     

    ‘하하,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예르나는 자신을 향해 못 말리겠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 같은 여자랑 살면 다이튼이 불쌍하지.

    할 줄 아는 거라곤 몬스터 잡는 기술 밖에 없는 여자다.

    다재다능하고 장래 유망한 어린 인간을 붙잡아 팔자를 고치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

     

    그래, 엘프는 엘프끼리 만나는 것이 보통이기도 하고.

     

    예르나는 다이튼이 넘긴 짐들을 내려놓으며 키르케, 그리고 소르비를 불렀다.

     

    “얘들아, 와서 텐트 좀 쳐.”

    “아, 네 언니 잠깐만요!”

    “다프네언니, 루크 좀 찍고 있어줘!”

     

    키르케와 소르비가 헐레벌떡 달려와 텐트를 넘겨받자, 예르나는 키르케와 소르비가 잠깐 텐트를 만지는 사이 루크를 바라보았다.

     

     

    루크는 무언가를 깊게 생각하는 중인지, 바다 저 너머를 바라보며 가만히, 마치 조각처럼 서있었다.

     

     

    그렇게 과연 몇번의 파도가 해안가의 모래알들을 쓸었을까?

     

     

    한동안 바다를 바라보며 고심하던 루크는 마침내 결심을 했는지 굳은 표정으로 자신을 돌아보며 진중하게 입을 열었다.

     

    “예르나, 수영을 가르쳐주게.”

     

    마침내, 마음의 준비가 끝났음을 깨달은 예르나는 그런 루크를 향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응! 그럼, 잠깐만 기다려봐.”

     

     

    ——

     

    “자, 어때? 이게 있으면 물에 더 잘 뜰 수 있을 거야!”

     

    예르나가 가져온 것은 바로 구명조끼.

    물에 빠질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아 보이는 루크에게는 이런 안정장치가 꼭 필요했다.

    뭐, 그것이 아니더라도 원래 아이들에게는 다 하나씩 입힐 생각이기도 했고 말이다.

    바다는 위험하니까.

     

    “어때? 너무 꽉 조이지는 않지?”

     

    루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내 배꼽을 확실하게 가릴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 루크에겐 희소식이 될 수 있겠으나, 루크의 표정은 마냥 밝지 않았다.

     

     

     

     

    “이런 게 있으면 좀 진작에 꺼내달란 말이다…….”

     

    루크는 문득, 자신이 바다를 보며 깨달은 모든 것이 허무해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숲지기 5명! + 꼬맹이들 3명! 합쳐서 8명!!

    삽화 하나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그린 적이 없었는데, 사람이 많아지면 진짜 많이 힘이 드네요!

    역시 등장인물이 많아지면 어렵군요!!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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