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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6

     

    “웃!”

     

    리셰가 짤막한 신음을 내뱉으며 한 발짝 물러섰다. 진조의 손톱에 베인 팔에서 뚝뚝 선혈이 흘러내렸다.

     

    그가 리셰의 반응을 보고는 확신에 찬 미소를 지었다.

     

    “용사님!”

     

    진조의 뒤통수를 노리는 첨예한 일격. 타냐의 검기였다. 상체를 숙여 피해내는 진조.

     

    타냐가 몸을 빙글 회전하여 방어벽을 구축했다. 리셰를 등지고 서며 진조를 견제한다.

     

    반대쪽 팔로 두 자루째의 검을 팔꿈치 사이로 내미는 타냐. 리셰는 검을 전달받자마자 망설이지 않고 각력을 폭발시켰다.

     

    ―채챙!

    타냐가 좌측, 리셰가 우측에서 진조의 틈을 파고들며 합을 이어간다. 절도 있게 양측을 번갈아 막아내는 진조.

     

    하지만 대륙의 어떤 달인조차 사제관계인 용사와 소드마스터의 약속된 연계를 당해낼 재간은 없을 것이다.

     

    “으음.”

     

    12격이 넘어가자 검기가 손톱 사이를 뚫고 진조의 옆구리에 작렬한다. 단정한 정장이 넝마가 되고 안경알에 금이 간다.

     

    “하압!”

     

    짧게 오러를 방출하는 타냐. 진조의 몸이 뿜어진 폭풍에 공중으로 떠올라 천장에 충돌한 후 추락했다.

     

    ―쿠르릉!

     

    타냐가 쏘아낸 오러가 지하도 전체에 울리며 커다란 진동이 일어났다. 그녀로서는 미세한 힘만 사용했는데도 그 정도였다.

     

    낙법을 취하는 진조를 공격하는 리셰. 목을 한계까지 꺾어 간신히 피한다. 카득! 검날이 바닥을 긁었다. 다음 공격을 준비하며 리셰가 말했다.

     

    “스승님! 오러는 위험해요. 까딱하다간 지하도는 고사하고 도시가 무너지겠어요!”

     

    “동감합니다.”

     

    타냐가 고개를 끄덕이고 검기만을 더욱 첨예하게 가다듬어 돌진했다.

     

    “안 되겠군.”

     

    진조가 안경을 벗어 던졌다. 희번득, 그의 눈이 마기로 물든다.

     

    파악! 쓰러진 자세에서 긴 다리를 묵직하게 휘둘러 리셰를 떨어트리는 진조.

     

    그의 몸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신체가 바싹 말라간다. 이빨은 더욱 흉폭해지고 몸은 짐승에 가까워져 정장이 뜯어졌다.

     

    대가의 추가 지불. 피와 영혼을 바쳐 힘을 더욱 손에 넣은 것이었다.

     

    “수작질을.”

     

    타냐가 위험을 직감했다. 적의 수준이 더욱 높아진다. 오러는 쓸 수 없으니 제압하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였다.

     

    살짝 초조해진 탓이었을까, 타냐의 스텝이 넓어진 틈을 타 진조가 마기를 터트렸다.

     

    콰앙! 타냐는 폭발과 함께 방향감각을 잃어버렸다. 거리를 떨어트린 다음 순간.

     

    “윽.”

     

    타냐의 팔에 상처가 나 있었다.

    튼튼한 아다만티움 중갑에 난 두 개의 구멍에서 피가 주륵 흘러내렸다.

     

    진조가 젠틀하게 미소를 짓자 더욱 흉악해진 송곳니가 들썩였다.

     

    “망할.”

     

    타냐는 망설이지 않고 검을 빙글 돌렸다. 물린 팔을 잘라낼 셈이었으나 진조가 한 수 앞섰다.

     

    ―쿠웅!

    머릿속에 강철 추보다도 무거운 무언가가 떨어진다.

     

    강제로 시야가 점멸하는 불쾌한 감각. 타냐는 정신을 잃었다.

     

    “새 소드마스터라. 마음에 드는군.”

     

    진조는 타냐의 입을 빌려 아낌 없이 기쁨을 표현했다.

     

    타냐를 뺏겼다.

    심각한 사태였다.

     

    리셰가 위험을 깨닫고 즉시 진조의 본체를 향해 달려들었다. 지금은 타냐에게 영혼을 옮겼으니 본체는 반응하지 못할 터.

     

    ―카앙!

     

    하지만 소드마스터의 발은 그 이상으로 빨랐다. 본체를 보호하며 어느새 리셰의 검을 쳐내는 타냐― 진조.

     

    “최악이야.”

     

    리셰가 자기도 모르게 손에 힘을 쥐었다.

     

    제국 최고의 검을 자신이 도대체 어떻게 상대한단 말인가.

     

     

     

    “큰일 났네.”

     

    그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한 라스는 성검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속도를 올렸다.

     

    “원, 타냐가 방심할 줄이야. 리셰가 혼자 이길 수는 없겠고.”

     

    하수인처럼 감염시킨 게 아니라 자신의 영혼을 쑤셔박아 조종하고 있으니 치료제가 먹히는 것도 아니었다.

     

    “본체를 쓰러트리면 풀리긴 할 텐데.”

     

    누가 봐도 리셰가 열세다. 라스는 속도를 올렸다.

     

    무너진 구조물을 절벽 등반하듯 붙잡고 올라간다. 강화된 근력 덕분에 가능했다.

     

    삽시간에 뛰어 올라가 틈새에 처박힌 손잡이를 잡아 꺼낸다.

     

    “샤를.”

     

    빛도 없는 곳에서 마치 라스에게 대답하는 듯 새하얀 도신이 반짝였다.

     

    ―뒤 좀 봐, 소드마스터를 뺏겼어!

     

    아니, 실제로 대답하고 있었다.

     

    “뭐야, 왜 목소리가 들리지?”

     

    ―어라? 라스, 내 말이 들려?

     

    “어. 머릿속에 직접 울리고 있어.”

     

    라스는 상태창을 확인했다.

     

     

    [카운슬링C가 B로 랭크업했습니다]

    [진찰 진행도가 50이 넘은 환자가 동의하면 심리를 직접 의사소통할 수 있습니다.]

     

     

    “별 게 다 되네. 편리하니까 일단 쓰자고.”

     

    긴박한 상황이라 샤를도 간절했기에 운 좋게 연결이 됐다.

     

    [자이언트 포션 지속시간 : 320초]

     

    라스는 알림이 뜬 상태창을 치웠다. 기운 좋게 뛰어다닐 제한시간도 5분 정도밖에 안 남았다.

     

    “아까 상태가 안 좋아 보이던데. 정신공격이라도 당했어?”

     

    ―그런 건 아냐. 조금 방심했을 뿐이야.

     

    “어떻게 할까. 리셰한테 돌려주면 돌파할 수 있겠어?”

     

    샤를이 한숨을 푹 쉬었다.

     

    ―상대가 전성기 시절인 타냐란 말이지. 내용물이야 진조라서 오러는 쓸 줄 모르겠지만 장담은 못 해.

     

    샤를이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 자신이 리셰의 몸을 받는다 한들 이길 수 있을까.

     

    잠시 이어진 침묵 끝에, 샤를이 한 가지 제안을 꺼냈다.

     

    ―라스, 혹시 진조 본체는 뭐 해?

     

    “눈 감고 있어. 타냐 정도를 조종하려면 꽤 집중해야 하나 봐.”

     

    ―그럼 본체를 공격하는 게 빠르지 않겠어?

     

    “같은 생각인데, 다이너마이트는 다 써버려서 말이야.”

     

    ―네가 다가가서 성검으로 베어봐.

     

    샤를의 제안에 라스가 질색했다.

     

    “그게 되겠어? 타냐가 나더러는 검 쓸 생각 하지 말랬다고. 그리고 내가 휘둘러봤자 성검은 아무 효과 없잖아.”

     

    ―작전이 있어.

     

    샤를이 확신을 담아 말했다. 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라스가 성검을 들고 발소리를 죽인 채 진조의 시야에 닿지 않는 붕괴한 구조물 뒤로 돌아 움직였다.

     

    살금, 기척을 숨기고 조금씩 접근한다.

    한 걸음, 한 걸음.

    마침내 사정거리에 도달하고, 라스가 성검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둘 수 없지.”

     

    챙!

    진조가 리셰와 거리를 벌리고 자신의 본체를 향해 순식간에 돌진했다. 가벼운 타냐의 몸은 섬광과도 같이 라스를 향해 돌진한다.

     

    ―라스, 조심해!

     

    라스는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타냐에게 배운 방어태를 취해 카앙! 간신히 일격을 막아낸다.

     

    하지만 그것이 한계였다. 이어지는 연계. 진조의 다음 칼날이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라스의 목을 첨예하게 노린다.

     

    파앙!

     

    그런 진조의 검을 쳐내며 궤적을 비틀게 하는 커다란 충격.

     

    진조가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방금 막 무너진 구조물을 올라온 아셀라가 있었다.

     

    양팔을 교차해 두 번째 손가락을 접었다.

    마법의 즉시시전이다.

     

    매서운 눈매에 위압감을 느끼기도 잠시.

     

    “야아앗!”

     

    진조는 몸에 쏠리는 무게감을 느꼈다. 자신을 따라잡은 리셰가 달려든 것이었다.

     

    당했다. 빈틈이 생겼다.

     

    “지금!”

     

    파악!

    라스가 있는 힘껏 성검을 진조의 본체에 꽂아 넣었다.

     

    “윽…!”

     

    그 순간 진조의 눈앞이 번쩍였다.

    정신에서 일어나는 스파크. 영혼이 불안정해지고 있었다.

     

    라스가 휘청이며 본체에서 떨어진다. 성검은 그의 가슴팍을 깔끔하게 관통한 채다. 상처에서 마기가 새어 나온다. 주륵, 입에서 얼마 남지 않은 피가 흘렀다.

     

    그와 함께 정신이 혼미해진다.

    점점 조종이 불안정해지고 자신이 소멸해가는 기분이 들었다.

     

    ‘뭐지?’

     

    진조는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금 자신은 소드마스터의 육체를 조종하고 있다.

     

    물론 본체가 죽으면 자신은 죽는다. 하지만 지금은 대가를 지불해 마기를 최대한 강화했다. 겨우 가슴을 뚫린 정도는 치명상이 아니다.

     

    영혼이 이쪽에 분리되어 있으니 본체의 대미지가 전해지지는 않을 터.

     

    그때, 본체인 자신이 눈을 떴다.

     

    “하, 진짜 될 줄은 몰랐는데.”

     

    본체가 입을 열고 말을 지껄였다.

    자신이 아니다. 하지만 무슨 현상인지는 이해했다.

     

    자신이 소드마스터의 육체를 소체로 이용해 조종하듯.

     

    누군가가 자신의 육체를 소체로 이용해 조종하고 있다.

     

    “용사, 인가.”

     

    진조는 그 정체를 파악했다.

     

    성검에는 어느 영혼이 담겨있었다. 인간을 관찰해온 그는 용사에 두 영혼이 있다고 금방 눈치챘다.

     

    성검 쪽의 용사가 자신의 몸을 차지한 것이었다.

     

    “야, 박쥐야.”

     

    마기와 피를 쏟아내며, 대가를 한참이나 지불해 빈사 직전인 몸이지만.

     

    샤를은 어느 때보다도 즐겁게 웃으며 진조에게 말했다.

     

    “네 몸, 누가 가지나 내기해 볼래?”

     

    쿠웅!

     

    진조의 머릿속에 강철 추가 떨어졌다.

     

    소체로 조종당하는 듯한 감각.

     

    영혼을 봉인당하는 바로 그 전조였다.

     

    ‘이 나를 쫓아낼 셈인가. 내 몸에서!’

     

    진조가 주먹을 꽉 쥐었다. 이를 악문다.

     

    영혼의 싸움은 곧 정신력의 싸움.

     

    지금까지 인간을 모아오며 수백 번이나 혼을 가둬온 자신이다.

    그런 자신이 밀릴 정도의 정신력을 가진 존재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오오, 오오오.”

     

    어떤 인재도, 영웅도, 달인도, 자신과 함께 영혼의 무게를 추에 올리면 깃털만큼이나 가벼웠거늘.

     

    지금 차지한 소드마스터의 영혼조차 단번에 굴복시키지 않았는가.

     

    저 성검에 갇혀있던 용사는 대체 어떤 경험을 했길래 이리도 묵직한 영혼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쫓아내야 한다.’

     

    자신의 몸은 용사에게 붙잡혀 부자유스럽다. 다른 수단이 필요했다.

     

    좋은 매개체가 보였다.

    바로 눈앞에 성검을 휘두른 여파로 몸을 휘청이는 의사가 있다.

     

    고트베르크. 마음에 드는 인재라 소체로도 쓰고 싶었던 자다.

     

    ‘고트베르크를 조종해서 본체의 성검을 빼내면 된다…!’

     

    그리 판단한 진조는 필사적으로 팔을 뻗었다. 간신히 그의 백의에 손이 닿았다.

     

    라스를 일순간에 낚아챈다. 콱! 단숨에 그의 팔을 물었다. 송곳니가 없어 난폭한 식사가 됐지만 영혼을 옮길 틈은 충분히 만들었다.

     

    “선생님!”

     

    그 모습을 보고 리셰가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진조는 영혼을 소드마스터의 몸에서 고트베르크로 옮기려 했다.

     

     

    그러나.

     

    ‘으… 으윽…?!’

     

    ―쿵, 쿵, 쿵, 콰앙!

     

    용사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충격이 영혼에 가해졌다.

     

    거대한 해머로 뇌간을 몇 번이고 맞은 듯 머리가 울리며 눈앞이 빙글 돌았다.

     

    ‘이건 대체.’

     

    라스 고트베르크의 영혼은 훨씬,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겁고 강대했다.

     

    마치 세상의 종말을 수백 번은 보기라도 했다는 듯.

     

    영혼이 숙성한 정도의 차원이 달랐다.

     

    ‘…운이 나쁜 날이군.’

     

    그 압도적인 경험치에 절로 무릎을 꿇는다.

    진조는 태어나 처음으로 인간에게 경외심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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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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