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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6

       전망대에서 내려온 마야는 먼저 마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갔다.

         

       그녀의 마음속은 여러 감정이 뒤섞여 엉망이었다.

         

       처음에는 기대가 어긋난 것에 대한 분노가 가장 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남는 것은 단장님에 대한 죄송스러움뿐이었다.

         

       단장님은 자신에게 한 치의 사심도 품지 않았다.

       그저 평소대로 스승의 역할을 다 했을 뿐이었다.

       그녀가 힘들어하는 것을 걱정하고, 어려워하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런데 자신은 그런 그분에게 짜증을 내고 말았다.

       멋대로 오해하고, 멋대로 기대하고, 멋대로 화를 냈다.

       철없는 애들이나 할 행동이었다.

         

       그녀가 테트로미노 광장 바닥의 수수께끼에 대해 떠올린 것은 단장님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비록 오해였다지만 자신을 염려해서 성심성의껏 설명해주신 단장님께 자신은 못 할 짓을 해버렸다.

         

       그러나 그런 마음과 별개로 확실히 단장님의 식견은 놀라운 것이었다.

         

       지난 100년간 아무도 풀지 못했던 난제를 그렇게 쉽게 해결하다니.

         

       마야는 환상으로 허공에 5개의 색이 다른 유리구슬들을 만들어냈다.

         

       산소, 탄소, 수소, 질소, 인.

       원소들이 결합해 하나의 단위를 형성하고 그것들이 반복되며 이중의 나선을 형성했다. 그리고 그것 둘이 다시 한번 서로를 휘어 감고 올라갔다.

         

       단장님은 이것에 대해 언제 알아낸 것일까?

         

       자신들이 이 도시에 머무른 지 한 달이 넘었다.

       왔다 갔다 지나가면서 슬쩍 봤던 것만으로 파악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마야는 그것보다 다른 가설이 더 끌렸다.

         

       단장님은 원래부터 이것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설명할 때 그분의 태도를 보면 그녀가 문제를 풀기 시작할 무렵에 그분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아마 이전에 이 도시에 온 적이 있었을 것이고 그때 그것을 풀어냈을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그러면 또 한 가지 의문이 남았다.

         

       단장님은 자신이 발견한 것을 왜 세상에 알리지 않았을까.

         

       그분이 고수하는 비밀주의에 대해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많았다.

       애초에 사람의 주목이 싫어서 그랬다면, 서커스단을 이끌고 무대에 서는 일을 하는 게 말이 안 됐다.

         

       단장님에게 뭔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는 것일까?

         

       그렇게 고민을 하다 보니 마차는 어느새 숙소 앞에 도착했다.

         

       “어머, 마야 양, 혼자 왔어요? 단장님은요?”

         

       마차가 오는 소리를 듣고 달려 나왔던 유라크네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볼일이 있어서 나중에 오실 거예요.”

         

       원더스타인은 오늘 오후에 클라라를 살펴보러 간다고 했다.

       마야도 원래 그 자리에 따라가려고 했다.

         

       저번에 그녀가 원더스타인 앞에서 졸도하고 나서 두 사람 간에 뭔가 깊은 교류가 있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그딴 소문 믿지 않기로 했다.

       오해라면 이제 지긋지긋했다.

       아마 단장님의 순수한 호의가 왜곡되어서 와전된 것일 것이다.

         

       엘라도 레이나도 자신도 그분을 유혹하지 못했다.

       단장님은 자기보다 10살이나 어린 애를 여자로 보지 않았다.

       9살이나 8살이 차이나도 다르지 않을 게 분명했다.

         

       “참, 소포가 도착했어요. 마야 양 방 앞에 갖다뒀어요.”

         

       드발체프에서의 사건을 겪고 그녀는 아카데미의 지도 교수에게 연락했다.

       그녀는 그에게 데볼루트에 관한 최신 연구 자료를 요청했다.

       그것이 온 모양이었다.

         

       그녀는 교수의 안부 인사 편지를 구석에 던지고는 자료들을 읽어 내려갔다.

       자료의 양은 방대했다.

       거기서 마야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2가지였다.

         

       하나는 ‘검은 마도사’와 저주 역병 사이의 연관성이었다.

       이건 한 달 전쯤에 정교회 측에서 나온 연구였는데, 검은 마도사의 행적과 저주 역병 발병지에 유사한 패턴이 보인다는 것이다.

         

       검은 마도사.

       종이를 쥔 마야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처음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앗아간 자였다.

       보통 사람들은 마야가 생후 몇 개월 때 일어난 일이라 기억하지 못할 거라 여겼다. 그러나 그녀의 기억력은 생후 2개월 이후로 완벽에 가깝게 유지되고 있었다.

         

       아이 때의 행복하고 즐거웠던 기분을 지금도 생생히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엄마가 이제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절망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마야가 겪은 최초의 상실감이었다.

       그 원흉인 검은 마도사에 대해서는 결코 좋은 마음을 가질 수 없었다.

         

       마야는 이어서 마지막 자료를 읽어 내려갔다.

       그것은 IMT에서 최신 관측기구를 통해 포착한 데볼루트의 모습이었다.

         

       데볼루트는 최신 광학 현미경으로도 군집으로 꿈틀거리는 정도나 간신히 볼 수 있었다.

       그것을 IMT의 공학자들이 어떻게 방법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뒷장에는 연구원이 그것을 보고 스케치한 그림이 실려 있었다.

       마야는 그것을 보는 순간 전율했다.

         

       그림 실력은 형편없었다.

       전문 화가 레벨인 마야가 보기에 낙서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내용은 놀랍기 그지없었다.

         

       그들이 관찰했다는 데볼루트의 모습.

       그것은 뱀처럼 서로를 휘감고 올라가고 있는 두 개의 이중 나선이었다.

         

         

       ***

         

         

       나는 기숙사 앞 면회실에서 클라라를 기다리며 이번 일의 성과를 정리하고 있었다.

       화신을 패퇴시키고 얻은 것은 2가지였다.

         

         

       [‘서브 퀘스트-병 속의 악마’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교수의 플라스크’가 제공됩니다.]

         

         

       나는 상태창 안에 천천히 빙글빙글 돌고 있는 투명한 유리병을 손으로 집어 꺼냈다.

         

         

       이름: 교수의 플라스크

       적용 대상: 플라스크를 가득 채운 피.

       효과: 대상을 마신 생물을 플라스크에 가두고 자유롭게 넣어다 뺄 수 있습니다. 계약 유지 기간은 30일입니다. 갱신 가능.

       요구 자원: 없음.

         

         

       보상은 ‘카바레의 유령’의 경우와 비슷했다.

       조력자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이번 일은 파이렌이 마귀나 마수 같은 생물을 몰래 수집하다가 관리 실수로 사고가 일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그 때문에 보상이 그녀의 능력인 것 같았다.

         

       생물을 포획할 수 있는 능력이라.

       엘라에게 주기 딱 좋은 물건이었다.

         

       나는 그것을 모자 속에 던져넣고는 다른 전리품을 품에서 꺼냈다.

       주먹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유리병이었다.

       그 안에는 반짝이는 모래 같은 조각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나는 이것이 무언인지 알고 있었다.

       트릴의 파편이었다.

       TT3에서 원더스타인의 동료인 ‘세 마녀’는 이것을 이용해 생체조작을 하곤 했다.

         

       그때는 그저 원더스타인의 영혼이 담겨 있었던 물건이라 그런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유 특성’을 조작하기 위해 트릴을 먹어야 한다는 조건을 생각해보면, 이 보석 자체에 원래 데볼루트와 연관된 힘이 있는 걸지도 몰랐다.

         

       나는 세 번째 메인 퀘스트 창을 띄었다.

         

         

       *메인 퀘스트-트릴

       : 당신이 손에 넣기를 원했던 그것입니다.

         

       달성조건

       : 트릴이 완전한 붉은색이 된 이후에 그것을 먹어치우십시오.

         

       성공 시 보상

       : ‘마인화 페널티’ 없이 ‘고유 특성’ 조작 가능

         

       실패 시 페널티

       : 없음.

         

         

       고유 특성을 조작하기 위해서는 트릴을 ‘먹어야’ 했다.

         

       그럼 지금 이걸 먹어보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완전한 트릴도 아니고, 완전한 붉은색이 아닌 이것에는 아무런 효능이 없을까.

       아니면, 혹시 뭔가 능력이 더 개방되지 않을까.

         

       나는 병의 뚜껑을 열고 그것을 입에 가져다 댔다.

       심장이 쿵쿵 울렸다.

       항상 평정심을 유지하는 웃는 남자가 ‘트릴’에만 격하게 반응을 했다.

         

       막 그것을 입에 살짝 털어 넣으려는 그때.

       문을 열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클라라였다.

         

       그녀는 내가 하는 행동을 빤히 바라보았다.

       혹시 나를 약쟁이로 오해하는 건 아니겠지?

       나는 병을 품에 넣고는 자연스럽게 말했다.

         

       “후후, 몸이 안 좋아서 약을 챙겨 먹고 있었죠.”

       “……그렇군요.”

         

       나는 그녀가 챙겨온 짐가방을 흘끗 바라봤다.

         

       “떠나는 겁니까?”

       “네. 휴학계를 냈어요.”

         

       어제 일을 겪고 깨어난 학생 중 상당수가 휴학을 신청했다.

       그만큼 화신의 저주가 그들의 정신에 미친 영향은 강력했다.

       곡예사를 그만두겠다고 하는 사람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리 오세요. 치료부터 합시다.”

         

       그녀는 내 앞에서 옷을 벗었다.

       부끄러움은 없어 보였다.

       하긴 당장 며칠 뒤면 죽을 병에 걸렸는데 그런 걸 따지는 게 이상했다.

         

       그녀의 피부는 마치 가뭄의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져 있었다. 그 사이로 새빨간 보석처럼 피가 고여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어떤 곳은 피부가 비쩍 마른 허물 같은 것으로 변하면서 연분홍빛의 속살이 그대로 비쳐 보였다.

         

       진화 연구소는 혼과 육의 균열이 발생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해왔다.

       무척 희귀한 병인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살피며 데볼루트로 몸을 수복해주었다.

       치료가 다 끝나갈 때쯤,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단장님의 목적이 뭔지 물어봐도 될까요? 왜 굳이 서커스단을 하시는 거죠?”

         

       지겹게 받은 질문이었다.

       이런 힘을 가지고 왜 그러고 있냐는 말이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답했다.

         

       “당신이 아는 거랑 다르지 않을 겁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뒤에 한 마디 더 덧붙였다.

         

       “원더 스테이지죠.”

         

       그녀의 등 근육이 움찔 떨렸다.

         

       그 사이, 치료가 끝났다.

       나는 뒤돌아서서 그녀가 옷을 갈아입는 것을 기다려 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뒤에서 나를 끌어안았다.

         

       “클라라 양?”

       “저를 받아주실 수 있나요?”

         

       그녀가 아련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상했던 제안 중 하나긴 했다.

       그녀의 몸을 고치기 위해서는 2주에 한 번은 치료해야 했다.

       매번 자신들이 머무르는 도시를 찾아오는 것보다 아예 함께 다니는 게 편하긴 할 것이다.

       나도 레카체프의 수석이었던 그녀가 합류하면 큰 도움이 될 거라 여겼다.

         

       다만, 병의 치료를 대가로 그녀를 부려먹으려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저에게 은혜를 갚을 기회를 주세요.”

       “그런 걸 바라고 당신을 도운 게 아닙니다. 그리고 대회 시작 당시 6대 극장 소속이었던 사람은 대회 기간 내내 참가 금지일 텐데요.”

         

       클라라는 내 등에 얼굴을 파묻고 고개를 저었다.

         

       “인원 제한은 ‘무대에 오르는 사람’ 한정이에요. 저는 무대에 오르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그러면 무슨 일을 할 거죠?”

       “단장님의 비서로 일할게요. 심부름이든 뭐든 다 할게요. 반드시 단장님께 도움이 될 거예요.”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거절하면 그녀가 어떤 극단적인 선택을 저지를지 몰랐다.

         

       “좋습니다. 혹시 치료 말고 원하는 대가라도 있습니까?”

       “아뇨. 그런 거 없어요. 다만, 대가라기보다 그냥 궁금한 게 하나 있긴 해요. 저는 말이죠. ……뭘 위해 태어난 거죠?”

         

       실존에 대한 고민인가.

       복잡한 문제였다.

       자살할 생각을 했을 정도로 삶에 절망한 아이였다.

       저런 질문을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내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이런 것밖에 없었다.

       일단 살아보는 것이다.

         

       “함께 여행하다 보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런가요? ……알았어요.”

         

       그녀는 명확한 대답을 바란 듯했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환영합니다, 클라라.”

         

         

       [‘클라라’가 단원 목록에 추가되었습니다.]

         

         

       “그런데 일단 옷 좀 입어주시겠어요?”

         

       그녀는 그제야 여기가 기숙사 1층이라는 것을 떠올렸는지 후다닥 옷을 주워 입었다.

         

         

       ***

         

         

       클라라는 주인과 함께 마차를 타고 가면서 그의 얼굴을 힐끔힐끔 살폈다.

         

       주인의 목적에 대해서는 그녀도 짐작하던 게 있었다.

       수집한 소문과 정보를 바탕으로 유추했던 것이었다.

         

       키르쿠스의 유물인 ‘트릴’을 강탈하는 것.

         

       그리고 그녀의 예상은 맞았다.

         

       무슨 목적인지는 모르지만, 주인님은 트릴을 원했다.

       트릴의 파편을 약이라고 부르며 먹으려던 것을 보면, 그분도 자신처럼 육체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자세히 캐묻고 싶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자신을 만든 이유에 대해서도 주인님은 얼버무렸다.

       굳이 알려주시지 않는 걸 물어서 주인님을 불쾌하게 해드릴 생각은 없었다.

         

       중요한 건 주인님의 목표였다.

       그분은 17년 전과 같은 일을 하려는 게 틀림없었다.

         

       세상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일이었다.

       그러나 클라라는 두렵지 않았다.

         

       그녀의 가슴 한구석에서 다시 야망의 불길이 지펴졌다.

       병 속에 있을 때 가졌던 꿈이었다.

       세상을 무대로 활개치는 것 말이다.

         

       주인님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도시의 꼭대기에 우뚝 서는 그날.

       자신은 그분의 옆에 있을 것이다.

         

       그분이 제일 신임하는 부하로서.

       그분이 가장 의지하는 사람으로.

         

       그녀는 병 밖으로 나오고 알았다.

       자신은 무언가를 주도하는 것보다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게 마음이 편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

       그것이 그녀의 새로운 목표였다.

         

       반드시 주인님에게 도움이 될 거야.

       병 밖으로 나온 악마는 다짐했다.

       —–

       

       

       

       

       

       

       

       

       병 속의 악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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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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