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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6

        

       사범은 여러 기억이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감자의 줄기를 잡고 뽑아냈을 때 수많은 알이 딸려 나오듯, 태양광 발전 시설을 떠올리자마자 그것과 관련된 지식이 우수수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예전에 유행했던 마인드맵(Mind Map)처럼 말이다.

         

       [ 그러고 보니 태양광 시설을 하는 데에 여러 잡음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일정 높이, 일정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는 온갖 소문이 들려오기 마련이다.

       사범 역시 낮은 위치는 아니니만큼 여러 가지 소문을 주워듣곤 했었다.

         

       [ 혹시 태양광 발전 시설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 ]

         

       하지만 낮은 위치는 아니지만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니만큼 그가 들을 수 있는 소문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대부분 영양가 없는 가십거리에 불과했으며, 그나마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태양광 발전 시설에 관한 내용 역시 어렴풋이 ‘들은 적은 있는 것 같은데’ 수준에서 그쳤고, 그 이상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사범은 혼자서 끙끙대는 대신에 차기 신관에게 질문을 던졌다.

         

       차기 신관은 그가 모르는 소문도 알고 있을 위치였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차기 신관은 사범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태양광 발전 시설이라…. 들은 적이 있기는 합니다만….”

         

       진성은 아주 의미심장한 말투로 말끝을 흐렸다. 그러더니 목소리를 조금 낮추곤 슬쩍 떠보듯이 사범에게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혹시 제가 아는 그것을 물으시는 것인지요?”

       [ 그것이라 하면…. 그게 뭡니까? ]

       “크흠, 그 있잖습니까? 정치 가문의….”

         

       정치 가문?

         

       사범은 진성이 내뱉은 말이 이해되지 않아 눈을 깜빡였다.

         

       [ 정치 가문이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

       “아. 뭐, 아무것도 아닙니다. 신경 쓰지 마시지요.”

         

       하지만 궁금증은 해소될 수가 없었다.

       사범이 모르는 티를 내자 슬쩍 떠보며 단어를 던졌던 진성은 철벽을 치는 것처럼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만을 반복했으며, 꽤 집요하게 그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꺼내려고 해도 말을 빙빙 돌렸다.

         

       사범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자마자 ‘자격이 없는 사람’ 취급을 하는 것처럼 철벽을 치듯 제대로 된 주제에 들어가지 않았고, 영양가 없는 대화만을 반복하며 시간을 질질 끌고 사범을 지치게 했다.

         

       [ 후우. 알겠습니다. 통화 시간이 길어졌는데, 이만 끊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흐음. 이거 사범님과의 통화가 즐거워서 시간이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아, 그렇지. 혹시 마나와 관련해서 제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불러주셨으면 합니다. 당장 하던 것도 멈추고 달려가도록 하겠습니다.”

       [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결국 사범은 진성이 아무것도 이야기해주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 것인지 작게 한숨을 쉬고는 통화를 종료해버렸고, 진성은 입발림이 가득한 말을 내뱉으며 그대로 통화를 종료했다.

         

       그리고 통화가 끝나고 진성이 위치한 방은 다시 침묵에 잠겼고, 스마트폰의 불빛이 저절로 꺼지자 다시 어둠이 밀어닥치며 진성의 몸을 감쌌다.

         

       진성은 그 어둠을 제 몸을 휘감는 보드라운 비단이라도 되는 양 우두커니 서서 어둠을 받아들였다가 가만히 숨을 쉬었다. 그렇게 몇 번을 쉬다가 갑자기 폐에 있는 공기를 모조리 빼버릴 듯 쉬지 않고 숨을 내뱉었고, 이윽고 폐가 쪼그라들고 머리가 멍해질 때가 되자 손을 뻗어 허공을 쥐었다.

         

       그러자 약간의 소음과 함께 동그란 금속 통이 진성에게 끌려왔고, 진성은 통 안에 든 가루를 거침없이 머리 목 아래로 부어버렸다. 그러자 하얀 가루가 흩날리며 진성의 상체에 달라붙었고, 진성은 그것으로 칠을 하듯 손으로 꼼꼼히 가루를 발랐다.

         

       그리곤 마치 손톱을 바싹 세우고는 각질을 긁듯 그것을 긁기 시작했다.

         

       긁적.

       긁적.

         

       바싹 세운 열 개의 손가락은 맹수가 발톱을 세워 할퀴듯 진성의 몸을 지나쳐갔고, 손가락이 지나간 자리에는 뭉치고 뜯어지며 눈처럼 변해버린 가루가 바닥에 쌓이기 시작했다.

         

       투둑.

       투둑.

         

       진성은 날카로운 손톱이 지나가며 상처를 입혀도 멈추지 않았다.

       상처에서 마침내 피가 배어 나오고, 배어 나온 피가 하얀 가루와 만나 엉겨 붙어 밀가루 반죽처럼 변해도 계속해서 손을 움직이기를 반복했다.

         

       투둑.

       투둑.

         

       그렇게 한참을 자해 같은 행동을 반복하기만 했고,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지 무표정한 얼굴로 기계적으로 손만을 계속해서 움직였다.

         

       그리고 마침내 가슴팍이 완전히 피범벅이 되어버리고, 상체에 있는 모든 가루가 진성의 손톱에 의해 긁혔을 때에서야 진성은 움직임을 멈췄다. 하지만 멈춘 숨을 다시 쉬지는 않은 채 뚜벅뚜벅 걸어가 방문으로 걸어갔고, 피가 잔뜩 묻어서 미끈거리는 손으로 문고리를 잡고 열었다.

         

       끼이익.

         

       그러자 방 안으로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햇살에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경첩에는 지저분한 빨간 녹이 잔뜩 있었는데, 마치 문이 열리면서 내는 비명이 태양 빛에 괴로워하는 흡혈귀가 내는 그것과 같았다.

         

       “후우.”

         

       진성 역시 태양 빛에 괴로워하는 경첩처럼 눈을 찡그렸다.

       하지만 빛을 피할 생각은 없는지 기꺼이 방 밖으로 나섰고, 낮에 광합성을 받기 위해 애를 쓰는 식물처럼 몸을 크게 벌리며 태양 빛을 온몸으로 받았다.

         

       저벅.

         

       그리고 그가 눈을 감고 태양의 열기를 받자 저 멀리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신주님. 요양은 끝나셨습니까?”

         

       저 멀리서 걸어온 리세는 공손하게 진성에게 물었고, 진성은 그 목소리를 듣자 살며시 눈을 떴다.

         

       “그래.”

         

       리세는 진성에게 공손하게 하얀 옷가지를 내밀었다.

         

       “잠깐 기다리거라.”

         

       진성은 옷가지를 내미는 리세를 잠시 기다리게 한 후 몸을 돌려서 방을 바라보았다.

         

       진성이 있었던 방.

       주술을 사용한 후 요양 겸 몸을 정갈히 하기 위해 며칠 동안 머물렀던 방.

       낡아빠진 철제 컨테이너의 형상을 하고, 통풍은 죽어라 되지 않았던 데다가, 도대체 어디에 틈이 있었던 것인지 해충이 계속 기어 와서 귀찮게 만들었던 좁디좁은 방.

         

       진성은 며칠 동안이나마 자신에게 안락한 어둠을 제공해주었던 낡아빠진 컨테이너를 보며 삼매진화를 피웠다. 그리곤 다른 손으로는 허공에 기름통을 띄우곤 붓기 시작했다.

         

       꿀렁.

       꿀렁.

         

       진성의 손짓에 따라 허공에 둥둥 뜬 채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간 휘발유는 꿀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곳곳에 뿌려졌다.

         

       벽면에도, 장식이나 다름없었던 전기 설비에도, 단 한 번도 먹지 않았던 생수통과 빵에도.

       그리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새까만 가루 뭉치들에도.

         

       “가루가…많네요.”

       “대가이니 어쩔 수 있겠느냐.”

         

       리세는 새까만 가루를 보며 질린다는 듯 중얼거렸고, 진성은 그 말에 아무렇지도 않게 답했다.

       마치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고 돈을 지불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처럼, 혹은 겨울이 오면 춥고 여름이 오면 더운 것이 당연하다는 듯 아주 일상적인 말투로 말이다.

         

       하지만 리세는 진성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음에도 걱정스러운 눈으로 진성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진성의 피부에서 피어났다가 모종의 조치로 몸에서 떨어진 수많은 곰팡이의 잔해와 완전히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진성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진성은 그런 리세의 시선에 피식 웃고는, 걱정해줘서 고맙다는 듯 리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자 리세는 기분이 좋다는 듯 어느새 꺼내놓은 여우 귀를 쫑긋거렸다.

         

       따악.

         

       진성은 한 손으로는 리세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손가락을 튕겨 삼매진화의 불꽃을 컨테이너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휘발유에 불이 붙기 시작하자 진성은 손을 움직여 컨테이너의 문을 닫았고, 그것으로 모자란다는 듯 미리 준비해놓은 물건들을 이용해 컨테이너의 틈새를 꽁꽁 싸맸다.

         

       연기 한 점 나갈 수 없도록.

       컨테이너의 안이 지옥에서 들끓는 가마솥과 비견될 온도가 될 수 있도록.

         

       그리고 그러한 작업이 완료되자 리세가 미리 가져다 놓은 물통을 향해 걸어가곤 자기 몸에 물을 끼얹었다. 그리고 손바닥을 문질러가며 상체를 빨갛게 물들인 피를 닦기 시작했다. 다행히 피는 굳지 않은 것인지 손쉽게 닦였고, 모든 피가 닦이자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피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리세는 그 모습을 보고는 살짝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도와드리겠습니다.”

         

       진성의 손이 닿기 어려운 등 부분이 아직 피로 물들어 있음을 확인하자 부드러운 스펀지를 하나 들고 진성의 등에 묻은 피를 지워주었다.

         

       “다 되었습니다.”

       “고맙구나.”

         

       진성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리세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곤 허리를 쭉 폈다. 그리곤 손을 뻗어 옷가지를 받아서 대충 챙겨입고는 리세와 함께 본전(本殿)으로 향했다.

         

       본전 안으로 들어온 진성은 신력이 장막처럼 쳐져 소리가 빠져나가지 못하는 상태임을 잘 확인한 후에야 질문을 던졌다.

         

       “우치카와 료스케에 대한 기사가 아직 나오지 않은 것 같은데?”

         

       의아한 듯 묻는 진성의 말에 리세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기자들이 권력에 대항하기 싫어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권력, 권력이라? 인맥은 죄다 박살이 나고, 제 뒤를 닦아줄 자도 없고, 자신을 추종하고 따를 작자도 없는데.”

       “아직은 그것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겠지요.”

         

       진성은 기자들이 몸을 사리고 있다는 말에 턱을 한 번 쓰다듬었다.

         

       “뭐, 상관없느니라. 어차피 모든 것은 순리대로 흘러갈 것인즉.”

         

       그는 조금 전 자신과 통화한 사범을 떠올리며 웃었다.

         

       “기사가 뜨지 않더라도 단서는 던져주었으니, 우치카와 료스케와 관련된 괴소문과 접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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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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