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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6

       

       

       

       “하하하, 소다수는 아주 많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렴.”

       

       레키온은 전혀 상관하지 않고 웃음을 터뜨렸지만, 아르는 여전히 어쩔 줄 몰라 했고.

       아르의 꼬리는 갈 곳을 잃어 흔들리다가 근처의 의자를 실수로 쳐서 넘어뜨렸다. 

       

       쿠당탕!

       

       “삐유욱! 아르가 다 원래대로 해 놓을게여!”

       

       아르는 황급히 마법으로 의자를 일으켜 세웠다.

       

       “레스토레이션(Restoration, 복원)!”

       

       그리고 땅에 떨어져 산산조각난 소다수 병을 향해 영창했다.

       

       슈와악!

       

       “오…!”

       “와, 뭐야?”

       

       그러자 순식간에 깨진 유리 조각들이 모여들더니 원래의 소다수 병 모양을 이루며 붙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소다수 병이 깨지면서 바닥에 쏟아졌던 소다수까지도 다시 병에 쏙 들어간 채, 병마개가 끼워졌다. 

       

       그야말로 완벽한 복원 마법이었다. 

       

       “이게 드래곤의 마법…?”

       “똑같은 복원 마법도 누가 쓰느냐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있는데…. 이렇게 산산조각난 유리병을 실금 하나 없이 복원했다고…?”

       

       알렉스는 아르가 복원한 소다수 병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 보더니 감탄사를 뱉었다. 

       

       데보라도 신기한 듯 소다수 병의 마개를 뽁, 하고 뽑아 보더니 괜히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아 보았다. 

       

       “이거 근데 마셔도 되는 건가? 쏟은 물을 주워담았다고는 해도 어쨌든 한 번 쏟아진 거잖아.”

       “아마 괜찮긴 할걸. 쏟아지기 전의 상태로 완벽하게 복구한 거니까, 쏟아지며 섞인 불순물이나 오염 상태도 원래대로 돌아왔겠지.”

       “확실해?”

       “왜?”

       “아니, 확실하면 네가 마셔 보라고 하려고.”

       “…….”

       

       데보라의 말에 알렉스가 눈을 가늘게 뜨고 째려보았다. 

       

       “내가 못 마실 줄 알고?”

       

       알렉스는 그렇게 말하더니 소다수를 곧바로 꿀꺽꿀꺽 들이켰다. 

       

       단번에 원샷을 때린 알렉스는 탁, 하고 소다수 병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크으. 자, 마셨다. 어쩔래?”

       “…그걸 마셨다는 것보다 탄산 들어간 소다수를 원샷 했다는 게 더 신기한데.”

       

       데보라는 그 따끔따끔한 걸 어떻게 참았냐는 듯 으,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진짜 이 사람들 찐친 바이브 보소.’

       

       아무렇지 않게 알렉스를 실험체 삼아 마셔 보라고 하는 데보라나, 데보라가 ‘쫄?’ 시전하니 바로 마시는 알렉스나….

       

       어렸을 때부터 얼마나 친하게 지냈었는지 안 봐도 훤히 보일 정도였다.

       

       “알렉쓰 삼쵼…!”

       

       한편 아르는 왜인지 굉장히 감동한 눈빛으로 알렉스를 바라보며 손을 모으고 있었다. 

       

       “으응?”

       “아르의 마법을 믿구 마셔 주셔서 고마어여! 아르 지짜 완벽하게 원래대루 해 논 거 마쪄?”

       “하하, 그래. 아주 그냥 갓 만든 소다수처럼 시원하고 탄산도 죽이던데? 대단한 복원 마법이었어.”

       “헤헤….”

       

       아르가 안심하고 눈을 접으며 헤헤 웃자, 알렉스는 씩 웃으며 아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물론 아르의 키가 더 커서 손을 쭉 올려 뻗어야 했지만, 아르는 편하게 쓰다듬으라는 뜻으로 살짝 고개를 숙여 주었다. 

       

       소다수 병을 깨 먹고도 칭찬을 받는 건 아마 우리 아르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 볼이 아주 말랑하네.”

       “그치? 진짜 너무 귀엽다니까. 이렇게 온순하고 귀여운 드래곤이 세상에 어디 있냐. 진짜 아르는 보배야, 보배.”

       

       알렉스도 머리를 쓰다듬다가 자연스럽게 볼을 만져 보고 감탄했고, 레키온은 아르의 귀여움을 알아 주는 알렉스의 어깨를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끄윽.”

       

       레키온이 어깨를 툭툭 두드림과 동시에 탄산 때문에 트림을 한 알렉스는, 마침 잘됐다는 듯 옆에 있는 새 소다수 병을 하나 집어들었다. 

       

       그리고 데보라에게 내밀었다.

       

       “자, 이제 너도 원샷 함 가자.”

       “내가 왜?”

       “내가 했으니까! 아, 혹시 쫄? 천하의 데보라가 소다수 한 병 원샷도 못 해서 빌빌거리고….”

       “내놔 봐.”

       

       꿀꺽꿀꺽.

       

       데보라는 단숨에 알렉스가 내민 소다수를 원샷 했고.

       

       “끄윽.”

       

       똑같이 트림을 했다. 

       

       그렇게 평온을 되찾은 우리는 각자 자리에 앉아 만찬을 즐겼다. 

       

       “자아, 건배 한 번 합시다!”

       “레키온과 데보라의 교제를 축하하며!”

       “…뭔가 그렇게 말하니 민망하네.”

       

       우리는 축배를 들기 위해 술잔에 그 비싸다는 30년산 포도주를 담아 들어올렸다. 

       

       “아르두 포도주 마시구 시퍼…!”

       “술은 다 커서 마시기로 했잖니, 아르야.”

       “히잉.”

       “그리고 지난번에 맥주 한 모금 마셔 보고 술은 다신 안 마신다며?”

       “구래두 포도주는 몬가 마시써 보이는걸….”

       

       이드밀라와 함께 했던 식사에서 맥주에 학을 떼었던 아르였지만, 시간도 꽤 지났고 다른 종류의 술이라 또 호기심이 발동한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음료수 중에서 달달한 포도 주스를 꽤 좋아하는 아르였기에, 아주 먹음직해 보이는 짙은 포도주의 색깔을 보고 벌써 혀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그래? 그렇게 마시고 싶어?”

       

       내가 허락해 줄 것 같자, 아르의 표정이 환해졌다. 

       

       “우응! 아르 포도주 마실래!”

       

       내 옆자리에 앉은 아르는 내 팔을 껴안으며 기대에 찬 눈빛을 했다. 

       

       “알았어. 그럼 오늘은 특별히 포도주 마시는 걸로 하자.”

       “삐유웃! 고마어, 레온!”

       “괜찮겠어요, 레온 씨?”

       

       실비아가 살짝 걱정스럽다는 듯 물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매일도 아니고 이럴 때 한 번 정도는 괜찮겠죠.”

       

       그리고 어차피 한 모금 마셔 보면 바로 뿌우, 하고 다신 안 마신다고 할 텐데요.

       

       ‘우리 아르만큼 또 초딩 입맛인 사람도 드물거든.’

       

       포도주와 포도주스는 한 글자 차이지만, 그 맛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걸 아르는 곧 알게 될 거다. 

       

       이것이 냉엄한 어른의 세계란다, 아르야.

       

       나는 미소를 지으며 아르의 잔에 포도주를 따라 주었다. 

       

       “건배!”

       “짠!”

       “쀼우!”

       

       우리는 그렇게 잔을 부딪쳤고, 곧 포도주를 마셨다. 

       

       “오오…. 이거 맛있는데?”

       “30년산이라더니 맛이 깊어.”

       “그렇지? 후후후.”

       

       일단 데보라와 알렉스 쪽 반응은 괜찮아 보였다.

       

       ‘그럼 나도 한번 마셔 볼까.’

       

       평소에 술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까진 아니지만, 레키온이 맛있다고 호언장담한 30년산 포도주다 보니 조금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꿀꺽.

       

       한 모금을 입에 머금고, 넘긴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뭐야, 이거 진짜 맛있는데?’

       

       입 안에 들어오자마자 포도주는 묵직하면서도 부드럽게 혀를 적셨고, 숙성된 깊은 맛과 함께 포도 특유의 달달한 맛이 진하게 느껴졌다. 

       

       ‘술 같지 않은…. 아니야, 술이라는 느낌은 분명 충분히 있어.’

       

       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들을 위해 출시된, 도수가 낮은 음료수 같은 술들은 부담 없이 누구나 마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술을 마시고 있다는 느낌은 별로 안 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야 당연하지. 도수를 그렇게 낮추고 술 냄새를 확 빼 버렸는데.’

       

       하지만 이 포도주는 달랐다. 

       

       입에 담자마자 묵직하게 느껴지는 첫맛은 이 술이 정말 30년 동안 푹 숙성된 술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게 해 주는 깊은 맛이었다. 

       

       ‘그런데 그 깊은 맛이 결코 쓰고 떫게 느껴지질 않아.’

       

       단맛으로 쓴맛을 덮어 버린 것이 아닌, 진정으로 어우러지며 ‘달달하면서도 깊은 술’이라는 이루기 힘든 경지를 직접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포도주가 있었다니…. 지금까지 내가 먹었던 와인들은 대체….’

       

       내가 술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대략 와인의 당도를 결정하는 건 원료가 되는 포도의 당을 얼마나 발효시켜 알코올로 만드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들었다. 

       

       간단히 예를 들어 100이라는 당도를 가진 포도가 있다면 그 중에서 30을 알코올로 만들면 달달한 술, 70을 알코올로 만들면 쓴 술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만약 애초에 300이라는 당도를 가진 포도가 있다면?

       

       똑같이 70을 알코올로 만들면서도 230을 가지고 달달한 술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만들려면 당도 자체가 아주 높은 포도가 일단 있어야 하고, 발효 기술도 좋아야겠지.’

       

       그냥 달게만 한다고 해서 이런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맛을 만들기는 쉽지 않을 테니까.

       

       그 황금 비율을 찾는 것이 바로 포도주 만드는 사람들의 비법일 것이다.

       

       여튼, 이 포도주는 내가 마셔 본 포도주 중에서 정말 최고의 맛이라고 평가할 만했다. 

       

       내가 솔직한 감상을 이야기하자, 레키온은 기분이 좋은 듯 허허 웃었다. 

       

       “입에 맞으신다니 다행이네요. 사실 제가 좀 입맛이 어려서, 술도 좀 달달한 것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가격이 좀 나가지만 이렇게 맛이 깊고 달달한 포도주를 찾은 것이죠.”

       “하긴, 레키온이 애 입맛이긴 하지.”

       “어렸을 때랑 지금이랑 달라진 게 없지.”

       “그렇군요….”

       

       일단 이 술을 구입한 레키온부터가 초딩 입맛이라고 하니 이해가 되었다. 

       

       ‘잠깐. 초딩 입맛에 맞는 술…?’

       

       그리고 그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나는 아르 쪽을 홱 돌아보았다. 

       

       설마.

       

       “쀼우웃! 포도쥬 대게 마싰는뎅?”

       

       아르는 이미 잔에 있던 포도주를 한 입에 털어 넣은 지 오래였고.

       

       이미 내가 말릴 새도 없이 포도주 병을 들고 거의 소다수 마시듯이 꿀꺽꿀꺽 마시고 있었다. 

       

       “아르야…?!”

       “엇, 아르야? 술은 그렇게 빨리 막 마시면 안 되는데…!”

       

       맛이 달달해서 그렇지, 도수는 높은 편이라 이렇게 빨리 마실 만한 술이 아니었다. 

       

       “아르야, 그만!”

       

       눈을 감은 채 포도주가 맘에 들었는지 맛을 음미하던 실비아도 우리들이 다급하게 소리치자 눈을 뜨고 재빨리 아르를 말렸다. 

       

       하지만.

       

       “맙소사. 이미 다 마셨어.”

       “그 한 병을 벌써?”

       

       이미 아르는 그 큰 병째 술을 다 마셔 버린 뒤였다. 

       

       “어떡하지…? 뭐 문제 생기는 거 아니야?”

       “그래도 명색이 드래곤인데 술 취하고 그러진 않겠지?”

       “그렇겠지?”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조금 마음을 가라앉혔을 무렵.

       

       “삐꾹.”

       “…아르 얼굴 빨개졌는데?”

       

       볼이 붉어진 아르가 딸꾹질을 했다. 

       

       “레오오옹…!”

       

       심지어 발음은 평소보다 더 구부러져 있었다. 

       

       아르는 살짝 어지러운지 머리를 짚더니, 곧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리고 나를 찾더니, 눈을 접으며 헤에, 하고 웃으며 나에게 다가와 팔을 벌려 껴안았다. 

       

       “헤헤, 레오오온…. 쪼아….”

       

       핥짝.

       

       술 냄새가 풍기는 아르의 혀가 내 볼을 핥았다. 

       

       “아르야, 진정해. 응?”

       “우으으응? 아르 멀쪙한뎅?”

       “원래 취한 사람은 자기 취했다고 안 해.”

       “진쨘뎅….”

       

       아르는 따뜻한 볼을 내 볼에 댔다. 

       

       “아르야, 괜찮니…?”

       “좀 쉬어야 될 것 같은데.”

       

       그러고는 자신을 걱정하는 말을 건네는 레키온과 데보라를 바라보더니, 뭔가 할 말이 떠올랐는지 나를 놓아주었다. 

       

       “레쿈 삼쵼…. 그리구 데브라 온니…! 아르가 지짜루 추카해여…!”

       “그래, 그래. 아르야, 고마워.”

       “서로 사랑 아낌 업시 주구, 오래 오래 행보캐야 대여. 아르눈 삼쵸니랑 온니가 행보캐씀 조케써여.”

       

       그러고는 다시 나를 보며 말했다. 

       

       “아르는 이짜나여. 레옹한테 넘무 고마어여. 아르가 모 잘못한 거 이써두 다독여 주구, 아르가 막무가내루 쫄라두 들어주구, 무엇보다 진짜진짜루 아르를 아끼구 사랑해 조여.”

       

       아르는 내게 다시 반쯤 기대어 안겼다. 

       

       “아르두 레오니 너무너무 쪼아여. 레오니랑 계약하게 대서 정말 다행이에여. 헤헤…. 구러니깐 삼쵸니랑 온니두 겨론해서 레오니랑 실뱌 온니랑 아르처럼 가족 되구, 행보카게 살아여…. 그리구 또오….”

       

       그 큰 덩치로 내게 안긴 채 점점 목소리가 작아지던 아르는, 결국 웅얼거리다가 말을 멈추었다. 

       

       “쿠울….”

       

       그리고 그대로 평온한 얼굴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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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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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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