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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6

       프란체의 회임 소식 이후, 산모는 절대적인 안정을 취해야 했기에 내가 공작 대리를 맡고 있다.

       

       그 과정에서 그녀가 억지로 자신이 하겠다고 아집 부리는 걸 막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다행히 달리아를 비롯한 모두가 달라붙어서 설득하니 받아들였다.

       

       덕분에 가장 위험했던 임신 초기를 별 탈 없이 보내고 있고.

       

       그런데…….

       

       나는 지금 한 가지 문제로 고뇌하고 있다.

       

       공작으로서 처리할 업무가 많거나 복잡해서 그런 건 아니다. 그것들은 이미 한참 전에 끝내뒀으니까.

       

       아무튼, 머리가 아픈 이유는 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중요한 일이 있던 까닭이었다.

         

       바로 태어날 우리 쌍둥이의 이름.

       

       ‘대체 무슨 이름이 좋은 거지?’

       

       바렌베르크 왕자 시절, 나의 진이라는 이름은 두려워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뜻이었다.

       

       지구에서 살던 시절, 김공략이라는 이름은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뜻은 있었다.

       

       애매한 내 이름과는 달리 우리 쌍둥이에게는 멋있으면서 의미 깊고 심도 높은, 그러한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

       

       그래서 고대 문헌까지 뒤져가며 이름을 찾고 있건만…….

       

       “마음에 드는 게 없군.”

       

       도무지 ‘이거다!’ 싶은 이름이 없다.

       

       “마음에 드는 게 없으신가요…?”

       

       내가 머리까지 쥐어 뜯어가며 고뇌하자, 옆에서 지켜보던 헬레나가 물었다.

       

       헬레나는 프란체의 전속인데 왜 여기에 있냐면, 현재 레냐를 비롯한 사용인들이 프란체를 지극정성으로 돌봐주고 있기에 자연스레 내 쪽으로 왔다.

       

       “그래. 좋은 이름이 없네.”

       “음, 두 개만 찾으시면 되는 거죠?”

       

       뭔 소리야? 순간적으로 인상이 구겨졌다.

       

       “네 개 찾아야지. 쌍둥이잖아?”

       “…네 개요?”

       

       헬레나가 눈을 끔뻑였다.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첫째가 남자라면 지어줄 이름과 여자라면 지어줄 이름. 둘째가 남자라면 지어줄 이름과 여자라면 지어줄 이름. 총 네 개. 당연한 거 아니야?”

       

       내가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자 헬레나는 시선을 피하며 아하하, 하고 멋쩍게 웃었다.

       

       “후, 데카르트라는 이름의 어감과 맞아야 하고, 또 뜻이 심도 높고 깊어야 하면서 외모와도 맞아야 하니… 아, 이건 불가능인가?”

       

       두 손가락으로 미간을 짓누르며 눈을 질끈 감았다. 결정이 쉽지 않다.

       

       나와 프란체의 아이라면 일단 황금처럼 반짝이는 짙은 금안을 물려받을 거다. 이는 바렌베르크 왕족의 핏줄이라면 무조건 갖고 태어나는 증표와 같으니까.

       

       ‘머리는…….’

       

       새빨간 장미의 색일 확률이 높다. 데카르트의 피를 이은 자들은 대부분 붉은 머리를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면 반짝이는 황금안과 장미처럼 붉은 머리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건데…….

       

       “…어렵군, 어려워.”

       

       좋은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답답함에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자 헬레나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녀는 애매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공작님의 성함과 공작부군님의 성함을 합쳐보는 건 어떨까요…?”

       

       괜찮은 생각이라 눈이 번뜩 뜨였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

       

       그녀의 이름 때문이었다. 지금은 떠올리기도 싫은 데카르트의 친가가 지어준 이름이라면 거부감이 들지도 모른다.

       

       “물어봐야겠군. 바로 침실로 가지.”

       “네, 네!”

       

       

       * * *

       

       

       똑똑. 혹여나 프란체가 놀랄까, 아주 조심스레 노크했다. 슬쩍 문을 열고 들어서자 프란체는 침대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진? 무슨 일이야?”

       “그게…….”

       

       앞서 했던 고민을 빠르고 간략하게 설명하니 프란체는 푸훗,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무슨 그런 거로 눈치를 보고 있니? 딱히 상관없어. 조부님께 들었는데, 내 이름은 어머니가 지으셨다고 하셨어. 사랑스럽다는 뜻이야.”

       

       밝게 웃던 프란체는 조부라는 말을 다시 중얼거리더니 문득 시선을 내렸다. 씁쓸함이 가득한 눈동자였다.

       

       ‘…외가에 무슨 사정이 있나 보네.’

       

       프란체의 외가 쪽에는 의문이 많다. 작위 승계식이나 결혼식 같은 곳에서 볼 수 있었을 텐데 모습을 드러내지도, 소식이 들려오지도 않으니 말이다.

       

       물어보려 했지만 프란체의 표정이 너무 어두워 질문을 삼켰다. 언젠가 그녀가 말하고 싶을 때면 알려주겠지.

       

       당사자가 말하지 않는 가정사는 함부로 캐는 게 아니다.

       

       아무튼, 다시 이름으로 돌아가서.

       

       “그러면 사랑스럽다는 뜻과 두려워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뜻인데…….”

       

       애매해서 심히 고민하고 있자, 프란체는 의견을 전했다. 내가 이러고 있는 모습이 웃긴지 입꼬리에는 웃음이 담겨있었다.

       

       “…그냥 딸이면 내 이름과 관련해서, 아들이면 네 이름을 관련해서 짓는 건 어때?”

       

       확실히 좋은 방법이었다. 부모인 우리와 엮여 있으니 말이다.

       

       심도 높고 깊이가 있으면서 데카르트와 어울리는 어감을 가진 이름에 집중한지라, 간단한 생각임에도 깨닫지 못했다.

       

       이래서 등잔 밑이 어둡다는 건가…….

       

       “그런데 일은 다 끝낸 거야?”

       “아, 일은 한참 전에 끝냈지.”

       “…벌써?”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을 끔뻑이는 프란체. 그럴 만도 했다. 일이 말도 안 되게 쌓여 있었으니.

       

       다만, 집사장 플뤼겔과 엘반 자작의 도움을 받아 처리하니 금방 정리할 수 있었다. 제국 전체에 이뤄지고 있는 마도 혁명도 승인 도장만 찍으면 되는 수준이었고.

       

       “다들 도와줘서 금방 했지.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쌍둥이 이름 고민해야 하는데, 고작 제국의 안위 때문에 미룰 순 없잖아?”

       

       싱긋 웃으며 어깨를 으쓱이자 프란체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하면서 꺄르르 웃었다.

       

       “아무튼, 다시 할 일이 생각났으니 가볼게. 혹시라도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 뭐든지 다 들어줄 테니까.”

       

       나는 그리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침실 문을 열자 프란체는 싱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옆에 있던 헬레나도 따라 나왔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대비해야지.’

       

       이런 경우는 아직 없었는데, 임산부는 문득 먹고 싶은 음식이 생긴다고 들었다. 그때 정말 잘 들어줘야 한다고 배웠고.

       

       딱히 알려고 하지 않아도 어깨너머로 들어오는 간단한 지식이다.

       

       그러니…….

       

       “헬레나, 사용인들과 주방 인원을 소집해.”

       “…어, 갑자기요?”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야지.”

       

       헬레나는 내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듯했지만, 의문을 제기하진 않았다.

       

       잠시 후. 저택의 휴게실에 주방장부터 시작해 사용인들 대부분이 모였다.

       

       “공작부군님, 무슨 일이실까요?”

       

       황궁 출신 주방장이 물었다.

       

       “주방장, 지금부터 임산부가 갑자기 요구할 만한 음식을 준비해야 해.”

       

       그제야 주방장은 아, 하면서 고개를 주억였다. 나이도 지긋하고 경험이 많은지라 단번에 이해한 듯했다.

       

       “음, 공작님께서 따로 음식을 찾으시는 일은 없을 듯합니다. 평소에 미식을 즐기시진 않으셨으니까요.”

       

       나는 “그러면?” 하고 되물었다.

       

       “맛에 집중해야겠지요. 산모들은 주로 새콤하거나 달콤한 맛을 찾습니다. 산딸기 같은 과일이나 꽃잎으로 우린 차가 좋습니다.”

       

       새콤함과 달콤함이라, 프란체는 달달한 음식에 거부감을 느끼니 이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겠고.

       

       “알겠다. 주치의인 달리아와 상의해서 구비 할 음식 목록을 보내지.”

       

       이어 간단한 몇 가지 일을 당부하고, 나는 바로 달리아의 의료실로 걸음을 옮겼다. 문이 열려있어 따로 노크할 필요는 없었다.

       

       “어, 공작부군님. 무슨 일이실까요?”

       “프란체 관련으로 얘기 나눌 게 있어서.”

       

       앞서 있었던 일을 그대로 설명해주니 그녀는 쿡쿡거리며 웃었다.

       

       “철저하게 대비하시네요. 식단을 짜두긴 했는데, 그런 경우가 분명 있을 테니 공작부군님께도 피해야 할 것들을 알려드릴게요.”

       

       달리아는 차근차근 산모에게 위험한 음식이나 재료들을 종이에 필기해주었다.

       

       “이 정도네요.”

       

       나는 종이에 적힌 것들을 확인하곤 고개를 주억였다.

       

       몸의 기운에 영향을 주거나, 지방을 분해하는 성질을 가졌거나. 또 익히지 않은 음식은 절대적으로 피해야 한다고 적혀있다.

       

       “위험한 것들이 많구나.”

       “그럼요. 산모는 정말 예민하니까요.”

       

       이거로 준비는 만전. 대비는 완벽하다.

       

       “좋아, 그러면 이만 가보지. 더 준비할 게 있어서 말이야.”

       

       달리아는 그런 나를 보며 “힘내세요.”하곤 싱긋 웃었다. 그녀의 인사를 받곤 곧장 걸음을 옮겼다.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공부부터 시작해 준비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 * *

       

       

       모두가 잠든 늦은 새벽.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어둠이 드리웠다 하여도 믿을 정도로 새까맣다.

       

       “후.”

       

       임산부인 프란체에게는 매번 잠들 때까지 직접 마사지를 해주고 있다. 방금까지 손을 움직였고.

       

       그녀가 완전히 잠든 걸 확인하고 침대에 누워 눈을 붙였는데…….

       

       “진, 진?”

       

       별안간 프란체가 몸을 흔들어 깨웠다. 분명 잠깐 눈을 붙인 거 같은데 시간이 꽤 흐른 듯했다.

       

       “무슨 일이야? 어디 아파?”

       “아니, 그건 아니고…….”

       “먹고 싶은 게 있어?”

       

       울상을 짓더니 이윽고 시선을 내린 채 고개를 끄덕이는 프란체.

       

       “괜찮아. 말만 해.”

       

       나는 자신감 있게 답했다. 이럴 줄 알고 미리 대비해뒀지. 이래서 선배들의 지혜를 배워둬야 한다.

       

       “과일 맛 사탕이 먹고 싶어.”

       “…응?”

       

       사탕? 순간 잘못 들은 건가 싶어 물었다.

       

       “…과일이 아니고?”

       “응. 과일 맛 사탕이 먹고 싶어.”

       

       이런, 사탕은 준비하지 않았는데.

       

       그럴 것이, 프란체는 평소 설탕이 들어간 음식은 극도로 피해왔다. 굳이 설탕이 들어가지 않아도 달콤한 맛은 거부감을 표했으니…….

       

       “과일 맛 사탕.”

       

       프란체가 단호히 말했다. 눈빛이 애절한 것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던지라, 서둘러 침대에서 벗어나 외투를 챙겨 입었다.

       

       “금방 다녀올게.”

       

       혹시 모르니 주방을 들렀다. 이런 일을 대비해 음식 위치를 표기해둬서 어떤 음식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다만, 사탕은 보이지 않았다.

       

       ‘나가야겠군.’

       

       이런 늦은 새벽에 어찌 사탕을 구하나 싶지만, 공작령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아주머니가 한 분 계셨다.

       

       숨겨진 맛집이어서 카자르랑 라데아 자매는 거길 자주 들렀다. 나도 가끔 당분이 끌릴 때가 있어서 동행한 적도 있었고.

       

       그곳의 주인장은 가게에서 생활과 운영을 동시에 한다고 들었으니 사정을 설명하면 사탕을 구할 수 있을 터.

       

       그렇게 가게에 도착하고, 나는 조심스레 굳게 닫힌 문을 두드렸다.

       

       “계시오? 급한 일이오!”

       

       쿵쿵. 쿵쿵. 야심한 시각에 이러한 행동은 매우 민폐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잠시 기다리자 가게 문이 열렸다. 주인장 아주머니는 부스스한 얼굴로 시선을 올렸다.

       

       “누구… 음…? 공작부군님!? 이런 시각에 무슨 일이신지요?!”

       

       나를 보곤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주인장. 그러나 시간이 없다.

       

       “미안하네, 사정이 있어서…. 과일 맛 사탕을 종류별로 많이 줄 수 있겠나? 값은 배로 치르지.”

       

       주인장은 내 얼굴을 살피곤 옅게 웃었다. 말하지 않아도 무슨 이유인지 눈치챈 듯했다. 이어 안에서 사탕 주머니 두 개를 가져왔다.

       

       “선물이라 생각하고 받아주세요. 단골이시기도 하고, 공작님 덕에 잘살고 있으니까요. 도움이 되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네요.”

       

       따스한 미소를 지은 주인장이 사탕 주머니를 건네더니, 공작님이 기다리실 테니 어서 가라며 손짓했다.

       

       “고맙군.”

       

       다행히 과일 맛 사탕을 구한 나는 서둘러 저택으로 돌아갔다.

       

       오러까지 사용하며 달린지라 주변에 돌풍이 일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자는 생각에 창문으로 들어가니 프란체는 베개를 끌어안고 울상을 짓고 있었다.

       

       “프란체!”

       

       사탕 주머니를 뜯고 건네자 프란체는 허겁지겁 사탕을 입에 물었다. 행복으로 물들어 녹아내린 얼굴을 보니 픽 웃음이 나왔다.

       

       “맛있어?”

       “응…….”

       

       사탕이 만족스러웠는지 미소짓는 프란체. 그제야 안도감이 돌았다.

       

       내일 바로 달콤한 것들도 준비해야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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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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